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번 회차 칼럼을 작성하는 시점은 동짓날이다. 본 회차 칼럼이 게재되면, 한창 한 해의 정리가 이뤄지고, 다음 회차는 2024년에 선보일 것이다. 한 해가 정리되는 시점이면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필자는 이번 지면에서 <교수신문>에서 매년 뽑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통해 한 해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교수들이 선택한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견리망의는 말 그대로 ‘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뜻이다. 교수들이 이 사자성어를 선정한 것은 대통령과 대통령의 부인, 대통령의 집안사람들과 정치인들, 언론인 등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의로움을 포기한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올해 기득권의 ‘견리망의’적 행태는 정치판뿐만 아니라, 외교, 사법, 재계, 언론, 교육, 대북관계의 현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엑스포 유치라는 외교무대에서도 술판이 열렸고, 주가조작 의혹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지지부진하다. 학교에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정치권을 비호하기 위해서라는 의혹까지 돌았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정치적 이익 때문에 북한을 향한 위협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은 기득권답게 이러한 기득권 세력의 행태에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외교무대에서 잇따른 구설수에 올랐고, 부산 엑스포 유치는 실패로 돌아갔다. 교권이 실추됐다는 주장이 등장하면서 일선 교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교사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경제도 서민들의 삶도 여전히 어렵다. 그나마 훈풍이 불었던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어서, 북한은 계속 핵으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 중 누구 하나 책임을 지고 사과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이 자신의 향후 정치 행보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언론도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를 꼽은 것 같다.

그런데 필자는 일부 교수들도 저 사자성어를 통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부인의 논문 표절 논란이 있을 때 대통령 부인에게 학위를 수여한 학교 교수들이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 생각해 보자. 이러한 행태 때문에 일부 언론과 유튜브에서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를 선정한 것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 있었다. 교수‘질’로 생계를 유지하는 필자 역시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실 ‘견리망의’보다 더 유명한 구절은 ‘견리사의(見利思義)’다. 이 구절은 <논어(論語)>의 헌문편(憲問篇)에 나오는데,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라는 뜻이다. “견리사의”는 보통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는 구절로 알려져 있는데, 안중근 의사의 필묵(筆墨)으로 남아있어서 더 유명해졌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이와 반대로 “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망각하다”라는 ‘견리망의’가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1)라고 소개돼 있다.

이것은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에 약간의 억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교수신문>에 등장하는 “‘견리망의’가 세상에 퍼졌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부족하다. 하다못해 민담이나 야사에 등장하는 구절 하나라도 뽑아서 그 사례로 제시했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는 왜 뽑는가’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실제로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선정된 사자성어를 보면, 생소한 말들이 많이 보인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기 시작한 것이 2001년이었고, 첫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이후 이합집산(離合集散, 2002년), 우왕좌왕(右往左往, 2003년), 지록위마(指鹿爲馬, 2014년), 파사현정(破邪顯正, 2017년)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매우 생소한 사자성어들이었다. 사자성어의 수는 한정적이니 억지스러운 선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같은 사자성어를 선정할 수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낯선, 심지어 억지스러운 사자성어 선정은 시민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교수들의 잘난 척’이라는 비아냥까지 등장했다.

2023년 한 해 동안 힘을 가진 사람들이 보여준 행태는 ‘견리망의’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자성어를 선정한 교수들도 ‘견리망의’했다는 비판의 예외가 될 수 없다. 내년에는 ‘올해의 사자성어’ 기사를 보면서 부끄러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또한 억지스러운 사자성어 선정보다는 교수로서의 꼿꼿함을 보여주는 모습이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4.19 혁명, 1987년 6월 항쟁, 박근혜 집권 당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때 교수들이 보여준 모습을 교수 스스로가 잊지 않길 바란다.


김재호, 「의로움을 잊고 오로지 이익만 챙긴다」, 『교수신문』, 2023년 12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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