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전날 국무회의서 ‘임금 상습체불’ 언급해
올 1~8월 규모 1조1411억원…갈수록 증가세
사후약방문식 대처 한계…근본적인 대책 필요
“반의사불벌죄·포괄임금제 폐지 등 우선돼야”

서울 중구 시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중구 시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것은 근로자와 그 가족의 삶을 위협하는 것.”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임금 체불로 학자금을 상환하지 못하거나 주거비용을 충당하지 못해 신용불량으로 이어지는 경우들도 많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같이 말하며 국회에 임금 상습체불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에 대해 국회가 논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

29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전날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두 개의 대표적인 임금체불 대책 법안에 대해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두 법안 중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지난 5월 당정이 종합 대책을 발표하고 그 다음 달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이자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해당 법안은 상습체불 사업주 범위를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불이익을 더 강화하는 것이 주요다. 최근 1년 내 근로자 1인당 3개월분 이상 임금을 체불하거나 5회 이상 체불 총액이 3000만원 이상일 경우, 상습체불 사업주로 명시하고 이 사업주는 정부 지원금 혜택이 제한되고 공공 입찰 시 감점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신용 제재까지도 이뤄진다.

또 다른 법안인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의했다.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은 체불임금에 대해 사업주가 대지급금보다 융자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대지급금 제도는 정부가 임금 체불 피해를 호소하는 근로자를 위해 대신 변제한 뒤 이후 돌려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윤 대통령이 상습 체불 문제를 국무회의에서 직접 언급하며 근로기준법 개정을 요청한 것은 최근 임금 체불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올해 1~8월 임금 체불 규모는 1조141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7%(2615억원) 늘었다. 피해 근로자는 18만명으로 같은 기간 대비 14.1%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 직장인 44%는 임금 체불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더해 올해 1~8월 임금 체불로 구속된 인원은 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명)보다 3배, 정식 기소한 인원은 1653명으로 같은 기간(892명)보다 1.9배 각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에는 근로자 412명에 대한 임금 등 약 302억원을 체불한 혐의로 위니아전자 박현철 대표이사가 구속되기도 했다.

임금 체불 규모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자,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과 법무부 한동훈 장관은 지난 9월 공동으로 임금체불을 근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두 장관은 “근로자들이 ‘일한 만큼, 제때, 정당하게’ 임금을 받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자 원칙”이라며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노동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반사회적인 범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담화 발표 후 약 두 달이 흐른 현재에도 임금 체불 규모는 더욱 커진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무회의에서 “올해만 벌써 22만명 이상의 체불 피해자들이 발생했으며, 피해액은 1조4000억원을 넘어서고 있다”며 “두 번 이상 반복된 임금 체불액도 전체 액수의 약 80%에 다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정이 지난 5월 임금 체불 관련 대책을 제시할 당시 국회가 입법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다수였다. 당시 여야 모두 임금 체불 방지를 위해 수많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근로자들의 곡소리는 커지고 있다.

더욱이 근로자의 임금 체불 피해가 취약 계층에 집중되고 있어 국회의 조속한 논의가 필요산 상황이다. 

노동계에서는 임금체불 문제가 매년 꾸준히 반복되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직장갑질119 오진호 집행위원장은 본보와의 통화를 통해 “임금 체불 문제는 한국 노동사회에서 규모가 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노동청 등에 신고를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절차가 복잡해 사측과 합의를 제안받기도 하는 등 범죄라는 인식이 낮기 때문에 사업주 또한 ‘벌금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같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임금 체불 형사처벌에 관해 반의사불벌죄와 포괄임금제 폐지하고,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연장해야 한다”며 “현재 존재하는 임금 체불 대책에서 강화하는 수준으로는 상습체불 사업주에게 경각심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