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지문학상 수상 시인 백은선
◈시는 철저한 사고와 치밀한 구성의 결과물
◈시의 장소성이 있다면 숨겨져 있는 어떤 자리
◈사랑하는 아이 탄생하고 시에도 변화 생겨

백은선 시인 ⓒ투데이신문
백은선 시인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모호한 희망으로 끝맺는 이야기는 잔인하다. 배신으로 이어진 애매한 마음의 역사처럼. 노역을 견디는 낙타의 남은 하절기처럼. 그렇다면 차라리 절망은 어떠한가. 백은선 시인의 입버릇을 빌려 “내일 모든 게 끝장난”다면 아마도 우린 전부 동지가 아닐까. 공평한 슬픔을 나눠 가진 투명한 이웃 말이다.

여기 상자가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꺼내 보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 더 이상 희망이라는 모르핀을 거부하는 사람. 절망의 도시에서 우울의 광맥을 열어젖힌 시인의 운명이다. 환유를 빌려 시인의 상자를 상상하고픈 갈급한 욕망이 솟는다. 백은선 시인의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이다.

백은선 시인은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가능세계>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도움받는 기분>,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등이 있다. 제24회 김준성 문학상, 제11회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우울을 꺼내 놓고 침묵한다. 시인은 침묵을 원한다. 그러므로 침묵을 위한 구체적인 언어는 백은선이라는 자명함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겠다. 이런 이유로 백은선 시인의 알레고리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들은 그의 오랜 독자이기도 하다.

시인이 직접 섭외한 장소인 ‘살롱드북’에 도착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독립서점이다. 먼저 도착해 곳곳에 자리한 개성 넘치는 독립출판물과 시집, 그리고 에곤 실레의 그림을 둘러봤다. 이곳에서는 맥주와 와인도 간단히 즐길 수 있다고 하는데 무심코 흐르는 한낮의 재즈는 단 한 번의 완벽한 손뼉에 가까웠다. 이윽고 시인이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은선 시인이 직접 인터뷰 장소로 섭외한 독립서점 ‘살롱드북’ 내부의 모습 ⓒ투데이신문
백은선 시인이 직접 인터뷰 장소로 섭외한 독립서점 ‘살롱드북’ 내부의 모습 ⓒ투데이신문

-자신의 알코올중독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기록을 산문으로 풀어낸 캐롤라인 냅의 <중독자>를 시인님이 추천해 주셔서 읽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술을 사랑하고 글을 쓸 때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시작(詩作)에 있어 시인님의 결코 술을 마시지 않는 단호함은 무엇인가요.  

술을 마시면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는 말로 답변을 분명하고 간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막 그분이 오셔서 내 손이 썼다” 같은 말을 아주 싫어해요. 시라는 것은 좀 철저한 사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명징하게 자기 사유를 파고들지 않으면 쓰기가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술에 취하면 사고가 깊어지기보다는 퍼지잖아요. 어쩌면 그 안에서 뭔가 뜻밖의 도약 같은 게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런 요행을 기대하면서 술을 마시고 글을 쓰는 건 옳지 않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시를 쓸 때 감정 과잉을 경계하시는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사실 제 글이 감정적인 무엇을 불러일으키는 글이라고 생각하지만 치밀한 구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시인님의 시론인가요.

이번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중 ‘평균대 위의 천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내 딸이 로봇이고 나는 버튼을 눌러서 딸의 전원을 끄고 베란다에 나가 밖의 불빛들을 보는 장면이 나와요. 그 순간 녹아내리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실제로 “나 힘들어, 슬퍼” 이런 말이 없어도 그 느낌이 전해지잖아요. 저는 정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시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쓰고자 하는 시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나요.

첫 시집 <가능세계>는 언어 실험 쪽에 좀 더 방점을 뒀던 것 같아요. 이후 내가 언어라는 질료를 갖고 어떤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할 때 이전에는 없던 거 뭔가 특별한 거 그리고 내가 보기에 흡족한 것을 생각해요. 그런 고유하고 어떤 임계점을 넘어가는 언어를 통해 형상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알고 공감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제 의도가 실패했다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거죠.

-시인님의 시들이 다소 어렵게 느껴져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쓸 때 누군가를 위해서 쓰지 않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제 글쓰기는 타자를 위한 행위는 아니에요. 사람마다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저는 모두에게 읽히고 공감을 끌어내는 글은 시라는 장르를 위한 언어는 아닌 것 같아요. 

-작품이 독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좀 더 작품에 다가서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의도적으로 어떤 허들을 만들어서 그 허들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만 이해를 할 수 있게끔 장치를 많이 마련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마음이라는 게 있는데 그 마음이 10개가 있다고 가정해 봐요. 그런데 그냥 아무 거리에나 나가 지나는 사람 10명에게 주고 싶지는 않잖아요. 나한테는 10개밖에 없는데. 생각해 낸 게 잘 포장해서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꼭꼭 숨겨 놓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오는 사람들은 저랑 비슷할 확률이 높잖아요. 그리고 찾아서 그걸 풀어볼 만한 사람은 그 정도의 수고를 하는 사람이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계속해서 뭔가 언어를 겹으로 만들고 더 뭔가 너무 감추고 환유적으로 얘기를 한다거나 알레고리를 활용한다든가 하는 장치를 많이 쓴 것 같아요. 저한테는 너무 귀한 마음이어서 이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곧 독자를 위한 마음이기도 했어요.

백은선 시인 ⓒ투데이신문
백은선 시인 ⓒ투데이신문

-산문을 쓰는 게, 마치 노출증 환자가 된 것 같아 힘들다고 했는데 어떤 뜻인가요.

방금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제 시의 장소성이 있다면 숨겨져 있는 어떤 자리라고 생각하는데 산문이라는 장르가 갖는 그 장소성 자체가 이미 열려있고 대중적으로 어떤 자리이기 때문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제 성정이 돌려 말하는 걸 잘 못해요. 그래서 산문을 쓸 때도 좀 꾸며서 말하기를 잘 못해 너무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시인님께 좀 더 다가갈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 점도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내 시를 시로 봐주길 바라는데 산문을 경유해서 퍼즐 맞추듯 시를 꿰맞춰 읽는 거요. 저는 시가 오롯했으면 좋겠거든요. 사실 그것 때문에 산문을 다신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후 산문 청탁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한편으론 산문집이 한 권뿐이니까 사람들이 시의 안내서처럼 읽는 경향이 있어서 차라리 산문집을 여러 권 내서 교란을 시켜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전에 내신 시집들에 이어 이번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중 ‘구유에게’라는 시에도 ‘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시인님은 돌이 침묵과 가장 유사한 사물이라서 좋다고 했는데.

사실 저는 침묵을 못 견뎌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침묵을 못 견디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뭔가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껴요. 그런데 저는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침묵 속에 있는 걸 좋아해서 차라리 실어증에 걸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해요. 

저는 말을 할수록 실제로 내가 말을 하려고 했던 원형에서 멀어지고 미끄러지는 걸 느끼는데 그럴수록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더 많은 말을 덧붙이게 되고 그러면 더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그 안에서 내가 말하려고 했던 원형과 실제로 말해진 것 사이에서 시차를 느껴요. 

거기서 느껴지는 울렁증 멀미 같은 게 너무 괴롭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제게 뭔가를 기대한다는 생각이 드는 광대 기질 때문에 괴로워요. 그리고 제가 아까 말했듯이 직선적으로 말하는 성격이라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수가 생겨 자신한테 환멸을 느끼기도 해요. 속으로 “죽어라 백은선” 이러면서요. (웃음)

백은선 시인의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사진제공=문학동네]
백은선 시인의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사진제공=문학동네]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은 시인 자신인가요. 

저랑 닮은 그 무엇이겠죠.

-왜 열어보는 것을 망설이나요.

이번 시집에 이걸 잘 설명할 수 있는 시가 있어요. 52페이지에 3개의 손이 나를 찾아오는 얘기가 있잖아요. “첫 번째 손이 와서 이야기를 전해주었지 넌 이제 곧 알게 될 거라고 나는 여전히 모르고” 그러니까 누군가 나한테 와서 뭔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고 뭔가를 약속하는데 그게 허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 손이 와서 함께 살자며 침대를 차지했지 어느 날 돌아와 보니 새끼손가락만 베개에 놓여 있었고” 그러면서 이 손이 내 삶을 차지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잖아요. 영문도 모른 채 몇 계절을 헤매는 그 어떤 부재를 견디는 내가 있고, 그래서 세 번째 손이 왔을 때 무시하잖아요. 마치 알았던 적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이런 것 같아요. 어떤 절망을 너무 다 알아버려서 더는 열어보고 싶지도 않은 거죠. 체념하는 마음 같은.

-시인님의 아들(9살)이 우연히 쓴 자작시를 봤는데 그 나이에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통찰력이 돋보여요. 혹시 천재 시인이 탄생한 것일까요. 만약 시인이 되겠다고 하면 선배 시인으로서 혹은 엄마로서 응원하실 건가요.

제 아이지만 결국에는 타인이기 때문에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은 해요. 근데 제 주변에서 “야 시 쓰는 거 아니냐? 조심해라” 이런 얘기를 많이 듣거든요. 그래서 아이한테 직접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취미일 뿐이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사실 주변의 걱정들이 부모 관점에서라면 이해되기도 해요. 시인이란 너무 감각이 예민해서 괴로운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하니까요.

동감해요. 제가 전에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너는 언젠가 나를 이해하게 될 날이 올까. 그렇지만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길 바라”

그냥 좀 웃으면서 무던하게 사람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섞이며 빛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미 늦은 것 같기도 해요. 학교 선생님하고 얘기를 해봤는데 제 아이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친구는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백은선 시인 ⓒ투데이신문
백은선 시인 ⓒ투데이신문

-아이의 탄생이 작품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줬나요. 

<가능세계>가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고 그 뒤의 작품들은 아이가 생기고 나서 쓴 것들인데 확실히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능세계> 쓸 때는 폐쇄적이고 염세적이었어요. 관성적으로 죽음과 종말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너무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고 나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성격도 변하고 시도 변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 말씀을 빌리자면 시가 편해졌대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이 너무 싫은 거예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가능세계> 쪽이거든요. 역설적이게도 “아이가 바로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예요.

-현재 진행 중인 작품 활동이나 계획이 있나요.

운문 소설을 쓰고 있어요. 시로 쓴 소설이요. 올해 안에 완성하는 게 출판사와의 약속인데 지금 잘 못 쓰고 있어서 내년 안에 완성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은밀하게 하고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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