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br>
▲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떠돌이 고양이는 도둑고양이로 불렸다. 아무것도 훔치지 않은 고양이에게는 다소 억울할 수 있는 명칭이다.

서대문구 길고양이 동행본부는 지난 2020년 11월 도둑고양이 표현 순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단체는 각종 출판사와 포털사이트 요청을 통해 단어의 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활동이 이어지자 도둑고양이는 길고양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한결 친숙한 명칭 덕인지 운 좋은 고양이는 선량한 이웃에게 사료 몇 끼를 얻어먹게 되기도 했다.

최근 고양이 명칭 논란이 다시금 점화됐다. 환경부가 국립공원 등에서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들고양이를 안락사하는 지침을 유지하기로 하면서다. 

환경부는 지난달 24일 ‘들고양이 포획 및 관리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사람의 주거지역에 함께 살아가는 길고양이와 달리 들고양이는 생태보호 지역에 거주하며 천연기념물 조류 등을 포식하므로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다만 이들 고양이가 서로 다른 종이 아니라 단지 ‘사는 곳’에 따라 분류된다는 점이 문제시되고 있다. 길고양이는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아 농림축산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호’ 대상이지만, 국립공원이나 습지보호지역 등에 사는 들고양이는 환경부가 담당하는 ‘포획’ 대상이다.

지난 2022년 기준 국립공원에서 확인된 들고양이는 187마리, 중성화 수술 후 재방사된 들고양이는 148마리로 나타났다.

개정안에 따르면 ‘야생동물과 그 알·새끼·집에 피해를 주는 들고양이’가 지침 대상이다. 이들을 포획하고 중성화 수술 후 포획한 곳에 방사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지만, 불가피할 경우 안락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래 ‘대학 등에 학술연구용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삭제됐다.

전염병 등 특수하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들고양이를 안락사해야만 하는 사정이 생길 수 있으므로 규정이 꼭 필요하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다.

‘제자리 방사’가 어려울 경우 동물보호기관으로 보내지고, 보호기관에서 수용할 여력이 없을 경우 관리동물협의회 논의를 거쳐 안락사된다.

개체수가 급증한 동물을 처리하기 위해 가장 간단한 방법인 ‘살상’을 택하고 있다는 지적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길고양이와 들고양이는 서로 다른 종이 아니지만 전혀 다른 운명을 맞게 됐다. 들고양이에게 이런 보도가 전해질 리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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