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벌레‧고무‧비닐‧종이‧플라스틱 나와도 시정명령
식품위생법 위반 사례 1336건 중 1215건이 시정명령
정부의 솜방망이 기업 제재, 소비자 위한 법 맞나
“소비자 보호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돼야”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의식주 중 식(食)은 소비자와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기대와 달리 식품 내 이물질 검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종이, 고무, 플라스틱, 벌레 등 이물질 종류도 다양하다. 황당하고 혐오스러운 이물질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각종 커뮤니티, SNS에 식품 내 이물질 검출 사례 등을 올려 공유하고 있다.

정부는 식품 내 이물질이 검출될 경우 정부는 기업에 시정명령, 과태료 부과,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내린다. 이물질을 발견한 소비자는 기업이 보다 강한 처벌을 받길 원하지만, 대부분의 행정처분은 시정명령에 불과해 정부의 기업 제재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YTN 캡처

쥐머리부터 장갑까지 식품 내 이물질 사례

식품 내 이물질이란 정상식품이 아닌 물질로 유충, 배설물, 동물의 털, 유리, 금속, 도자기 파편 등이 해당된다. 식품 내 이물질이 혼입됐을 경우, 해당 업체는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정명령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7년 당시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현 민주평화당)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2013~2017년간 3회 이상 식품위생법을 위반 업체’ 자료에 따르면, 이물질 혼입에 따른 식품위생법 위반은 1336건이다. 이 중 1215건(89.0%)이 시정명령 처분을 받았다. 영업정지는 7건, 품목제조정지는 6건, 과징금 13건, 과태료는 16건에 불과했다.

혐오스러운 이물질이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쌀벌레, 플라스틱, 담배꽁초, 개구리, 메뚜기 등이 나왔을 때도 과태료, 영업정지 등의 제재가 아닌 시정명령 처분이 내려졌다.

당시 김 의원은 “이물질 혼입 위반에 대해 솜방망이식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며 “식품위생법 위반에 대한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1년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의 이물질 관련 위해정보 사례 분석을 살펴보면, 2009년 2607건, 2010년 2491건, 2011년 2612건, 2012년 10월말 2174건으로 식품 내 이물질 검출이 매년 지속되고 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아이들도 즐겨먹는 과자에서 쥐머리, 금속성 이물질이 발견됐고 2010년에는 조리된 식품에서 비닐 등 이물질이 검출됐지만 식약처는 해당 제품에 회수 조치를 내리고 유통‧판매를 중지하는 수준의 제재를 내렸다.

이 같은 이물질 사례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하겐다즈는 자사 아이스크림에서 딱정벌레 유충, 고무조각, 비닐, 종이컵 등이 나와 네 번의 시정명령을 받았다. 수차례에 걸친 식약처에 제재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렇듯 식품에서 이물질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시정명령 수준의 처분만을 내리고 있다.

거듭된 식품 내 이물질 발견에 대해 소비자 A씨는 “제대로 점검되지 않은 식품이 팔리고 있어 굉장히 불안하고, 불만스럽다”며 “한 기업의 제품에서 이물질 사건이 반복될 경우 강하게 처벌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 B씨는 “기업은 상품권이나 제품 등을 보내주는 식으로 사고를 ‘퉁’ 치려하지 말고 이물질이 들어간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심해야 한다”면서 “식약처 역시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감독을 철저히 하는 등 각종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시스
대전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난 2014년 6월 17일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 적용 김치류 제조업체인 ㈜동원에프앤비 진천공장에 대해 현장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

이물 검출 사실 신고 안 하는 기업

식품위생법 제46조에 따라 판매의 목적으로 식품 등을 제조·가공·소분·수입·판매하는 영업자는 소비자로부터 판매제품에서 이물질을 발견한 사실을 신고받은 경우 지체없이 식약처 청장, 시·도지사나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소비자원, 소비자단체,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소비자로부터 이물질 발견의 신고를 접수한 경우 식약처 청장에게 통보해야 한다.

이물질을 확인한 시점부터 다음날까지 이물질 발견 신고를 지체할 경우 100만원, 이물질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는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기업도 있었다. 2008년 6월 7일 농심은 라면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했다는 소비자의 민원을 받았지만, 식약처에는 17일이 지나서야 신고했다. 그해 5월 26일에도 한국네슬레는 커피믹스에서 파리가 발견됐다는 소비자의 신고를 접수받고서도 13일이 지나 식약처에 보고했다.

이 같은 사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17년 11월 13일 버거킹 햄버거에서 손톱 모양의 이물질이 검출됐지만 버거킹은 자진신고 의무 대상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물질 사례가 공개된 다음날 식약처는 버거킹에 이물질 혼입 원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회신하라고 전달했다.

이렇다보니 정부의 제재가 과연 소비자를 위한 것인지, 기업을 위한 것인지 물음표가 그려지고 있다.

정부는 안전성이 확보된 과학적 위생관리체계가 잡힌 식품 제조공장에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을 부여하며 먹거리 안전성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HACCP 인증을 받은 제조공장에서 제조된 식품에서도 이물질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확인한 결과, 최근 5년간 HACCP 인증업체 5403개 업소 중 977개가 식품위생법을 위반했다. 이 가운데 5곳 이상 적발된 곳은 39개 ▲4회 이상 54개 ▲3회 이상 89개 ▲2회 이상 217개에 달했다.

HACCP 인증을 받은 제조공장은 2014년 3029곳에서 2018년 5403곳으로 늘어난 만큼 이물질 검출도 끊이지 않고 늘고 있다.

이에 식약처는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물질의 종류와 범위가 광범위해 정부가 개입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인체에 유해한 이물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HACCP 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매일 들여다보고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물질이 고의로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검출 원인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며 “다만, 이물질이 검출되자마자 영업정지, 품목정지 등을 내릴 수는 없다” 말했다.

여성소비자연합 한정숙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집단소송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br>
여성소비자연합 한정숙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집단소송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소비자 보호 위해 법적 체계 강화돼야”

이렇게 지속되는 식품 내 이물질 혼입. 소비자들은 어떤 법적 보호를 받고 있을까.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식품 내 이물질이 들어갔을 경우 기업은 해당 제품을 교환, 환불해줘야 한다. 또 소비자가 이물질로 인한 피해를 받은 경우 이에 따른 치료비 등을 보상해야 한다.

하지만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기는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이물질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받은 경우에는 피해구제 신청, 분쟁조정을 신청해 피해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며 “정신적 피해 보상을 신청하는 이들은 지난해 10명 정도다”라고 말했다. 

앞서 2012년 8월 12일 롯데칠성음료의 스포츠음료 게토레이에서는 구더기로 추정되는 벌레가 발견됐다. 사측은 제품교환, 교통비, 병원비 등의 보상은 해줄 수 있지만, 정신적 피해는 보상해 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식품 내 이물질을 발견한 대부분의 소비자는 기업의 대응에 불만족했다.

지난 2005년 소비자원은 식품 관련 불만, 피해에 대해 사업자에 문제를 제기 소비자를 대상으로 처리 결과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아주 낮다’라고 응답한 건이 1227건(48.1%)으로 가장 많았다. ‘낮다’는 681건(26.7%)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식품 관련 불만 처리 결과에 불만족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66.4%는 교환, 환불 등 보상을 받았음에도 만족도가 낮았다.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이들도 30.1%에 달했다.

녹색소비자연대 김미리 사무총장은 “식품에서 이물질이 검출됐다면 당연히 신고해야 한다”며 “이를 숨긴 이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제조공정, 관리소홀로 이물질이 유입된 기업에게 엄격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면서 “법적인 체계가 만들어지고 강화돼야 한다” 주장했다.

그럼 해외는 어떨까. 미국은 사고예방을 제대로 취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가 고액의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적일 경우 실제 제품의 가격, 손해액보다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로 처벌적 손해배상이라고도 한다. 손해를 끼친 피해에 상응하는 액수만 보상하게 하는 보상적 손해배상만으로는 불법행위가 반복될 수 있다는 이유로 부당행위 예방에 목적을 둔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 등 10인은 2016년 11월 8일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관 상임위에서 심의되지 않고 계류 중이다.

김 사무총장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물질 유입 신고로 끝나는 시스템이 아니라 국회에서 계류 중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이 도입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자시민모임 이수현 실장은 “식품은 안전과 직결돼 있지만, 이물질이 검출될 경우 그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 때가 많다”며 “정부는 행정적 규제를 강화해 기업을 점검‧관리해야 하고, 기업은 이물질 유입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장치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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