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때 결혼…아들 둘 낳고 수원서 가정 꾸려
알바 등으로 모은 3000만원·대출금 1억원 손해
육아·맞벌이와 행정체계 미비로 구제 신청도 못해
“피해자에게 비난 아닌 따듯한 시선 보내야” 호소

지난 10월 수원에서는 일가족이 공모한 ‘전세사기’ 의혹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해자로 지목된 정모씨 부부는 10여개 법인을 앞세워 수원 일대에서 빌라·오피스텔 등 50여채 건물에서 800여 가구를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사들인 뒤 임대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전셋값 하락 등으로 이들이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게 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올 11월 기준 정씨 관련해 경찰에 460여건의 고소가 접수됐고, 적시된 피해 금액은 700여억원에 달한다.

피해금액이 2000여억원을 넘는 인천 미추홀구, 대전에 이어 발생한 또 다른 대규모 전세 사건이지만 앞서 발생한 사건보다 피해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삶을 처참히 무너뜨린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 상황과 규모를 비롯해 아무도 몰랐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원 전세사기 피해자 박연희씨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투데이신문<br>
수원 전세사기 피해자 박연희씨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가정이란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혈연공동체를 의미한다.

가족은 서로 똘똘 뭉친 채 동고동락하며 같이 행복을 공유하기도 하고, 큰 시련을 마주했을 때 서로를 다독이기도 한다. 어린 나이지만, 박연희(26·가명)씨에게도 믿음직스러운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두 아들과 꾸린 가정이 있다. 그에게 가족은 튼튼한 울타리 같은 존재다.

마냥 탄탄하고 견고할 것만 같던 네 식구의 행복은 한 전세사기라는 함정으로 인해 큰 고비를 맞았다. 자주 가던 나들이, 여행은 사치가 됐고, 바쁜 육아 속에도 되레 일을 배로 늘려 생긴 빚을 갚아나가기 위해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야 했다.

투데이신문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맞벌이 부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연희씨를 만나 전세사기 피해에 대한 모든 것을 직접 들었다. 그 역시 수원 일대를 전세사기 혐의로 떠들썩하게 한 정씨 일가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현재 그는 수원시 장안구 율천동의 위치한 신축 빌라(다세대주택)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연희씨는 정씨 일가의 사기 혐의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피해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살고 있는 빌라는 11억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상태다.

그의 피해 금액은 1억3000만원으로, 만삭 때 빼고는 꾸준히 일을 하면서 모아온 연희씨의 돈 3000만원이 포함됐다.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살던 그 집은 순식간에 사기를 입은 ‘피해 공간’으로, 가족은 ‘피해 가정’으로 변해버렸다. 연희씨와 그의 남편은 이에 미래 계획마저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고된 노동으로 채우고 있다.

밝고 따스했던 가정은 온데간데없이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워진 현재 연희씨는 정부의 구제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더욱이 가정을 위기로 몬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정씨 일가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아직까지 피해자들은 편히 잠 못 들고 있는 실정이다.

계약 당시 작성했던 계약서에 전세사기 가해자로 지목된 정씨와 연희씨의 정보가 작성돼 있다. ⓒ투데이신문
계약 당시 작성했던 계약서에 전세사기 가해자로 지목된 정씨와 연희씨의 정보가 작성돼 있다. ⓒ투데이신문

두 아이를 위해 선택한 터전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현재의 남편과 결혼한 연희씨는 6년 동안 열심히 가정을 꾸렸다. 결혼을 선택한 이후 그는 진학 중인 대학도 중퇴한 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맞벌이를 하며 돈을 모으고 차곡차곡 미래 계획도 세우면서 열심히 달려 나갔다.

비록 젊은 부부다 보니 모아둔 돈이 넉넉하지 않아 월세방에 살고 있지만, 나중에는 내 집 마련을 해 가정을 더 단단히 일궈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의 결실인 두 아들도 태어났다. 현재 6살, 4살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점점 아이들이 커 갈수록 연희씨는 아이들이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놀고, 자신들만의 놀이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더욱이 당시 연희씨의 월세방은 지상 6층임에도 엘리베이터가 없어 오르내리는 데 불편함이 컸기 때문이다.

당장 이사 갈 여력이 없어 두 아이와 짐을 안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고, 다소 작은 공간에서 살 부대끼며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아이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서는 이사가 절실했다.

연희씨는 “4년 간 애들을 양손에 끼고 짐을 들고 6층을 왔다 갔다 했다”며 “그런데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집에서 활동적으로 놀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혼내는 게 너무 미안해졌다. 그래서 이사를 더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사를 결심한 연희씨는 당장 집을 보러 다녔고, 그때 현재 집을 만나게 됐다. 집을 알아보러 다니게 될 시기에 막 완공된 빌라는 신축이다 보니 깔끔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을 모두 갖춘 ‘풀 옵션’인 것은 물론 이 모든 것이 유명 브랜드 제품이었다. 당시 집은 외풍이 심해 아이들이 자주 감기에 시달린 게 고민이었는데 이 집은 단열도 잘되는 것뿐만 아니라 바람은 적게, 햇빛은 많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여기에 아이들이 그나마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1층이었고, 방 3개까지 갖춘 집이다 보니 마음에 쏙 들었다. 이에 연희씨는 그동안 모아놨던 돈 3000만원을 투자하고 처음으로 전세자금 대출까지 받은 뒤 지난해 4월 계약 도장을 찍었다.

그러던 중 올해 하반기부터 하나둘씩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 9월부터 수원 지역에서도 피해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가 우연히 찾아본 뉴스에서는 수원 지역의 전세사기 소식을 전하면서 그 가해자로 정씨를 지목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연희씨는 급하게 계약서를 찾아봤고, 그 계약서 안에서 정씨의 이름을 발견했다. ‘설마 아니겠지’ 싶은 마음으로 공인중개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임대인이 사기 가해자가 맞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공인중개사의 수긍은 연희씨를 단숨에 무너지게 만들었다.

연희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먹먹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며 “중개사가 일단 월세를 내지 말라, 또 궁금한 것이 있다면 전화 달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마치 내가 사기 피해자임을 인정하는 말 같았다”고 호소했다.

이후 피해 사실을 인지한 빌라 세입자들이 단체 카카오톡 메신저방을 만들었고, 연희씨는 그 메신저방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다.

연희씨가 작성한 계약서에 거주 중인 빌라의 근저당 금액이 적혀져 있다. [사진제공=본인]
연희씨가 작성한 계약서에 거주 중인 빌라의 근저당 금액이 적혀져 있다. [사진제공=본인]

위기를 직면한 생계, 그리고 가족

연희씨도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계약 과정에서 몇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집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그는 당장 계약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를 망설이게 만든 이유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비싼 전세보증금이었다. 1억원대를 생각하고 있던 그와 달리 그곳에 보증금은 2억원이 넘어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고 당시 이사, 육아 등으로 돈이 나갈 때가 많았던 터라 주저하게 됐다.

그때 부동산 측이 반전세로 전환하는 것을 임대인에게 요청해 보겠다며 선뜻 방법을 제안했다. 부동산 측은 “임대인이 돈이 아주 많다. 보증금 얼마 못 받는다고 신경 쓰실 분이 아니다”며 호언장담했는데, 정말 관계자의 말처럼 임대인은 반전세로 계약하는 것에 동의했다.

심지어 부동산 측은 해당 빌라는 소개할 때 “임대인과 친한 사이라서 이 빌라는 우리만 판매하고 있는 건물”이라면서 “다른 부동산에 가면 보고 싶어도 못 보기 때문에 잘 찾아온 거고, 연희씨 이후에도 보러 올 다른 고객들이 많다”며 계약을 부추기기도 했다.

또한 해당 빌라는 당시에도 근저당 11억원이 잡혀 있었는데, 연희씨의 전전집의 경우도 비슷한 금액의 근저당이 있었는데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대출을 승인해 준 적이 있었던 터라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세보증금부터 집 조건까지 모두 연희씨가 생각해 온 모든 조건과 맞아떨어지는 집이니, 계약을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욱이 두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간절한 집이었다.

순탄하게 집을 결정하고 계약까지 결심했지만, 연희씨는 처음 스스로 진행하는 전세계약이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완전히 지워지지 못했다. 더욱이 임대 사업자가 사기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더 신경이 쓰였다. 이에 임대인 측에 그의 재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인 국세·지방세 완납 증명서 등을 요청했다.

연희씨는 “부동산에 대해 제가 모르는 게 많아 혹시 잘못될까 봐 많이 알아보고 부동산을 통해 임대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서류는 다 요구했는데, 겨우겨우 관련 서류를 받아보니, 모든 세금도 다 완납돼 있는 등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임대인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많이 알아보고 수소문했는데도 이런 사기를 당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가 너무 힘들고 비참했다”고 괴로워했다.

심지어 임대인의 법인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계약을 진행한 그는 더욱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당당했던 정씨의 태도부터 번듯한 법인명과 사무실, 그 안에서 열심히 일하던 직원들까지 사기를 의심할 정황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의아한 점은 부동산에 이어 은행에서도 발견됐다. 먼저 부동산 측이 전세 대출 승인을 잘해준다며 특정 은행 몇 군데를 먼저 추려줬고, 연희씨는 그중 한 은행에 방문했다. 당시 처음 그를 응대했던 여직원은 근저당이 높다는 이유로 대출 승인을 거절했다. 이에 연희씨가 실망하려던 찰나, 옆에서 듣고 있던 한 남자 직원이 자신이 해결해 주겠다며 적극 나섰다.

그는 “부동산이 추천해 준 은행에 대해서 의심하지 못했던 건, 특정 은행에 특정인을 지목한 게 아니라 여러 선택지를 줬다”며 “더욱이 많은 세입자를 만나다 보니, 대출 승인을 잘해주는 은행을 알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은행에 대해서는 “대출을 승인해 준 남직원은 처음 상대한 여직원보다 높은 직급 같았는데, 그 직원이 상담해 주더니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하면서 바로 승인해줬다”며 “그 직원이 더 경력자이다 보니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해결해 준 것으로 당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연희씨 거주지 인근인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율천동 주택가.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투데이신문
연희씨 거주지 인근인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율천동 주택가.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투데이신문

단단한 새 울타리가 필요한 지금

갑작스러운 피해 사실에 힘들어하는 것도 잠시, 연희씨는 일어서야만 했다. 두 아이의 엄마였고, 자신의 가정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슬픔에 빠져서 생계를 놓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전까지 카페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연희씨는 6개월 전부터 대형마트 내 문화센터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근무 시간 자체는 한 수업당 3~4시간으로 다소 길지 않지만, 교구들의 크기가 커 매일 큰 짐을 싣고 나르고, 내려서 옮기고 조립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그새 하루가 다 가버릴 정도였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주 5일이었던 출근 횟수를 늘려 일주일 내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매일 몸을 혹사하면서도 가정의 생계를 지키고자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원래 일반 회사의 영업직이었던 남편은 이를 관두고 고된 생수 배달일 시작했다. 새벽 1시에 출근해 이르면 오후 1~2시, 늦으면 오후 3~4시에 들어오는 고된 일정이지만, 일반 회사보다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이었다.

두 사람 다 근무일수를 늘리다 보니 가끔 아이를 돌 볼 시간이 없어졌는데 이때마다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은 연희씨의 어머니의 몫이 됐다. 연희씨의 어머니는 강원도 속초에서 딸을 위해 수원까지 왕래하며 두 아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어머니한테 너무 미안하다”며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때 제가 우리 임대인 부자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줬다. 너무 후회된다”고 울먹였다.

하루빨리 피해자 인정 신청을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두 부부다 평일, 평일 주말 가림 없이 일하는 것은 물론 두 아이를 육아하다 보니, 전세사기피해자지원센터를 방문하는 것도 큰일이 돼 버렸다.

그러다 겨우 시간을 내 센터를 방문하게 되더라도 각각 다른 안내부터 복잡한 신청 절차와 긴 대기 시간, 어려운 서류 준비 때문에 몇 번이나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가기 일쑤였다.

연희씨는 “힘들게 시간을 쪼개서 간 센터인데, 전세사기 업무 관계자들이 업무 인지가 제대로 안 돼 있는 것 같았다”며 “서류 발급 기관, 관할 등 안내해 주는 것이 달라 센터, 동사무소 등을 돌다가 하루를 그냥 날렸다”고 억울함을 드러냈다.

이어 “이뿐만이 아니라, 대기 자체도 1시간은 기본인데 그 상태에서 서류를 또 떼오라고 하면 이동시간, 다른 기관에서 또 대기시간이 걸리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더욱이 서류 안내도 정확하지 않아 헛걸음한 경우도 있었다”며 답답해했다.

현재 그의 빌라는 최근 수원시 측이 전세사기 피해 빌라 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가압류가 걸려있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오히려 연희씨와 세대원들은 이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다. 만일 가입류로 경매에 넘어가게 될 경우 기존 전셋값 대비 너무 싼 가격으로 책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희씨는 “저는 어서 정씨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변제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사실상 방법이 개인회생과 셀프낙찰 둘 뿐인데, 셀프낙찰을 한다고 해도 빚과 손해의 연속이다”며 괴로워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도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에 유일하다고 여겼다. 현재 팔리지 않거나 일부 남는 매물을 LH에서 매입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피해 구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더해 정씨에 대한 수사가 면밀하게 이뤄져 반드시 사기죄를 적용해 엄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정씨 일가는 물론 공인중개사, 보조원, 은행원, 법인 관계자 등에 대한 수사도 꾸준히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여론 또한 사기 피해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아닌 응원해 주고 연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너희가 사기당한 걸 왜 나라에서 구제를 해줘야 하냐’는 반응을 보이곤 했는데, 이 말이 너무 상처가 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사기 피해를 입었는데, 기망하고 속이려 든 사기꾼의 잘못이 맞지 않냐. 우리는 비전문가, 일반인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는데도 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심지어 개인회생까지 고려할 정도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든다고 고백했다. 그럴 때마다 연희씨는 가족들을 생각했다. 불철주야 일하는 남편, 언제나 자신을 기다리는 두 아들을 생각하면서 이미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연희씨는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 말고도 미래의 계획마저 잠정 포기했다.

연희씨 부부는 올해 말 공고가 뜰 예정인 LH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에 지원할 생각이었는데, 매입임대주택은 미분양 아파트 시세보다 약 30% 저렴한 금액으로 임대해 주는 제도다.

하지만 해당 주택은 무주택자임과 동시에 결혼한 지 7년 이내 부부만 신청 가능하기 때문에 연희씨의 전세 대출 문제가 내년까지 해결되지 않아 셀프낙찰로까지 이어진다면 두 사람은 지원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첫째 아이를 위해서라도 매입임대주택에 지원하고자 했는데 이는 물거품이 돼버렸다.

연희씨는 “오랫동안 빌라에서 아파트로 가고 싶다는 꿈을 꿨고, 제 아이가 최대한 안전하게 등·하교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는데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며 “저에게 남은 건 이사도 못 간 채 사기당한 금액의 이자를 내고 평생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연희씨가 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연희씨가 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연희씨에게 현재 집은 ‘터닝 포인트’이자 전부였다. 가정을 지키는 데 모든 것을 투자했고 버텨냈다. 이제야 정기적인 직업도 갖게 됐고, 아이들도 성장함에 따라 더욱 울타리를 키우고 보수해 더 튼튼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정은 한 일가의 모사(謀事)로 인해 벼랑 끝에 서게 됐다. 

그는 현재 자신이 망망대해에 떠도는 부표와 같은 처지라고 비관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가장 행복한 시기에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마주한 그의 요즘은 영하의 겨울보다 시리다.

연희씨는 “우리는 이 한 번의 사기로 인해 만져본 적도 없는 큰 금액의 빚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녀야 한다”며 “우리 가족이 오순도순 살아가던 집이라는 공간이 너무 싫어졌다”고 울먹였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슬픔으로 짓눌린 몸을 일으킨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고 노동을 하며 한 가정의 ‘아내’로, ‘엄마’로서의 그 본분을 묵묵히 다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가정이란 의식주를 공유하는 사이를 넘어 같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그 과정에서 서로를 가장 단단히 지키는 ‘동반자’다. 거칠고 척박한 세상 속에 유일한 빛이 되는 존재다. 그 가정의 안위가 위협받고 흔들리지 않도록 신속한 피해구제는 물론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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