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된 최초의 국어사전 원형 그대로 재현
현대 국어사전서 맛볼 수 없는 풍부한 언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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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간 후 86년만에 복간된 <조선어사전>

편집자: 지금 우리에게는 말이 너무 당연해진 듯합니다. 이 시점에 <조선어사전>을 출간하는 게 맞는 걸까요?

문세영: 그렇다면 사전이 더더욱 필요한 상황입니다. 말을 잊는다는 건 우리를 잃는다는 것과 진배없지 않습니까? 일본 유학 시절 하숙집에 같이 살던 중국인 유학생이 내게 “너희 나라의 사전을 구할 수 있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었소. 사전이 있나 한번 찾아봤는데 조선말로 된 사전이 하나 없는 겁니다. 사전이 없는 나라라고 알릴 바에야 나는 하숙집을 옮기는 것을 택했지.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조선어를 카드에 적어 모았습니다.

_부클릿 〈사전말끝〉, “왕래” 중에서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3·1운동 105주년을 맞아 <조선어사전>이 복간됐다. 이는 초판 발간 후 86년만이다.

<조선어사전>은 우리말로 된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청람 문세영이 편찬해 1938년 발간됐다. 어휘를 모으고 풀이한 사전이기 전에 우리말이 나라말이 될 수 없던 시기에 우리 언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리는 선언이기도 해 남다른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특히 <조선어사전>은 일제의 무단통치로 우리 문화가 사그라들던 시기에 우리말이 생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 위대한 저술로 최현배의 <우리말본>(1937), 김윤경의 <조선문자급어학사>(1938)와 함께 일제강점기 우리말 관련 3대 저술로 꼽힌다.

조선어학회가 1933년에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해 표기한 최초의 사전이기도 해 당시의 표준어 보급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현재 온전한 실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식공작소(대표 박영률)는 “최초의 국어사전이 박물관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영인본으로 복간하게 됐다”며 “국립한글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소장본과 비교·대조해 원형과 최대한 동일하게 재현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복간된 <조선어사전> 영인본은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 수석 편찬원을 지낸 조재수 국어학자가 소장한 초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활자체와 4단 세로쓰기 양식부터 활판 인쇄 기술의 한계로 발생한 오류를 인위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표지부터 본문까지 원본의 물성을 최대한 동일하게 재현해 첫 출간 당시의 시대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했다.

<조선어사전> 초판본에는 8만여 어휘, 수정증보판(1940년 발간)에는 9만여 어휘의 올림말이 실려있다. 이는 4만여 어휘가 실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말모이’나 6만가량의 어휘가 실린 조선총독부 사전을 능가한다.

표준말 외에도 방언, 옛말, 이두, 학술어, 속담, 관용구 등 다양한 우리말을 수록하고 있어 당대의 언어생활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문화를 두루 살필 수 있다. ‘모던껄’, ‘모던뽀이’ 등 근래의 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은 신어가 실려 있으며, ‘러버(Lover)’의 뜻풀이로 ‘마음속에 있는 사람. 戀人(연인)’을 제시하고 있으면서 정작 ‘연인’은 올림말로 등재돼 있지 않은 등 서구 문물이 유입되던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월탄 박종화는 <신천지> 1954년 9월호에서 “현진건이 <조선어사전>이 처음 나오자 고어와 신어를 비교하면서 문장에 써먹을 어휘를 수십 독을 했다”고 밝혀, 해방 이전 유일한 우리말 사전으로서 <조선어사전>이 지닌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원이 넘는 책이 드물었던 때에 7원에 달하는 값비싼 책이었음에도 초판 1000부, 재판 2000부가 매진됐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품은 우리말 사전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출판사 관계자는 “<조선어사전>은 20세기 초 조선을 들여다보려는 이들에게 올바른 렌즈가 돼 준다”며 “이 책을 통해 연구자는 당시의 생생한 풍경을, 문학 독자는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창작자는 현대의 국어사전에서는 맛볼 수 없는 풍부한 언어의 바다를 지금 여기에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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