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 가습기 살균제 5년, 침묵의 살인자 그리고 공모자들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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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해기업 국민에 진심어린 사과 우선 돼야 해
가장 많은 피해자 낸 옥시, 법적 책임 피할 수 없어

피해자 단체 노력, 국정조사에 큰 힘 될 것
‘기업 사익추구’···공익에 극단적 희생 만들어

피해자 배상, 국가가 나눈 기준 따라선 안 돼
산자부, 유해성 알리지 않은 책임 피할 수 없어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판매자와 피해자 간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규명해야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이하 민변)의 통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해 국가의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사건의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최우선 돼야 한다고 말한다.

송 변호사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해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3월쯤. 피해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며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니 법률가로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고 한다.

관련 법안들이 분명히 규정돼있는 법치국가에서 법이 무용지물로 전락해버린 것을 보고 법률가로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침묵할 수 없다는 송 변호사. 그가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투데이신문>은 송 변호사를 직접 찾아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본질적 문제와 재발방지대안 등을 함께 진단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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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 행사하지 않은 국민의 봉사자들”

Q.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14년 당시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이미 발생한지 3년이 지나며 오래된 일이 됐고 당시 검찰에서 기소를 중지해 국민들에게도 많이 잊혀진 상태였다. 나 역시 당시에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러던 중 피해자 측에서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게 됐고, 그 후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니 법률가로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당시에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된 많은 법률이 분명히 있었고, 그 법률이 공무원에게 충분한 권한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피해자들을 만나고 이들을 돕고자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기소가 중지된 사건이라는 한계점에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진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있다.

Q. 직접 기자회견을 주최하는 등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까지 발 벗고 나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해 주로 국가의 책임에 관한 문제들을 제기해오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판매자와 피해자만의 문제로 보여져서는 안 된다. 기업과 소비자의 사이에 있어서 국가가 무엇을 안 했는지, 왜 안 했는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추후 재발방지 대안 등을 만드는데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에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국가가 가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판단됐고 꾸준히 해오고 있다.

Q. 관련 법안들이 분명하게 규정돼있는 법치국가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 법률가로서 본질적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항상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본질적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번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해 우리 사회는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본질적 문제를 찾는 것은 국민 모두가 정말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국가가 자기들이 가진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본질적이고, 또 아주 큰 문제라고 본다. 국민의 울타리라고 하는 국가, 국민의 봉사자라고 하는 공무원들에게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게 하기 위한 권한을 줬는데 왜 행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있어서 갖춰져 있는 많은 법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는 법치국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Q.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현행법 중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법안들은 없는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법률가로서 오랜 시간 문제제기를 해오는 법 조항 하나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있는 내용인데 화학물질을 제조한 사람은 어떠한 예외 없이 그 유해성과 위험성을 조사하고 결과를 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해야하는 제도다.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의 근본적인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실제로 이번 가습기살균제 사건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즉 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제조자가 받는 처벌은 몇 백만원의 과태료 부과 정도다. 이번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통해서도 보았듯, 이는 국민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최소한 형벌의 대상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피해자들을 비롯한 다수 국민들이 징벌적손해배상, 집단소송제도 등의 법안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필요한 법안들이라고 생각하고 현재 큰 흐름을 봤을 땐 입법화돼가고 있는 것 같다. 관련 법안을 도입하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방식을 정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며 통상인과관계에 따라 손해액의 3배를 더 배상하는 3배 배상법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입법을 할 때는 무엇보다 그 시기가 중요한 법인데 현재 상황에서는 가능한 빨리 입법시키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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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등급 분류, 피해자들 향해 또다시 차별”

Q. 현재 일부 기업은 국가가 나눈 피해자 등급에 기준해 배상안을 내놓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해자 등급은 2011년 국가가 사건을 빠르게 조치하기 위해 쉽게 확인하고자 4가지 등급으로 나눈 것이다. 하지만 이 등급은 당시 행정편의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 등급이 실질적으로 피해자들의 구체적 피해를 나타낼 수는 없다.

때문에 기업들이 그 등급을 기준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하겠다는 자체가 잘못됐고, 현재 그 등급이 오히려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을 역차별하고 있다. 피해를 입었다는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억울한데 이들이 구제받는 과정에서 또다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 가해기업들은 하루빨리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배상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Q. 그렇다면 배상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배상에 대한 구체적인 액수를 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와 기업이 반드시 해야 할 과제다.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은 시기, 연령 등 피해자 개개인의 사정을 모두 파악해 개개인에 따라 달리 배상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 대한민국에 이 같은 참사가 없었다는 것을 고려해 기존 다른 사건들에 대한 위자료와 배상액의 수준보다 훨씬 높아야 할 것이다.

Q. 현재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보는가.

국정조사는 현재 진행 중인 상태고, 조사가 끝난 후 그에 대한 결과가 나오면 그 때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 국정조사가 특정한 정부부처와 기업의 잘잘못을 따지는데 그치지 않고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있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정리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국가와 가해기업은 국정조사에 따라 국민에 진심어린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다.

Q. 이번 달 17일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존 리에 대한 공판이 시작됐고 옥시 관련 보고서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대, 호서대 교수들의 공판도 현재 진행 중이다. 어떠한 결과를 예상해 볼 수 있을까.

옥시 자체에 대해 깊이 알아보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안전하다고 말하며 판매해왔고, 가해기업으로 지목되는 기업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피해자를 만든 기업이다. 여기에 대해 옥시는 절대로 법적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공판이 진행 중인 교수들에 관해서도 혐의가 있다면 분명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 재판 결과를 미리 예상할 수는 없지만 검찰조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옥시의 잘못을 정확히 규정할 수 있길 바란다.

Q. 지난 8일 피해자 단체들은 현재 검찰수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SK케미칼, 애경, 이마트의 전·현직 임원들을 형사고발했다. 이들의 형사고발이 검찰수사로 이어질 수 있을까.

피해자 단체에서 이들을 고발한 이유는 SK케미칼, 애경, 이마트에 관해 전혀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에 있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들의 형사고발 자체로 당장 검찰수사가 시작되는 것은 힘들겠지만 피해자 단체의 형사고발 등의 활동은 이번 국정조사에 큰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의 이러한 활동과 그 노력은 추후 SK케미칼, 애경, 이마트 등의 조사를 촉구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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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방지대책, 본질적 문제부터 찾아야

Q.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따른 재발방지대책은.

공익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 이를 사전에 미리 막는 것, 또 사건이 터졌을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재발방지대책이다. 이는 사익추구가 공익의 희생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회적 시그널을 만들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에는 수많은 화학제품들이 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제대로 된 안전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판매되고 있는 게 많다. 이 제품들에 대한 정확한 안전평가가 모두 이뤄져야하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계속해서 그 절차와 단계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Q.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기업단위의 문제가 아닌 국가(정부)의 문제가 더 크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부처들 중에도 책임 소재가 가장 크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다면 어디인지.

먼저 개별부처의 차원보다는 정부 전체의 잘못이라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국가가 정부부처에게 법률상 역할을 따로따로 부여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 소재를 살피자면 산업통상자원부가 큰 책임을 갖고 있다. 산자부는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만들고 이를 표기할 권한을 갖고 있었던 부처다. 하지만 이들은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유해성을 알리지 않은 게 됐다. 이는 행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행사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돼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있어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Q.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발생했다면.

국가가 갖고 있는 법, 국민들의 시민 의식 나아가 국가가 가진 문화까지 많은 부분들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어느 나라라도 이러한 문제가 생기면 분명히 큰 혼란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항상 더 우수한 법과 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업의 사익추구라는 것 때문에 이처럼 극단적으로 공익이 희생되는 사회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Q. 최근 화학물질로 인해 문제가 되는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거나 국민들이 관심 가져야 할 사안이 있는가.

최근 사안은 아니지만 화학물질과 관련해 작년부터 제기해온 사안이 있다. 학교 등 아이들의 단체급식에 사용되는 식기세척기의 원료로 함유된 화학 물질들에 관한 내용이다. 2015년, 처음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제기해 일부 물질을 유독물질로 지정시키며 사용을 금지시켰지만 여전히 식기세척기의 원료로 인정되고 있는 유독물질들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계속해서 문제 제기할 생각이다.

Q.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마지막 한 마디.

먼저 가장 우선돼야하는 것은 피해자들이 구제받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아픔을 겪지 않고 억울함에 대해 그에 응당한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현재 피해에 대한 배상은 말할 것도 없이 정부와 기업에게 제대로 된 사과 조차 못 받고 있다. 이미 많은 고통을 받은 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

또한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사회 전체가 나아가야 할 전반적인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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