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서부발전 대표, 과실치사 혐의 1·2심 무죄
하청업체 대표 등 나머지 대부분 유죄…실형 면해
김용균 모친 “약자에게 기만적인 판결” 반발 나서
노동계도 비판…오는 9일 서울 도심서 추모 행동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진행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진행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대법원이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故(고) 김용균씨(당시 24세) 사망 사고 관련된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원청 대표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유족 측은 이로 인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는데도 법원이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며 반발에 나섰다.

대법원 2부는 7일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 등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용균씨는 지난 2018년 12월 11일 오전 3시23분경 태안군 원북면에 위치한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전날인 10일 오후 10시 41분부터 오후 11시 사이 석탄 작업 등을 하는 과정에서 컨베이어벨트 끼임 사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검찰은 김 전 대표를 비롯한 서부발전 임직원 9명, 백남호 전 대표 등 발전기술 임직원 5명, 원·하청 법인을 업무상과실치사 또는 산업안전보호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1·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고의로 방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나머지 서부발전·발전기술 관계자들에게는 유죄를 선고가 내려졌다. 법원은 이들이 사고 발생이 예상 가능함에도 업무상 주의의무 및 안전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앞서 1심에서는 백 전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며,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벌금형, 금고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판시했다.

2심에서는 대부분의 형량이 줄어들거나 유죄 판단이 무죄로 뒤집히는 결과가 나왔다. 백 전 대표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받았으며, 서부발전 소속 일부 관계자는 무죄가 선고됐다. 서부발전 법인에 대한 판단도 무죄로 뒤바뀌었으며, 발전기술에는 1심보다 액수가 줄은 벌금 1200만원이 선고된 바 있다. 

양형 이유에 대해 2심 재판부는 “근로자인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와 처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누구 한 명의 결정적 과오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므로 개개인 과실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대해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판결 선고 뒤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서부발전이 사람을 죽였다고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해야 했다”며 “김 대표가 현장을 잘 몰랐다면 그만큼 안전에 관심이 없었단 증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는 “어떻게 법원이 이토록 약자들에게 기만적일 수가 있냐”며 “오늘 판결은 앞으로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은 사업주들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규탄했다.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씨가 지난 2019년 12월 경기 남양주시 소재 모란공원에서 거행된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씨가 지난 2019년 12월 경기 남양주시 소재 모란공원에서 거행된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 이끌어 낸 사건임에도

김씨의 죽음으로 인해 위험하고 힘든 일은 하청업체에 모두 떠맡겨 버리는 산업 현장의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이는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해당 사건 발생 이후 시민사회와 정치권 등에서는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자는 요구가 빗발쳤다.

당시 정의당과 김용균씨 어머니 김씨는 지난 2020년 12월부터 29일 동안 단식 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2021년 1월 경제단체 등의 반대를 뚫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법 제정으로 까지 이어지는 등 큰 영향을 미친 사건임에도 무죄판결이 나오면서 노동계는 큰 충격을 얻은 모습이다. 원청의 책임을 묻지 않은 법원의 판결이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한 불평등 산업구조 형성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우려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대법원은 자식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지난 5년간 소송을 이어나간 유족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저버렸다”며 “제2, 제3의 김용균이 더 이상 없기를 갈망한 노동자 시민의 염원을 끝내 외면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또 노동자 시민의 과실이 아니라 기업의 구조적인 범죄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에 등 돌리고, 구태의연한 관행대로 선고한 것”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 처벌의 한계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정당성과 엄정한 법 집행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김용균재단은 5주기를 맞아 지난 6일 충남 태안의 현장 추모제 등을 전개한 것에 이어 오는 9일 서울 도심에서 추모 행동 진행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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