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년 만에 시집으로 돌아온 시인 원태연

◈30년 전 독자와 약속 지키기 위해 쓴 시
◈시인이 되기보단 그냥 시가 쓰고 싶었다
◈나의 시는 독자와의 공감대가 제일 우선
◈나만의 언어로 변환된 사전 만들기 도전

원태연 시인 [사진 제공=박찬목 사진작가]
원태연 시인 [사진 제공=박찬목 사진작가]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들이 쏟아낸 얼룩은 세월이 지나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에 쏟은 보르도 와인’처럼. 9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이들은 시에 관심이 없어도 원태연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란 문장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우리 사랑을 위해 차용했던 시인이 <너에게 전화가 왔다>란 시집으로 돌아왔다. 

원태연 시인은 솔직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출간한 시집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백지영의 <그 여자>를 비롯해 신승훈, 변진섭, 허각 등 여러 인기가수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투데이신문은 20년 만에 시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초동에 위치한 작업실을 찾았다. 

그의 작업실은 한 초등학교 바로 옆이었다. 때마침 하교시간. 소년들의 웃음소리가 운동장 한가운데서 불꽃놀이처럼 번지고 있었다. 원태연 시인의 첫인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만나자마자 소년처럼 웃었다. 위태로울 만큼 투명한 웃음을 건냈다. 

그의 작업실은 사실 주거지의 다락방이었다. 허리를 굽혀야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천장이 낮았다. 공습을 피하기 위한 방공호 같기도 했다. 어쩌면 시인은 지붕 위로 떨어질지 모르는 별똥별을 기다리며 밤의 웅성거림을 받아적고 있었을까.

“여기 의자에 한 번 앉아보세요. 그리고 저 창문 밖의 풍경을 좀 보세요. 지난 가을 갑자기 후루룩 소리가 들려 창밖을 봤더니 은행나무에서 황금잎들이 쏟아지는 거예요. 이번 시집의 '낙엽 비'는 그 광경을 보고 바로 쓴 거예요”

시인은 다락방 작은 창문 밖에 서 있는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락방의 모서리들이 그 창문을 통해 해방되고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다락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꿈 속의 잔해들이 만져지는 곳. 문득 미셀 푸코가 말했던 헤테로토피아가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엽 떨어질 때 사진은 안 찍으셨어요.

미처 그럴 정신조차 끼어들 틈이 없었어요.

사진 찍히시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네 저를 누가 찍는다고 하면 벌써부터 표정이 굳어지고 그래서 항상 사진이 이상하게 나와요. 결혼식 사진도 한결같이 어색한 표정이었어요.

책상에 마시다 남은 위스키가 있는데 평소 즐겨하시나 봐요. 어떤 위스키를 선호하시나요.

지금 마시는 위스키는 짐빔(JIM BEAM)인데 딱 이 정도를 마실 수 있는 경제적 수준이죠. 상황이 더 좋아지면 더 좋은 위스키를 마실겁니다.

원태연 시인의 신간 '너에게 전화가 왔다' [사진제공=은행나무 출판사]
원태연 시인의 신간 '너에게 전화가 왔다' [사진=은행나무 출판사 제공]

시인님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하시잖아요. 60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는 기사도 본 적 있는데 그 정도면 꽤 부를 이뤘다고 짐작이 되는데요.

그러니까 저는 사람들이 무슨 600만부 신화의 주인공 이러는데 도대체 그 근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첫 시집을 신생 출판사에서 냈습니다. 운이 좋게도 큰 성공을 이뤘지만 출판사로부터 인세를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 해당 출판사 대표와는 어느새 연락이 끊겼고요. 다른 출판사를 만나 제대로 정산을 받은 지 얼마 안됐어요. 책으로 돈을 번 기억이 거의 없어서 600만부라는 경제적인 물량은 저와 잘 매치가 안돼요.

억울함이 크셨겠어요.

모르는 사람들은 당시 저를 청년 재벌이라고 불렀어요. 근데 나는 그 출판사 대표 뭐라고 안 하는 게 지금 그 사람이 아니면 제 시집은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오히려 제가 돈을 못 벌었기 때문에 자세가 꼿꼿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아예 돈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실력 있는 작가들이 생활고 때문에 글쓰기와 멀어지는 현실이 놀랍지 않은 것처럼요.

2년 전에 쓴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사실 그거 진짜 돈 필요해서 돈 미리 받고 썼어요. 방송국에 돈 갚아주려고요. 제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다가 중간에 못 쓰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계약위반의 패널티 성격으로 물어줬습니다. 

왜 그만둔다고 선언하셨나요.

드라마 시나리오는 한 번 꼭 써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도전을 했는데 드라마 시나리오 쓰기에는 저의 뇌 구조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했던 게 너무 잘돼서 만만하게 봤던 것도 있고요. 결과적으로는 그만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시와 작사에 몰두하려고요.

작사가로도 워낙 유명하셔서 저작권료가 꽤 들어오지 않나요.

그나마 지금 저작권료가 있기 때문에 다른 일들을 편하게 할 수 있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소설은 계획에 없으신가요. 

제가 고등학교 때 포기한 게 소설이에요. 그러니까 이미 알고 있어요. 소설은 내가 쓸 수 없다는걸. 

책 첫 장에 특별한 사연이 적혀있던데요. 30년 전부터 알아 온 독자 한 분과의 약속으로 시집을 내셨다고.

30년 전 제 첫 시집 출판기념회 때 어느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는데 이름이 그 당시 여자친구와 같아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15년이 지난 후 어느 강연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너무 반가워서 그날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어요.

정말 대단한 인연이라고 생각했죠. 이후 출판사에서 필사 시집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시를 18년이나 안 썼던 인간이 옛날 시에 새로운 시 30개를 추가해서 책을 내는 게 너무 비겁하잖아요. 돈은 필요하고.

그래서 그 독자에게 물어봤어요. 이렇게 해도 되냐고. 그랬더니 그 독자 말이 인사말만 새로 써서 새로 책을 내도 반가운 게 팬인데 서른 개가 어디냐고. 기다리는 사람이 분명히 있대요. 난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용기를 내서 그 시집을 냈는데 진짜 기다리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원태연 시인 [사진=박찬목 사진작가 제공]
원태연 시인 [사진=박찬목 사진작가 제공]

오히려 독자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은 셈이네요. 그때의 심정은 어떠셨나요.

원태연이 망가져 있으면 어쩌지 했는데 안 망가져서 너무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너무 고마웠어요. 그게 사랑이 아닐까요.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안녕을 바라는 거.

너무 기분 좋아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한 페이지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시집을 쓰겠다고 약속을 한 겁니다. 근데 그게 날 이렇게 죽고 싶게 만들지는 몰랐죠.

그 약속이 시 창작의 족쇄가 된 건가요.

그의 기다란 한숨으로부터 무거운 어둠이 걸어 나왔다. 어느새 창문이 검게 칠해졌고,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시가 너무 마음에 안 들고 안 써져서 스스로에게 쌍욕을 하며 학대했어요. 내가 나에게 그렇게 한 건 처음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눈물 나요. 

여기보세요. 이게 다 시집에 실리지 못한 시에요. 뭘 해도 매력이 없는 시들....

‘늦잠’을 보세요. 이거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세요?

평소 우리에게 익숙한 텍스트의 배치가 아니잖아요. 낯설음이 주는 주의력이랄까요.

출판사에서는 나를 근사하게 만들려고 형식적인 시도다 뭐다 하는데 저는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단지 너무 매력 없는 시들에게 주는 마지막 방법이었다고 할까요.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어요. 얘네를 버리면 그때 나를 버리는 거라고. 

이번 시집 중에 ‘나뭇잎 뜯기’처럼 빈 공간을 활용한 듯한 시들이 보입니다. 예전 어떤 시인이 시를 어떻게 쓰냐는 질문에 ”시는 덜어내며 쓴다“고 했는데 비슷한 맥락일까요.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시인 같네요. 제 시가 짧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처음부터 짧았던 건 하나도 없어요. 자신감이 없으면 쓸려고 하지 덜어낼 생각을 못 합니다. 저도 한참 뒤에 알았어요.

책 곳곳에 시인님 친필과 이젤 위에 올려져 있는 듯한 겉표지, 그리고 부드러운 색감이 책의 물성을 아름답게 만드네요.

사실 저는 시 쓰는 것 외에 관여한 게 없어요. 시의 주제조차 출판사 대표가 사랑으로만 쓰자고 부탁했어요. 저는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망망대해에서 길을 정해줬잖아요. 다만 삽화만 안 들어갔음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오로지 시로만 채우고 싶었어요. 만약 삽화가 꼭 필요하다면 ‘사람’은 안 들어갔음 좋겠다고 했어요.

삽화에 사람이 들어가면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시집에는 사랑의 얘기로 가득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만 쓴 게 아니에요. 자신과의 사랑도 있고 여러 형태의 사랑도 있는데 삽화가 이런 상상력을 가둬둘 것 같았어요.

니체가 말하길 ”좋은 글이란 어느 날 우연히 내게 떨어지는 낙엽처럼 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마치 시를 위한 시는 매번 달아날 것만 같다는 말로 여겨지는데요. 시인님의 글쓰기는 어떻습니까.

저도 방금 말하신 것과 비슷한 경험들로 시가 써진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작곡가 형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셨는데 좋은 음악과 그림과 글은 창작이 아니고 신이 시인을 통해 옮겨 놓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서 그 말씀을 바로 이해했어요. 비틀즈의 폴메카트니가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를 옮겨 놓은 게 불후의 명작 ‘Yesterday’인 것처럼요.

흔히 시인님에게는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원태연표 감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감성을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공감대. 그리고 나도 쓴다. 글이 만만하게 보여서 그런지 욕도 많이 먹었어요. 그래도 나는 공감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요즘은 누구나 자유롭게 SNS를 통해 글로 자신을 표현하잖아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시로 탄생하기도 하는데 인기가 꽤 있어요. 실제로 책으로 묶여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누군가는 이게 시가 될 수 있냐고 말하지만.

30년 전에 내가 제일 많이 들었잖아요. ”이것도 시“냐고.

그런데 시가 스스로 ”나는 시다“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어떤 누가 시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만 저는 시에게 무척이나 혼난 사람입니다. 시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게 아니라 제멋대로 흘러가다 우연히 나를 지나치더라고요. 어느 날 며칠을 못 잔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내가 헛소리를 하더라고요. 근데 그 헛소리가 내가 그동안 쓴 시보다 재밌고 낫더라고요. 그 시가 ‘그녀의 숨은 공간’이에요.

그녀의 숨은 공간

 

밀물 같은 그리움 썰물 같은 외로움

눈물은 울지 않습니다

 

화장실을 갔다 온다며 그가 작업실을 나가자 방금까지 가득했던 소란이 침윤한다. 식어가는 레몬티의 피폐함 속으로. 흩어져 있는 옛 시집 표지 위로. 초겨울 어울리지 않는 선풍기 날개 뒤편으로. 그제서야 그의 작업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중3 때 조병화 시인의 ‘고독’이라는 시를 보고 너무 좋아서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쓴 사람이 아니에요. 시 쓰는 게 좋았던 사람이지. 

체육학을 전공하셨는데 중학교 때 시를 쓰기로 결심하셨다면 왜 문예창작과나 국문과로 진로를 정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뮤직비디오 연출가이기도 한데 처음부터 저는 현장에 가 있었어요. 영화감독을 할 때도 바로 영화 촬영 현장에 있었고요. 저는 현장의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 성향이 그래요. 드라마 작가도 그래요. 일반적으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면 연수원을 갔어야죠. 저는 그냥 그걸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작사도 그렇게 시작하신 건가요.

가수 김현철 씨가 라디오 DJ를 할 때 작사를 부탁하려고 저를 찾았대요. 그런데 저는 이미 두 번째 시집을 내고 돌연 군대에 있었어요. 인기가 한창일 때라 별의별 소문이 다 있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를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어요. 그러다 아는 사람을 통해 김현철 씨가 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말년 휴가 나가서 만났어요. 그렇게 작사를 시작했어요. 김현철의 ‘왜그래’라는 노래로.

시하고 작사는 작업이 다르지 않던가요.

일단 김현철씨를 만나 그 자리에서 처음 곡을 들었어요. 내 작사 스타일이 좀 독특하잖아요. 안 그래도 김현철씨도 독특한데 말이죠. 튀는 걸로는 일단 보장이 됐을 겁니다. 김현철씨가 저의 스승이자 첫 파트너였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 곡 이후로 유명한 가수분들이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백지영의 ‘그 여자’를 작사하고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횡단보도에 서면 지나가는 차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식당에서, 컬러링으로 어딜 가나 제가 작사한 노래가 나오니까 무섭기까지 하더라고요.

특별히 애착이 있는 곡이 있나요.

신승훈의 ‘나비효과’요. 보통 곡을 리메이크해서 다른 가수가 부르면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곡은 누가 불러도 좋더라고요. 대부분의 작사, 작곡가들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항상 가수의 목소리와 작곡가가 만든 느낌을 스케치하고 작사를 하기 때문이죠.

20년 전에는 이제 시인이기를 포기하겠다고 절필 선언을 하셨는데 그때는 어떤 심정이었나요.

시건방진 선언이었죠. 저는 그냥 내 독자들에게만 ”안녕“ 이라고 말한거죠. 그들은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잘한 결정이죠.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실망시킬까봐 20년이란 오랜 망설임이 있었어요. 흐트러진 글을 내면 독자와 나 서로에게 상처가 되니까.

원태연 시인은 2002년 ‘안녕’ 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냈다.

시인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되어 진다는 말이 있는데 시인님에게 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나요.

쓰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아주 착실하고 정말 존경받아야 하는 시인인데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는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시가 좋을 뿐이에요.

그러면 시인님이 쓴 시는 우선적으로 시인님을 향하고 있겠네요.

내가 첫 번째 독자잖아요. ‘슬픈 등’이라는 시가 딱 나를 바라보는 시에요. 말하자면 3.5차원이라고 가정하고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거예요.  

슬픈 등

 

혹시

웃음 지어 봅니다

잠시

나를 부르지 않을까

‘문득 자신의 등을 본다면 어떨까’ 이 문장만으로도 대책 없이 감정은 휘갈겨졌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실 예정인가요.

시를 또 쓸지는 모르겠고 사전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의외의 답변이네요. 사전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전인가요.

내 눈에 비친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업이에요. 이를 통해서 독자들과 다시 한번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꽤나 긴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현관 밖까지 웃으며 배웅해주었다. 얇은 눈송이들이 무중력의 문장들처럼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다시 지나쳐 돌아가는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소년의 웃음소리가 황금빛 낙엽처럼 제멋대로 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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