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인 황인찬
◈시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지점을 말하는 예술
◈다채롭게 진화하는 시, 독법도 다양해져야
◈시는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확장하는 작업

황인찬 시인 ⓒ투데이신문
황인찬 시인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현재의 ‘나’는 몇 퍼센트의 미래일까. 미래의 내가 될 수 있는 건 현재의 나뿐이지만 한번 녹아버린 얼음이 이전과 완벽히 똑같은 모양으로 얼려질 수 없듯 마음이 밀고 나아가는 결말은 확언할 수 없다. 다만 불가능한 가능성을 품은 온전한 일인칭의 시는 미래를 연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꾸지 않은 꿈속에서 발신인 없는 마음들이 도착하듯 그 마음이 누구의 마음인지 알 수 없지만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며 미래의 ‘나’를 선언한다.

황인찬 시인은 2010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등의 시집을 냈다. 산문집으로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이 있다. 

먼저 도착한 약속 장소엔 사람들로 자리가 꽉 찼다. 황급히 다른 카페를 찾아 나섰다. 우연한 골목에서 작고 조용한 카페를 맞닥뜨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인찬 시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을 ‘시 오타쿠’라고 장난스럽게 소개했다. 이따금 그와의 대화 속에서 차마 말이 되지 못한 말들을 떠올렸고, 최대한의 마음과 거리를 좁혀오는 그의 문장들을 차곡차곡 삼켰다. 맑은 여름날의 마음으로 사랑을 찾아가면 우리에게 더욱 아름다운 일이 가능하리라 믿는다는 시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나누고 함께 밥 먹고

또 때로 함께 잠드는 이것이 사랑이라니

 

군부대 생활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네

그게 아니라면 당신들이 군인이겠지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中 ‘공리가 나오는 영화’

 

 

-시인들 사이에서 황 시인님의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예견된 만남일지도 모르겠네요. 독자뿐만 아니라 시인들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의 얘기를 먼저 들어볼게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반영된 시집이고요. 당시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나는 좀 멈춰 서고 싶었어요. 우리가 믿는 삶의 연결들이 빠르게 변해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멈춤이 어떤 돌아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시로 적어냈던 게 첫 시집이었던 것 같아요.

-시인님의 시적 태도가 드러나는 말인 것 같기도 하네요.

시를 쓸 때는 무엇이 어떻다고 정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잊은 채 쓰게 되거든요. 부유하는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그중에서 떠올린 하나의 장면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생각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움직이려는 형상들을 만들어 내는 것에 가까워요.

황인찬 시인 ⓒ투데이신문
황인찬 시인 ⓒ투데이신문

-이번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는 그동안 내신 시집으로부터 이어진 정체성을 선언하는 듯한 제목으로 느껴집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거느리고 있는 층위들, 배경들이 모든 시집에 걸쳐 녹아들어 흐르고 있는 것이죠. 일상생활 속에서도 친구들과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그 사람이 갖고 살아온 삶의 여러 가지 궤적들이 다 반영되잖아요. 이번 시집도 그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위한 설명서가 있다면요.

시가 읽기 어려운 이유는 어느 하나의 맥락으로 짚어서 읽어내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시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모든 예술이 다 그렇죠. 감상하는 일은 그 사람의 뜻을 헤아린다기보다 그걸 보고 내가 생각할 때 어떠하다고 생각하는 과정이고 거기서 즐거움이 발생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그 과정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창작을 하게 되는지도 몰라요. 평론이라고 하는 것은 이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읽기 방식 중에서 한 명의 사람이 자신의 방식으로 그걸 새롭게 창작하는 일에 가까운 것이죠. 그래서 읽는 방법은 다양하고 여러 가지라고 생각해요.

-말씀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특정하기 보단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식을 즐기는 작가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예술작업을 시작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알고 시작하지 않아요. 다시 말해 이게 무엇이라고 규정하면서 시작하지 않아요. 내가 생각한 어떤 구조를 완성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이 구조를 다시 계속 들여다보고 고민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어떻게 나에게 온 것인지를 헤아리게 되죠. 그런 면에서 작품을 잘 대해주는 독자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확장하는 적극적인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의미에 집착하기 때문에 시라는 장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의미라고 하는 것은 사실 첫 번째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의미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면 시라는 양식은 사실 적합한 양식은 아닐 수 있어요. 시는 어떤 의미에서 비효율적이고 부정확하고 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잖아요. 사실 의미라는 것은 결국에는 우리의 언어를 통해 전달될 수밖에 없는데 언어는 한계가 많은 양식이죠. 우리 의식과 감정이 언어와 일대일로 매칭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시는 그것을 잘 전달하고 표현하고 싶어 할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시가 의미에 사로잡히면 나아가질 못해요. 

-그렇다면 시는 언어를 어떻게 사용해 왔나요.

언어들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언어 자체를 다루는 방식들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진화하고 다채로워지고 있어요. 이렇다 보니 읽는 방식들이 다양한 독법이 요구되는 시들도 많아졌고요. 

황인찬 시인의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사진제공=문학동네]
황인찬 시인의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사진제공=문학동네]

-시라는 장르가 이 시대에도 읽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시가 다른 예술이 말할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지점들을 말하는 양식이라는 건 너무 분명하고요. 자기 자신과 가까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의식은 어쩔 수 없이 언어로 이뤄져 있고 그 언어 자체를 질료로 삼는 예술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시만이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아직 시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시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장르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같은 시, 에세이 같은 시같이 말이죠.

정말 모호해졌어요. 이건 시고 이건 에세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건 이제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소비되고 유통되느냐에 따라 장르를 구분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원래 예술의 영역이라는 게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면 시에 가까운 것이라고요. 어쩌면 장르 구분이라는 것은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시인들 사이에서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는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함으로써 오히려 시인은 특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시인들끼리 농담 삼아 서로를 ‘시 오타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시가 돈이 별로 안 되는데도 좋아서 하는 거예요. 시라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서 시를 쓰는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인들끼리는 돈독함이 있어요. 정말로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면 뛰어들기 어려운 일이죠.

-시를 그림책으로 내는 작업을 하셨는데 언어와 그림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듦으로써 독자와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했을 것 같아요.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언어와 그림이 많이 닮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작업이 제게 맞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다만 시 쓰기 할 때와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있어요. 그래서 이 작업을 당분간 더 해보고 싶어요. 

-시와 그림을 융합하는 작업은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대학원 때 동화를 쓰는 수업이 있었어요. 그런데 동화는 산문이잖아요. 제가 선생님께 그 산문 못 쓰겠다고 하자 선생님이 그럼 그림책 해보라고 권해주셨어요. 시 쓰기와 비슷하다고요.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막상 해보니 시랑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 비슷하더라고요. 그림들이 말을 많이 하게 내버려 둔 상태에서 그림이 더욱 풍성해지게 말을 더하거든요. 시도 그와 똑같아요. 많은 부분을 이미지에 맡겨두고 형상에 맡겨둠으로써 언어가 더욱 확장한다는 건데 이러한 기본적인 작동방식이 비슷하죠. 차이가 있다면 시에서는 이미지를 제공을 내가 언어화해서 같이 움직여야 되는데 그림은 미주알고주알 다 설명하지 않아요.

황인찬 시인 ⓒ투데이신문
황인찬 시인 ⓒ투데이신문

-새로운 독자층이 생겼을 것 같아요.

시만 썼을 때 만날 수 없는 독자들을 만나게 되는 게 너무 큰 즐거움이에요. 사실 시를 쓰는 일은 시인으로서 겸연쩍은 일이에요. 그러니까 시 쓰기가 문학 혹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면 다들 하게 될 생각일 텐데요. 이게 우리 삶의 구체적인 도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내가 원하고 욕망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죠.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품기 때문에 저는 약간의 부끄러움이 있어요. 그럼에도 말을 건네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동문학은 그 겸연쩍음을 조금 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동문학이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일단 염두에 두는 독자가 성장하리라는 기대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상태에서 삶이 나아감을 함께하는 형식이 아동문학이더라고요. 이러한 층위에서 말을 건네는 일은 시인으로서 시를 다룰 때와는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요. 그래서 그림책은 가능하다면 앞으로 더 고민하고 탐구하고 싶은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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