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 꺼낸 위기의 보수
지난해부터 진보와 보수의 역전현상 나타나
박근혜 탄핵 이후 새로운 리더십 부재
보수세력 구심점 역할 못하는 보수정당

왼쪽부터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왼쪽부터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보수의 위기’라는 표현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과 2017년 대선을 거치며 보수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는 이명박 정권의 그것과 더해져 보수정권 10년의 실패로 커지면서 보수 적통을 자임하는 자유한국당 내에서조차 ‘보수 궤멸’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보수는 지금’이라는 제목으로 3회에 걸쳐 관련 전문가들과 논문 등을 통해 현재 한국 보수의 상황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보수가 나아갈 길에 대해 살펴본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대선 이후 첫 전국단위 선거인 6.13 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이전 선거라면 이미 영향력을 발휘했어야 할 야권의 ‘정권심판론’은 되레 여권의 ‘야권심판론’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아울러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지지율에 비해 보수야당을 비롯한 야권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나아가 이번 지선을 통해 그동안 유지돼온 정치적 지형을 바꾸겠다는 여당의 강공에 일각에서는 이번 지선은 누가 선거에서 승리할 것인가 보다 선거 이후 정계개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념성향에서의 진보와 보수의 역전 현상은 보수의 위기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말하는 보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진보적 사회학자 고 리영희 전 한양대 명예교수의 저서명으로 널리 알려진 문구다.

리 교수는 이 책에서 “8.15 이후 근 반세기 동안 이 나라는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며 “이제는 생각이 조금은 진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새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광복 이후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해온 냉전적 사고와 편향적 시각에 대해 비판했다.

이처럼 그간 ‘기울어진 운동장’과 함께 진보세력의 수사로만 생각됐던 이 문구가 어느 순간 보수에서도 언급되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클럽 경남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대한민국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새도 양 날개로 날듯이 한 나라도 균형이 중요하다”며 “균형이 깨지면 국민도 나라도 불행해진다.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이 같은 변화는 현재 한국 정치지형에서 달라진 보수정당의 입지를 방증한다. 바로 진보와 보수의 역전현상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념성향에서 지난 2017년 처음으로 보수와 진보의 역전현상이 나타났다.

해당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13년에는 보수 성향이 31%(다소 보수+매우 보수), 중도 성향 46.3%, 진보 성향 22.6%(다소 진보+매우 진보)였던 이념성향은 2017년에는 보수 21%, 중도 48.4%, 진보 30.6%로 조사됐다.

각 연도별로도 2013년 31%에 달했던 보수 성향은 2014년 30.6%, 2015년 26.9%, 2016년 26.2%, 2017년 21%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보였다.

해당 조사는 한국행정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2017년 9월 1일~10월 31일까지 전국 19~69세 남녀 800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8%p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행정연구원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4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지방선거 슬로건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공개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4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지방선거 슬로건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공개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의 실패

이와 같은 진보와 보수의 역전 현상은 그간 보수정당이 쥐고 있던 헤게모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4월, 한국 보수의 적통을 자임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오는 6.13 지방선거의 슬로건으로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내걸었다. 한국 보수가 그동안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안보 이슈를 지선 대전략으로 꺼내 든 것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예전과 달랐다. 더욱이 자유한국당 지선 후보들을 중심으로 당내 반발에도 부딪혔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경제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로 슬로건을 변경하는 등 지선 전략을 안보에서 경제로 급선회했다.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슬로건을 둘러싼 자유한국당내 혼선은 기존 보수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안보 이슈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처럼 안보 이슈가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급진전된 남북관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1월부터 시작된 남북 간 평화무드는 지난 2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이어 4.27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한반도 평화무드에 자유한국당의 안보 드라이브는 과거와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실패 후 역할 못한 보수정당

이 같은 보수의 위기에 대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실패’를 꼽았다.

정치평론가 한국정치아카데미 김만흠 원장은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보수의 위기라기보단 보수정당의 위기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일차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둘러싼 정당이 지금의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이었다. 그 구심점이었던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의 한가운데 있고 탄핵돼 구속된 상황이며 국민 대다수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며 “그렇다면 (보수정당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런데 이 계기를 만들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지금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정당은 현실적으로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탄핵 후 새로 국회가 구성됐다면 정비될 소지가 있었지만, 국회는 이미 박 전 대통령 탄핵 전에 만들어진 국회다. 그런 상황에서 보수정당은 일차적으로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후유증과 여기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의제와 전략그룹 ‘더 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보수 진영에서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실패했다는 걸 대부분 인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없다는 게 제일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실장은 “예를 들어 과거에 이회창 총재가 대선에 실패한 이후, 보수 진영은 이명박·박근혜라는 새로운 리더십이 나왔다”며 “그 당시의 이미지는 이명박은 ‘실용주의’로, 박근혜는 ‘원칙과 신뢰’라는 식의 가치와 인물을 들고 나왔는데 지금은 그게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도 당시 마지막이 좋지 않았지만, 박근혜라는 새로운 리더십의 대안이 있었다”며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이후에는 그게 없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5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6.13 지방선거 선거대책위원회 2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5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6.13 지방선거 선거대책위원회 2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또한 현재 보수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보수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원장은 “단기적으로는 보수정당 대표역할을 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당에 도움되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보수정당의 가장 큰 의미는 국민들한테 믿음직한 안정감을 줘야 하는데 홍 대표가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보수정당이 보수세력의 지지에 있어 구심점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보수 세력도 그동안 보수를 이끌어 왔던 여러 판단 기준이나 가치가 흔들리는 측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보수세력을 중개하는 보수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동안에는 보수정당의 주장과 보수진영 세력들, 보수 유권자들의 생각이 비슷했기에 같이 갔던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홍 대표 등의 주장과 그간 보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주장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이처럼 보수 대표세력이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정립 못하고 있기에 보수진영 스스로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윤 실장 역시 “홍 대표 같은 경우에는 결과로만 보면 패전처리 투수로 나와 대선 때는 20% 정도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역설적으로 족쇄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대선에서 차라리 망해버렸다면 폐허 위에서 뭔가 다시 시작됐을 텐데 지금은 애매하게 기둥이 남아있는 상태”라며 “그렇기에 국민들이 생각하기에는 ‘저들이 완전히 심판받은 게 아니다’, ‘심판을 못 받았으니까 반성도 안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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