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둔촌주공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즈’ 이인규 작가
◈ ‘용적률 90%’ 낮은 밀도·많은 녹지의 둔촌주공 기록해
◈ “발전국가 시기 유산이 신자유주의 시대 자원으로 변용”
◈ ‘안녕 둔촌주공’ 프로젝트 10년 담은 에세이 출간 계획

이인규 작가 ⓒ투데이신문
이인규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서울시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으로 불리며 건설업계를 넘어 시중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한때는 ‘10만 청약설’까지 나올 정도로 과열된 관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공사중단까지 가는 시공사업단과 재건축조합 간의 갈등, 그리고 금리인상에 따른 부동산경기 위축 등으로 간신히 분양 미달을 모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0여년에 걸친 재건축사업은 공사비 재협상 등 여전히 남은 숙제가 있지만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재건축사업이 완료되면 둔촌주공 자리에는 지하 3층~지상 35층 85개동 규모의 ‘올림픽파크 포레온’이 들어서게 된다. 총 세대수만 1만2032가구로 단일 아파트 단지에 1개군에 육박하는 인구가 살게 될 전망이다. 아파트 단지가 하나의 도시인 셈이다.

그러면 40년간 약 63만㎡나 되는 면적을 지켰던 둔촌주공은 완전히 사라지는걸까. 지난 2013년부터 진행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는 사라지게 될 이 아파트를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도 대장정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이인규 작가는 지난 6월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건설·거주·재건축의 40년>이란 책을 펴냈다. 책 말미에 붙은 각주와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한 아파트 단지를 소재로 이 정도의 방대한 자료수집을 할 수 있다는데 놀라게 된다. 

이인규 작가의 고향인 둔촌주공아파트는 5930세대의 단지 안에 초등학교 2곳, 어린이 놀이터 12곳, 테니스장 5곳, 휴게공간 26곳, 3개의 큰 상가, 2개의 점포 상가가 배치돼 생활 대부분을 단지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거대한 하나의 세계’였다. 그는 “둔촌주공을 떠나는 것이 슬펐다. 모든 게 사라지는 과정에서 허무함을 많이 느꼈다”라며 “그 힘들었던 것을 공부로 이겨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지난 2021년 석사학위 논문도 ‘둔촌 주공아파트 단지 생애사 연구’일 정도로 둔촌주공 기록하기에 매진했다. 그는 “3040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동네를 잃고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살았던 모든 집이 사라진 사람도 있다”라며 “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보편적 감정, 아파트 키즈라 불리는 이들에게는 공통의 상실감이 있고 그래서 ‘안녕 둔촌주공’ 프로젝트가 많은 공감을 받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그래서 무엇을 해야한다”는 결론까지 던지지는 않았다.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면 결론은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는 듯하다. 우리가 ‘둔촌주공’을 잊지 않는다면 이후 우리의 도시는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Q. 아파트라면 전형적인 도시생활로 인식된다. 그런데 아파트가 고향인 사람에게는 다를 것 같다.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 둔촌주공이다. 중학생 때 하남시로 이사를 갔다. 이후에 취직한 뒤 자취를 하게 되면서 이모네집에 살게 됐는데 이모집이 둔촌주공이어서 다시 들어와서 1년 정도 살다가 2009년에 이사를 나갔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시 둔촌주공에서 살고 싶어서 2014년 12월 다시 이사를 왔다가 2017년 철거를 앞두고 이사를 했다. 

둔촌주공은 80년대 초에 건설됐는데 용적률이 90%여서 밀도가 낮다. 밀도는 낮은데 녹지는 정말 많았다. 그래서 흔히 생각하는 도시의 삶과 달랐다. 그 시절 주공아파트에서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공감할 것이다. 

삭막한 아파트단지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은 환경차이 때문이다. 80년대 당시엔 주공아파트가 제일 잘 만든 아파트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최근처럼 관심이 집중된 아파트는 아니었다. 그래서 ‘변방의 메아리’라는 말도 들었다. 

제가 둔촌주공에서 좋아한 점은 지금의 대단지에서는 찾기 어려운 환경이다. 녹지나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라던가 곳곳에 휴식처나 놀이터 등등이 도시 스케일의 규모로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파트라서 좋았다기보다 이런 환경들이 우리 도시에 있어야 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2017년 둔촌주공아파트 전경 [사진제공=류준열 촬영, 마티 제공]
2017년 둔촌주공아파트 전경 [사진제공=류준열 촬영, 마티 제공]

Q. 전공이 생활주거디자인학과 주거환경학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둔촌주공 아파트를 더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원은 건축학과를 다녔다. 왜 아파트에 꽂힌건가.

어렸을 적부터 집과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다. 둔촌주공의 영향도 있다. 정확히는 아파트 자체보다 사람과 생명체에 관심이 있었다. 곤충을 관찰하고 사람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삶의 터전을 보게 되고 그런 관점에서 건축을 재밌어하게 된 것 같다. 생명들이 살아가는 환경이자 배경으로 건축을 바라봤다.

책 제목은 아파트 단지 얘기 같지만 사실은 도시 얘기다. 둔촌주공 단지를 계획하며 들어간 녹지, 놀이터, 보행로, 학교와 상가의 배치 등등이 지금의 도시에서는 찾기 어렵다. 이런 시설은 아파트 단지를 만들 때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구성한 것들이다. 그런데 도시의 일반주택지에서는 이처럼 사람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요소들이 부족하다. 일반주택지에 이런 요소들을 더 공급해야 하는데 아파트는 재건축을 하게 되면 더 막대한 사회적 자본이 투입되면서 이 불균형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Q. 책을 보면 둔촌주공과 아파트 단지에 대해 정말 많은 자료를 압축적으로 담은 점이 인상 깊었다.

둔촌주공에 대한 자료를 무턱대고 다 찾아봤다.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 서울시 자료, 옛날 신문뉴스도 다 봤다. 다행히 대한주택공사 시절 자료를 받을 수 있어 자료를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자료를 많이 수집한 이유는 정보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데다 오히려 남은 자료가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둔촌주공 아파트의 40년을 연구해야 했기에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그럴 수 있었던 동력은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둔촌주공보다 건축적으로 상징적인 단지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아니면 둔촌주공이 연구대상이 될 일을 없겠구나, 내가 하지 않으면 둔촌주공을 이만큼 알아볼 사람이 없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Q. 책에서 둔촌주공은 비슷한 생활수준의 가구가 모였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

입주할 수 있었던 계층 자체가 중산층이었다. 30평형을 분양 받으려면 당시 PIR(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로 10년치를 모아야 했다. 그런데도 다들 자신이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보통은 아닌데 비슷한 계층끼리 모이다보니 이 정도가 보통인 것 같은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데 이렇게 비슷한 계층끼리 모여있는 점은 오히려 도시적이지 않다고 본다. 인위적으로 비슷한 계층을 묶어 놓으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다.

책에 나오는 대목인데 둔촌주공의 시간을 따라가 보면 한국 사회와 서울의 도시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발전국가 시기의 유산이 어떻게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원으로 변용되는지, 이에 따라 대단지라는 환경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이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건설·거주·재건축의 40년 [사진제공=마티]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건설·거주·재건축의 40년 [사진제공=마티]

Q. 대단지 구성원의 생각이 공공성과 부딪히고 있지 않나 고민하는 흔적도 보이던데.

둔촌주공 단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안전을 위해 주민들이 막은 적이 있다. 고속도로 진입로와 가깝다보니 대형차가 많이 지나가고 과속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새로 우회로가 생긴 뒤에는 화물차 진입 정도만 제한하는 게 어땠나 싶었는데 끝까지 길을 막았다. 

재건축 과정에서는 주민들이 좋아했던 녹지나 둔촌습지를 보전하는 방법을 요구했지만 대안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 속상했다. 또, 재건축 공사과정에서 소음이나 분진으로 피해입는 인근지역 주민들을 지켜보는 것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 책을 쓰는 내내 조합원도 아닌데 속앓이를 하면서 그 과정들을 지켜봐야 했다.

Q. 둔촌주공은 철거됐고 재건축된 아파트는 공사가 한창이다. 재건축 과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의 주장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둔촌주공을 떠올려 보면 새로운 무엇이 만들어져도 이 환경이 없어지면 손해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나무와 녹지가 많고 밀도가 낮은 생활공간은 찾기 어렵다. 그게 럭셔리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층, 고밀도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고층아파트가 왜 력셔리인가. 고밀도 개발이 최선인가. 그런데 재건축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가 오래됐고 단지에 나무가 많다는 얘기는 땅이 넓다는 뜻이고 재건축 사업성이 높다고 해석된다. 

일부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을 하고 싶으니 아파트 도색도 벗겨진 채로 방치하기도 하는데 그런 점이 슬펐다. 마지막 모습에서도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격은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또,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하는 과정을 보면 사회 인프라인들이 더욱 아파트 단지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적 자본들이 아파트 재건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반면, 빌라촌을 이룬 주거지에는 녹지나 생활편의시설들이 제대로 투자가 안 되고 있다. 공공부문이 이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본다.

Q. 둔촌주공 재건축 과정은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소감은.

대단지다 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재건축에 엮였고 금액도 너무 커졌다. 그래서 효율적인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 같다. 대단지였기에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대단지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이미 대단지로 계획된 부지를 다시 쪼개서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권이 달린 문제이니 쪼개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 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지가 재건축한다고 하면 ‘우리 아파트도 재건축을 해야되고 리모델링 해야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둔촌주공같은 대단지는 소수다. 그런데 마치 모두의 일인 것처럼 관심을 받는 것을 보면 ‘중산층의 꿈’에 대한 얘기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지 주민들이 결집하면 구청, 시청 등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비사업조합들도 여러 집단행동을 한다. 이런 점을 우리사회가 알아야 된다고 봐서 대단지에 대해 책을 쓰게 됐다. 

이인규 작가 ⓒ투데이신문
이인규 작가 ⓒ투데이신문

Q. 재건축 과정 막바지 공사비 갈등의 결과를 보면 결국 시공사 뜻대로 됐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서울시 코디네이터가 작성한 ‘정비사업 코디네이터 활동 보고서’ 내용이 조합원들에게 공개됐다면 이렇게까지 갈등이 심화됐을까 싶다. 이 보고서를 적시에 제대로 접했다면 조합 총회의 결정이 달랐을 것이다. (재건축조합은 지난해 4월 정기총회에서 기존보다 공사비를 6000억원 증액한 도급계약 변경을 취소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시공사업단은 이에 반발해 정기총회 직전에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조합원들이 공사 중지 시점에서는 그동안의 과정에서 시공사업단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며 감정 싸움으로 번진 것 같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든 그런 분위기로 몰려진 게 아닌가 추측된다. 계속 이어지던 갈등들이 쌓이다가 결국 사단이 난 것 같다.

공공의 개입도 필요했던 것 같은데 조합원들은 공공의 개입을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공사 중지가 되면서 공공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 나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사실 이 판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옆에서 그 과정을 보면서 감정노동이 너무 심했다. 조합원들도 과정을 겪으면서 정신적 충격이 컸을 것 같다.

(관련기사: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시공사 갈등 고조…공사비 논란에 분양일정 ‘시계제로’)

Q. 책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대목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사회가 도시규모의 대단지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나 동네에 대해 과거까지 깊이 들여다보며 그 맥락을 이해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래서 그 도시의 어떤 사라져버린 지층을 기록하면 이 도시가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궁금증을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둔촌주공의 40년 동안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의 재미다. 대부분 재건축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재건축을 잘할까를 생각하는데 재건축을 왜 하게 됐으며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를 기록한 책은 드문 것 같다. 

아파트를 짓고 다시 재건축을 통해 더 큰 부를 만드는 변화를 저처럼 못 따라간 사람들에게 도시가 이래서 변했고 그 안에서 이렇게 살아가는구나를 설명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아파트 정비사업은 어떻게 진행돼야하나, 도시환경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기초자료가 됐으면 한다.

Q.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가.

올 가을에 에세이를 내면서 10년 간의 프로젝트를 끝내려 한다. 에세이는 지난 10년을 회고하면서 그 과정에서 생각했던 점들을 정리하는 위주로 만들려고 한다. 

재건축조합원들도 마음 한켠에 짠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안녕 둔촌주공 프로젝트는 그분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곳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로하는 프로젝트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보행자 전용로를 걷고 있는 아이와 어른 [사진제공=ⓒ류준열 촬영, 마티 제공]
보행자 전용로를 걷고 있는 아이와 어른 [사진제공=류준열 촬영, 마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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