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이야기
궁극적으로 고향에 귀일됨을 깨닫게 돼
젊은이들 깨우쳐줄 거울같은 어른 부재
시조 통해 포근한 삶의 정취 전달할 것

대학에서 한문학을 가르치며, 이 분야의 논저 집필에만 전념했던 박성규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80을 바라보는 때에 시조 작가로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렸다.

한평생 학문에 심취해 외길만을 걸었던 노교수가 뒤늦게 창작열에 불타 3장 6구 45자 안에 담아낸 삶의 풍경은 참신하면서도 묵직하다.

꽃의 화려함보다는 꽃의 향기를 좋아한다는 그처럼 시조집 <고향은 여전합디까>에서는 은은하고도 묵직한 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이번 [Today_Pub](투데이펍)은 박 교수와 김재욱 작가가 함께한 인터뷰를 마련했다. 김 작가는 박 교수에게 박사논문 지도를 받은 제자다. 스승과 제자에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이 시대의 어른과 청년과의 대화와도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시조라는 매개체가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유하는 삶을 살게하는 지 살펴볼 수 있다.

김재욱(이하 김) : 선생님 안녕하세요. 귀한 시간 내셔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문학 전공자는 선생님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아마 잘 모르실 것 같습니다. 선생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성규(이하 박) : 저는 남해안의 시골 고성에서 태어나 유소년시절을 보낸 시골뜨기입니다. 그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과 혼돈 속에서 살아가느라 고초를 겪었듯이, 저도 없는 살림살이에 여섯 식구를 책임지셨던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궁핍한 삶을 살아왔지요. 제 시조집에서 옛날을 회고하는 시조는 대부분 그때의 외롭고 빈궁했던 어릴 적 초상을 소환해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0세에 금의환향을 꿈꾸며 서울로 올라와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진학을 했고, 이어서 대학원에 들어가 석·박사과정을 이수해 계명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35년 가까이 가르쳐온 백면서생입니다. 제가 스스로를 한마디로 평한다면, 저는 꽃의 화려한 모습을 좋아하기보다는 그 꽃의 향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김 : 한문학을 전공하셨는데 이 분야의 저서가 아닌 ‘시조집’을 내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조집을 내시게 됐나요.

박 : 이 책의 자서에서 말했듯이, 가까운 지인이 노년에 쇠퇴하기 마련인 총기를 그런대로 유지하는 데는 시조 창작보다 좋은 게 없다고 권하기에 시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시조를 짓다보니 자연적으로 잊었던 추억이나 단상들이 되살아나기도 해서 시조삼매경에 빠졌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병막에 갇힌 신세로 칩거를 강요 당했고, 게다가 생떼같은 목숨이 하루아침에 죽어나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느꼈던 삶의 무상함이나 죽음의 참담함을 시조로 풀어볼 수밖에 없었어요.

이같이 일상에서의 진솔한 느낌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 세상을 향한 애증의 주먹질, 생과 사의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담은 2000여 수의 시조 작품들을 스크린 하면서 이 시조를 나만이 향유할 게 아니라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나 나를 아는 여러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조집을 출간해야겠다는 만용을 부리게 된 것이죠.

김 : 사실 시조라고 하면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잠깐 배우고 마는 장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대인과의 거리가 다소 멀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조를 창작하시고, 책을 출간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 : 시조는 오래 전의 문학 장르이고, 지금에 옛시조 형식을 고수하며 전문적으로 시조를 짓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저도 처음 시조를 그냥 염력 증진이나 시간 때우기로 재미삼아 지어보기 시작했지요. 시조를 꾸준히 창작하다 보니, 현대 자유시나 현대화된 시조 형식을 통해 생각이나 심상을 형상화하기에는 호흡이 짧고 역부족이라서 간단하면서도 유희성과 서민성을 지닌 시조로 제 생각을 나타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조 창작에 더욱 전념하게 된 것이죠. 이는 마치 일본에서 특유의 단시(短詩)인 하이쿠(俳句)가 지금도 유행하며 서민들의 사랑를 받고 있는 것처럼 저도 시조의 이러한 장르적 특성에 매료돼 시조 창작에 전념했다고나 할까요.

김 :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시조가 지닌 매력은 무엇인가요.

박 : 시조는 ‘때조’라고 불릴 만큼 시의성이 강한 장르입니다. 시조를 통해서 서민들이 현실에서 겪는 애환이나 지식인들의 음풍농월적이고 현실비판적 생각을 당대의 문법이나 언어형식에 맞게 쉽고도 풍자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시조의 매력이라고나 할까요.

김 : 책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책 제목이 <고향은 여전합디까>인데요. 이 제목으로 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 : 저의 시조집에는 자연의 순환, 역사의 교훈, 죽음에 대한 겸허함, 인생의 무상, 인간 관계에서 지켜야할 도리, 치유될 수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로 이뤄져 있지요. 그러나 이 모든 주제들이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몽매에도 지향하는 편안한 자리인 고향에 귀일되는 것임을 깨닫게 돼 ‘고향은 여전합디까’를 타이틀로 내세우게 된 거죠.

김 : 선생님께서는 ‘자서(自序)’를 통해 “숟가락이 밥맛 모르듯이, 인생을 좀 살았다고는 해도 제대로 삶의 의미를 모르는 자신의 작품으로 말미암아 읽는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앞선 데다 완미하지 못한 작품을 통해 졸렬한 속마음이 세상에 공개된다는 두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책을 내셨거든요.(하하) 이 책을 보실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실 거 같아요.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 제 작품집에는 뭐 그리 대단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아요. 단순히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들이 일상에서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문제들을 얘기했을 뿐이죠. 그러한 시조 속에 관류하고 있는 정신은 우리의 근본을 잃지 말고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 모든 작품에 애착을 느끼실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이 작품에는 주목해 줬으면 좋겠다’는 작품을 몇 수 소개해 주시고, 간략하게 이유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박 :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 나름대로는 옥동자들을 낳아서 고이 길렀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우열을 가리라고 한다면 너무 힘든 일이지요. 굳이 그중에 한 수를 고르라고 한다면,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함부로 보내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 사회의 대들보 같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다음의 시조를 소개하고 싶네요.

젊음이 보석인 걸 내 진즉 알았다면

그 젊음 빛이 나게 정성껏 갈고 닦아

온 세상 환하게 밝힐 금강석이 됐으리 (78쪽)

김 : 말씀 감사합니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긴 한데요. 선생님은 고려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셨던 ‘선생님’이고 ‘어른’이시죠. 요 근래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요.

박 : 이 말은 아마 나이 많은 어른은 옛날보다 훨씬 많아졌으나 젊은이들에게 정신적인 자양을 나눠줄 어른이 적다는 얘기 같네요. 어른이 없다는 말은 항상 제기됐던 말세론과 마찬가지로 어느 시대나 있었던 화두지요.

김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박 : 요즘 같이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와 독서를 강요하다시피 하고, 보고들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는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방황하는 젊은이를 깨우쳐줄 어른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지식이 풍부해 아는 체 하는 어른들은 많고도 많지만 그 배운 것을 현실에서 몸소 실천하며 만사람의 거울이 될 만한 어른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제가 시조집에 실려 있는 몇 편의 작품을 통해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독서에 열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성정이 야수 같고, 베풀 줄 모르는 인색한 사람이라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풍자한 것도 이 시대의 어른 부재현상을 비꼰 것이지요. 저를 포함해서 나이든 어른들이 이타심을 가지고 자애로운 손길을 펼친다면 자연적으로 젊은이들이 어른을 공경하고 추종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김 : 선생님께서는 그간 논문집과 한시 번역서 <삼국유사>, <징비록> 등 번역서를 쓰셨습니다. 처음으로 학술의 밖으로 나오셨는데요. 선생님께 <고향은 여전합디까>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박 : 어떻게 보면 외도를 한 셈이지요. 그러나 학문이나 문학의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두 분야에의 지향은 궁극적으로 문명된 사회를 만들자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시조라는 문학 장르를 통해 자연이나 세상을 노래하는 행위도 학문에 못지않은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앞으로도 시조를 통해 대중들과 가까이 해 다정하면서도 포근한 삶의 정취를 전달하는데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김 : 끝으로 이 인터뷰 기사를 보실 독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 시조는 45자 내의 3행의 짧은 형식의 운문인데다, 오늘날 우리의 애환을 담아 쉽게 부르고 있는 가요와 태생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향유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지금까지 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분들도 생활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시조 형식에 맞춰 읊조리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한 편의 시조를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시조를 통해 새로운 문학의 세계를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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