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

근로복지공단 업무상 질병판정서 85건 전수 분석
사례 85건 중 원인 괴롭힘 25건·과로 13건 등
산재 승인율 52%…2018년 80% 대비 대폭 하락
제도적 개선부터 재해 인정 기준·범위 확대 촉구

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진행된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진행된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1. 한 사업조합에 입사한 A씨는 무시, 부모 모욕, 옷차림 지적, 퇴사 종용 등 괴롭힘을 10년간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법원은 가해자를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로 벌금형을 확정했고,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그러나 사업조합은 가해자를 면직처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오랜 기간 동안 괴롭힘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2. B씨는 모 회사 연구원으로 입사해 프로젝트 총책임자로 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B씨는 8명이 투입되기로 한 프로젝트를 혼자서 했다 이후 총책임자로 승진돼 추가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발주기관은 항의를 지속적으로 했다. B씨는 몇 주간 하루 평균 70~100통의 통화를 하고, 사망 20분 전까지도 업무 통화를 했음이 파악됐다. 

#3. 10년간 근속한 C씨는 근거 없는 저성과자 지목과 퇴직 종용을 당했다. 당시 사업주는 갑작스럽게 C씨의 직무를 정지하고 퇴직을 종용했다. C씨는 시기를 놓치면 퇴직금과 퇴직위로금을 보전받지 못한다는 우려에 고인은 퇴직을 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지속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줄이고, 노동자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 반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과 직장갑질119 등은 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를 개최해 이같이 밝혔다.

토론회를 주관한 용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된 지 4년이 됐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괴롭힘으로 고통받고 심지어 목숨까지 끊고 있다”며 “과로 역시 주요 원인임이 확인됐음에도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고, 재해 인정 기준 역시 사업주에게 유리하게 규정돼 있다”고 꼬집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노무법인 삶 이양지 노무사는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분석’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지난해 85건(승인 39건, 불승인 46건)의 근로복지공단의 ‘자살 산재 업무상 질병판정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원인은 폭행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이 25건(29.4%)으로 가장 많았으며, 뒤이어 과로(13건, 15.2%), 징계·인사처분(12건, 14.1%) 순이었다.

또 산재법상 해당 산재 승인율은 지난 2018년 80%, 2019년 65%, 2020년 70%를 기록한 이후 지난 2021년 56%, 지난해 52%로 떨여졌다. 전체 산재 승인율이 90%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게 낮은 수치라는 것이 이 노무사의 설명이다.

이 노무사는 “해당 사건 중 직장 내 괴롭힘이 그 사유로 포함된 경우가 법 시행 이전과 이후로 봤을 때 20%에서 27%로 소폭 증가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된 이후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한 문제제기와 그것에 대한 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의 고려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근속연수가 적은 노동자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과 과로 등으로 인한 사망이 집중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노무사는 “근속연수별로는 인정된 사건 39건 중에서 10년 이상 근속이 16건으로 41%, 1~5년 미만이 26%에 해당했다”며 “구체적인 사유로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은 10년 미만이 괴롭힘 중에서 69%로 제일 많았고, 과로의 경우도 승인된 경우 10건 중에서 10년 이하가 80%에 해당했다”고 지적했다.

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진행된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참석해 있다.  ⓒ투데이신문
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진행된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참석해 있다.  ⓒ투데이신문

다음으로는 하라노동법률사무소 권남표 노무사가 ‘일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연들’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이번 발표는 85개의 판정서 중 15건의 사례를 발췌한 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죽음의 원인을 △괴롭힘 △과로 △인사명령·징계 △기타 사례로 나눠 분석했다.

먼저 권 노무사는 괴롭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를 통해 “괴롭힘 인정 잣대를 높일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조사를 더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도록 하며 인정 범위를 더 넓히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로에 대해서는 “과로 판단의 기준은 근로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업무의 강도, 양, 시간과 작업 환경이 고려에 포함됨에도 현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근로시간 유연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인사명령·징계로 인한 사망에 관해 권 노무사는 사용자의 인사조치에 대해 적절한 문제제기 기회를 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노동조합과 같은 민주적 결정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진행된 토론 순서에서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여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업무상 질판위 업무 관련 스스로 목숨 끊는 행위 및 정신질환 산재 판정 과정에서 논의의 초점이 괴롭힘 사건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옮겨졌다고 꼬집었다.

정 전문의는 “질판위원들의 전공배경이나 세대, 성별에 따라 괴롭힘의 범주와 역치가 달라질 수 있기에 여러 배경을 가진 위원들끼리 터놓고 의견을 나누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질판위 내에서 위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의 진위여부를 판단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지 않도록 조사 결과가 나온 후 심의 일정을 잡는 등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며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개인의 불운’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조직적 요인에 대한 문제제기가 질판위 안팎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진행된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에 고용노동부 권구형 직업건강증진팀장이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진행된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에 고용노동부 권구형 직업건강증진팀장이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두 번째 토론자인 반올림·노동자권리연구소 이종란 노무사는 재입사 후 괴롭힘을 당하다 부서이동 요청을 했으나 회사의 거절 이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 오퍼레이터, 근로복지공단 재활보상부 직원과 삼성 LCD 노동자 故 김주현씨가 과로로 인해 스스로 숨을 거둔 사례 등을 소개했다.

이를 두고 이 노무사는 “더 이상 억울하게 죽는 이가 없도록 과로사 방지법, 근로시간 단축, 성과주의 등 비인간적 조직문화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주변 사람의 위험신호를 재빨리 인지해 전문가에게 연계하도록 훈련을 받은 게이트 키퍼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그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통해 산재절차 개시를 독일처럼 의사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직권주의 방식을 병행해야 산재 은폐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산재 판정기구가 의학적, 과학적인 관점에 치우쳐 불승인 판단을 남발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직장갑질119 배나은 활동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에 대한 직접적 언급 혹은 관련한 상황이 포함된 상담 메일 54건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장 큰 문제로 피해자들이 죽음을 고민하면서도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목했다.

배 활동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 간접고용 노동자, 공무원 등에게도 근로기준법 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더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며 “괴롭힘 피해자뿐 아니라 신고자에 대한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하고 조치의무를 위반하거나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에게 규정과 원칙대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나왔다. 고용노동부 권구형 직업건강증진팀장은 “현재 이같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 절차, 제도가 갖춰져 있지만 현장에서 부족함, 아쉬움 등이 있는 것 같다”며 “현장 이야기를 많이 수렴해 앞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팀장은 이 같은 산재 문제가 정신건강 문제로 귀결돼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난 5일 범정부적으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를 했다”며 “해당 대상은 국민으로, 그 안에 분명 직장인도 포함된다”며 해당 정책을 잘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이외에도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위한 건강센터 확충, 직업 트라우마 센터 및 관련 인프라 확대, 현장 관리·감독 강화 등의 방침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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