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3 젊은작가상 정선임 작가
“소설가는 자꾸 뒤를 돌아보는 사람”
왜 써야 하는지 자신에게 질문 계속해

정선임 작가 [사진제공=c해란]
정선임 작가 [사진제공=c해란]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아 결국 텅 빈 마음을 떠안고 살아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여자 없는 남자들>의 ‘기노’처럼 어떤 슬픔은 덮어둔다고 잊히지 않는다. 존재의 가장 큰 슬픔은 상실일 것이고 가장 큰 위로는 아마도 “여기 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라는 정선임 작가의 다정한 문장일 것이다. 

정선임 작가는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에 <귓속말>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집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로 2022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으며 단편 <요카타>로 2023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음을 확언할 수는 없다. 단지 사라짐의 가능성을 품고 있을 뿐이다. 때론 그 가능성이 존재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소파 밑에서 발견된 사라진 고양이의 털 뭉치를 간직하며, 너는 ‘그곳’에 있을 거라고 믿는 정선임 작가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사라지지 않는 ‘뒤’를 기록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보편적 인류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정선임 작가는 문학이 우리가 아닌, 우리의 것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슬퍼할 능력을 길러준다는 말을 믿는다. 믿고 있기에 쓴다. “계속 쓰겠다. 다시 쓰겠다. 애쓰겠다.”라는 소설가로서의 그의 각오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까지 오랫동안 독자로 지내왔다고 했는데.

원래 라디오 작가를 오래 했어요. 어차피 쓰는 데에는 관심이 많은 생활을 해왔기에 드라마 수업도 듣고 시나리오 수업도 들었는데 항상 끝맺음이 어려웠어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시작하는 건 잘하는데 마무리는 잘 못하는 사람. 드라마나 영화보다 소설을 좋아했는데도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러다 잇따른 상실을 겪고 난 뒤 문득 소설을 써보자는 마음이 생겼어요.

-라디오 작가는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대학교 졸업 후 방송 아카데미에서 라디오 제작 과정을 보고 TV보다는 라디오가 적성에 더 맞을 것 같았어요. KBS에서 오래 일했어요. 

-라디오 작가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셨네요.

소설 읽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사실 라디오 작가를 하면서 문장을 쓴다는 게 PD나 아나운서에 기댈 때도 많고 음악도 입혀지고 그러니까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글 말고 나만의 문장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학과 소설을 택한 결심은 무엇이었나요.

오랜만에 책상 정리를 하고 있는데 예전 일기장과 필사 노트를 발견했어요. 조해진 작가님이 수업에서 소개해 주셨던 문장이 너무 좋아서 수전 손택의 <문학은 자유다>를 비롯해 손택의 책들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났어요.

“문학은 우리가 아닌, 우리의 것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슬퍼할 능력을 길러줍니다. 우리가 우리가 아닌, 우리의 것이 아닌 사람에게 공감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문학, 세계 문학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국가적 허영, 속물주의, 강압적 지역주의, 알맹이 없는 교육, 결함 있는 운명과 불운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길이었습니다. 문학은 더 큰 삶, 다시 말해 자유의 영역에 들어가게 해주는 여권이었습니다.”

습작 시절에 품고 있던 문장인데 아마도 문학을 하고 소설을 쓰게 된 이유 같아요.

-작가님의 단편은 소소한 디테일이 돋보여 독립영화로 만들면 어떨지 하는 욕심도 나는데.

독립영화 저도 좋아해요. 일본 영화 그 특유의 분위기도 좋아하고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기쁠 것 같아요.

[사진제공=다산책방]
[사진제공=다산책방]

-단편 <구부린 마음>에 이수명 시인님의 시가 나오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라서 반갑더라고요. 시를 좋아하시나요. 혹시 시도 써본 적 있으신가요.

고등학교 때 교지 편집부였는데 축제 때 시화전 한다고 하나씩 제출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써 본 적은 있어요. 그런데 저는 시보다는 소설 쓰기가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시를 좋아해요. 특히 허수경 시인님의 시를 좋아해요. 박소란 시인님도 좋아하고요. 보통 어떤 이미지나 이야기가 있는 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현대시는 점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사실 요즘은 시와 소설의 경계도 희미해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시 같은 소설을 쓰시는 시인분들이 계시죠. 소설을 쓰셨는데 시인이 쓴 소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 제가 시를 쓰면 소설 같지 않을까요. 형식이 자유로워지는 것, 경계가 허물어져서 다양한 글을 읽고 또 읽는 건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발표작은 단편 위주인데 장편 계획도 있으신가요.

계약된 장편이 있어요. 그래서 써야 하는데 제가 계획적이지 못해서 걱정이에요. MBTI가 J인 동료들 보면 정말 매일매일 정해진 분량을 계획적으로 잘 쓰더라고요. 저는 단편도 계획적으로 못 쓰는 편인데 장편은 어떻게 쓰죠?(웃음)

-작가님 MBTI가.

‘INFP’입니다.

-계획적인 글쓰기를 위해 체력 관리를 꾸준히 하시는 작가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일단 글쓰기는 체력이 있어야 해요 정말. 김연수 작가님이 일산 호수공원을 그렇게 달린다는 이야기를 에세이에 매번 쓰셨는데 왜 조깅을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다른 작가님들도 요가 등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걸로 알아요.

-계획적인 글쓰기 쪽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작품이 나오기까지 평소의 글쓰기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하네요.

그냥 어떤 질문이 떠오를 때 쓰는 소설이 있고요. 어떤 장면이 떠올라서 이 장면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하는 소설이 있어요. 어쩌면 제 기억을 다시 복원하고 재현하고 싶어서 쓰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질문으로 시작한 소설은 어떤 작품인가요.

<귓속말>이 처음으로 질문을 가지고 시작한 소설이에요. 시작은 고독사에 대한 관심이었어요.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타국에서 홀로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그리고 그 죽음을 어떤 사람이 목격했다면 어떻게 할지 하는 질문들로 시작된 이야기예요.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요카타>도 질문이었어요. 저의 외할머니의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8살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 시간의 간격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몇 살이라도 어려지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할머니는 왜 그냥 살아갔을까 하는 질문으로 시작한 소설이에요.

-이미지로 시작한 작품은요.

<얼음이 떨어지던 방>이 딱 이미지로 시작한 작품이에요. 제주도를 자주 가는 편인데 해마다 바뀌는 풍경들을 이미지로 많이 썼고, 특히 비석 없는 무덤들이 많은 곳을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의 묘지 주인을 찾는 공고들을 보고 떠올린 이미지로 시작한 작품이에요.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정선임 작가 [사진출처=본인제공]
                              정선임 작가 [사진출처=본인제공]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구부린 마음>이요.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는 장면을 보고 저도 모르게 프리랜서로 일했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옮겨 다니는 프리랜서라는 직업 특성상 일하는 책상이 내 책상이 아니고 또 언제 내 책상에 앉을지 모르는 자리에 앉았을 때의 마음. 그런 감정들을 쓰고 싶었어요.  미발표작이긴 하지만 쓸 때 저의 마음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저의 고등학교 시절의 얘기도 들어있기도 하고요.

-작가님은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작품 이야기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이름이라고 할까요.

제가 제 이름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웃음) 존재나 어떤 무언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일 수 있어요. 

-<우리가 우리였던> 작품에 작가님의 정체성이나 존재에 관한 생각이 많이 투영됐다고 생각해요. 고양이를 키우던 고모의 무덤 앞에 그 고양이가 생을 다해 묻어주면서 했던 "여기 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어"라는 말처럼요.

사실 가끔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행동을 잘 못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설에서도 그냥 기억하고 애도하는 그런 걸로 책임을 회피하나 그 생각도 들어요. 제 인물들이 좀 소극적이고 겨우 한 걸음 떼는 정도인 것 같고 아니면 그 자리에 있는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소설에서라도 뭔가 다른 걸 해보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요즘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있어 소설 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여러 가지 쓰기가 있는데 하필이면 소설을 왜 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던졌던 것 같아요. 이 질문은 다른 작가들도 계속하고 있는 것 같고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를 읽고 거기서 제가 왜 쓰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문장을 찾았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복원하고 싶고 다시 그 안에서 살게 하고 싶다”라는 문장을 보고 내가 그래서 자꾸 쓰고 싶어 했나보다 이해했어요. 롤랑 바르트도 뭔가 상실 이후 애도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롤랑 바르트 본인도 계속 그런 질문을 찾는 과정이었겠죠.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아마 앞으로도 계속 질문을 하면서 답은 달라질 수 있겠네요.

맞아요. 다음 소설을 쓰면 또 달라질 것 같아요. 이게 쓰다 보면 무용한 일이잖아요. 요즘 이장욱 선생님이 최근에 쓰신 에세이집 <영혼의 물질적인 밤>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 소설에 대해 이렇게 얘기해요. “소설은 참도 거짓도 아닌 처음부터 무효인 문장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일“이라고요. 그러니까 왜 우리는 무효화 된 문장을 쌓고 쌓아서 결국 그냥 무효한 이야기를 쓰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거짓말이잖아요. 작가들이 아마 그런 것 때문에 더 질문을 스스로에게던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계속해야 하는 질문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소설가는 어떤 사람인가요.

자꾸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현재가 제일 중요하고 앞만 보고 살아가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뒤를 돌아보는 사람도 몇 명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그런 사람이 소설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장편소설을 꼭 쓰고 싶어요. 어떻게든 올해가 가기 전에 초고를 완성하는 게 목표예요. 

몇 주 전 계단에서 다리를 다친 정선임 작가의 사정으로 인터뷰는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 공원에서 이뤄졌다. 초가을이 무방비로 노출된 장소였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하교한 아이들의 즐거운 소란이 끼어들기도 했고, 비둘기가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했다. 작품 속 고양이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일 땐 길고양이가 은밀한 보폭으로 지나갔다. “되게 건강해 보이죠?”라고 그가 물었고 “행복해 보인다”고 답했다. 순간 그가 우연을 계획하듯 고양이를 부리는 마술사가 아닐까 짧게 망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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