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8년 만에 네 가족 함께 한국서 살게 돼
약 1년 후 피해 사실 알아…2억3000만원 손해
피해자 “집은 꿈 키우던 보금자리…아픔 크다”
‘특별법 확대 및 지속·지속적 관심’ 촉구 나서

지난 10월 수원에서는 일가족이 공모한 ‘전세사기’ 의혹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해자로 지목된 정모씨 부부는 10여개 법인을 앞세워 수원 일대에서 빌라·오피스텔 등 50여채 건물에서 800여 가구를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사들인 뒤 임대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전셋값 하락 등으로 이들이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게 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올 11월 기준 정씨 관련해 경찰에 460여건의 고소가 접수됐고, 적시된 피해 금액은 700여억원에 달한다.

피해금액이 2000여억원을 넘는 인천 미추홀구, 대전에 이어 발생한 또 다른 대규모 전세 사건이지만 앞서 발생한 사건보다 피해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삶을 처참히 무너뜨린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 상황과 규모를 비롯해 아무도 몰랐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최성우(가명·47)씨가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최성우(가명·47)씨가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사랑하는 가족과 같은 지붕 아래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많은 추억을 쌓으며 늙어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꿈이다.

더욱이 두 아들의 아빠이자, 기러기 아빠를 약 3년간 경험했던 최성우(가명·47)씨에게도 가족은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더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다.

하지만 8년 만에 맞이한 네 식구의 ‘첫 집’은 전세사기로 얼룩졌다. 많은 시간을 인내하고 버티며 일궈온 첫 공간이 지옥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는 성우씨 가족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떨어져 있었던 만큼 소중한 추억을 쌓고 오순도순 지내야 할 시기에 성우씨는 전세사기 관련 업무를 처리하느라 동분서주해야만 했고, 넷이 같이 살면 여행을 자주 다니자는 약속도 못 지킨 채 피해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기러기 아빠 생활을 청산한 뒤 새 출발을 꿈꾸다 전세사기라는 범죄에 마주한 한 가장을 만나 피해 규모부터 상황까지 자세히 들었다. 그 또한 수원 일대에서 전세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정씨 일가에게 피해를 당했다.

현재 성우씨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수원시 세류동에 위치한 다세대주택에 거주 중이다. 같이 산 지 1년이 조금 지날 시기, 수원 일대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이 하나둘씩 세상에 드러나면서 그 또한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그가 거주하는 빌라는 계약 당시 근저당인 12억이 아닌 20억4000만원이 설정돼 있었다.

성우씨의 피해 금액은 2억3000만원이다. 가족과 8년 만에 결합하며 볕 들 날만 마주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를 찾아온 건 한 겨울보다 춥고 시린 전세사기란 ‘풍파(風波)’였다.

가족과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다는 소원마저 앗아간 그는 간절히 피해구제를 바라고 있다. 더불어 많은 피해자들이 연대해 이 아픔을 극복하고 같이 치유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며 소망한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정씨 측은 현재 고의성은 없다며 혐의를 계속 부인하고 있어 사태 해결까지는 녹록지 않은 상태다.

성우씨가 실제 계약한 공인중개사 측과 나눈 대화 일부. ⓒ투데이신문
성우씨가 실제 계약한 공인중개사 측과 나눈 대화 일부. ⓒ투데이신문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은 집

건축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성우씨는 대만 출신 여성과 지난 2014년 결혼했다. 이후 아내를 위해 대만과 한국을 오가며 결혼 생활을 이어갔고, 가끔씩 가족들이 한국에 올 때면 부모님이나 누나의 집에 신세를 지면서 생활했다. 그 과정에서 현재 8살, 5살의 두 아들이 태어났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 긴 이동시간에 몸은 힘들지만 나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냈다. 그러던 지난 2020년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발병하면서 하늘길이 닫히자, 성우씨는 강제적으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자유롭게 해외를 오고 갈 수 없다 보니, 성우씨의 아내와 두 아들은 대만에서 지냈으며, 그는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일정 금액을 전달했다. 가뜩이나 자주 만나지 못하는 가족을 못 보기까지 하니, 그리움은 점차 그 크기를 더해갔다. 특히 둘째 아들은 돌잔치 이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같이 시간을 못 보낸 것이 후회됐다.

그러던 지난해 여름. 드디어 코로나19 팬데믹이 해제되면서 가족들이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성우씨의 외롭고 고독하던 기러기 아빠 생활도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그렇게 성우씨는 가족들이 정착할 수 있는 집을 찾기 위해 나섰다. 집을 구하는 조건은 딱 하나였다. 아직 한국 문화, 언어 등에 익숙하지 않은 자녀들을 위해 화교 학교가 있는 곳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후보는 영등포구, 수원, 인천으로 좁혀졌다. 이 중 저렴한 집 값과 교육비, 주변 인프라 등이 보다 좋았던 수원으로 거주지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직도 강행했다. 지방 출장, 주말 근무가 잦은 전 직장과 달리 현 직장은 다소 임금은 적지만 사무실에서 통근할 수 있어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회사가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해 있어 집과 왕복 3시간이 걸리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이동 시간은 문제 되지 않았다.

더욱이 이사 직전 이직을 한 탓에 디딤돌 등 다소 금리가 낮은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이자가 6%대인 신용대출까지 받으면서까지 터전 마련에 나섰다.

가족들에게 드디어 단단하고 안정적인 ‘남편’으로, ‘아버지’로, ‘가장’으로서 자리 잡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기 때문에 회사의 위치, 높은 이자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일 부동산 중개 앱에 접속해 적절한 집을 찾았고, 직접 수원에 가 50여군데를 보고 나서야 고심 끝에 현재의 집을 결정했다. 그렇게 지난해 8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해당 빌라는 3개의 방을 가진 집은 크기도 네 가족이 살기 적당했고, 아이들 학교와도 가까워 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쏙 드는 집이었다.

네 가족이 드디어 한 지붕 밑에서 산지 약 1년이 흘렀을까. 첫째 아이도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에 적응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갈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빌라 세대원 중 3세대가 먼저 이사를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나간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전세금 중 일부만 받은 채 이사를 갔고, 다른 한 가구는 나중에 줄 테니 임차권 등기 설정을 하지 말고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고 떠났으며, 나머지 가구는 돈을 아예 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성우씨에게 전해졌다.

마침 이사를 계획하던 성우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줄 여력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물론 전세비가 점점 떨어져 전세금을 전부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성우씨는 지난 9월 말 임대인에게 이사 갈 예정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임대인은 문자를 확인하지도, 답장을 보내지도 않았다. ‘바쁘겠지’, ‘정신없겠지’라는 생각으로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기다린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지난 9월 말경 관리사무소 직원을 통해 카카오톡 단체 카톡방에 초대됐다. 그 안에서는 임대인 정씨가 전세사기 혐의로 고소됐다는 내용으로 이미 시끄러운 상태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이 성우씨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도 큰 좌절감에 그날은 도저히 맨정신으로 가족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 약속했던 절주도 어긴 채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특히 8년 동안 한국과 대만을 오고 갔던 과거와 3년 동안 떨어져 지내며 외로움에 밤을 지새우던 날과 달리 행복으로 가득하던 1년간의 생활이 사기로 물 든다는 게 더욱 가슴이 아팠다.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직장도 정리하고, 낯선 타지로 이사가는 등 많은 것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성우씨는 더 허탈하고 허망했다.

성우씨는 “약 9년 동안 가족들하고 제대로 같이 살아본 적이 없고, 아이들하고 놀아준 경험이 너무 적다. 특히 둘째 같은 경우는 여행을 한번 다녀본 적이 없다”며 “거리, 다소 적은 임금, 비싼 대출 등을 감수하는 대신 주말에 쉴 수 있으니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이직까지 했는데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것은 전세사기라는 범죄였다”고 호소했다.

성우씨의 계약서 일부. ⓒ투데이신문
성우씨의 계약서 일부. ⓒ투데이신문

‘신뢰’를 가장한 극악무도한 범죄

성우씨는 정씨에게 당한 피해자 중 하나다. 그는 수원시 내 전셋집을 약 50군데나 볼 정도로 부지런히 터전을 구하는 데 애썼다. 하지만 집을 보면 볼수록 의아한 점이 생겼다.

먼저 성우씨가 부동산을 통해 본 집 대다수의 임대인은 정씨였다. 이 부분을 의아하다고 느낄 때마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정씨에 대해 “수원에서 이분 모르면 간첩이다”, “돈 많은 회장님이다”, “건물 많이 갖고 있다” 등으로 소개하며 설득했다. 다수의 입에서 나오는 유사한 설명은 성우씨에게 정씨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바로 12억이라는 높은 근저당이었다. 하지만 당시 수원 내 건물 대부분이 평균 7~12억 사이의 근저당이 잡혀있던 것뿐만 아니라 임대인의 법인 사무실에 직접 가 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자금 운용에 있어 수상한 점이 없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많은 조건에 들어맞는 집이다 보니 성우씨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이직했다는 이유로 성우씨는 디딤돌 등과 대출 요건이 맞지 않아 신용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어느 은행을 가봐도 여러 요건, 대출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담당자가 없었다. 이 같은 답답함을 호소하자, 현재 집 계약을 도운 부동산 관계자는 특정 은행과 담당자까지 성우씨에게 소개해줬다. 심지어 그 은행의 VIP팀장 직급을 달고 있던 사람은 성우씨가 있는 곳까지 직접 방문해 제출할 서류 등을 간단히 소개해 준 뒤 일사천리로 대출을 승인해 줬다.

대출 심사가 까다로운 타 은행들과 달리 신속하고 간단하게 끝난 것에 성우씨가 의아한 것도 잠시, 드디어 가족과 함께할 터전을 구했다는 설렘이 그를 가득 채웠다.

사기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성우씨는 수상했던 부동산의 행동이 생각나 급하게 과거 계약을 도운 부동산에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해당 부동산은 폐업한 지 오래였다. 사기를 주도했다고 추정되는 정씨도 가해자지만, 부동산과 대출에 대해 잘 모르는 서민들이 믿고 의지했던 일부 부동산과 은행 등이 범죄 행각에 가담했다고 생각이 드니 속에서 천불이 끓었다.

성우씨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VIP 팀장 직급을 단 대출 상담사가 사기 가능성을 몰랐는지도 의문이고, 뭐가 아쉬워서 직접 오면서까지 대출을 승인해 줬을지도 의아하다”며 “이 때문에 고소장에 정씨는 물론 공인중개사, 그 보조원, 대출 승인한 VIP 팀장의 이름도 넣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난 10월부터 법무사 등에서 법률 상담을 받고 고소 서류를 준비했다”며 “그 달 말 세대원 4명이 모여 경찰에 고소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수원역 전경. ⓒ투데이신문
수원역 전경. ⓒ투데이신문

진정한 구제는 ‘끝없는 관심’

성우씨는 “정부가 피해 구제랍시고 자꾸 말은 하는데, 대체 뭘 지원해 주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전세사기피해지원특별법’ 제정만으로 피해 구제를 끝낼 것이 아닌 추가적인 지원과 확대가 더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시민들이 다른 지역에 이어 수원 또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 이들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성우씨는 국토교통부에 전세사기 피해 구제 신청을 해둔 상태다. 하지만 아직 이는 말 그대로 신청일 뿐이지 피해자로 인정되고, 구제를 받기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아 있다.

그의 빌라 또한 수원시에서 압류를 걸어둬 피해자 선정에 한발 가까워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셀프 낙찰’ 혹은 ‘개인 회생 신청’ 만이 현재로서 유일한 방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셀프 낙찰은 경매를 통해서 직접 해당 집을 구매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할 확률이 높으며, 자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대출을 이중으로 받아야 하는 등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빚’이 된다. 개인 회생은 자신의 금융에 제한이 가는 선택이라, 가족을 이끄는 가장인 성우씨가 제일 피하고 싶은 선택지였다.

성우씨는 “현재로서 만나본 법무사 등이 셀프낙찰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저의 전세보증금 즉, 피해 금액은 없어지는 돈이 아니지 않냐”며 “어차피 스스로가 다 떠안고 가는 건데 대출금, 그 이자, 생활비 등을 생각하면 플러스가 아닌 계속 마이너스 되는 악법이지 방법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이어 “심지어 보통 빌라를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식으로 내 집마련을 하는데, 셀프 낙찰을 받게 되면 본인 소유 집이 있기 때문에 아파트 매입 시 대출, 청약, 관련 조건 등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다”며 “결국 내 집 마련의 꿈은 산산조각 나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우씨는 두 아이가 점차 성장함에 따라 한국에 보다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년 안에 아파트로 내 집 마련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다. 두 아들에게 각자의 방도 선물해 주고, 근처에 학교와 학원이 잘 조성된 곳으로 이사를 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아들들의 미래를 지켜봐 주고 지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당장 경찰 고소부터 피해 회복, 자금 마련 등 산더미처럼 쌓인 일로 인해 멈춰버렸다.

이런 와중에 그는 사람들의 관심조차 사그라들어 결국 피해자만 고통 속에 살게 될까 걱정했다. 전세사기 사건이 잇따라 자주 언론을 통해 보도되다 보니 점차 익숙해져 관련 정책, 제도가 확대·시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성우씨는 “수원을 비롯해 서울 강서구, 미추홀구, 대전 등에서도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는데, 점차 사람들이 이 사실에 익숙해지고 무뎌질까 봐 두렵다”며 “물론 700여억원도 큰돈인데, 다른 지역의 피해금액인 2000여억원보다 적기 때문에 ‘수원 전세사기 사건’이 묻힐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지역 상관없이 많은 피해자들이 더 연대해야 하고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이런 우리들의 목소리를 정부, 지자체는 물론 많은 국민들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피고소인들이 빨리 법의 심판을 받아 사기죄가 성립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피해 금액을 떠나 가족 모두를 아프게 한 죗값을 중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 성우씨의 입장이다. 더불어 정부 및 지자체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20~30대로 규정짓지 말고 혼자 사는 독거노인 등 정보 취약계층에게도 전세사기 피해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안내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범죄 피해라는 잊지 못할 상처를 준 집이지만, 성우씨는 같은 빌라 이웃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큰 위로를 얻고 있다고 말다. 사기 피해 사실을 공유하기 전부터 세대원들과 정다운 인사를 주고받았고, 기념일이 있으면 문고리에 선물을 걸어두면서 기쁨을 나눴기에 그에게 이웃의 존재는 컸다. 그렇게 성우씨를 비롯한 해당 빌라 세대원들은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고 힘을 주며 같이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성우씨가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있다. ⓒ투데이신문
성우씨가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있다. ⓒ투데이신문

성우씨에게 집은 굉장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결혼한 지 약 8년이 흘렀지만, 실질적으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모여 사는 첫 집이었고, 긴 시간 흩어져 살던 네 사람을 모이게 해 준 구심점이 된 곳이었다.

성우씨는 “이 나이에 꿈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저에게 집은 아이들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어떻게 같이 나갈 것인가라는 꿈을 계속 키워 나갔던 보금자리였다”며 “전세사기 피해자 모두가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겠지만, 피해자 중 저 같은 가장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 경매를 받아야 하는지 혹은 개인 회생을 신청해야 하는지, 이에 더해 가족들을 다시 대만으로 보내야 하는지 수많은 고민 속에 살아가고 있다. 가장 행복하던 시기에 마주한 큰 상처에 성우씨의 매일은 힘겨움의 연속이다.

‘가장’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쉽게 무너져서도 안 되는 그는 오늘도 애써 가족들에게 누구보다 멋있고 든든한 아빠로 남기 위해 묵묵히 일하며 아픔을 숨기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집이란 공간을 넘어 가족의 터전이자, 생애의 추억을 차곡히 보관하고 있는 삶 그 자체다. 하지만 그 공간으로 인해 한 가정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영유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으로 보호가 간절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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