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살인사건⑦] 텀블러의 불편한 진실
[종이컵 살인사건⑦] 텀블러의 불편한 진실
  • 윤혜경 기자
  • 승인 2017.08.23 14: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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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텀블러를 살펴보는 시민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윤혜경 기자】 “품절대란의 주인공, 이름하여 텀블러”

텀블러. 이 작은 물병의 인기는 생각보다 대단하다. 과거에는 ‘수통’, ‘보온병’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텀블러는 여러 커피전문점에서 각종 디자인을 입혀 내놓기 시작하면서부터 뭇 시민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성능도 각양각색이다. 보온‧보냉 기능이 있는 튼튼한 텀블러도 있는가 하면, 보온‧보냉 기능이 없는 대신 무게를 줄여 물을 담는 데 충실한 ‘워터보틀’도 있다.

가격도 다양하다. 저렴한 것은 1만원 안팎으로 구매할 수 있지만, 간혹 5만원을 웃도는 제품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커피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스몰사이즈 텀블러는 2~3만원대에 구매 가능하다.

여기 대란의 주인도 있다. 바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이하 스타벅스)의 시즌별 ‘MD(Merchandise)’가 바로 그것. 소위 MD라 불리는 스타벅스의 머그컵, 텀블러 등의 상품들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그중에서도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몇몇 시즌 MD는 없어서 못 살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한다. 실제 스타벅스가 시즌 MD를 출시하는 날에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 제품 사진과 함께 줄을 서서 겨우 구매했다는 후기가 담긴 게시물이 속속 올라오곤 한다.

특히 지난 3월 등장한 ‘벚꽃 MD’는 ‘스타벅스 벚꽃 대란’이란 단어를 탄생시키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출시 첫날 60~70%가 판매됐고, 특히 인기를 끌었던 제품들은 출시일 오전에 모두 동날 정도였다고. 현재 벚꽃 MD 상품을 검색하면 프리미엄을 붙여 정가보다 비싸게 판매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 스타벅스 중구저동점에 진열돼있는 텀블러 ⓒ투데이신문

“일회용 컵 사용 줄이러 나온 텀블러”

그렇다면 커피전문점에서 텀블러와 머그컵 등을 내놓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들이 다회용 컵을 내놓는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그 배경 중에는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자’는 목적이 포함돼 있다. 지난 2013년 12개의 커피전문점과 5개의 패스트푸드점 브랜드가 환경부의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을 맺은 후로 이들 브랜드는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텀블러도 일회용 컵 사용 줄이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파스쿠찌, 커피빈, 할리스커피, 엔제리너스 커피, 카페베네, 크리스피 크림 도넛, 카페네스카페,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Javacity 등 여러 커피전문점에서는 텀블러를 비롯한 다회용 컵을 지참한 고객에게 300원을 할인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평소 텀블러를 애용하는 양모(26)씨는 “일회용 컵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와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카페에서 텀블러를 사용할 경우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즐겨 사용하고 있다. 한 달이면 커피 한 잔 값과 맞먹는다”고 말했다.

기자는 실제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자 카페를 찾았다. 그렇게 어느 봄날 기자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스타벅스 소공동점. 명동과 시청광장이 가까운 만큼 관광을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외국인도 있었다. 그렇지만 인근에 회사가 많아 이곳의 주 고객은 회사원이라고. 자연스럽게 출근 시간인 오전, 점심시간, 퇴근 시간 전후로 가장 매장이 붐볐다.

▲ 점심시간이 되자 음료 주문을 위해 스타벅스 소공동점에 몰려드는 사람들 ⓒ투데이신문

기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약 2시간가량 카운터 앞에 앉아 주문하는 고객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곳에서 일하는 파트너에게 텀블러를 내미는 손님이 많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12시가 가까워지자 매장이 인산인해를 이루기 시작했다. 당연히 파트너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파트너들은 꼬박꼬박 고객에게 “매장에서 드실 거면 머그잔에 드릴까요?”라며 다회용 컵 사용을 권장했다. 하지만 대다수 아니, 거의 모두가 일회용 컵을 찾았다. 더구나 기자가 기대했던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기자가 지켜본 2시간 동안 총 253잔의 음료가 판매됐다. 이 중 247잔이 일회용 컵 형제의 몸에 담겨 고객의 손에 쥐어졌다. 머그컵으로 나간 음료는 5잔에 불과했으며, 개인 텀블러를 사용한 사람은 1명에 그쳤다.

<투데이신문>이 시민 15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150명 중 123명이 ‘텀블러를 소유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 중 98명은 ‘음료 주문 시 텀블러 이용률 10% 이하’라고 답한 것이다.

또 환경재단이 지난 2014년 시민 69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절반이 훌쩍 웃도는 78%가 ‘텀블러를 소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전체의 31%만이 ‘평소에 텀블러를 휴대하며, 자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 시민들의 구매를 기다리는 텀블러 ⓒ투데이신문

“관상용으로 전락한 텀블러?”

그런데 흥미로운 답변도 등장했다. ‘애초에 텀블러 구매 목적이 집에 모셔놓는 용도’라는 것.

김모(26)씨는 “시즌별로 어떤 텀블러가 출시되는지 매번 체크하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구입한다. 이렇게 구매한 텀블러가 8~9개 정도 있다. 수집하는 용도이기 때문에 사용하지는 않는다. 동전이나 우표도 수집하는 사람이 있듯, 텀블러 수집도 일종의 취미 생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애초에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 급전이 필요할 때 팔기도 한다. ‘대란’이 일어났던 텀블러는 시간이 지나도 거의 제값을 받을 수 있다”며 “지난해에 출시된 텀블러를 아직도 구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들도 아마 텀블러 수집이 목적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회용 컵보다 텀블러 제조과정에서 환경오염물질이 더 많이 배출된다. 때문에 텀블러나 머그컵 등의 다회용 컵은 한 제품당 15~40회는 사용해야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텀블러도 수집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구매는 하지만, 사용은 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살 때는 ‘없어서 못 살 정도’로 인기를 끌지만, 실제 사용하기 위해 휴대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결국, 물이나 음료를 담기 위해 탄생한 텀블러는 본래 목적을 잃고 말았다. 환경을 위해 호기롭게 등장한 텀블러가 관상용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 한 가지만 묻겠다. “당신의 텀블러는 안녕하십니까?”

▲ 컨디먼트바에 쌓인 일회용 컵들 ⓒ투데이신문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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