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를 영업하는 시인 김복희
◈많은 사람들이 시를 쓰고 읽었으면
◈“시를 쓰고 훨씬 나은 인간 됐다”
◈챗 GPT의 시는 백일장 식의 시
◈“시제를 정하고 시를 쓰지 않아”

김복희 시인 ⓒ투데이신문
김복희 시인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한 번도 시보다 먼저 있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김복희 시인. 

우리 이웃에 시인이 살고 있다면 다정한 밤이 종종 찾아올 것이다. 잠들지 못하는 백지들에게 문장이 되어 줄 준비가 돼 있는 시의 척후병(斥候兵)처럼 보고 들은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시인은 싱싱한 햇볕에 잘 마른 옷을 갈아입듯 이웃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희망을 증류한다. 그렇게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문장을 꺼낼 수 있게 흰 종이 앞으로 떠미는 그의 산문집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다.

김복희 시인은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첫 시집인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과 ‘희망은 사랑을 한다’, ‘스미기에 좋지’가 있고 산문집으로는 ‘노래하는 복희’ 등이 있다.

“‘색칠 놀이를 하자’는 좋지만, ‘색칠 게임을 하자’라고 하면 벌써 기가 질린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제안했다. 

“우리 인터뷰 놀이를 시작할까요”

김복희 시인 산문집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투데이신문
김복희 시인 산문집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투데이신문

-‘복희도감’ 등 독자들과 소통을 여러 채널로 활발히 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하는 성격인데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바뀐 가장 큰 변화예요.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적응됐어요. 잘하면 재밌고 재밌으면 남들이 보기에도 재밌고 계속 그렇게 긍정적으로 나아간 것 같아요. 또 독자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사실 많이 없는데 디너쇼 개념으로 같이 술도 마시고 여러 질문도 받고 하는 과정에서 내 시를 누가 읽고 있구나 하는 실감도 받을 수 있어서 그런 게 좋죠.

-시 쓰기 운동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데 시작(詩作)의 계기는 무엇인가요.

현대문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 다닐 때 시작했어요. 좀 늦게 시를 쓰기 시작했죠. 이상한 사람만 시 쓰는 줄 알아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뭔가 시는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해서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좀 써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어요. 그래서 써 봤는데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다만 확신은 없었어요. 그래서 등단한 시인 선배에게 보여주고 어떠냐고 물었더니 잘해보라고 독려를 해줬어요. 그때부터 시 쓰기를 본격적으로 한 것 같아요.

-시인은 선택되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직접 선택하신 거네요.

셀프 선택을 했다고 말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삶이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시 쓰기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삶을 겪은 사람만 작가가 되는 걸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떤 종류의 반항심과 의구심이 있었고 하다 보니 재밌어서 계속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최근 챗 GPT가 엄청난 이슈입니다. 미술 영역에 이어 소설, 시 쓰기까지 인공지능의 결과물에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AI의 시 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고쳐줘야 할 부분이 많아서 사람이 할 일이 더 많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 대서는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리포트를 쓰거나 에세이 혹은 기본값을 정해주는 시나리오 등 문체가 중요하지 않은 작업은 가능할 것 같아요. 시의 경우는 일단 쓰기에 돌입하는 과정부터 체험의 하나를 다 가져가야 하는 건데 그거를 인공지능에 맡긴 다음에 완성된 결과물을 다시 내가 고치는 게 즐거울까 이런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소재를 가지고 시를 쓰는 건 좀 재미없거든요. 마치 백일장 식 시 쓰기랄까요. 예를 들어 “봄에 대해 시를 쓰세요”처럼요. 저는 시제를 정하고 시를 쓰지 않거든요.

-시제를 정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해방감이 느껴져요. 쓰면서 자유로워지고 읽힘으로써 무한히 해체되는.

“시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지”라고 생각하면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언어를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굉장히 자족적인 예술일 수도 있죠. 닿는 독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여러 해석이 탄생하고 그렇게 생겨난 해석이 많아질수록 시의 생명력이 풍부해지기 때문에 오래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의미가 되게 쉽게 고정되고 빨리 이해되는 시들은 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한 백일장 식 시처럼요.

김복희 시인의 첫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사진출처=민음사]
김복희 시인의 첫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사진출처=민음사]

-첫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을 대표하는 작품인 ‘새 인간’이 궁금해요. 어떻게 탄생한 시인가요.

겨울 중에서도 엄청 추웠던 날 동대문 시장에 갔어요. 그곳에서 우연히 희귀동물 시장을 발견했어요. 파충류, 물고기, 묘한 새들...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밖은 눈이 몰아치는 회색의 세상인데 유리 한 장 너머 그 가계 안은 따뜻하고 총천연색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어요. 그런데 왠지 저는 그곳에 들어가면 안 될 것만 같았어요. 일단 행색이 뭘 사려는 사람이 아니었죠. 그 경험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변용되고 시로 만들어졌어요.

...나의 새 인간이 잠들어 있다 이 조끼 가득히 날 수 있지만 나를 위해서 날지 않기로 마음먹고 죽고 싶지만 죽지 않기로 결심한 나만의 새 인간이 긴 얼굴을 돌리고 내가 잠든 동안에만 날개를 펼쳐 보이는 나는 얼음 속에는 물과 빛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이 -새 인간 中-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꼭 드라마틱한 삶이 아니라도 멋진 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신 셈이네요.

호기심이 좀 많아야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언어화하는 작업에 시간을 많이 들이고요. 재능이 없을 수도 있어요. 처음부터 누가 잘하겠어요.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 보는 게 중요해요. ‘세습무’와 ‘강신무’가 있잖아요. 신이 내려서 굿을 하는 사람이 있고, 굿을 전수받고 연습해서 굿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엇이 더 뛰어나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어떤 경지에 오르면 세습무와 강신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요. 그래서 단련하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요.

-시인님은 낯설게 보기의 달인인 것 같아요. 인간의 최적화된 메커니즘을 거스르는.

그런 행위 자체가 저에게는 재미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어쨌든 시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예술 장르죠. 머릿속에서 무한히 공간을 확장하고 마음껏 할 수 있는 일들을 다하는 거죠.

-이번 산문집 중 ‘여름의 발’을 보면 시인님이 쓴 소설을 읽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데요.

그편은 서사가 있고 캐릭터도 있어서 그렇게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참을성이 없어서 아마 안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성격이 좀 급한 편이어서... 그래도 언젠가는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절대 독자 한 명은 확보했네요. (웃음)

김복희 시인 ⓒ투데이신문
김복희 시인 ⓒ투데이신문

-“백 번 불고 백한 번 멈추는 바람처럼 퇴고하”라는 문장을 남길 만큼 퇴고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으신 것 같아요. 발표된 시 중에서도 고치고 싶은 시가 있었나요.

당연히 있어요. 고치고 싶은 부분이란 게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럴 땐 일단 메모를 해놔요. 이미 발표가 돼버려서 고칠 수는 없지만 책으로 묶어서 낼 때는 고치기 위해 메모를 하는 거죠. 맥락이 바뀌거나 하는 그런 수정이 아니라 내 눈에만 거슬려서 이렇게 바꾸면 훨씬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서요. 아주 작은 차이로도 뉘앙스가 달라지고 읽는 사람의 감정의 폭도 달라지니까요. 그런데 고치려고 메모하고 표시해놔도 안 고치는 경우도 있어요. 시간이 더 지나고 보면 원래 그대로가 더 낫다고 생각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시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에요.

-실제로 고친 시가 있나요.

첫 번째 시집 중 한 편 있었어요. ‘내일과 모래 사이’라는 시가 있었어요. 근데 그게 처음에 쓸 때는 진짜 내일모레 글피 할 때 그렇게 썼다가 모레 보다는 모래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어차피 모래라는 게 모레처럼 잘 안 잡히는 거 아닌가 이렇게 제 마음속에 생각이 남았던 거죠. 

-대학교에서 시에 대해 강의하고 계신 거로 알고 있는데 가르침에 대한 반작용적인 영감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마치 옛날의 나를 보는 듯한 친구도 있는 반면 신기한 생물들을 바라볼 때의 느낌을 주는 친구들도 있어요. 저는 시를 늦게 쓰기 시작해서인지 왜 시를 저렇게 어린 나이부터 쓰는지부터 궁금한 것투성이라 맨날 이것저것 물어봐요. 돌아오는 대답이 또 재밌고 이런 게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제게도 시를 영업해 주시겠어요.

언어를 꼼꼼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다루게 되니까 타인을 대할 때 태도가 오만하지 않아요. 쉽게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또 언어의 표현에 대해 성실해지는 점이 좋아요. 예전에는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말했는데 지금은 “이런 말은 이런 뉘앙스를 갖고 있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 말이니까 이렇게 붙여서 하면 어떨까” 하는 작업이 이제는 능숙해졌다고 할까요. 시를 쓰기 이전의 저보다 지금의 제가 훨씬 나은 인간이 됐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내내 웃음이 모서리 공간 구석구석까지 뛰어다녔다. 소리에도 표정이 있다면 시를 이야기 할 때 그에게서 기꺼운 웃음소리를 보았다고 말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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