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젊은작가상,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강화길

◈《안진: 세 번의 봄》과《풀업》으로 그려낸 모녀 관계
◈ 매섭고 날카롭게 여성의 삶 포착한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
◈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어

강화길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왕보경 기자】 “평생 보지 않는 원수 사이의 미움이 아니라 너무 친밀해서 생기는 미움 같은 게 있어요”

“저 멀리 있는 자의 고통을 여기 내가 느끼는 게 문학”이라 말하던 강화길(37) 작가는 소설 다른 사람》을 통해 개인의 고통을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고통으로 변모시켰다.

강화길의 세계에서 여성은 들러리도,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도 아니다. 남성의 시선에 갇힌 여성일지라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고통 속에서도 숨 쉬고, 끝없이 사랑하고, 전력을 다해 미워한다. 

강 작가는 때로는 긴장감이 넘치게, 시릴 만큼 매섭게 여성의 삶을 포착했다. 혹자는 이를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라 칭하기도 한다. 그만의 세계를 구축해 낸 작가가 이번엔 조금 더 세밀하고 내밀한 감정에 머물렀다. 

그는 ‘엄마와 딸’의 사이에 주목했다. 관계에는 거리가 필요하지만 ‘거리 조절 실패’ 경보음이 울리는 관계들도 있다. 엄마와 딸의 사이가 그렇다. 딸은 엄마를 ‘이상한 엄마’라 생각하고, 엄마는 딸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엄마라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편안하고, 푸근하고, 자애롭고 이 모든 단어가 ‘엄마’와 일맥상통하기도 하지만 실제 자식이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수많은 독자가 강화길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가장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 존재에서 때로는 거북스럽고 불편함을 느끼는 존재로 묘사된 엄마, 그리고 그를 마냥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딸. 차분한 목소리로 그려낸 현실감 넘치는 모녀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예상치 못한 불편함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을 미워할 수 없게 된다. 세 번째 봄이 지나가도 그들에게 네 번째 봄이 찾아오기를, 그들이 네 번째 봄 속에서 거닐기를 바라게 될 뿐이다. 

안진에 존재하는 것

작가 강화길은 장편소설 《다른 사람》으로 2017년 한겨레문학상을, 단편소설 〈음복〉으로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여성의 삶, 그리고 그 안의 부조리와 혐오를 특유의 서늘하고 긴장감 있는 문체로 전달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왔다. 이후 소설집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대불호텔의 유령》을 발간하며 그만의 발자취를 더욱 선명히 했다.

최근에는 안진이란 도시에서 펼쳐지는 세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집 《안진: 세 번의 봄》, 세 모녀 사이의 갈등과 부조리, 그리고 그 안에서 주인공인 장녀가 자신의 삶을 되찾아 가는 내용의 단행본 《풀업》을 출간하며 그만의 문학세계를 더욱 확고히, 그리고 널리 확장하고 있다. 

-최근 어떻게 지내셨나요. 

《안진: 세 번의 봄》이 6월에 출간됐어요. 국제도서전에 소개돼서 현장에 다녀왔고, 사인회도 진행했어요. 그 이후로는 8월에 발간된 《풀업》 마감에 매진했어요. 두 달 동안 퇴고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여름이 다 끝났더라고요.

-《화이트 호스》에 이어 두 번째 단편집을 출간하셨어요. 《안진: 세 번의 봄》이란 제목이 눈에 띕니다. 제목을 어떻게 정하신 건가요.

단편집 제목을 정할 때 보통 이 책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표제로 삼곤 하잖아요. 〈깊은 밤들〉과 〈비망〉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느낌이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고민하다가 편집자님께 조언을 구했어요. 편집자님이 작가의 말에 있는 ‘세 번의 봄’이라는 단어가 좋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부제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고요. 순간 ‘세 번의 봄’이 거쳐 가는 장소가 어디일지 생각했고, 안진을 떠올렸어요. 제 소설 대부분은 가상의 도시 ‘안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거든요. 

-안진이라는 가상의 공간도 그렇고, 작품에서 공간을 활용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기묘한 느낌도 들고, 단절성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작품 세계 속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고딕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고딕 소설은 고택이라든지 성이나 지하 감옥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기이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잖아요. 어린 시절 그런 이야기들에 많이 매료됐어요. 내가 쓰는 이야기에 그런 고딕적인 공간이 등장하는 게 좋았고, 그 가운데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쓰는 게 재밌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러한 공간들이 등장하게 됐어요. 

-‘안진’이란 지명은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우선 국내에 없는 지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명이 겹치면 그 지역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 실제로 있을 법한 무난한 이름이란 생각이 들어서 안진이란 지명을 계속 쓰게 됐어요.

강화길 작가 《안진: 세 번의 봄》 [사진제공=안전가옥]
강화길 작가 《안진: 세 번의 봄》 [사진제공=안전가옥]

모녀에게 봄이 올까요

《안진: 세 번의 봄》 수록작 〈깊은 밤들〉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이는 ‘나’와 엄마의 이야기기도, ‘나’와 내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녀 삼대의 이야기면서도 한 사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며칠 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받는다. 엄마는 “넌 애한테 뭘 가르치는 거냐?"라며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쏟아낸다. 손녀가 보낸 크리스마스카드에 ‘건강하세요’가 ‘건강하새요’로 적혀 있었다면서 말이다. ㅔ와 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나를 책망한다.

나는 엄마의 말을 자르고 묻는다. “엄마. 나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딸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수십 년간 참아온 엄마에게 해줄 말이 있어서.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딸을 잃어버린다. 깊은 밤은 지나고, 나와 엄마의 이야기는 끝이 날 듯하다.

-《안진: 세 번의 봄》은 모녀 관계를 소재로 한 작품인데요. 이러한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코로나19가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외출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 여겨지고 소통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잖아요. 제가 맺고 있는 여러 관계가 뒤집히는 경험을 했어요. 그중에는 당연히 가족 관계도 있었고요. 그 때문에 모녀라는 소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깊은 밤들〉에는 딸 정민과 새로운 모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작가님은 이들의 관계가 변화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시나요. 

주변에서 소설을 읽고 엄마가 정민이를 잃어버리지 않아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정민이 나중에 커서 엄마처럼 엄마 미워한다? 그럴지도 몰라”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친구가 “야, 당연히 그렇겠지.” 이러더라고요. 그리고 둘이 웃었어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숙명이라 생각해요. 평생 보지 않는 원수 사이의 미움이 아니라 너무 친밀해서 생기는 미움 같은 거요. 그래서 변화는 잘 모르겠어요. 의지가 있다면 달라질 수는 있겠죠. 〈비망〉의 딸이 계속 심리상담을 받고, 엄마가 여행을 가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 이상을 억지로 상상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다시 믿는다. 분명 보았다고. 텅 비어 있는 건물 뒤쪽의 철근 다리 위에 멍하니 서서, 눈앞에 펼쳐진 미래의 얼굴을 보았다고. 새카만 눈동자와 잔뜩 신이 난 듯한 입꼬리. 충만한 표정.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 결코 자신의 마음을 아끼지 않는, 그래서 언제든 모두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편안한 얼굴. 그랬다. 그랬단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랐기에, 너 역시 엄마를 용서하지 않기 위해 온갖 핑계를 찾아낼 줄 알았는데,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먼저 상처를 주고, 믿지 않기 위해 먼저 믿음을 저버리는, 그러고서 그냥 모르는 척 살아가는, 사람의 역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깊은 밤들〉 中

-주변 상황을 참고해서 소설을 쓰시거나, 영향을 받기도 하시나요.

그런데, 제 소설에서 다루는 상황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들이에요.

-〈산책〉에서 엄마와 엄마 친구인 종숙을 칭하는 방식이 독특해요. 서로를 부르는 호칭인 ‘영애씨’와 ‘종숙 언니’로 글이 전개되는데 이러한 호칭을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거리감이 중요했어요. 〈가원〉이라는 소설에서도 외할아버지를 ‘박윤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요. 매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대상이기 때문이었어요.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 표현이 역설적으로 그 대상에 대한 감정을 더 드러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연장선에서 영애씨라는 호칭도 쓰게 된 거죠. 그리고 종숙 언니는 영애씨가 부르던 호칭이죠. 실제로 화자는 종숙 언니를 만난 적이 없잖아요. 나의 영애씨와 영애씨의 종숙언니. 그 관계를 중심으로 소설을 진행하기 위해서 호칭을 그렇게 사용했죠. 

-〈산책〉의 시점도 다소 독특하다고 느껴져요. 죽은 ‘나’가 엄마를 관망하듯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죽은 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도 듣고 싶어요. 

사실 〈산책〉은 고딕 스릴러 앤솔러지에서 청탁받아 쓰게 된 소설이에요. 그래서 처음부터 유령이 나오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구상했어요. 죽은 딸이 유령이 돼 혼자 남은 엄마를 바라본다면 마음이 복잡할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심지어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과 더욱 단절된 상태고요. 나는 엄마 옆에 있어 줄 수 없는 상황이고, 설사 살아있더라도 엄마를 견디긴 쉽진 않을 거 같고요. 그런 복잡한 마음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환청을 듣고, 알 수 없는 존재가 지켜보고 있는 기분을 느끼는 등 계속해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영애씨’의 모습이 그려져요. 이를 딸의 죽음으로 인한 ‘영애씨’의 트라우마라 해석해도 좋을까요.

트라우마라기보다는…… 저는 유령이 굉장히 감정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꿈꾸는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기억에 갇힌 존재인 거죠. 그 기억으로 인한 감정 때문에 계속 누군가를 찾아가는 거죠. 그리고 지켜봐요. 내가 살았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고, 남아 있는 감정 때문이기도 하겠죠. 저는 그런 순간을 상상했어요. 유령의 시선이 갑자기 느껴지는 찰나 같은 것. 사람과 유령이 유일하게 접촉하는 순간. 그때 유령의 마음이 영애씨에게 전해졌겠죠. 그 순간을 묘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깊은 밤들〉, 〈비망〉, 〈산책〉 세 가지 작품을 함께 묶어 출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단편집 《화이트 호스》 출간 이후 꾸준히 단편 소설을 발표했어요. 비슷한 색깔의 소설을 따로 묶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함께 작업한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가 3~4편의 단편 소설을 엮는 방식이기도 했고요. 이번 기회에 작업의 방향성을 분리해 보자는 차원에서 세 작품을 엮어 출간하게 됐습니다.

-출판사 안전가옥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안전가옥에서 앤솔러지 청탁을 받았던 적이 있었어요. 일이 많았던 시기라 함께하진 못했지만,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콘텐츠가 신선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뒤 우연히 안전가옥 관계자를 만날 일이 있었어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작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강화길 작가 《풀업》[ 사진제공=현대문학]
강화길 작가 《풀업》[ 사진제공=현대문학]

사랑과 미움이 뒤엉킨 존재 ‘가족’

강화길의 신작 《풀업》은 기존의 여성 연대 서사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세 모녀의 갈등, 여성 가족 내의 약자가 느끼는 소외감을 첨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무엇이든 잘하고, 언니의 기를 죽이며 자란, 어디서든 할 말을 하던’ 동생 지수. 그와는 달리 언니 지수는 묘하게 부족한 구석이 있는 딸이자, 가족이다.

심지어는 전세 사기를 당해 엄마가 살고 있는 빌라에 얹혀사는 신세까지 된다. 불안감, 죄책감, 답답함 이 모든 것 안에 갇혀 살던 지수는 우연한 계기로 운동을 시작한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동작을 시도하고, 새로운 감각을 익혀간다. 지수는 한 단계씩 발전하며 성취감을 느낀다. 이를 발판 삼아, ‘헤어질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가족과 헤어짐까지 결심한다. 

-《안진: 세 번의 봄》에 이어 지난 8월 《풀업》을 발간하셨어요. 작품 전부 모녀 관계를 소재로 하고 있고요. 비슷한 주제이지만 《풀업》이 더 밝은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비슷한 주제이지만 분위기를 다르게 쓴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써온 소설은 비관과 희망이 동시에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을 많이 몰아세우기도 하고요. 《풀업》도 처음 발표했을 땐 기조가 비슷했지만, 단행본으로 출간하며 희망적인 방향으로 수정했어요. 

사실 저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운동으로 전부 극복할 수 있다 생각하진 않아요. 그건 일종의 판타지잖아요. 하지만 그런 판타지가 필요한 것 같고, 세상 어느 곳에서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도 해요. 지수가 그런 삶을 꿈꾸는 사람이었으면 했어요. 그런 과정을 그려나가는 게 저에게도 꽤 위로가 됐어요. 

-소설에서 동생인 미수의 입장이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어요. 미수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도 궁금하네요.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지수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지수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미수나 엄마인 영애씨의 입장도 조금씩 나오긴 했죠. 오히려 이런 짧은 등장이 지수의 입장을 그려내는 데 효과적이었던 것 같아요. 추측할 수 있을 뿐, 내면을 파악할 순 없었으니깐요. 그런 식으로 소설의 균형을 잡고 싶었어요. 

-미수는 그래도 언니를 사랑할까요. 그리고 언니인 지수와 동생인 미수 중 어느 쪽에 더 공감하시나요.

가족에게는 서로 같이 자라온 역사가 있으니깐, 감정 안에 무언가 뒤엉켜 있을 거예요. 당연히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겠죠.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단순히 설명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미수 입장에서 지수는 심란한 언니긴 해요. 지수 입장에서 미수가 힘든 동생이기도 하고요. 누군가에게 공감을 더 한다기보단 단지 지수가 주인공일 뿐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소설 속 애증 넘치는 모녀 관계에 수많은 독자가 공감하고 있어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대상이 가족이잖아요. 이후 타인을 만나다 보면 가족 안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과 바깥에서 관계를 꾸려 나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혼란을 겪기도 하죠. 혼란도 느끼고, 고통도 느끼고, 때로는 기쁨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그러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과거를 들여다보고요. 제 소설의 인물들 역시 그런 경험을 똑같이 해요. 

-작가님께 엄마란 어떤 이미지를 지닌 존재인가요. 

정해진 이미지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제 소설 속에 등장한 엄마들이 이상하단 얘기를 많이 들어요. 저는 ‘엄마’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외모에 자부심이 있고 치장하는 걸 좋아하는 〈비망〉의 엄마가 나르시시즘이 있는 캐릭터라고 느껴질 수 있어요. 사실이기도 하고요.

근데 그런 속성이나 성질은 태초의 기질인 거고, 아이를 낳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이 엄마가 됐을 뿐이죠. 그래서 자식과의 갈등이 벌어지는 거고요. 전 이런 갈등이 엄마와 딸의 갈등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 어떤 성격 간의 갈등이라고도 생각해요. 엄마라는 호칭을 떼고 보면 나랑 같이 사는 그 여자,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거죠.

-작가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실제 있을 법한 인물을 잘 구현해 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망〉의 엄마도 주변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평소 관찰력이 좋은 편이신가요.

소설을 쓰기 위해 사람을 관찰하진 않는 것 같고... 일상은 일상으로 느끼며 살아요. 다만 소설을 위해 어떤 인물을 불러낼 때는, 그 사람의 관계를 살피려고 해요. 그 사람이 관계를 맺으며 주고받은 영향이 있잖아요. 저는 그 영향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생각해요. 이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무엇일까. 단점으로 보이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렇게 조금씩 비밀을 벗겨내는 기분으로 인물을 구상해요.

-작품 속 남자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크지 않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데 사실 제 소설에서 남자들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해요. 경제적 능력이라든가, 권위적인 성격, 무심한 외면 같은 것, 폭력을 주도하거나 암시하거나 방관하는 것. 그 성향은 여성들에게 늘 영향을 미쳐요.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역할이 없는 게 아닌 거죠. 오히려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해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등장하지 않으면서, 너무나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대한 힘. 저는 그게 제 이야기의 본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스릴러 문법을 소설에 잘 녹여내는 작가로 유명하세요. 서스펜스 분위기를 소설에 적용해야겠단 생각을 한 뒤 집필이 이뤄지는 것인가요. 아니면 자연스레 소설에 녹아든 것인가요.

어릴 적부터 코난 도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 같은 작가들을 좋아했어요. 지금도 스릴러 소설을 즐겨 읽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 같아요. 일부러 무언갈 더 해야겠다 거나, 반대로 하지 말아야겠다 거나 이런 생각은 없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흘러나오는 대로 쓰는 게 좋아요.  

-소설을 쓸 때 전반적인 내용을 정해두고 시작하시나요.

많은 사람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 관해 물어봐요. 구성을 다 짜고 쓰는지, 소재는 어떻게 발견했는지, 왜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됐는지 질문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이런 질문이 난감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소설을 쓰기 전에는 뭔가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거든요.

이를테면, 엄마와 딸이 간밤에 어딘가로 향하는 이야기를 써봐야지. 그리고 딸을 잃어버려야지. 이런 막연한 상상을 하기는 해요. 하지만 이건 플롯이 아니고 하나의 단상일 뿐이잖아요. 오히려 소설을 쓰면서 제가 무슨 이야길 하고 싶어 했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초반에는 굉장히 많이 헤매기도 하고, 퇴고도 굉장히 많이 해요.

강화길 작가 ⓒ투데이신문
강화길 작가 ⓒ투데이신문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소설 

-벌써 11년 차 작가이신데요. 등단했을 당시와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지금은 그때의 기억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아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만 들어요. 오히려 다음 작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장편에서는 《대불호텔의 유령》요. 《다른 사람》도 첫 장편 소설이었고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소중하지만, 《대불호텔의 유령》이 최근 작품이라서 기억에 남네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저만의 새로운 색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단편은 〈가원〉이요. 그 소설을 쓰고 나서 제가 굉장히 그 작품을 쓰고 싶어 했단 걸 깨달았어요. 작품에서 다뤘던 정서를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했거든요. 그걸 쓸 수 있을지 없을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런 경험은 여러 작품을 써도 매번 오진 않아요. 〈가원〉은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라 아끼고 있어요. 

-제사를 소재로 했던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 〈음복〉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구조적인 모순과 그 안에 갇힌 여성의 기민한 심리가 세밀하게 표현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음복〉을 장편으로 쓸 예정이 있으신가요. 

이걸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쓰겠죠? 단편 〈음복〉 과는 많이 다른 작품일 듯해요. 당시에 내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심지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작품에 영향을 준다고 봐요. 언젠간 〈음복〉 장편을 쓰겠지만 2019년과 똑같은 정서의 작품이 나오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게 맞는 것 같고요.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매번 변하지 않을까요. 항상 그때그때 쓰고 싶은 걸 최선을 다해 써왔다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했다는 게 중요해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더 제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실 언제나 늘 이 생각만 한다. 벚꽃을 보며 산책을 하고, 채소를 가득 넣은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고, 지치지 않고 책을 읽는 것. 쓰는 것. 계속 쓰는 것. 삶이 더 단순해졌으면 좋겠다.

《안진: 세 번의 봄》 작가의 말 中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하셨나요.

네. 기본적으로 전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어릴 적에도 혼자서 하는 일들을 좋아했어요.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런 아이들이 보통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인형극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즐거워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작가님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인가요.

모르겠어요. 그걸 찾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문학이란 무엇이고, 소설이 무엇인지, 이 시대에서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사실 잘 모를 때가 더 많아요. 알았다면 쓰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모르기 때문에 계속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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