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인 김석영
정해진 것을 부정하면서 가는 게 시의 언어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써 시집 전체를 압축

김석영 시인  ⓒ투데이신문
김석영 시인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은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다. 이 움직임은 위치의 변화로 발견된다. 또한 이 좌표의 변화가 시간을 흐르게 한다. 움직이는 수많은 사물 중 하나인 우리는 움직임을 얼마나 잊고 사는가. “달은 돌기 때문에 달이다. 돌지 않으면 돌이다”라는 김석영 시인의 자서처럼 우리는 움직일 때 존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여기 돌을 쥐려는 사람이 있다. 돌은 정물이지만 돌을 쥐려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이렇듯 시인은 정물과 동물 사이에서 ‘양방향성’을 발견한다. 이것을 달을 향한 돌의 욕망이라고 불러본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김석영 시인의 돌은 단순한 은유로서의 돌이 아니라 잠재적인 돌이라고 말해볼 수 있겠다.

그와 같은 가능성을 장전한 돌이 손에 잡히려고 한다. 그리고 방향을 사냥하듯 날아간다. 손이 돌을 던진 것인지 돌이 손을 던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시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아니 시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없는 것처럼.

김석영 시인은 2015년 <시와 반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밤의 영향권>이 있으며, 제41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석영 시인은 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아무도 없는 방을 두드리는 사람의 마음일지 모른다. 다만 시의 반대편을 더듬으며 시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인은 그의 시 <풀>에서 “벽돌을 말하기 위해 벽돌을 집어 들면서 벽돌의 반대를 찾는다”고 적었다.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의 예고편이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불이 꺼지고 시가 상영된다.

[사진제공=민음사]
[사진제공=민음사]

-시집 전체가 영화와 같은 연출적인 구성입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영화를 좋아하신다고 말했는데 선호하는 장르가 있나요.

장르 구분 없이 다 즐기는 편이에요. 마블도 좋아하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좋아하고요. SF, 코미디 액션 등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 같네요. 그중에서도 시적인 영화에 특히 끌리는 것 같아요.

-시집에서도 영화적 형식을 접목했는데 영상의 이미지와 언어의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집을 구성할 때 끝까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게 왜 영화의 형식이 필요할까였어요.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앞서 시적인 영화라는 표현을 썼지만 시와 영화는 다른 매체예요. 시라는 문자 매체와 영화라는 영상 매체를 비교해 보면 각각의 특징이 명징해지더라고요. 그 말은 곧 제가 영화의 형식을 가져왔지만, 언어가 영상 매체에 대체되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언어 고유의 특징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문자 매체에 대한 이해 말이죠. 그게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시가 사진이면 안 되는 이유 혹은 영화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스스로 계속 질문해요. 사실 시가 무엇인지 잘 몰라요. 다만 시의 반대편을 많이 궁리하고 콘트라스트하며 가는 것 같아요.

-두 번째 시집이 나온 지 일 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다음 시집을 위한 시를 쓰고 계시는가요.

감사하게도 1년 동안 청탁을 많이 받아서 시를 제법 많이 썼어요. 그래도 다음 시집은 천천히 준비하려고 해요. 올해는 다양한 글을 써보고 싶어요.

-다른 장르에 도전하고 계신 건가요.

사실 저는 소설가가 꿈이었어요. 우연히 전공을 시로 하게 된 거죠.  

-시의 매력에 빠진 셈이군요.

네. 그때는 시와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글들을 마구 썼던 것 같아요. 첫 시집을 내고 나서 단편 소설을 몇 편 써보기도 했는데 소설의 형태를 갖추기 전에 다 시로 만들어서 지금은 분해됐어요. 

시를 써야지 하고 쓰는 건 아니고, 쓰다 보면 이거는 시구나 이거는 시가 아니구나 이렇게 약간 더듬더듬, 목적을 모르는 채 쓰는 것 같아요. 그 결말을 모르기 때문에 재미있기도 하고요.

김석영 시인  ⓒ투데이신문
김석영 시인 ⓒ투데이신문

-황현산 평론가는 “말과 사물이 일치하는 진리의 언어는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는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에 비해 언어를 질료로 하는 시의 한계성이라고도 이해되는데요. 시인님의 두 번째 시집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는 영화적인 구성을 말미암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고도 생각됩니다.

한계를 극복한다기보다 한계를 밀어붙이려는 몸짓에 가까운 것 같아요. 두 번째 시집 중 <불완전한 세 개의 이미지>라는 시는 실제로 천변에서 물속으로 사라진 새끼오리를 목격하고 쓴 거예요. 

그냥 일상의 평범한 순간이 문득 시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이질적인 것이 일상에 침입했던 순간이랄까요. 그때의 이미지를 문자로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요나스 메카스 탄생 100주년 기념 상영이 있었어요.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나 <행복한 삶의 기록에서 삭제된 부분>을 보는데 푸티지들을 이어놓은 것들을 보면서 천변에서의 오리 이미지가 오버랩되더라구요. 편집된 채로 흐르는 강물, 사물, 정물, 동물 이런 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편집된 강물이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생각들과 이미지들을 하나로 묶을 형식이 필요했는데 그때는 그게 영화적인 구성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죠.

-<상상선>이라는 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적 기법이 활용된 시도 종종 있고요.

사실 그 시는 첫 번째 시집에 넣지 못한 시였어요. 저는 그 시를 서시(시집의 맨 처음에 있는 시)라고만 생각했었거든요. 갑자기 중간으로 배치하면 어떨까 싶더라구요. 그때부터 A와 B 쇼트로 나누어도 보게 되고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하게 된 거죠. 약간 유레카 같은 느낌이었어요. 짜릿했죠. 어떻게 보면 기폭제가 된 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꽂히는 시제로 쓰는 시들에 대해서 좀 더 듣고 싶어요.

평소 시로 쓰고 싶은 제목들을 모아놔요. 예를 들어 이번 시집 중에는 <폴리오미노>나 요나스 메카스 영화의 <불완전한 세 개의 이미지>도 그렇고요. 시를 퇴고하다가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때 가장 어울리는 것을 붙이기도 하고, 그 제목으로 시를 쓰는 경우도 있고요.

-이번 시집뿐만 아니라 첫 시집을 포함해서 경계선에 걸쳐있는 이미지가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물의 표면을 두고 안쪽과 바깥쪽의 존재에 대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방인 같다는 소외의 감정을 많이 느끼며 살았어요. 그래서 이런 감정으로부터 달아나는 자유를 갈망했어요. 

-지금은 자유로워지셨나요.

김춘수 시인의 시 <처용단장> 3부 40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새장의 문을 닫고 새의 날개짓을 생각했다. 그것이 곧 내 몫의 자유다.” 이 시를 읽고 비로소 좀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자유가 있으려면 새장이 있어야 하는 거죠. 신영복 선생님이 자유를 ‘자기 이유’라고 하신 것처럼요.

저는 항상 뭔가를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무엇을 벗어나고자 했는지 몰랐는데 그 프레임이 언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제는 자유를 추구하지 않아요. 

-언어가 프레임이라면 결국 시가 자유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셈이군요.

네 맞아요. 저는 시를 쓸 때 자유를 느껴요. 하지만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언어를 파괴하거나 해체하고 싶지는 않아요. 새장의 역설처럼 자유를 꿈꾸기 위해서는 새장이 필요하니까요.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잘 쓰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시는 누구나 쓸 수 있기 때문에 더 쓰기 어려운지도 몰라요. 말하자면 “그냥 아무거나 해봐”라고 말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요. 시가 어려운 이유는 너무 많은 가능성 때문이고 그래서 자기 이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유를 만들면 그게 시가 되는 거죠.

김석영 시인 ⓒ투데이신문
김석영 시인 ⓒ투데이신문

-그렇다면 시의 언어는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어서 어렵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결국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거니까 시는 부정(不定)의 언어라고 볼 수 있어요. 정해져 있지 않고 오히려 정해져 있는 걸 부정하면서 가는 게 시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언어는 많은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직도 세상은 미지로 가득 차 있어요. 

-이번 시집의 자서에 대해 독자들의 각별한 관심이 있는데요.

시집 전체를 압축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도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게 배치했어요. 

시집의 제목처럼 돌을 쥔다는 것은 그 돌을 움직이게 하는 주체를 포함하잖아요. 하지만 돌을 던지는 게 주체일까, 돌을 던져서 주체가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행위에는 양방향성이 내포되어 있는 거죠. 돌을 움직이는데 나도 따라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돌을 던질 때 주체가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돌에 의해서 주체의 움직임과 방향이 정해질 수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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