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솔뫼의 소설집 『미래 산책 연습』(문학동네 2021)은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사건의 역사적 면면을 치밀하게 탐구하거나 재현하기보다는 그저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한다. 화자는 이제는 부산 근대역사관이 된 미문화원 건물에 들어가 내부를 거닐어보고, 그 건물을 창가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아파트들의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 부동산 매물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구하게 된 집의 소유주 최명환은 젊었을 적 김은숙과 같은 성당에 다녔었던 일이나 사건 당일 근처에서 근무하던 중 불이 타는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은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다. 이 움직임은 위치의 변화로 발견된다. 또한 이 좌표의 변화가 시간을 흐르게 한다. 움직이는 수많은 사물 중 하나인 우리는 움직임을 얼마나 잊고 사는가. “달은 돌기 때문에 달이다. 돌지 않으면 돌이다”라는 김석영 시인의 자서처럼 우리는 움직일 때 존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여기 돌을 쥐려는 사람이 있다. 돌은 정물이지만 돌을 쥐려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이렇듯 시인은 정물과 동물 사이에서 ‘양방향성’을 발견한다. 이것을 달을 향한 돌의 욕망이라고 불러본다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찬바람이 겨울의 방아쇠를 당긴다. 폭죽처럼 터지는 눈. 겨울의 불꽃, 가장 뜨거운 지점으로 도달하려는 수많은 시선. 거뭇한 하늘에 밝은 눈이 울려 퍼진다. 들여다볼 줄 아는 사려 깊은 눈앞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게 존재를 드러낼 준비가 돼 있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엔 안개가 없었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마주하는 생경함의 연대는 시시포스적인 삶 속에서 발견하는 시적인 위로라고 여겨볼 수 있겠다. 그리하여 한여진 시인은 “우리는 이웃에
루마니아 출신 작가 에밀 시오랑은 어느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선고받고 독배를 마시기 직전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 플루트를 부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물음에 소크라테스는 죽기 직전에 이 곡조를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죽음 직전을 상상하는 것은 어딘지 고약하게 여겨지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그 순간 플루트를 연주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고 전하는 이야기 앞에서라면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힐 수 있다. 나아가 그가 하늘을 바라보거나 새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것은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소설 『메테오르』에서 “행복의 힘은 ‘주어진 것’과 ‘이룩한 것’이 적절한 비율을 지녀야 비로소 발휘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화적 이미지의 글쓰기로 유명한 이 작가의 행복론은 그의 명성과 크게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삶과 죽음, 하늘과 땅, 낮과 밤, 생물과 무생물과 같이 이질적인 양극단의 조화가 세상을 이끌어가듯이, 한 개인의 차원에서도 생의 전면과 이면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주어진 것에 비해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이룩하는 것은 불행의 원천이 되는 것일까.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한 잡지에 게재한 에세이에서 오늘날의 거의 모든 일들이 실제로는 쓸모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여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불쉿 잡』(민음사 2021)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의 서문에 실려 있기도 한 이 글에서 그는 실제로 유의미한 무언가를 생산하는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숫자는 크게 줄어든 반면, 대중매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선망의 대상으로 소비되기도 하는 전문직, 사무직, 서비스직 등 3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숫자는 크게 늘어난 점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환경미화원이나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았던 기억을 더듬어보자. 계단을 타고 올라간 뒤 미끄러져 내려오는 게 전부이지만 꼭대기를 성채 삼아 함락 작전을 펼치던 미끄럼틀이 있고, 원심력을 이용해 진자운동을 하는 게 전부이지만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앉은 두 명의 다리를 꽈배기처럼 꼬아 함께 허공을 달리며 바이킹 놀이를 하던 그네가 있으며, 원숭이처럼 상하좌우로 타고 오르는 게 전부이지만 그 미로 같은 지형을 활용하여 잡기 놀이를 하던 정글짐이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협동심, 공동체 의식 등을 자극하고 길러주기 위해 다채롭게 응용하여 놀 수 있게 만들어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모호한 희망으로 끝맺는 이야기는 잔인하다. 배신으로 이어진 애매한 마음의 역사처럼. 노역을 견디는 낙타의 남은 하절기처럼. 그렇다면 차라리 절망은 어떠한가. 백은선 시인의 입버릇을 빌려 “내일 모든 게 끝장난”다면 아마도 우린 전부 동지가 아닐까. 공평한 슬픔을 나눠 가진 투명한 이웃 말이다.여기 상자가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꺼내 보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 더 이상 희망이라는 모르핀을 거부하는 사람. 절망의 도시에서 우울의 광맥을 열어젖힌 시인의 운명이다. 환유를 빌려 시인의
먹는 행위가 숭고한 까닭은 그것이 음식을 씹어 삼켜 피와 살로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언가를 함께 먹는다는 것은 너와 나의 피와 살이 동일한 기원을 나누어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함께 마신 커피가 서로의 혈관을 조용히 타고 흐르는 시간, 함께 먹은 밥이 서로의 뼈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을 공유하는 만큼 서로의 존재는 각자의 육신에 돌이킬 수 없이 새겨진다. ‘같이 밥을 먹자’는 말이 정다운 안부 인사가 될 수 있는 까닭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 밥상에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들을 함께 나누자, 그것들을 서로
양영희 감독의 영화 (2022)는 감독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머니 강정희씨는 젊은 시절 제주 4.3 사건의 현장에서 도망쳐 일본에 정착한 뒤, 분단 과정에서 북한 공산당으로 이적하며 당에 의해 아들을 희생당한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다. 어머니의 복잡한 삶의 행적을 따라 덩달아 상처받아야 했던 감독은 영화라는 매개를 빌려 그런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한다. 4.3 사건에 대한 고통으로 남한을 버리고 북한을 택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사랑하기도 하기에, 감독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만큼 이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이우성’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제삼자가 돼서 바라보고 이것을 시에 반영하고 싶었다”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이름이 희박해지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나’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에게서 떠났다가 온전히 돌아올 수도 있는 걸까. 어쩌면 새로운 이름을 위해 영영 떠날 준비를 묵묵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우성이라는 이름이 지워진다면 그 빈칸엔 무엇도 들어설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빈칸으로 남겨둬야 한다. 오히려 빈칸에서 막 뛰쳐나온 언어적 해방감(혹은 형상을 떠난 자유로움)만이 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들이 쏟아낸 얼룩은 세월이 지나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에 쏟은 보르도 와인’처럼. 9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이들은 시에 관심이 없어도 원태연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란 문장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우리 사랑을 위해 차용했던 시인이 란 시집으로 돌아왔다. 원태연 시인은 솔직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출간한 시집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의
‘별세계’라는 단어를 보면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우선 그것은 별의 세계, 혹은 별이라는 세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세계와는 별개로 분리된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혹은 별의별 세계, 즉 하나같이 별스러운 여럿의 세계를 뜻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유림의 시집 『별세계』(창비 2022)는 이 중 무엇에 가장 가까운 세계일까.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답이겠지만 시집을 뒤적이다 보면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의미에 좀 더 근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이 세계와 별개의 세계인
시는 때로 현실과 전혀 다른 시공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신용목 시인의 시집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문학동네 2021) 속 세계는 물과 어둠에 고요히 잠겨 있다. 시인은 물속에서 느리게 유영하는 사물들을 바라보며 거기에 투영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둠 속에 잠긴 세계로부터 떨어져나오는 자신을 지켜보기도 한다. 그렇게 잃어버린 나, 나를 벗어나 홀연히 떠돌던 나가 다시금 되돌아와 나를 두드리는 시간들과 시인은 마주하고 있다.존재의 근원이기도 한 물에 잠긴 세계는 존
【투데이신문 전유정 기자】 김홍기 시인의 첫 시집 가 출간됐다.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는 시인의 삶의 터전이기도 한 서울의 다양한 면모와 풍광을 작은 부분들까지 그림으로 그리듯 실었다. 2부는 시인의 가족 이야기로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시인의 유년기 기억을 함께 담았다. 3부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민주화 시기를 배경으로 한 시들을 포함했다. 4부는 시인의 시각으로 관찰한 삶과 주변에 대한 시들이다.그림 애호가이기도 한 김흥기 시인의 이번 시집은 3명의 화가와 협
시가 일상의 건조하고 삭막한 언어와 달리 다채로운 이미지로 구성된 언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리산 시인의 시집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창비 2017)는 무성한 이국풍의 이미지로 꾸려진 한 권의 테마파크와 같다. 그러나 이 테마파크는 세속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독과 쓸쓸함을 위한 것에 가깝다. 시인은 지금 여기와 사뭇 다른 시공으로 읽는 이를 훌쩍 데려다놓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그곳에서 독자들은 낡은 회전목마, 녹슨 관람차 따위가 버려진 황량한 풍경을 마주할 것이다.철 지난 그
바닷속 물고기처럼/꽃밭의 꿀벌처럼/자유를 꿈꾸는 곳으로/야옹 야옹 날아가거라/무덤에서 삼색 나비꽃이 훨훨 피어오르겠구나_시 ‘로드킬’【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한영희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가 출간됐다. 는 출판사 푸른사상이 지난 2010년부터 진행해온 합동시집 시리즈 ‘푸른사상 시선’의 149번째 작품으로 선보이게 됐다.이번에 출간된 에서는 삶의 언저리에서 낮고 작은 곳에 있는 것들이 내뱉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인은 각각의 온도와 깊이를 발견할 수 있다. 광주의 5월을
【투데이신문 정남진 기자】 독자들은 그를 ‘바람의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빚어낸 시편들에는 바람의 이미지와 바람의 이야기가 많다.배교윤 시인. 그가 최근 ‘일몰에 기대다’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시집을 펴냈다. 2003년 로 등단한 이후 두 번째 시집이다.목차를 펼치면 바람의 시들이 쭈욱 펼쳐진다. ‘바람의 시간’, ‘바람의 귀’, ‘마음의 경계’, ‘분리’ 그리고 ‘가을강’에 이르기까지.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같은 시인의 삶’이 오롯이 투영된 것같은 시편들이 이어지고 있다.그래서일까. 시인의 시집을 읽어 내려가면 가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신현복(55) ㈜한라 이사가 최근 시집(詩集) 을 출간했다. 지난 2005년 ‘문학·선’을 통해 등단한 신 이사가 2009년 첫 시집 , 두번째 시집 을 발간한 데 이은 세번째 작품집으로 ‘환한 말’ ‘청포도’ ‘아줌마의 힘’ 등 63편의 시가 실렸다.충남 당진 출신인 신 이사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1990년 곧바로 건설사인 지금의 직장에 들어와 주로 총무, 관리 업무 등을 맡아 30년 가까이 근무 중이다. 이번 시집에 대해 신 이사는 “시집 제목에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