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중대재해 취약기업 지원대책 내놔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유예 추진 중 발표
노동계 “맹탕 대책 재탕…즉각 폐기해야”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가 작업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가 작업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정부가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재유예를 추진하면서 지원대책을 제시한 가운데, 노동계는 법 적용 유예를 위한 ‘재탕 대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28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전날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개최해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향후 2년간 50인 미만(5~49인)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지원을 위해 노사 양측에서 요구하고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4대 분야·10대 과제를 중심으로 마련됐다.

정부는 해당 대책에 내년도 총 1조5000억원을 지원한다. 이는 내년 재정 1조2000억원에 제도 개편에 따른 안전관리비용 등 간접투입 효과를 더한 금액이다. 이후 성과평가 등을 거쳐 오는 2025년에도 지원을 지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지원대책에 따르면 먼저, 관계부처·공공기관 및 협·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 추진단을 구성하고, 50인 미만(5~49인) 사업장 83만7000곳이 자체진단하는 ‘산업안전 대진단’에 착수한다.

중대재해 위험도 등을 분석해 전체 사업장 지원을 목표로 하되, 중점관리 사업장 8만여곳을 선정해 컨설팅·인력·장비 등을 패키지로 지원할 계획이다.

안전보건관리역량도 확충한다. 사업장의 신속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컨설팅 및 교육·기술지도의 서비스 품질 제고 및 지원을 확대하고, 외국인력 대상 안전교육 프로그램도 신설·강화한다. 이와 함께 현장에서 지속 제기된 안전보건관리 전문인력 부족 문제를 고려해 전문교육과정 운영, 자격인정 요건 완화 등을 통해 오는 2026년까지 전문인력을 약 2만명 양성한다.

사업장의 노후·위험공정을 개선하고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작업환경 안전개선에 대한 지원도 이뤄진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 협력사에 대한 안전보건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늘릴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적극 부여하는 등 민간주도 산업안전 생태계 조성에도 노력할 방침이다.

특히 건설분야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개편 등을 통해 건설현장 산재예방 투자를 확대해 나가고, 공사단계별 위험요인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안전보건대장 작성항목 정비 등 제도개선도 추진한다.

이외에도 당정은 산업재해 예방 및 안전보건 제품·서비스 시장 활성화 등을 위해 안전보건산업 육성대책을 강구하고 안전보건산업 진흥법령 제정도 검토해 나간다.

이 같은 대책을 통해 정부는 그간 분절적·산발적으로 추진돼 온 지원사업들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한편, 특히 노사 및 전문가그룹 등에서 안전 사각지대로 지목해 온 외국인력, 노후 산업단지, 하청업체 등에 대한 중대 재해 예방역량이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정은 “현장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빠르게 체감할 수 있도록 내년 1분기부터 사업을 조기집행하고 관계부처 및 경제단체 등과 합동으로 대책 이행상황 점검을 통해 후속대책 및 제도개선을 2년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입구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 등이 50인(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미만 적용유예 연장 폐기 피켓시위를 펼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입구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 등이 50인(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미만 적용유예 연장 폐기 피켓시위를 펼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맹탕 대책”…노동계 반발 잇따라

이번 대책은 정부와 여당이 내년 1월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적용의 추가 유예를 추진하던 중에 발표됐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법은 지난해 1월부터 시행돼 왔는데, 이후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공사에 대 2년 유예를 둔 뒤 내년 1월부터 후속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영계는 중소기업들의 준비가 미흡하다며 추가 유예를 촉구했고, 이를 정부와 여당이 받아들였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지난 27일 당정협의회 모두발언에서 “준비되지 않은 기업들에 대해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면 기업은 물론 일자리 축소 등으로 근로자들에게까지 피해가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법 추가 적용 유예를 위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포기한 맹탕 수준의 지원책이라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1조2000억원 재정투입도 기존 예산에서 확대된 부분은 거의 없고, 공동안전관리자 지원 120억원을 빼고 나면 전년과 다를 바 없다”며 “중대재해법 유예와 개악을 주장하거나 동조하는 모든 세력은 사회적 살인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지난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위험성평가 강화를 표방했으나 실상은 기법만 완화하고 미실시에는 손을 놓았다”며 “현 정부 들어 진행한 산업안전보건수사감독 개편으로 중대재해 발생 시 현장 수사감독만 더 늘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업장이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권고사항을 낮춰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방임하거나 방치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만들었다”며 “지난 수십년 간 지원 정책을 펼쳐왔으나 과정과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었는지 성찰부터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한국노총은 83만7000여개 사업장 대상 전수 자체진단은 실효성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자기 규율 예방체계 구축 지원을 받은 사업장의 성과가 부실하고, 구체적인 방안이 미비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대책을 설계한 민관합동 추진단에 노사를 배제한 점을 언급하며 “결과적으로 ‘예스맨’들로만 채우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도 같은 날 “이번 대책은 재탕 삼탕한 맹탕 대책”이라며 “중대재해법 제정 이후 3년 동안 진행하고, 실패로 귀결된 대책을 포장지만 바꿔 여론을 호도하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의 후안무치한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성명서를 냈다.

이들 또한 “중대재해 예방지원 대책을 법 적용유예 연장과 거래대상으로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그나마 그 대책도 오는 2024년 사업으로 이미 제출하고 추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진행하겠다는 사업은 지난 3년간 약 40만개 사업장에 진행한 것인데 경영계 주장대로 80% 이상이 준비가 안 된 상황에 동일한 사업을 다시 진행하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기술지도와 컨설팅은 일회성 사업이고 모든 사업장에 진행하려면 수십 년이 걸리는데, 단기간 공사를 하는 50억 미만 건설현장은 컨설팅 완료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의문을 드러냈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여당에 중대재해법 개악안 폐지를, 더불어민주당에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정부 사과, 경영계 약속과 맹탕 대책뿐인 정부 대책을 빌미로 한 정치적 거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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