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남의 나라에서 온 시인 이우성
◈“시 안에서 이우성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
◈‘나’ 라는 주제가 핵심이자 시를 쓰는 이유
◈꾸미지 않은 보편적 감수성이 이번 시집 목표
◈자전적 요소가 많은 드라마 시나리오에 도전

이우성 시인 [사진제공=김태선 van studio]
이우성 시인 [사진제공=김태선 van studio]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이우성’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제삼자가 돼서 바라보고 이것을 시에 반영하고 싶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이름이 희박해지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나’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에게서 떠났다가 온전히 돌아올 수도 있는 걸까. 어쩌면 새로운 이름을 위해 영영 떠날 준비를 묵묵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우성이라는 이름이 지워진다면 그 빈칸엔 무엇도 들어설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빈칸으로 남겨둬야 한다. 오히려 빈칸에서 막 뛰쳐나온 언어적 해방감(혹은 형상을 떠난 자유로움)만이 그 이름을 대신할 수 있다고 우겨볼 순 있겠다. 그는 대체 불가하다.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말하는 나르키소스 이우성 시인이다. 

그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출간한 후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로 돌아온 시인을 투데이신문이 만나봤다.

이우성 시인은 현재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콘텐츠를 만드는 ‘미남컴퍼니’ 대표다. 그가 자주 들린다는 사무실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겸손한 척하면서 겸손한 게 싫어 일부러 더 오만하게 굴”기도 한다는 시인은 단단한 구체의 발성 그 자체였다. 미남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미남라이팅을 당하고만 그의 첫인상이었다.

시인과 잡지 에디터의 삶은 어떻게 연결돼 있나요.

국문과를 전공했어요. 계속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왔고요. 그러다 보니까 글을 쓰는 직업을 가져야 계속 시를 쓰겠다고 생각했죠.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열심히 시를 쓰던 사람도 대학 졸업을 하고 안 쓰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잡지 에디터가 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연결이 되는 걸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좋은 매체에 입사하고 세계적인 작가들과 만나는 기회도 있었죠.

이우성 시인은 패션매거진 <아레나 옴므+> 피처 에디터로 10년 넘게 지냈다

결과적으로 풍부한 시작(詩作)을 위한 좋은 경험을 쌓으셨네요.

에디터로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에디터였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저는 미술 쪽 취재를 많이 했었는데 이불, 양혜교, 서도호 이런 분들을 인터뷰 할 수 있었다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미술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네 워낙 좋아하고 관심이 많아요. 저는 끝은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극단까지 가면 그림도 언어가 되고 언어도 그림이 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하신 분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 분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불 선생님을 인터뷰했을 때요. 선생님이 시간을 10분 내외 밖에 안 내주시는 걸로 아는데 저는 집에 초대받아서 2시간 정도 인터뷰 했어요. 그때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현재는 ‘미남컴퍼니’라는 광고대행사 대표로 있으신데 잡지 에디터를 하시다가 직업을 전향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한 업계에 오래 종사(12~13년)하다 보니 에디터로서 제가 할 건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뜻이 맞는 후배와 사무실에 책상 하나 놓고 시작했습니다. 

에디터로 일할 때는 시작(詩作)과 어느 정도 결이 비슷한 생활을 하셨는데 지금은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인으로서 지금의 직업은 어떤가요.

물론 거리가 있지만 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에디터 때도 기사를 시처럼 쓰고 시를 기사처럼 쓰는 마인드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지금 하는 일도 시와 연결을 시키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언제든 시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 각별하게 들립니다.

저는 시를 굉장히 짝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아요. 이제니 시인에게 제가 두 번째 시집 나오면서 편지를 썼어요. “첫 번째 시집 낼 때는 진짜 문학史랑 싸우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아니다. 첫 시집에서는 나름대로 언어적인 실험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그 시를 보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시를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요. 

이우성 시인 [사진제공=김태선 van studio]
이우성 시인 [사진제공=김태선 van studio]

그래서일까요. 이번 시집은 첫 번째 시집보다는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제가 자신에게 읽어주듯이 혹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읽어주듯이 좀 쉽게 받아들여지는 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썼습니다. 

보통 40대까지는 젊은 시인으로 불리지만 최근 20대에 데뷔하는 시인들도 점차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얼마 전까지 이우성 시인님의 시가 ‘새로운 방향’의 시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시인님이 보기에 요즘에는 어떤 흐름이 있나요.

제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기성 문인들이 요즘 시인들은 너무 정신없이 시를 쓴다고 말하면 적어도 어떤 무리가 지어졌는데 요즘 20대의 시인들을 보면 각각 다 다른 시를 쓰더라고요. 무리 지을 수 없고 하나하나 구분해서 봐야 할 정도로 다양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 세대의 시인들에게 다양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금의 20~30대의 시인들은 어떤 특정한 프레임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로서 가장 좋은 격려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각자 본인들이 쓰고 싶은 대로 완전 자유롭게 쓰는 세대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러너스월드>라는 런닝 전문잡지 초대 편집장 이력이 있는데 어떤 인연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러너스월드>는 뉴욕을 베이스로 한 굉장히 글로벌한 러닝 매거진이고 그 라이센스를 지인분이 한국으로 갖고 들어왔어요. 당시만 해도 러닝매거진 편집장을 맡을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마침 저는 에디터 생활도 오래 했고 러닝을 워낙 좋아한 터라 제안이 왔어요, 한 1년 반정도 편집장을 한 것 같아요.

요즘에도 달리시나요.

저는 매일 달려요. 퇴근하고 혹은 낮에도 가끔, 아침에도 가끔 시간 날 때마다 달려요.

매일 그렇게 달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일 하는 사람은 별로 어렵지 않아요. 사실 운동 한다는 생각으로 러닝을 하진 않아요, 그냥 러닝이 좋아서 해요. 

어떤 매력이 있나요.

러닝을 하면 매일매일 도전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이번 주는 일주일 연속 새벽 달리기를 하겠다든지 몇 킬로를 뛰겠다든지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게 좋고 러닝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명상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명상을 좋아하거든요. 

첫 번째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는 제목부터 궁금합니다. 이 시집의 제목을 지을 때 에피소드가 있나요.

다들 제목에 낚여서 샀다고 하더라고요. 첫 시집을 낼 당시만 해도 기본적으로 시인들은 샤이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사실 우리나라의 시인 이미지도 뭔가 차분하고 조용한 이미지고요. 반면 제 캐릭터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시 안에서도 나르시즘이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요. 그러한 부분을 제목에서 드러내고 싶었어요. 사실 처음 제목은 <나는 미남‘의’ 나라에서 왔어>라고 지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제목에 대해 반대를 했어요. 제가 한 번만 더 고려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너무 거두절미한 것 같고 예의 없어 보이니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라는 절충을 수용했습니다.

시집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시집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두 번째 낸 시집<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에서는 가족 얘기가 인상적입니다. 

이번 시집에 가족 얘기를 넣는 게 저의 목표였어요. 일단 엄마가 좋아하셨어요. 그냥 저는 거짓말 하나도 없이 있는 그대로 썼거든요. 가족에 대한 얘기를 그대로 적고 싶었어요. 사실 그 시들이 뒤쪽에 배치돼 있지만 시집 앞부분에 배치돼도 좋을 만큼 가족 얘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어요. 보통 제 또래의 시인들 사이에선 가족에 관해 시 쓰기를 망설이는 경향이 있어요. 가족 클리셰라는 이유에서죠. 

사실 10년 동안 아빠가 아프셔서 요양 중이시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쓰지 못하면 작가로서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김만중은 심심해하는 어머니를 위해 읽어주려고 ‘구운몽’을 썼다는데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한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쓸거면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편적 감수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쓰자. 그게 이번 시집의 목표였고, 엄마가 좋아했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시에 시인 본인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의도가 있나요.

제 시에서는 나라는 주제가 굉장히 중요하고 시를 쓰는 이유하고도 연결됩니다. 누구나 ‘나’가 있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 스스로 나에 대한 고민을 직접 하다 보면 결국에는 나가 아니라 이우성이죠. 그러니까 나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미남의 나라에서 왔어”라고 할 때 나는 누구나 나가 될 수 있는데 내가 온 게 아니라 정말 이우성이 온 것이라는 의미죠. 이런 생각으로 이우성을 제삼자로서 바라보면서 저 이우성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더 고민하게 됐고 이것이 시에 반영된 것입니다.

 

나는 나에게서 나왔다 예전에 나는 나로 가득 차 있었다

입안에서 우성이를 몇 개 꺼내 흔든다

사람들은 어떤 우성이를 좋아하지

우성이는 어둠이라고 부르는 곳에 살았다

그때는 우성이가 다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미남일 필요조차

그러나 가장 다양한 우성이는 우성이었다

-사람들 中-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두 번째 시집이 나오는 데 10년이 걸렸기 때문에 세 번째 시집은 한 2년 아니면 3년 안에 내고 싶어요. 시 쓰기에도 좀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요. 또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쓰러지신 이후 집에서 TV 보시는 시간이 늘었어요. 특히 드라마를 많이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들이 쓴 드라마가 TV에서 나오는 걸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올해 드라마 시나리오를 방송국에 투고할 계획입니다.

구상해 놓은 시나리오 주제가 있나요.

작년에 오래 사귄 친구와 헤어지면서 우울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꼭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오래 만난 사람과 헤어진 남자 주인공이 어떤 허무감에 빠졌을 때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그려보고 싶어요.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했나요.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의지가 더 강했어요. 워낙 운동을 좋아했기에 더욱 열심히 운동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명상도 많이 하면서 이겨냈어요.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누구나 현재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감정에서 빠져나와 현재에 있어야죠. 명상을 통해 마음도 함께 과거의 감정에서 달려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계획한 시나리오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겠네요.

네 많아요. 그래서 구상한 시나리오는 주로 러닝크루 얘기나 마피아게임하는 소셜 모임이 나와요.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지 인간이 결국에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왜 중요한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풀어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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