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인 이소호
◈약자들의 삶을 대변하는 글 쓰고 싶었다
◈자전적 연극에 가족 모두 각자 역할 맡아
◈“솔직한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 믿는다”

                    이소호 시인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이소호 시인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국내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그물에 잡힌 고등어가 횟집 수족관에 옮겨져 예정된 죽음을 앞둔 상황을 고등어 입장에서 연출한 드라마다. 아마도 물고기의 살아있음이 강하게 증명되는 순간은 물속을 유유히 헤엄칠 때가 아니라 도마 위에 올려진 순간일 것이다. 수식 하나 없는 근원적 자아가 드러나는 도마 위에서 이소호 시인은 설치 미술처럼 자신(이경진)을 과감하게 전시한다. 

‘이경진’은 이소호 시인이 2014년까지 사용했던 이름으로 그를 전면에 내세워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의 이야기를 기록한 첫 시집 <캣콜링>을 완성한다. 캣콜링으로부터 최근에 낸 <홈 스위트 홈>에 이르기까지 경진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형태의 차별과 폭력은 비단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 약자를 향한 무차별한 이빨이다. 

시인은 2014년 이경진에서 소금 소(䴛)에 좋을 호(好)로 개명한다. 시인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작품과 어울리는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폭력은 약자를 방향으로 삼았다. 보복에 대한 가능성이 낮고 사회는 언제나 강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라는 우리의 오랜 관습도 궤를 같이한다. 그는 <홈 스위트 홈> 시인의 말에서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곳이 볕이 아닌 빛이 드는 곳이라고 해도”라고 적었다. “집에 있어도 집을 찾는 사람들”은 최후의 피난처인 집이 결코 달콤한 보금자리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의 이름처럼 쉴 수 있는 작은집 ‘소호(小戶)’를 확보하기 위해 처절한 일상을 진실과 거짓 그 불분명한 경계의 형태로 까발린다. 언젠가 모든 약한 것들의 해방을 위해.

*이소호 시인은 첫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와 <홈 스위트 홈> 등 총 3권의 시집을 냈다. 산문집으로는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서른다섯, 늙는 기분>이 있으며 소설 <나의 미치광이 이웃>이 있다.

-산문집 <시키는대로 제멋대로>에 공개된 초등학교 시절 일기가 예사롭지 않아요.

할아버지가 매일 일기를 쓰셨는데 은연중에 그러한 영향을 받았을지 모르겠지만 저도 일기 쓰기를 열심히 했어요. 저는 일기를 쓸 때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엄마가 일기를 평범하게 쓰지 말라고 강조하셨어요. 심지어 집안 망신이 되는 얘기도 괜찮다고. 실제로 선생님들에게 재밌다며 많이 읽혔고 그때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은 글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아요.

-신간 <홈 스위트 홈>도 이전 작품에 이어 자전적 소재를 통한 새로운 폭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시적 장치나 산문적 장치라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지금 우울한 상태의 내가 이 자리에 있고 물이 가득 찬 방안에 잠겨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다면 진실에 다가서 있는 나는 상상 속이 훨씬 가까운 상태인거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시와 산문을 썼다고 생각해 주시면 읽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가정주부로 살아온 자는

죽을 때도 주부로 죽는다

 

집안일에는 은퇴가 없으니까

...

나는 방 안에 꼼짝 않고 밤새 노안은 절대로 살필 수

없을 만한 크기의 글씨로 빈 바닥을 조용히 채웠다

 

살려주세요

-시집 <홈 스위트 홈>의 '홈 스위트 홈' 中

-“진정한 최고의 거짓말은 진실을 전시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라는 시인님의 말처럼요.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게 모두를 지켜줄 수 있는 어떤 상황적 장치가 될 수 있잖아요. 다시 말해 “사실 내 글은 전부 진짜예요”라고 말하는 것과 “이게 다 진짜 같으세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항상 리얼리티한 것 사이에서 과연 이게 다 진짜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이것이 제 글이 가지고 있는 변별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시인님 작품 전반에는 가부장제 영향권 내 참상이 날것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연극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실제 가족들은 이 시가 세상에 나오고 어떤 반응이었나요.

저희 가족들은 각자 시 속에서 맡은 역할을 굉장히 재밌어하고 있어요. 가끔 기사 댓글에 아버지가 앓아 눕겠다로 시작해서 온 가족이 싫어할 거 같다 등 우리 집안이 난리가 난 것처럼 생각하시는 독자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가족들은 즐기고 있어요.(웃음) 제 동생은 이번에는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구경하자고 하고 엄마도 내가 얼마나 많이 나왔나 궁금해하고 저희 가족들은 아예 문학으로 보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시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파격적인 폭로성 때문에 오해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아요.

네. 이것에 대해서는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연극에 대한 모든 해석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서서 오해를 해명하거나 말리지 않아요.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시적 화자가 언제나 여성의 입으로 발화되는 편향성이 다양한 독자를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시인님을 좋아하는 독자 대부분이 여성층을 이루고 있기도 하고요.

네 맞아요. 그렇지만 아마 여성으로만 읽히는 걸 원하는 작가는 없을 거고, 저 역시도 그런 걸 의도하고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첫 시집 <캣콜링>이 시인님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저의 첫 시집 <캣콜링>은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하며 기획한 시집입니다. 부끄럽지만 에초에 어떤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고 싶어서 쓴 작품들은 아니었어요. 당시에 저는 ‘약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터였고, 가장 가까운 사회적 집단인 ‘가족’부터 ‘젠더 문제’와 ‘인종차별’까지 폭 넓게 제가 겪어낼 수밖에 없었던 일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그걸 어떻게 배치하고 표현할까 그 생각을 오랫동안 이어갔어요.

언어가 거친탓에 분노에서 기인한 말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이야기들이 일상에서 겪은 일로 쓰여진만큼 시 자체도 일상성을 잃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최대한 구어체를 사용해 시 쓰기를 했습니다. 말하듯 써내려가서 그런지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온전히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생각하고 적은 이 시들은 또 누군가에게 용기로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고백은 먼저 발설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요.

-최근에 소설도 내시면서 타이틀이 더 추가 됐는데 어떻게 불리는 게 가장 좋으신가요.

시인이죠! 저는 시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산문을 쓰면서 새로운 쾌감을 느꼈어요. 시 쓰기를 가장 좋아하지만 그만큼의 마음을 계속 끌고 가기가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산문을 쓰면서 너무 재밌었어요. 마침 기회가 생겨 출판사로부터 소설 제의가 들어와서 또 소설을 써보게 될 거고 이런 식으로 장르를 하나씩 늘려가 볼 생각이에요. 시가 저의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소설과 산문은 글 쓰는 순수한 기쁨을 느끼게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챗GPT가 버전을 업그레이드하며 예술의 영역을 더욱 넓혀가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직접 챗GPT에게 시를 가르치며 가장 큰 문제점을 발견했어요. 챗GPT는 시를 쓸 때 설명적 묘사만을 구사하고 시적 묘사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본인이 망했다고 생각한 시를 독자들이 좋아해 준다고 들었는데 어떤 시를 망한 시라고 생각했나요.

일단 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건 당시 시를 써놓고 “사람들이 시로 봐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송년회’라든지 집 모양으로 시를 쓰거나 여러 재밌는 형태의 낙서 비슷하게 보이는 시들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대단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실험이나 재밌는 활동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실험적인 시들은 제가 즐겁기 위해 한 거예요. 문학적으로 생각해보면 망한 시에 가깝죠. 만약 이소호 시인의 타이틀을 빼고 시집이 아닌 곳에 게재됐다면 누가 시로 인정해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실험적인 시들을 과감하게 시집에 넣었다는 건 자기 확신이나 용기도 상당히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발표하고는 겁이 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수습 하는 걸 좋아해서 만약 망했다면 수습할 게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수습하면서 뭔가 성장하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오늘 망한 상태를 안심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이소호 시인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이소호 시인 [사진제공=문학과지성사]

-아주 사적인 이야기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픽션인가요.

제가 이 산문집을 읽었다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철렁철렁해요. 정말 웃기려고 썼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너무 다큐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이 산문을 쓸 때 스스로 ‘아니 에르노’처럼 써보고 싶었어요. 스스로 나는 프랑스 여자다 이렇게 자기최면을 하면서요.(웃음)

-최근 작품 활동을 쉼 없이 이어왔는데 지금은 어떤 작품을 진행 중이신가요.

원래 계획은 올해까지만 열심히 쓰고 몇 년을 쉴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 성격상 못 쉴 것 같아요. 저는 매일매일이라도 조금이라도 써놓는 걸 좋아해서 또 소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너무 많이 내서 오히려 독자분들이 피로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해요. 

-소설 쓸 때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가독성을 가장 신경 써서 쓰고 있어요. 내가 한 번에 써야지 독자도 한 번에 읽는다고 믿어요. 하지만 쉽게 읽힌다고 해서 쉽게 쓰인 글은 아니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장르가 다른 글을 쓸 때 작가로서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나요. 

시를 어떤 단편적인 사진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동영상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소설은 여행 브이로그를 찍는다고 가정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편집을 해서 이야기로서 잘 흘러가게 할 것인지 고민을 한다면 시는 어떤 장면 한 장을 잘 찍을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시가 아닌 다른 장르의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산문은 아예 쓸 생각도 없었어요. 청탁이 와서 그냥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누군가 비행기표를 끊어주고 한번 떠나볼래?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물론 무섭기도 하고 두렵지만 그만큼 호기심도 컸어요. 그렇게 도전을 해왔고 작품들이 쌓이고 다시 그 작품이 또 다른 티켓으로 돌아온다는 느낌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작품에 지분이 상당한 시인님의 페르소나 동생분에 대해 듣고 싶어요. 

연년생 자매라 붙어있을 때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요. 특히 지금 동생이 외국에 있어서 더욱 사이가 각별하고요. 동생은 저에게 늘 영감을 줘요. 평소 말투가 웃기고 굉장히 창의적인 말을 할 때가 많아요.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는 심보선 시인의 말처럼 사실 동생이 시인이 됐어야 했는데 내가 그 인생을 대신 열심히 쓰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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