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12년 전인 2012년, 필자는 어떤 기사를 보고 무척 격분한 적이 있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구정당인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한 이유가 이전 선거에서의 30대의 투표율에 비해 저조했던 당시 30대의 투표율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당시 30대의 투표율이 저조한 이유로 그들이 누린 경제적 부유함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들었다.

필자가 당시 그 기사에 격분했던 이유는 기사가 가진 비논리성 때문이었다. 우선 이전 선거와 다음 선거의 30대 투표율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이전 선거에서 30대였던 사람들이 몇 년 뒤 선거에서 40대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전 선거 30대와 당대 선거 30대를 비교하는 것은 결국 세대 비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투표율이 낮은 30대를 향해 경제적 부유함을 누린 세대라는 말도 틀렸다. 2012년 30대였다면, 1970년대-80년대 초반생들이다. 모두 IMF를 겪었다. 해당 연령대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사회 초년생 시절에, 어린 사람들은 구직 중일 때와 고등학생 때 IMF를 겪었다. IMF를 빌미로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거나, 취업이 막혔거나, 한국인의 삶에서 가장 민감한 시기인 고등학생 때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들은 일생에 걸쳐 경제적 부유함만을 누린 세대일까?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진보개혁 진영에서 소위 “글발 좀 날리는” 당시 50대 초반 정도 된 유명 기자였고, 지금도 유튜브에서 활동 중이다. 그 기사는 기사를 쓴 기자가 자신이 투쟁했던 20대 시절, 기자로서 활동했던 30대 시절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세대의 아픔이나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한 결과로 예상된다.

세대(世代, generation)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본 지면에서 채택하는 정의는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전체”다. 그런데 이 사전적 정의는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사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공통의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세대의 분류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서 특정 연령대의 공통점을 파악해서 섣부르게 묶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누군가가 필자를 ○○세대라고 규정한다면, 필자가 그 ○○세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꼭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필자를 ○○세대라고 지칭하는 것은 필자를 ○○세대라고 지칭하는 사람의 선입견이 들어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학문적으로 전 세계에는 ‘○○세대’라는 말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또한 시대별로 주목받는 세대도 달랐다. 예를 들어서 냉전시기에는 ‘전후세대’라는 말이 등장했고, 이들을 향해 한국전쟁을 겪지 않아서 남침의 고통과 북한을 향한 적개심이 없다는 비난이 가해졌다. 또한 ‘X세대’라는 말이 한참 유행한 적이 있다. 이들에게는 1950-60년대 경제적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개인주의적이고, 자기표현이 과감하며 조직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난이 가해졌다. 최근에는 ‘MZ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다. ‘군사정권 시기를 겪지 않았거나, 아주 유년기 때 겪은 사실상의 민주화 이후의 신세대’를 의미하는데, 모바일에 익숙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고 평가된다. 그나마 이들에게는 비난과 함께 연민과 우려도 가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 세대는 세대 나름의 고통과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예를 든 세대들을 다시 살펴보자. 전후세대는 일제강점기 일제의 경제적 착취, 한국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엄청난 경제적 고통과 잇따른 독재 속에서 한국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에 기여한 세대다. X세대는 IMF라는 국가 부도 상황에서 성인이 됐거나 구직에 참여했던 세대고, 고용 불안정과 엄청난 부동산 가격을 겪어온 세대다. 반면 IMF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상황에서 한국경제를 지탱했고, 인터넷의 확대와 문화적 다양성을 주도했다. 또 박근혜 탄핵을 주도하며 한국의 민주화 이후 민주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M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가난해지기 시작한 첫 번째 세대다. 미래의 일이라서 섣불리 예측할 순 없지만, 인구 감소에 따른 국가적 부담을 감당할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X세대가 그러했듯이 이들은 모바일, AI의 확산과 정착에 기여할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소위 ‘86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소위 ‘운동권 세대’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가난의 끝물을 경험했다. 무엇보다도 온몸으로 독재에 저항하면서 청춘을 보냈고, 이것만으로도 비난을 면책받을 권리가 충분한 세대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기득권이 된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이들이 쓸 수 있는 소위 ‘까방권(까임 방지권의 약자)’이 다 소멸됐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그 세대 전체를 향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하지 않는 한 세대 간의 갈등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회가 세대 간의 갈등을 줄이는 것은 그 사회의 유지·발전에 핵심적인 사안일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내 세대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다른 세대는 알 수 있을까?’라는 겸손함, 다른 세대 혹은 객관적 평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 능력, 그 성찰 결과에 따라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담대함,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시대정신’을 알 수 있는 통찰력이다.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것만이라도 잊지 말자. 요절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게 돼 있다. 그리고 이미 나이 들었을 수 있다. 사람에게는 나이 듦에 따른, 그리고 젊음에 따른 장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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