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흉터가 주홍글씨처럼 느껴지는 쪽방촌 주민들
단발성에 그치는 빈대 방역 활동, 주민 불만 커져만 가
방역 지원조차 받지 못한 돈의동 쪽방촌은 깊은 한숨만
“현 빈대 방역 프로그램으로 유의미한 성과 기대 어려워”

동자동 쪽방촌 주민이 빈대 흉터를 보여주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보기 흉하죠.”

소나기처럼 갑작스레 쏟아진 고난은 가난에 가장 먼저 닿는다. 조심스레 걷어 올린 옷소매와 바짓단에 숨겨있던 흉터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빈대들의 흔적이다. 빈대가 지나간 이들의 몸엔 붉은 상처만 남는다. 가려워 긁다 보면 피가 흐르고, 고름이 맺힌다. 머지않아 딱지가 오르지만 가려워 참지 못하고 또다시 긁는다. 이 행위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검붉은 흉이 자리 잡는다. 빈대가 지나간 자리를 하염없이 긁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5mm 안팎 아주 작디작은 존재 앞에서 이들은 한 없이 무기력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권민호(50)씨는 이런 빈대들의 흔적이 부끄럽다. 빈대가 남겨준 흉이 마치 ‘더러운 사람’이라는 주홍글씨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고이 숨겨뒀던 빈대 자국을 보여주며 가장 먼저 한 말이 바로 “보기 흉하죠”다. ‘가렵다’, ‘고통스럽다’는 자신의 불편이 아닌, 남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신경 써 보이는 그다. 빈대 문제는 권씨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이웃들 모두 몸 구석구석에 빈대 흔적을 안고 살아갔다.

쪽방 내부에 놓여진 면도기에 벌레들이 모여있다. ⓒ투데이신문
쪽방 내부에 놓여진 면도기에 벌레들이 모여있다. ⓒ투데이신문

창문을 열자 벌레가 쏟아져 들어왔다

“냄새가 심하죠. 환기라도 시켜드려야겠네.”

권씨가 지내고 있는 방의 크기는 1평 남짓.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무료급식 도시락의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 이와 함께 방 한편에서 썩어가는 음식물, 곰팡이 냄새도 함께 권씨와 기자를 반긴다. 권씨는 이 냄새에 익숙하지만, 기꺼이 추운 겨울 환기를 해 보인다. 제 아무리 만류해도, 권씨의 손은 이미 창문에 닿아있었다. 그러자, 창문 앞에 있던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무수히 쏟아져 들어왔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황급히 창문을 닫는 기자를 보며 권씨는 “괜찮으니 창문을 열어두라”고 웃어 보인다. 창문을 닫아도, 이미 이 건물 안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벌레들이 가득하니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격이라는 것이다. 권씨의 주장에 따르면 쪽방촌을 대상으로 방역을 한다고 했지만 동자동 몇몇 건물만 보여주기식으로 했을 뿐, 방역을 받지 못한 쪽방도 대다수라고 한다. 결국 방역을 지원받지 못한 쪽방에서 빈대가 또다시 찾아온다는 것이 권씨의 주장이다.

지난 9일 서울시 산하 복지재단 서울역 쪽방 상담소는 서울시와 용산구청, 용산보건소와 함께 동자동 쪽방촌을 대상으로 한 빈대 방역 작업을 실시 한 바 있다. 다만, 전체 쪽방 건물이 아닌 65개 건물을 대상으로 방역을 진행했기에 방역 작업을 받지 못한 주민들 사이에선 불만이 새어 나오는 실정이다.

실제 어떠한 방역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쪽방촌 주민 A씨는 “권씨는 방역 지원을 받아서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 같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왜 방역 지원을 받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며 “방역 활동을 할 때 한 번에 해야 빈대가 잡히지,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면 주민들 사이에서 마찰만 생기지 빈대가 사라지겠냐”며 호소했다.

용산구보건소 관계자는 “당초 계획은 10월 말 혹은 11월  초 용역업체를 통해 일괄 방역 지원을 실시하려 했으나, 사용 약품에 대한 빈대 내성 문제로 인해 다른 약품으로 변경하려던 과정 속에서 긴급 승인 결정이 나지 않아 스팀 방역으로 대체하게 됐다”며 “스팀 방역의 경우 약품 방역과 달리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전체를 방역하기엔 어려움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현재 용역비 예산이 추가로 나온 상황에서 11월 말 혹은 12월 초 중 일정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방역 지원을 나갈 계획”이라며 “전체 쪽방 건물이 방역 지원을 받을 수 있게끔 추진 중에 있으며 주민의 부재로 직접 방역 지원이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 스팀 방역 도구 대여 방안도 실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산한 돈의동 쪽방촌 모습&nbsp;ⓒ투데이신문<br>
한산한 돈의동 쪽방촌 모습 ⓒ투데이신문

방역 지원조차 받지 못한 쪽방촌도 존재

“여기 사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아요.”

방역 지원 활동을 받아본 경험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종로구 돈의동 새뜰마을 쪽방촌 주민 김청호(65)씨가 가장 먼저 뱉은 말이다. 게시판에 빈대 관련 신고 포스터를 붙이고만 갈 뿐, 어떤 방역활동도 본 적이 없다는 김씨다. 이후 이웃 주민에게서 동자동 쪽방촌은 앞서 빈대 방역 지원이 실시된 바 있다는 소식을 접한 김씨는 씁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이윽고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말과 함께 깊은 한숨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지난 3일 서울시는  ‘빈대 제로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며 쪽방촌, 고시원 같은 위생 취약시설의 빈대 예방·방제에 5억원을 긴급 교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프로젝트가 발표된 뒤 무려 2주가 넘는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대 예방·방제가 절실한 쪽방촌에는 아무런 지원조차 없는 실정이다.

옆에서 김씨와의 이야기를 함께 듣던 돈의동 쪽방촌 주민 B씨는 “돈의동 쪽방촌은 보다시피 집집이 서로 맞닿을 듯 붙어있다”며 “혹여나 한 가구에서 빈대가 발생한다면 돈의동 쪽방촌 전체에 빈대가 퍼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선제적으로 방역을 해서 이를 방지해야지, 이곳에 빈대가 나올때 까지 기다리는 건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종로구 보건소 관계자는 “돈의동에 빈대 의심 신고가 접수돼 방문 후 확인한 결과 단순 피부병이었던 사례가 있다. 이외에는 별도로 빈대 의심 신고는 없었다”라며 “빈대 관련 신고가 들어오면 확인 후 방역 활동을 하는 게 원칙이다. 특히 쪽방촌 및 고시원의 경우 최대한 방역을 도와주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점검은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빈대를 막기 위해 테이프를 붙여놓았지만, 이 틈새로 빈대가 발견됐다.&nbsp;ⓒ투데이신문
빈대를 막기 위해 테이프를 붙여놓았지만, 이 틈새로 빈대가 발견됐다. ⓒ투데이신문

퍼질 대로 퍼진 쪽방촌 빈대, 단발성 방역이 해결책일까?

이렇듯 지속적인 지원이 아닌 단발성에 그치는 방역 활동은 결국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실제 방역 지원을 받은 동자동 쪽방촌 주민 C씨는 방역 이후에도 빈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쪽방촌 건물 내부에 있는 틈 사이로 빈대가 계속해서 유입된다는 것.

실제 기자가 방문한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방 내부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틈이 존재했다. 주민 대다수는 테이프를 통해 이 틈을 막고 생활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 떨어진 테이프 틈으로 빈대나 각종 벌레들이 유입되는 실정이다. 이같이 제 아무리 방역을 실시해도 빈대를 완전 차단하기엔 어려움이 존재하는 쪽방촌의 현실이다.

 C씨는 “방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건물 자체가 낙후됐고 별다른 관리조차 없어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 대다수가 이렇게 건물 곳곳에 테이프를 붙여놓고 살고있다”며 “이미 빈대는 곳곳에 퍼져버린 상황에서 한두번 방역한다고 빈대가 모두 사라지겠나. 차라리 건물의 틈새를 막아 빈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역업체 월드환경 관계자는 “쪽방촌을 대상으로 단발성에 그치는 방역 활동으로는 유의미한 성과를 얻긴 어렵다. 이미 노후화된 건물 전체에 빈대가 퍼져있기에 매일 방문해 방역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빈대는 계속해서 발견될 것”이라며 “건물틈을 막아 생활하시는 것도 임시방편일 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쪽방촌 주민들의 빈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기적으로, 꾸준히 방역 활동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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