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3 젊은작가상 성혜령 작가
“소설은 내가 누구인지로 돌아오는 작업”
마음이 넓어지는 가치 소설에 녹이고파
“타인의 고통을 듣고 이야기하고자 다짐”

2023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성혜령 작가 ⓒ투데이신문
2023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성혜령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재테크 서적과 자기계발서의 범람 속에서 소설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혹자는 삶에 실용적인 도움이 없다는 이유로 소설 읽기를 무용한 행위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이 시대 소설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버섯 농장>으로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성혜령 작가를 만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소설 읽기와 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 내 삶에서 도망치는 방법 그런데 신기하게 자꾸 내가 누구인지로 되돌아오는 작업”이라고. 자신으로부터 멀리 추락해보는 것. 그러함으로써 우리가 공유하는 영혼의 뿌리를 더듬어 보는 것.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릴 적 바닷소리를 들어보려 소라껍데기에 귀를 갖다 대보는 행위와 닮았다.

수상작 <버섯 농장>은 주인공 진화가 헤어진 남자친구의 지인에게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과정에서 명의를 도용당해 떠안은 빚을 받으려다 계획에 없던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이야기다.

성혜령 작가는 “죽음은 어릴 적부터 계속 생각을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죽음이 소설에 개입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 그의 작품엔 ‘죽음’이 자주 등장한다. 청소년기 암으로 인한 큰 수술을 수 차례나 겪어왔기에 “어떤 아픔은 나눠지지 않고, 어떤 경험은 공유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설에는 종종 불가항력적 세계의 낮섦과 무력함이 핍진성있게 드러난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미지의 공포를 공평히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결코 죽음을 희석하지 않는다. 죽음마저 질병의 총체적 병명 코드를 부여할 것처럼 구는 현대과학의 진보에도 오히려 그 두려움과 고독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는 막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의 소설이 갖는 힘이다.

*성혜령 작가는 2021년 제2회 황순원소나기마을 스마트소설 대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계간지 ‘창작과비평사’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이어 올해 젊은작가상에 선정됐다.

[사진제공=문학동네]
[사진제공=문학동네]

-우선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상작에 대한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을 쓸 때 걱정이 많았어요. 수상 작품인 <버섯 농장>은 문예·창작 대학원 다닐 때 쓴 소설이라 한 5년 지난 상황으로 그 당시 상황이 잘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가장 기본적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그러니까 소설을 쓰는 가장 깊이 있는 마음이 뭘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작가 노트를 쓰게 된 것 같아요. 다른 작가분들은 더 구체적으로 작품과 가까운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약간 좀 추상적이어서 잘 와 닿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여러 추측과 해석이 있었던 수상작품의 결말 부분을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주인공 진화의 살인 행위와 동기는 무엇인가요.

저도 처음에는 이 소설을 썼을 때 어느 정도 진화가 죽였다는 정황을 더 많이 묘사했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쉽고 갑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우발적으로 당연히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행위가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점점 들면서 여러 가지 방향으로 수정을 했었어요. 우선적으로 죽이지 않는 방향을 고려해봤지만 정작 소설에 제일 중요한 장면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직접적인 묘사나 정황 설명을 빼기로 결정했어요. 사실 저는 진화가 안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기는 했어요. 진화가 어떤 마음이 있다면 그건 한 번 공격을 해보고 싶다 정도의 마음이지 않을까 그 정도로 생각해요.

-주인공 진화와 그의 친구 기진이 살인 공범이 돼 더 이상 평범해지지 않는 그 지점에서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떠올랐어요.

저도 그 영화 굉장히 좋아하고 이 소설도 그런 로드 무비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걸 떠올리셨다니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다만 영화는 두 여성의 행위와 동기가 분명했지만 제 소설에서는 명확한 동기가 보이면 조금 재미가 없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도 그 영화와 같은 느낌이길 바랐어요.

-소설의 결말을 두고 수정을 여러 번 하셨다고 했는데 완성된 소설이 완전 다른 방향으로 수정되는 경우도 있나요.

지금 와서 보면 수상 작품의 결말 부분이 너무 짧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지만 막상 고친다고 해도 크게는 못 고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완성된 소설에 대해 많은 수정을 못 하는 스타일이에요. 어떤 분들은 완전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경우도 되게 많고 여러 번 다시 쓰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고 그렇게 하면 확실히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소설이 나오기도 하고 그게 훨씬 좋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저는 아직 소설을 많이 바꾸는데 익숙하지 못한 것 같아요.

-소설에 보면 어떤 예기치 않은 우연한 일로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겪는 에피소드가 눈에 띕니다.

저는 인생이 되게 무서운 게 의도치 않았고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일들이 제게 많은 영향을 주고요. 예를 들어 금리가 오르는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데 저는 당장 더 많은 이자를 납부해야 할 것이고 소비를 줄여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죠. 이렇게 제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했고 저는 그게 인생의 무서운 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에피소드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왜? 기진이 묻자 진화는 짧게 웃었다.

“전화를 안 받아서.”

“전화?”

“새벽에 위경련이 나서 응급실에 간 적 있었거든. 그때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어. 자느라 못 받았대. 그럴 수 있지. 원래 잠들면 잘 안 깨거든. 근데 그냥 그다음부터 보기가 싫어졌어.”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 <버섯 농장> 中

-그래서인지 작가님 소설의 주인공은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한 인간을 표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카뮈의 <이방인>을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이방인>은 말하자면 태양의 뜨거움을 묘사하는데 문장은 굉장히 차가운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제 의도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영향을 받아 삶이 변하고 상처도 받고 어떤 흔적이 몸에 계속 남는 이런 과정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까지가 아직은 제 한계인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서 마음을 더 넓혀 삶을 긍정한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먼저 마음을 건네고 그 마음이 넓어지는 가치들을 자신 있게 소설에서 이야기하기가 아직 어려워요. 그래서 약간 어둡고 축축한 이야기만 써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었어요.

-현재 회사에서 번역 일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주위에 일과 병행으로 소설 쓰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가요.

대학원 친구들끼리 하던 스터디그룹도 있고 또 다른 그룹도 있는데 직장 다니시면서 소설을 쓰는 분들도 있고 아직 대학원 다니시는 분들도 있고 소설 발표하시는 분도 있고 다양하게 있어요. 확실히 글쓰기가 목적인 사람들의 모임에 있으면 아무래도 계속 관심을 갖게 되고 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글 쓰는 데에만 온전할 수 있는 환경을 갖는 미래가 올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냥 계속 이렇게 일과 쓰기를 병행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요.(웃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마음을 먹는 게 지치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맞아요. 사실 저는 실망하는 게 옛날부터 되게 무서웠어요. 그래서 열심히 등단을 위해 준비하는 쪽도 아니었거든요. 투고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대학원 다닐 때도 신춘문예에 한 번밖에 안 냈었고 그마저도 선생님이 무조건 내라고 권고하셔서 냈어요. 요즘은 등단을 하지 않아도 글을 발표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서 등단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등단에 목표를 두고 그것만 바라봤을 때 만약 안 됐을 때의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하는 게 두려웠어요. 그래서 문예·창작 대학원 다닐 때도 졸업하면 통번역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항상 어떤 것에 내 모든 정신과 노력을 쏟기보다는 플랜B가 있어야지 마음이 편한 타입이에요. 진짜 제 삶 말고 다른 삶에도 손을 뻗어놓아야 안심이 되는 그런 사람이에요. 저는 한 곳에 제 마음과 정신을 온전히 쏟기가 어려워요.

-작가님 쓰기의 역사를 엿보고 싶어요.

어린 시절 집 앞에 논·밭 밖에 없는 굉장히 시골 동네에서 살았어요. 동네 또래가 없었고 전부 언니들만 있었는데 그 언니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늘 혼자였어요. 그 시간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니까 어릴 적 제게 책 읽기는 그냥 시간을 보내는 수단일 뿐이었어요. 작가를 직업으로 생각하거나 문예·창작을 전공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그냥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돼야겠다 정도가 꿈꾸던 미래였어요. 그런데 제가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암에 걸리면서 모든 게 어그러졌어요.

2023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성혜령 작가 ⓒ투데이신문
2023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성혜령 작가 ⓒ투데이신문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만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작가님의 말이 와닿아요.

암으로 인한 다리 수술만 3번 했고 항암치료도 1년 정도 했어요. 그 기간이 3~4년 동안 이어지다 보니 20대 초반까지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강제로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했는데 다시 미래를 잘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는 재발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제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가끔 했어요.  그 당시 제게 건넸던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했어요. 마치 자신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하는 위로들 말이죠. 저는 그래서 타인을 위로한다는게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그나마 제게 가장 위로가 됐던 게 책 읽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쓰기가 하고 싶어졌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위로를 받았나요.

책을 읽는 시간은 제 삶이 아니라 책 속의 사람들에 집중할 수 있는 게 굉장히 좋았어요. 그게 좋아서 저도 이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거창한 목표나 확신 같은 건 아니었고 그 당시 유일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 글쓰기였어요.

-좋아하는 작가나 소설이 궁금합니다.

외국 작가로는 ‘윌리엄트래버’와 ‘플래널 오코너’를 제가 항상 좋아하는 작가라고 얘기해요. 그리고 한국 작가로는 편혜영 작가의 건조한 문체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잘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이 느껴지는 정말 평범한 일상 같은 일들을 보여주는데 거기에 문득문득 어떤 사람의 마음이나 세상의 윤곽이 드러나는 이야기의 형식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소설의 소재와 표현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소재 자체가 엄청 중요하다고는 생각을 안 하는 편이에요. 저는 소설을 상상할 때 특정한 오브제나 소재 현상 키워드 같은 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거든요. 보통 어떤 상황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와 문체라면요.

무조건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다음 소설이 궁금해요.

뜻하지 않게 큰상을 빨리 받게 돼서 걱정이 많아요. 뭔가 다음 소설은 전 소설보다 좋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이요. 상을 받은 <버섯 농장>의 경우 대학원 때 쓴 소설이라 정말 소설 쓰기가 삶의 전부였던 시기의 작품인 반면 현재는 정신적·물리적인 여유와 시간이 부족해서 꾸준히 계속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막막함이 있어요. 그냥 재고 쌓는 기분으로 3개월에 단편 1편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웃음)

해거름이 훨씬 지나고서야 인터뷰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정류장까지 그와 함께 천천히 걸었다. 그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자신의 삶에서 빗겨 난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같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쓸모의 범람 속에 쓸모없는 일들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무용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의 다음 소설이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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