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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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행위가 숭고한 까닭은 그것이 음식을 씹어 삼켜 피와 살로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언가를 함께 먹는다는 것은 너와 나의 피와 살이 동일한 기원을 나누어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함께 마신 커피가 서로의 혈관을 조용히 타고 흐르는 시간, 함께 먹은 밥이 서로의 뼈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을 공유하는 만큼 서로의 존재는 각자의 육신에 돌이킬 수 없이 새겨진다. ‘같이 밥을 먹자’는 말이 정다운 안부 인사가 될 수 있는 까닭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 밥상에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들을 함께 나누자, 그것들을 서로의 존재에 더하자, 밥을 먹는 만큼 함께 하자.

이탈리아의 철학자 프란체스카 리고티는 『부엌의 철학』(향연 2003)에서 말이 “정신의 음식”이라는 점에서 말과 음식이 동일한 메타포를 공유한다고 말한다. 음식이 “위장에 의해 삼켜져 소화되고 동화”되듯이 말 또한 아우구스티누스가 표현한 “영혼의 위장”을 거치며 정신을 살찌운다. 그런 의미에서 고명재 시인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문학동네 2022)에는 몸의 위장과 영혼의 위장을 동시에 타고 넘어도 좋을 듯한 ‘음식의 말들’이 흘러넘친다. 시인은 누군가의 위장을 타 넘기를 기다리는 따뜻하고 나긋나긋한 음식의 온기를 빌어 지친 존재들의 어깨를 가만히 도닥인다.

시인은 소보로의 달콤함, 튀김의 바삭함, 민트초코의 청량함을 경유하여 존재의 고통과 슬픔을 위무하는가 하면 함께 존재함의 반짝이는 기쁨을 주시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학대를 당하고 동생에게는 잔혹한 한편으로 “개와 풀과 가로등까지 쓰다듬”는, “돌아다니는 환대”였던 어린 ‘나’에 대한 지난 이야기는 크림이 차오르고 설탕이 뿌려져 무릎 안에서 가만히 부풀어 소보로가 된다(「소보로」). “식초와 키위, 파인애플을 밥처럼 먹”으며 “안에서부터 벽을 녹여 장화를 신”을 만큼 “그 사람 형상이 내 안에 남아서 아름다울 때”를 시인은 일컬어 “함께 사랑으로 시간을 뚫었다” 한다(「연육」).

사랑에 대한 시인의 천착은 음식을 향한 조리사의 끈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신 셔츠의 소매가 곱게 사각거릴 때/어쩌면 우리는 튀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눈귀코로 사랑이 바글대고 있는” 와중에 기름 속의 튀김처럼 수시로 솟아오른다. 시인은 흡사 저 밝고 곱게 튀겨진 생각들을 적절한 타이밍에 꺼내기 위해 젓가락을 들고 서성이는 요리 명장과 같다. “모든 요리의 마무리로 금박을 입히”듯이 시인은 사랑의 은유를 입은 언어를 튀겨내 시로 건져낸다(「시와 입술」). 시는, 사랑은, 그러니까 사랑의 시는 안쪽에서부터 조용히 부풀어올라 “가장 아름답게 무너질 벽을 상상하는 것”(「페이스트리」)이라고 해도 좋다.

기름 속의 튀김, 오븐 속의 빵처럼 시는 언어로부터 감칠나게 조리되고 사랑은 존재로부터 부드럽게 발효된다. 질료의 성질을 변화시켜 새로운 국면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시는 요리를 닮아 있다. 시인이 “복숭아와 봉숭아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막을 수 없는 친근감”에 눈길을 줄 때(「엄마가 잘 때 할머니가 비쳐서 좋다」), “브로콜리가 보리꼬리로 넘어오는 것”을 숨죽여 지켜볼 때(「우리의 벌어진 이름은 울음에서 왔다」), 혁명을 민들레라 부르자며 “프랑스 민들레 산업 민들레 4․19 민들레”라 할 때(「지붕」), 거기에는 일정한 온도 속에 뭉근히 익은 양파가 알싸함을 잃고 달큰함을 얻는 것과 같은 마술적인 변화가 있다.

구르는 감자, 무심한 호박이 밝고 따뜻한 요리로 변모하는 순간들로 넘쳐나는 이 시집에서도 유독 극적인 활기로 가득한 시는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이다. “가게문을 닫고 우선 엄마를 구하자 단골이고 매상이고 그냥 다 버리자”고 호기롭게 시작하는 시는 “엄마도 이젠 남의 밥 좀 그만 차리고 귀해져보자”며 엄마의 손을 붙들고 무작정 차를 달린다. 소낙비를 뚫고 당도한 콩국숫집에서 국수를 마주한 두 사람은 “후루룩후루룩 당장이라도 이륙할 것처럼 푸르륵 말들이 달리고 금빛 폭포가 치솟고 거꾸러지는 면발에 죽죽 흥이 오르고 고소한 콩물이 윗입술을 흠뻑 스칠 때 엄마가 웃으며 앞니로 면발을 끊는다”.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 그릇 콩국수처럼 흥취와 풍미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이 시는 단숨에 엄마를 구출해내고 “다음 생엔 꽃집 같은 거 하고 싶다”는 엄마의 한줄평으로 마무리한다. 국수의 고소한 가락이 이토록 놀라운 일을 해내기도 하노라고, 시의 가락도 그러하노라고 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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