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반영…연장근로수당 기준은 유지
현재 조사 및 감독 중인 사건부터 즉시 적용
노동계 “일 21.5시간 근로 가능해져…시대역행”
노동부 “노사정 사회적 대화 통해 해결할 것”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한파특보가 내려진 23일 출근 시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한파특보가 내려진 23일 출근 시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최근 주 52시간제 위반 여부를 일 단위가 아닌 주 단위 연장근로시간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부가 연장근로 기준에 대한 행정해석을 변경했다.

이를 두고 양대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야근, 과로 등이 일상화될 것이라며 비판했다.

23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전날 연장근로 한도 위반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기존 행정해석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기존 근로기준법은 1주 근로시간이 40시간, 1일엔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다만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질 경우 1주 12시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어 총 52시간 근무가 가능했다.

이에 따라 1주 총 근로시간이 52시간 이내이더라도 1일 법정근로시간 8시간을 초과한 시간은 연장근로이며, 이 연장근로가 1주 12시간을 초과하면 법 위반에 해당했다.

하루 15시간씩, 주 3일 일하는 근로자를 예시로 들면, 하루 8시간을 넘는 연장근로가 7시간씩 3일, 총 21시간이기 때문에 연장근로 한도 위반이었다.

그러나 바뀐 행정해석으로는 1주 40시간을 넘긴 것만 연장근로에 해당함으로, 총 근로시간 45시간 중 5시간만 연장근로가 돼 주 12시간 이내로 집계돼 위반이 아니다.

앞서 지난달 7일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업자에 대해 “연장근로 초과는 1일 8시간을 초과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1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 같은 판결 이후 노동부는 현장 노사,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법의 최종 판단과 해석 권한을 지닌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행정해석을 변경을 결정했다.

이번 해석 변경은 현재 조사 또는 감독 중인 사건에 곧바로 적용될 방침이다.

다만 이번 행정해석 변경은 한도 위반 판단 기준에만 적용되고 연장근로수당 지급 기준은 기존 해석이 유지된다. 현행 연장근로수당은 1주 40시간은 물론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하게 돼 있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이 지난 18일 경기 용인시 소재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작업현장을 찾아 환경미화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이 지난 18일 경기 용인시 소재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작업현장을 찾아 환경미화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노동계 비판…갈등 봉합할 수 있을까

그러나 변경된 행정해석을 적용할 경우, 이론적으로 하루 21.5시간(휴게시간 4시간씩 30분 제외) 근로까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면서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부 이성희 차관이 지난 15일 “이번 판결은 장시간 근로를 허용한다기보다 주52시간 내에서 근로시간 배분을 조금 더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대로 입법론적인 행정해석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언급했음에도 노동계 우려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국제적 흐름은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일과 생활의 양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와 법원이 노동시간을 늘리고 이를 핑계대기 위해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내놓는 것은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을 넘어 인간다운 삶과 생활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반 인권적인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부는 이번 기준 변경을 발표하면서 ‘(노동자의) 건강권 우려가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며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이번 기준 변경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위해를 가한다는 것을 이미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도 같은 날 논평을 통해 “이번 노동부 발표는 사용자들에게 연장근로시간 몰아쓰기가 가능하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며 “국민들의 반대로 잠시 주춤했지만 이 정부가 몰아서 일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압축노동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악용될 경우 하루 21.5시간까지도 압축노동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 이토록 신속하게 행정해석을 변경하는 노동부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연장근로에 대한 현장의 혼란을 막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국회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입법 입법보완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는 노동당국에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12시간 연장근로 상한→주 8시간 단축 △1일 연장근로 상한 설정 및 최소 휴식 시간 보장 △포괄임금계약 전면 금지 등을 요청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주 52시간 노동제 국가가 아니라 주 40시간 노동제 국가라, 근로기준법은 12시간의 연장근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 뿐”이라며 “노동부는 ‘예외’를 ‘정상’의 지위로 만들어 야근 지옥을 일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정부는 다음 달 개최 예정인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장시간 근로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근로시간 유연화와 근로자 건강권 확보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노사 모두 근로시간 법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근로자 건강권을 보호하면서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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