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 가습기 살균제 5년, 침묵의 살인자 그리고 공모자들①

 

 

 

 

 

 

 

 

 

 

3698명. 이는 지난달 말까지 정부에 신고 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수다. 이 중 사망자로 신고된 피해자 수만 701명. 피해신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피해자가 1만명, 10만명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원인 불명으로 목숨까지 잃어야했던 이들의 사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밝혀진 지난 2011년, 그리고 ‘사건의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건이 의결된 지난달 6일. 무려 5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투데이신문>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끈질기게 외로운 싸움을 이어온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을 직접 만나 그들이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듣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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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국가적 참사···철저한 진상규명 필요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5년의 외로운 싸움···‘이제 대답 들을 때’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 국민의 몫”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공론화된 지 약 5년 만에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위한 활동이 시작됐다.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건이 의결됨에 따라 국정조사는 이달 7일부터 10월 4일까지 90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먼저 전문가를 통해 예비조사를 실시하고 국가기관을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원료공급 업체에 대한 조사도 동시에 시행된다.

특히 국회 가습기살균제피해국조특위는 8월 중 영국의 옥시레킷벤키저 본사와 당국 의회를 찾는 현장조사도 계획하고 있어 사건의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원료는 지난 1994년 11월 유공(현 SK케미칼)에 의해 최초 개발됐다. 유공 측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제조된 가습기 살균제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 옥시), 롯데, 애경 등 대기업 제조업체를 통해 총 20종이 넘게 출시됐으며 약 400만개가 판매됐다.

그런데 이후 끊임없이 정체불명의 폐 질환 사망자들이 보고되는 상황에도 누구하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1년 5월부터 원인불명의 폐질환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같은해 11월 정부는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가 이번 사태의 원인임을 밝혀냈다.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은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쉴 새 없이 외쳤고,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옥시의 공식 사과가 이뤄지고 검찰수사와 국정조사가 실시되기 까지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런 기나긴 싸움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을 이끌며 피해자들과 함께 바쁘게 달려온 한 사람이 있다.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에서 지금은 피해자 전체의 가장으로 자리매김한 강찬호 대표다.

그에게 지난 5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투데이신문>은 강 대표를 만나 직접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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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사건, ‘그들’ 아닌 ‘우리’의 문제
무엇보다 최우선 돼야할 과제, ‘피해자 권리회복’

Q. 외면하던 정부가 드디어 국정조사를 합의하고 특위가 조성됐다. 5년간 쉬지 않고 진실규명을 위해 싸워온 결과가 이제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겉으로 보이기엔 그렇다. 이번 사건은 세월호 참사,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건 등과 견줘봐도 어마무시한 재난이다. 현재 정부가 집계한 770명의 피해자 중 198명은 사망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이를 5년 동안 침묵해왔다. 사실 그 시간 동안은 피해자들 역시 무력하게 있었다. 천만다행이게도 검찰이 수사의 칼을 빼들어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됐다. 만약 지난 2011년 문제점이 제대로 발견되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확인됐다고 가정한다면 훨씬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사건의 심각성이 알려진 것, 그로 인해 국민들이 경각심을 갖게 됐다는 자체가 일단 굉장히 중요한 성과다. 대략 1000만명 이상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확률적으로 봤을 때 한 가족에 한 명 이상은 썼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소비자들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힌 사건이다. 이런 일들이 앞으로도 허용된다고 하면 더 무서운 재난이 불어 닥칠 것이다.

Q. 특위가 조성됨에 따라 사건이 국회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됐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기대되는지.

기대되는 부분들이 많다. 20대 국회가 개원되기 전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원내대표들을 차례로 만나며 우리의 요구사항에 대해 말씀드렸다. 첫 번째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법 발의, 두 번째가 청문회 또는 국정조사 요구, 그리고 세 번째는 국회차원에서 특위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충격적인 국가적 참사가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일어났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돼야 할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동안 정부는 무슨 일을 한 건지 모두 밝혀내야 한다. 이에 입각해 법과 제도가 개선돼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는 특위 차원에서 가해 기업들의 대표 등을 모두 소환해 소비자와 국민에게 진실된 사과를 하게 만드는 것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Q.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특위에 입법권은 부여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입법권이 아닌가.

사실 입법권이 부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회차원에서 어떤 문제 때문에 특위에 입법권을 부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부여되는 것이 맞다 생각하고, 기대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다. 입법이라고 하는 것은 여야의 합의과정에서 정확한 합의점을 찾아야하는 문제인데 이 부분이 조율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부여되지 않았다 해도 특위차원에서 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실질적으로 법과 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기대한다.

Q.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지난 2012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옥시 등을 대상으로 고발장을 제출했지만 검찰은 정부 조사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중지했다. 그런데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며 이를 지휘한 새누리당 최교일 의원이 특위에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특위가 시작되는 단계에서 갖춰야 할 것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이 신뢰성이다. 현재 큰 논란 중에 있는 것이 검찰수사 발표가 늦춰지고 있다는 점과 특위의 조사 대상에서 검찰이 제외된 점이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고 검찰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피해자나 국민입장에서 상당히 아쉬운 부분들인데 이러한 상황에 이번 사건의 일부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특위 위원으로 앉아있다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특위가 신뢰를 갖고자한다면 논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특위 위원으로 앉힌 것은 잘못된 처사다. 하지만 특위가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놓고 또 갈등을 빚는다면 특위의 활동은 다시 미뤄지게 될 것이다.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봐야하겠지만, 이로써 특위가 조금의 신뢰성을 잃고 출발하는 것은 분명하다.

Q. 검찰수사, 국정조사 등 앞으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앞으로의 대안들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전체를 대변하는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권리 회복이 최우선이라고 본다. 그들은 이제 원하든 원치 않든 가족을 잃은 채 피해로 인한 후유증을 직접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 사람들의 삶을 빠른 시일 내에 정상적으로 다시 돌려놔야 한다. 하지만 이는 지금 그들을 기존의 방식으로 다시 그 자리에 놓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피해 받은 것을 고려했을 때 그 질적 수준에 있어 몇 배의 삶을 부여해줘야 이들은 정상적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삶을 회복할 수 있을까’ 라는 부분에 대해서 인권적인 차원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소비자로서, 더 나아가 국민으로서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혹자는 피해를 받고 안 받고의 차이가 ‘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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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 피해자 위한 인프라 턱없이 약해···
만날 때 마다 새로운 사연, 모두 한 편의 인간극장

Q. 환경재단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7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과연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피해자는 몇 명이나 되는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임상적으로 가장 많이 조사를 한 분으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던 사람들을 1000만명 정도로 추산했다. 현재 ‘3000여명이 피해를 보고 700명이 사망자’라는 언론보도 내용은 직접 피해신청을 한 피해자들에 국한된 수치다. 정부는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 수치를 계속해서 은폐, 축소하려 할 것이다. 정부가 진솔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피해자 조사에 있어 전수조사를 시행해야 한다. 전 국민을 상대로 전문적인 조사를 실시해 이를 집계하고 분류해서 피해에 대한 확실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사건을 정확하게 특징지을 수 있다. 사실, 정상적인 정부였다면 사건이 발생한 즉시 전수조사를 시행했었을 것이다. 피해자를 찾아놓은 후 이를 분석해야 대안이 나오는 것이지, 소규모 조사를 통해 때에 따라 나오는 수치만큼 보상을 한다는 것은 순서가 어긋난 것이다.

Q.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또 다른 주범으로 불리는 SK케미칼, 애경, 이마트 등은 전혀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SK케미칼, 애경, 이마트 등은 수사대상 자체에서 빠져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의견을 피력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92%가 SK케미칼이 개발하고 공급한 화학물질 살균제를 사용했다. 애경 피해자는 128명, 이마트 피해자는 39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건 매우 뻔뻔한 처사다. 그래서 검찰수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이러한 부분의 진상여부를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다.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는데 원료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업체와 이를 판매한 업체가 발뺌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Q. 옥시가 지난 5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난 후 6월2 6일 3차 간담회를 통해 새로운 배상안을 발표했다. 이날 옥시는 어른 사망자에게 3억5000만원, 중간수준상해 2억원, 경상·증세호전 1억5000만원 등의 위자료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를 적절한 배상이라고 생각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피해자들이 만족 할 수 있는 수준이 가장 적절한 배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집단소송제를 통해 원고 400여명이 내놓은 1차 청구금액이 100억원가량이다. 하지만 실제로 얼마 전 미국에서 유선암에 걸린 여성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받은 보상금이 약 600억원이다. 금액에 대한 기준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사건은 고의성과 악의성이 굉장히 큰 사건이라는 점에서 통상적 배상수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때문에 보상에 대한 부분은 피해자들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다시 협상해야 하고, 또 이의를 제기한다면 또 다시 협상해 피해자들이 만족하는 수준까지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Q. 이번 배상안에서도 3, 4등급 피해자는 배제됐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 옥시에서 내놓은 배상의 대상은 피해자 전체가 아니다. 옥시는 정부에서 ‘폐손상’을 기준으로 제시한 등급분류를 그대로 적용해 1, 2단계 피해자만을 대상으로 배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유해물질이 몸 안에 들어왔는데 폐에만 영향을 끼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진행해나가는 그만의 프로세스가 있는 것이고 가해기업은 일을 저지른 당사자로서 소비자를 완전히 구제하는데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피해자로 접수된 모든 사람들을 직접 만나 개개인에 따른 적합한 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대로 보상해야 한다.

Q. 우선시 돼야하는 부분은 1, 2 등급에 대한 추가보상인가 3, 4등급에 대한 보상인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본다. 일단 피해자로 등록하는 순간 그 사람은 피해자인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피해자다, 혹은 피해자가 아니다 라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등급 분류를 한다는 것은 기업이 피해자들 사이를 갈라놓고자 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사실에 특히 3, 4등급 피해자들은 분노에 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 공정한 방식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합리성을 가진 떳떳한 집단이라면 피해자 단체의 변호사들이 직접 나서서 보상 수준을 서로 의논해 결정해야 한다. 기업 측에서 스스로 배상수준을 결정하고 통보하는 것은 결코 피해자들을 생각하는 보상안이라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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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 위한 활동···‘내 딸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에’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 정부·기업 아닌 국민의 몫

Q. 피해자들을 위해 많은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도 나서서 도움을 주고 있는데.

시민단체나 환경단체 등은 공익단체들이다. 사회의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이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피해자들의 생명과 건강권을 침해한 인권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환경운동 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참여연대 등 수많은 단체들이 이에 결합해서 우리 사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시민단체 등이 피해자 단체를 직접적으로 지원하고 조력하는 시스템의 인프라나 기반이 굉장히 약하다고 판단된다. 가피모 같은 경우 현재 환경보건센터와 관계를 맺고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이 역시 피해자 자체에 대한 지원보다는 총체적 사회활동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Q. 직접 다른 피해자들과의 상담도 진행하고 계신다. 피해자 가족으로서 개개인의 사례를 듣다보면 느끼시는 바가 남다를 것 같다.

매번 만날 때 마다 듣는 새로운 이야기들은 모두 한 편의 인간 극장이다. 피해자의 사례들은 주로 환경보건센터 등의 도움으로 많이 취합할 수 있었다. 현재 가피모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안성우씨 역시 상당히 가슴 아픈 사례를 갖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내와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도 함께 보내야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첫째 아이도 폐질환을 앓고 있다. 누구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태에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된다. 이처럼  피해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결국 나라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이는 이와 같은 사회에서 살게 할 수 없다.

Q. 지난해 5월 18일에는 영국 옥시 본사 항의 방문이 있었다. 딸 나래양도 함께 동행했는데.

그렇다. 당시 9살이었던 딸을 영국까지 데리고 갔다. 그 때 일정을 회고해보면 하루 종일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가 저녁 9시가 돼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오전 내내 항의시위를 계속했고 오후에는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리시위를 진행했다. 또 저녁에는 촛불시위로 항의운동을 이어나갔다. 딸 나래는 어떤 투정도 부리지 않고 고된 일주일간의 일정을 버텨줬다. 나래에게 진 빚은 사건이 해결되면 함께 영국을 다시 찾아 여행을 하는 것으로 갚을 것이다.

Q. 딸 나래양에 대한 관심이 많다보니 매스컴 노출도 잦아지고 있다. 아버지로서 이에 대해 우려되는 부분은 없는지.

나래는 대표적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언론에 노출돼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훗날 나래에게 하나의 기록이 돼 남을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에 화학물질에 노출됐던 내 딸이 시집을 가고자 했을 때 그 사실을 반가워하는 시댁이 있을까’와 같은 걱정들이 있다. 이처럼 피해에 노출됐던 사람이 이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내 아이는 앞으로 세상과 싸워나갈 줄 알길 바란다. 

Q. 한 인터뷰에서 세월호 피해자가 부럽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어떤 의미였는지.

비교할 문제는 아니지만 일부 부러웠던 점이 있던 게 사실이다.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묻혀있었던데 반해 세월호 참사는 사건이 한 순간에 일어나다보니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게 됐다. 사회적으로 굉장한 공분을 샀고 그러다보니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많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건이 가지고 있는 내용이나 규모적인 부분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결코 그보다 작은 사건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 초기 빙산의 일각만 드러나며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갔다.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렇게 간단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현재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고 세월호 사건처럼 큰 틀에서 공동의 문제로 함께 바라봐 주길 바란다.

Q 벌써 5년이라는 시간, 가피모를 이끌어왔고 이 사태의 종지부가 어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은 내게 주어진 숙제며 근본적으로는 내 딸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나갈 것이다. 가피모 대표라는 자리는 현재 5년 정도 맡아오고 있지만 사실 천천히 다음 사람에게 인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자리를 앞으로도 혼자 떠맡아 간다면 피해자 전체적인 입장에서 무언가 놓치는 부분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가능한 여러 사람들이 자리를 서로 돌아가며 했으면 좋겠다. 또한 나 역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Q.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해 정부와 국민의 역할은 무엇일까.

먼저 정부차원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제 등 제도적 법안을 마련해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해주고 안전한 제품을 만들게끔 기업을 감시하는 시스템들을 철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국민들이 큰 힘을 실어줘야 한다. 법안이 만들어지고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국회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기업들을 이겨낼 수 없다. 국민들이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이번 국정조사 특위를 지지하고 피해자 활동에 힘을 실어준다면 우리는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피해자 일부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이 봤을 때 1000만명이 가습기를 사용했다고 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실 아직도 이 상황이 영화인지 현실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국민들 모두가 내 문제로 자각하고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나라의 문제로 생각해 반드시 바로 잡고 가야할 것이다. 만약 여기서 막지 못하면 그 다음에 어떤 끔찍한 일들이 또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다수 국민은 소비자임에 입각해 소비자로서의 주권과 시각으로 기업과 정부를 감시해야 한다. 항상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의 피해자와 관련된 문제들이 올바르게 해결될 수 있게 지지해주고 참여해 주길 희망한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 이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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