국민들 고금리에 ‘신음’할 때 공공기관 직원들 ‘초저금리·고액 대출’
음주운전·성범죄로 ‘정직’인데도 월급 지급해…성과급도 챙겨줘
복리후생 축소 못하는 공공기관...여전히 “노사 합의 진행 중”
“경영평가 통해 제대로 이행됐는지 강력히 평가하면 시정할 것”

국민 일상에 밀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몸집에 비해 재무구조가 부실한 경우가 늘고 있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도덕적 해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8년 58%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는 비기축통화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것이고, 향후 증가 속도는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비상한 경제 위기 속에서 공공기관 대수술이 필요한 때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된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 악화 문제와 방만경영 및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3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021년 공공기관의 과도한 복리후생 제도 운영을 지양하라며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을 내렸다.[사진출처=뉴시스] 
기획재정부가 지난 2021년 공공기관의 과도한 복리후생 제도 운영을 지양하라며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을 내렸다.[사진출처=뉴시스]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대기업 못지않은 연봉과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안정성 말고도 각종 복지혜택으로 인해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공기관.

실제로 공공기관 직원들에 대한 복리후생비만 봐도 어마어마하다. 지난 9월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가 내놓은 ‘2023 정기국회·국정감사 공공기관 현황과 이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공공기관(347개) 복리후생비 총액은 8675억원에 달한다.

해마다 공공기관에 대한 방만한 경영이 지적받자 공기관 직원 1인당 복리후생비 규모는 약 188만원으로, 2018년 대비 지난해 기준 23만원(약 10.9%) 축소되는 등 감소했다.

하지만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저금리·고액 사내 대출을 실행하거나 징계로 정직 처분을 내린 직원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등 여전히 국민 눈높이 뿐만 아니라 정부 지침에도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은 고금리에 허리 휘는데...공공기관 직원들 초저금리 주택자금 대출

일반인들이 시중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최대 6% 후반대 이자를 내야 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신규 코픽스 연동 주담대 금리는 17일 기준 4.73~6.66%다.

최근에는 금리 상승세로 인해 변동금리가 8%를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서민들의 가계 부담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부 공공기관은 시중 금리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지난 2021년 8월 개정한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직원에게 주택자금을 융자할 경우 한국은행 ‘은행가계자금대출금리(분기별 연동)’로 하고 대출 한도는 7000만원으로 하며, 주택을 구입할 경우에도 무주택자가 85㎡ 이하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지원 가능하다.

주요 공공기관의 지침 위반 주택융자금 제도 운영 현황.[자료제공=국회 예산정책처]
주요 공공기관의 지침 위반 주택융자금 제도 운영 현황.[자료제공=국회 예산정책처]

하지만 이러한 규정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신용보증기금(신보), 한국산업은행,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사학연금), 한국관광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한국전력공사(한전), 한국석유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한전KPS, 한국전력거래소, 기술보증기금(기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한국수자원공사, 국립공원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산인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공항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부동산원 등 20개 기관이 어겼다.

예정처 보고서를 보면 위의 20개 기관이 지난해 1월1일 이후 신규 지원 대상 기준 1754명에 대해 약 1540억원의 주택융자금을 한국은행 가계자금대출금리 미만 수준으로 제공했다.

이 중 한전이 무려 900명에게 782억원을 한국은행 가계대출금리(지난해 7월 기준 4.05%) 보다 낮은 주택융자금(임차 2.5%, 취득 3.0%)을 지원했다. 이밖에 100명 이상인 기관은 LH(113명, 93억원, 204~2.9%)와 한전KPS(100명, 117억원, 2.0~4.6%)이다.

또한 14개 기관이 지난해 이후 1309명에 대해 1인당 7000만원 이상을 초과한 주택융자금을 제공했다. 이들에 대해 지원하는 주택융자금의 규모만 약 1296억원에 달한다.

85㎡를 초과하는 주택을 구입한 인원에 대해서도 3개 기관이 30명에게 약 25억원 규모의 주택융자금을 제공했다. 광해광업공단은 21명에게 16억원, LH는 6명에게 5억원, 석유공사는 3명에게 4억5000억원을 지원했다.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창구 모습.[사진출처=뉴시스]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창구 모습.[사진출처=뉴시스]

‘생활안정자금 대출’ 규정 위반 수두룩...1%대 초저금리도 있어

또한 이 시기 생활안정자금 대출도 규정 위반 사례가 많았다. 정부 지침에 따라 대출 이자율은 한국은행 은행가계자금대출금리를 하한으로 하고, 대출 한도는 2000만원으로 해야 한다.

주요 공공기관의 지침 위반 생활안정자금 제도 운영 현황. [자료제공=국회 예산정책처]
주요 공공기관의 지침 위반 생활안정자금 제도 운영 현황. [자료제공=국회 예산정책처]

올해 1월 기준 한국은행 가계대출금리는 5.34%였지만 한전KPS는 유일하게 1.0% 금리로 대출을 지원했고 HF(2.0%), 한전KDN(2.0%), 관광공사(2.5%), 농어촌공사(2.5%), aT(2.5%), 전력기술(2.5%), 수자원공사(2.5%), HUG(2.5%)가 2% 초반대 금리로 제공했다. 한국은행 가계대출금리와 비교했을 때 이 공공기관 직원들은 최대 3.34%p 낮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대출 한도도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의 지침과 다르게 한도를 높게 적용한 기관은 신보, HF, 산업은행, 사학연금, 관광공사, 농어촌공사, 석유공사, 광해광업공단, 한전KPS, 기보, 중진공, 수자원공사, LH, 부동산원 등 14개 기관이며, 1인당 2000만원을 초과해 대출 지원 받은 사람은 3459명에 달했다. 이들에게 지원된 생활안정자금 규모는 약 1294억원으로 파악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진출처=뉴시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진출처=뉴시스]

음주운전·성범죄로 ‘정직’인데도 월급 지급해…성과급도 챙겨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정직 징계를 받고도 내부 규정에 따라 정직 기간 동안에 보수를 지급한 경우도 있었다.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에서는 정직 처분을 받은 직원에게 정직 기간 중 보수 전액을 감액하도록 보수 규정을 정비하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일부 공공기관은 지난 7월까지도 해당 규정을 개정하지 않았다.

정직 기간 보수를 챙겨준 인원이 가장 많은 곳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다. 코레일은 96명에게 총 3억원에 달하는 보수를 지급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정직기간 중 보수 지급 내역’에 따르면 코레일은 근무 중 음주를 하거나 음주운전으로 처분 받은 직원 4명에게 정직 기간 동안 총 약 1370만원의 급여를 지급했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처분을 받은 직원에게도 약 2280만원의 보수를 챙겨줬다.

기획재정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류성걸 의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에서 징계받은 직원에게 지급한 성과급은 총 16억6599만원에 이른다.

지난 2021년부터 올해 9월까지 공공기관이 징계받은 직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한 사례는 204건이었다. 한전은 76명에게 23건, 총 2억4552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뒤이어 한국도로공사 3억5804만원(66명, 2건), 코레일 2억2520만원(37명 37건), LH 5299만원(31명 16건), 강원랜드 1억3711만원(20명 14건), 수자원공사 7313만원(20명, 8건) 순이었다.

한국가스공사 본사 사옥 전경. [사진제공=한국가스공사]
한국가스공사 본사 사옥 전경. [사진제공=한국가스공사]

관리감독 못하는 공공기관...줄줄새는 세금

인건비와 출장비에 대한 관리·감독마저도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지난달 발표한 ‘공공기관 재무 건전성 및 경영관리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보상휴가를 받기 위해 직원 87%가 시간외근무 실적을 허위로 입력했다.

이와 함께 시간외근무 수당이 연봉에 포함돼 보상휴가를 받을 수 없는 1·2급 직원까지도 보상휴가를 사용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298명이 2172일을 쉰 것이다.

한국마사회는 특별한 공로 없이 전 직원에게 특별휴가를 부여(연가보상비 연 6억4000만원 상당)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남동발전은 해외 근무 직원이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데도 가족수당과 자녀학비보조수당을 연봉에 포함해 지급하기도 했다. 또 불필요한 경비 지출을 한 경우도 있다. 농어촌공사는 예산 절차 없이 77억원에 달하는 노트북 5690대를 전 직원에게 지급하기도 했다.

2022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보고서. [사진출처=뉴시스]
2022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보고서. [사진출처=뉴시스]

통제력 제고 필요...“기관장 책임 물어야”

방만경영의 대표 사례로 지목된 공공기관 내 과도한 복리 후생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지침까지 만들었지만 이를 위반하면서까지 복지 혜택을 유지하는 것에는 노조 또는 근로자와의 합의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근로기준법 제94조에서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해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을 방패로 삼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노조 측이 합의해주지 않으면 내부 규칙을 바꿀 수 없다”며 “정부 지침을 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회사 내부 규정을 어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해당 관계자는 “노조 측과의 협의로 해당 사안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내 복지는 노사 합의사항이라 내부 저항이 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때문에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기관장 책임을 강조하고 방만경영 비중을 강화해 평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임도빈 교수는 “개혁하게 되면 혜택을 보는 집단은 손해 본다는 생각에 저항을 하기 때문에 노사 합의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손 놓게 되면 방관 내지 조장이 되기에 기관장들에게 책임을 강하게 묻거나 경영평가를 통해 해당 부분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평가하면 경각심을 갖고 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경영평가를 강화해 기관 스스로 내부 규칙을 개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와 함께 기재부의 엄격한 관리·감독도 주문했다.

류성걸 의원은 “공공기관이 부당하게 지급한 성과급을 회수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기재부는 국민의 혈세를 제 주머닛돈처럼 사용하는 행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며 “공공기관이 정부 지침을 어기고 징계자들에게 성과급 잔치를 하면 경영평가에 반영해 지침을 개정하지 않는 기관의 평가점수를 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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