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제 곧 11월이다. 11월은 여러 가지 이유로 우울한 달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날씨는 쌀쌀해지고, 낮이 짧아지고, 밤은 길어진다. 추석 연휴와 국가공휴일이 많은 10월을 지나서 주말을 제외하면 휴일이 하나도 없는 달이다. 게다가 날이 점차 추워지면서 체온 유지로 인해 체력도 조금 소진되는 느낌까지 있다. 그런데 11월이 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방송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연예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소위 ‘11월 괴담’ 때문이다.

방송계와 연예계의 11월 괴담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었다. 특히 2005년에만 은방울 자매의 박애경씨의 사망, 전원일기에서 할머니 역을 했던 정애란 배우의 사망, 모 가수의 도박장에서의 목격, 또 다른 가수의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 등이 한꺼번에 있었다. 이로 인해 코미디언 서영춘 사망, 가수 유재하의 사망 등 과거 11월의 사건들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11월 괴담의 시작이었다.

방송계와 연예계에 좋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11월에만 집중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서 2010년 9월에는 모 가수의 병역 회비를 위한 고의 발치(拔齒) 의혹, 앞서 도박장에서 발견된 가수의 불법 도박 적발, 모 가수의 외국 학력 위조 의혹 등이 한꺼번에 터졌다. 또한 11월 괴담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경찰 소환, 형 집행 확정 등을 11월 괴담의 사례로 소개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는 이전부터 오랜 시간에 거쳐 수사가 이뤄진 건으로 재판과 수사를 거친 후 하필 결과가 11월에 나온 것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보면 방송계와 연예계에 좋지 않은 일이 11월에 몰린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11월 괴담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11월 괴담을 이야기하고 일종의 ‘도시전설’처럼 떠도는 것은 문화적으로 나름의 의미가 있다. 11월 괴담의 문화사적 의미를 밝히려면 11월 괴담의 맥락이나 가능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선 행정적 가능성을 살펴보자. 앞에서 언급했지만, 11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경찰과 검찰이 가진 공권력으로 인해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경찰과 검찰도 행정부를 구성하는 기관 중 하나다. 공무원들은 법과 규정에 근거해 움직이고, 그 결과를 공개할 의무가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집단이고, 세금으로 움직이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 해 예산이 집행되기 시작하는 시점과 업무를 최대한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공무원’이라는 말에 집중해 보자. 공무원의 최대 행복은 안정적 직장과 때때로 이루어지는 승진이다. 이것은 공무원에게 부과되는 의무를 최소 이상은 해내야 하고, 아울러 두드러지는 성과도 내야 함을 의미한다. 11월 괴담은 예산과 관련된 주기, 공무원의 한 해의 실적 평가와 맞물려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

11월 괴담의 문화적 맥락에는 ‘언론의 생리’도 존재한다. 방송과 연예계를 다루는 언론은 주로 스포츠신문이다. 11월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한 해 시즌을 마무리하는 기간이다. 물론 겨울 스포츠인 프로농구와 프로배구 시즌이 이미 시작된 시기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도가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보다는 높지 않다. 이것은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할 기사가 부족해진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스포츠신문사는 1면을 장식할 기삿거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그동안 취재해 놓은 기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는 평가가 많다. 더군다나 언론과 검찰과의 유착이 강하기 때문에 이것이 수사로 이어진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검찰 이야기를 다시 할 수밖에 없다. 많은 시민들은 검찰이 수사해 놓고 기소하지 않는 사건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통해 검찰의 권력을 강화하고, 검찰의 기득권을 강화한다고 생각한다. 소위 ‘던지지 않은 폭탄’이 있다는 의미다. 특히 검찰이나 검찰과 가까운 정치권에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때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방송이나 연예계와 연루된 각종 사건을 ‘캐비닛’에서 꺼낸다는 의혹도 있다. 최근 불거진 연예계의 마약 사건 역시 공교롭게도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한 직후에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국정감사로 인해 현 정부의 의혹이 부각되는 시기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고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자세가 시민들이 어려운 시기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아울러 앞에서 등장한 의혹이나 시민들의 생각이 진실이라면, 방송인과 연예인들은 권력에 휘둘린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방송인이나 연예인이 잘못한다면 처벌받는 것이 맞지만, 권력에 휘둘린다면 그것 역시 인권침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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