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역사왜곡처벌 농성단 대표 김종배 “자유한국당 5·18 폄하·왜곡 발언, ‘역사 쿠데타’”
5·18 역사왜곡처벌 농성단 대표 김종배 “자유한국당 5·18 폄하·왜곡 발언, ‘역사 쿠데타’”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9.05.1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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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18 역사왜곡처벌 농성단 대표 김종배 전 의원
5·18 당시 투쟁위원장…군사법정서 사형선고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해 역사 바로잡아야
“황교안, 사과 없이는 광주 묘역참배 안 돼”
김종배 전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역사왜곡처벌 농성단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종배 전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역사왜곡처벌 농성단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2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주최한 ‘5·18 진상규명 공청회’가 열렸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5·18에 대한 폄하·왜곡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극우인사 지만원씨는 공청회 자리에서 5·18 집단사살의 주범인 전두환씨를 ‘영웅’이라고 추켜올렸다.

5·18에 대한 폄하·왜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씨 등 극우 인사들은 지속적으로 ‘5·18은 무장 폭동’이라거나 ‘5%의 취업 가산점을 받는 5·18 유공자 자녀들이 공무원 자리를 싹쓸이 하고 있다’는 등 왜곡된 정보를 유포하며 5·18을 폄하해 왔다.

더욱이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면서 5·18 유공자들이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군 ‘광수’라고 지목하는 등 광주시민들을 모욕하고 있다.

이 같은 5·18에 대한 왜곡 주장이 이어지자 5·18 유공자들로 구성된 ‘5·18 역사왜곡처벌 농성단(이하 농성단)’은 지난 2월 11일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지씨의 구속과 함께 역사왜곡 처벌법 제정,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제명 등을 요구하며 97일째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5·18 39주년을 앞둔 지난 15일 국회 앞 농성장에서 농성단 대표이자 5·18 당시 시민·학생투쟁위원회 총위원장을 맡은 김종배 전 국회의원을 만나 5·18 당시의 이야기, 김용장씨의 증언,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옛 전남도청 건물 ⓒ투데이신문
옛 전남도청 건물 ⓒ투데이신문

“전두환 사살명령 개연성 충분”

Q. 지난 2월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성단이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지.

2월 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 주최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이 의원이 “북한군 개입 여부를 밝히겠다”며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했다. 같은 당 김순례 의원은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우리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했고 김진태 의원은 영상을 통해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 힘을 모아 투쟁해 나가자”고 말했다. 또 5·18 관련 거짓 정보를 꾸준히 유포하며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씨도 이날 공청회에 참석해 “전두환은 영웅”이라며 5·18을 왜곡했다. 이후 같은 달 11일부터 지씨 구속,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제명, 5·18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 제정 등을 주장하며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Q. 지만원씨 등 극우세력에서는 끊임없이 ‘북한군 침투설’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왜곡·폄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지만원씨는 꾸준히 5·18을 폄하·왜곡하고 있다. 북한군 침투설에 대해 말하자면, 5·18 당시 광주에는 제3공수여단, 제7공수여단, 제11공수여단, 보병20사단, 제31사단, 전투교육 사령부 등 6개 부대가 진압군으로 투입됐다. 이 6개 부대가 타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광주 전역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북한군 600명은커녕 단 한 명이라도 광주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전국으로 비상계엄이 확대됐는데 북한군 600명이 어떻게 광주로 침투할 수 있었겠나. 또 지난 13일 김용장씨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5·18 당시 위성 두 개가 한반도 전역, 특히 북한과 광주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씨 역시 북한군 침투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지씨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것을 주장하는 이유는 후원금을 받기 위해서로 보인다. 거짓정보를 유포하고 강연을 하러 다니면서 후원계좌를 열어 태극기부대나 극우세력을 자극해 후원금을 받는 것이다. 농성단은 지난 4월 11일 지씨를 불법단체 모금, 횡령 등 혐의로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지씨가 만든 ‘야전군사령부’라는 단체는 정관이나 회칙, 단체 명의의 은행 구좌 등을 갖추지 않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을 위반했다. 또 지씨가 불법으로 모금한 후원금을 유용하거나 횡령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 제정을 통해 5·18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이들에 대해 더 강력히 대응하고자 한다.

Q. 지난 13일 전 미군 정보 요원 김용장씨가 ‘5·18 당시 전두환이 직접 광주로 내려와 사살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했다. 집단 발포, 헬기사격 등 자신의 관여 사실을 줄곧 부정해 온 전두환씨의 5·18에 대한 책임을 직접적으로 밝힐 수 있는 증언 아닌가.

지금까지 전두환은 5·18 당시 광주에 내려간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김용장씨가 “시민 사살이 있었던 5월 21일 전두환이 헬기를 타고 광주로 내려가 제1전투비행단 단장실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부대장, 또 불상자 한 명과 회의를 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전두환이 다시 헬기를 타고 돌아간 뒤인 그날 오후 1시 30분경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 사살이 이뤄진다. 정황상 전두환이 광주로 와서 사살명령을 내린 것으로 볼 개연성이 충분하다.

당시 국방부 기록을 뒤져 전두환이 타고 왔다는 헬기를 추적해봤다. 21일 UH-1H(소형헬기)가 국방부를 출발해 오후 12시 40분경 광주에 도착한 것으로 나온다. 원래 헬기를 타면 탑승자를 반드시 기록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형헬기에는 이름이 없이 ‘보안요원 3명’이라고만 기록돼 있었다. 전두환이 탑승했으니 ‘보안요원’이라고 기록하지 않았겠나. 당시 전두환이라고 기록을 했다가 후에 고쳤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전두환이 사살명령을 내렸다고 볼 개연성이 충분하다.

Q. 5·18의 주범들은 ‘사살명령’을 부정하고 있는데.

신군부는 시민 사살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주장해왔다. 시민들이 먼저 무장했기 때문에 자위적 개념으로 발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집단 발포 당시 시민들은 전부 비무장상태였다. 시민 수십만명이 운집한 도청 앞에서 군인들이 ‘앉아쏴’ 자세로 총을 쏴 시민들을 사살했다. 그 현장에서 67명이 즉사하고 300명 이상이 총상을 입었다. 당시 집단발포는 명령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당시 최고의 실권자는 전두환이었고, 전두환이 다녀간 바로 즉시 발포됐기 때문에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만약 전두환이 사살명령을 내린 것이 분명히 밝혀지면 우리는 전두환을 살인죄로 고소할 것이다. 그리고 전국적인 고발인 운동을 벌일 것이다. 또 시신 가매장 등의 문제도 시체유기로 고소·고발을 진행할 계획이다.

Q. 김용장씨는 계엄군이 이른바 ‘편의대’를 광주로 침투시켜 광주시민들을 선동하고 사전에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편의대의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당시 광주에서는 12·12 사태와 5·17 내란을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찬탈 행위에 대해 분노한 시민들이 ‘정치일정 단축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김용장씨는 5·18 때 ‘편의대’가 내려와 사전에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진행했다고 했는데, 시민들은 21일 집단사살 이후 스스로 무기고를 털어 무장했다. 무장도 안 한 시민들이 사살된 것에 분노해서 ‘스스로’ 무장한 것이다. 편의대가 무기고를 털어 시민들에게 총을 나눠줬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물론 편의대가 활동을 했겠지만, 편의대 몇십명이 수십만의 광주 시민들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었겠나. 절대 그들의 각본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Q. 허장환씨는 5·18 당시 계엄군이 희생자들의 시신을 가매장·소각하고 일부는 해양투기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가매장된 희생자들의 신원은 확인이 됐는지.

당시 광주에서 시위를 확산하기 위해 시민들이 버스 3대를 이용해 나주 등 인근 지역으로 이동한 일이 있다. 그러나 당시 계엄군이 광주를 둘러싸고 지키고 있었다. 계엄군은 이 버스에 타고 있던 이들에게 총을 쏴 사살했다. 계엄군이 희생자들의 시신을 지키고 있어 시민들이 이를 수습하지 못했다. 계엄군은 희생자들을 인근에 가매장했다. 이후 5·18이 진압되고 나서 신군부는 가매장 한 좌표를 확인하고 시신을 파내 지문 검사를 했다고 한다. 허장환씨의 증언에 의하면 계엄군은 ‘북에서 침투한 사람이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검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문검사를 했다면 신원 파악이 모두 됐을 것 아닌가. 가족들을 찾아줘야 하는데 계엄군은 시신들을 광주 국군통합병원에서 벙커C유로 화장해버렸다. 소각된 시신들은 광주시청의 청소차를 이용해 시 외곽에 버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해양투기를 했다고도 한다. 허장환씨 증언에 의하면 약 200명이 그렇게 처리됐다. 당시 신고된 실종자 수가 200명이 넘는데,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허씨의 증언을 보자면 당시 화장 처리된 시신들이 실종자들이 아닐까 한다.

김종배 전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역사왜곡처벌 농성단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종배 전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역사왜곡처벌 농성단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투데이신문

“전남도청서 계엄군에 맞서 항전”

Q. 당시 총위원장뿐만 아니라 장례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장례위원장으로서 희생자들의 시신 처리에 대해 말한다면.

당시 광주는 날씨가 더웠다. 또 시신을 보관할 냉장고도 없었다. 무엇보다 희생자 시신을 계속 방치할 수 없었다. 그래서 희생자들을 명예롭게 보내드리기 위해 27일 금남로에서 시민장을 치르기로 계획돼 있었다. 합판으로 짠 관을 어렵게 마련해 시신을 입관하기도 했다. 그러나 27일 새벽 계엄군이 도청에 들어오면서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때문에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내년 성대하게 시민장을 치를 생각을 하고 있다.

Q. 무기를 탈취한 뒤 계엄군에 진압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달라.

계엄군은 21일 시민들을 집단사살 한 뒤 그날 오후 시 외곽으로 철수했다. 그래서 시민군은 하룻저녁을 무장한 채 지냈다. 당시 시민군은 사고발생을 우려해 무기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당시 학생대책위에서 무기 회수관을 만들어 차에 싣고 돌며 무기를 거의 다 회수했다. 21일 대책위가 무기 3000정 이상을 회수했다. 회수된 무기는 반납하지 않고 전남도청 지하에 보관하고 있었다.

당시 대책위는 계엄군에 무기 반납을 위해 광주 시민이 폭도가 아니라는 사실 공개적 인정, 구속된 학생·시민 전원 석방, 사망자·부상자에 대한 충분한 피해보상 및 치료 약속, 희생자 장례식을 시민장으로 치를 것 등 4가지를 요구했는데 이 중 어느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처음에 광주에서 지도부가 구성됐을 때,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어 의견충돌이 있었다. 당시 온건파는 ‘더 이상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전남도청에 보관하고 있는 무기를 반납하고 투항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강경파는 ’많은 시민들이 희생되고 우리의 요구사항은 아무것도 관철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투항할 수 있느냐‘고 맞섰다. 당시 광주 시민들도 무기를 반납하는데 반대했다. 결국 강경파의 주장이 힘을 얻었고 온건파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대책위는 ‘우리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를 반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또 무엇보다 당시 시민들이 무기 반납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기를 회수해 보관하고 있던 중 5월 27일 새벽에 계엄군이 시민군을 진압했다. 5·18 당시 전남도청에는 시민군 400~500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계엄군이 진압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어린 학생과 여성 대부분을 귀가시켰다. 그리고 ‘싸울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남아 싸우자’고 해 200여명이 도청에 남아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엄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항전을 하다가 시민학생대책위원회 대변인이었던 윤상호씨 등 17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또 YWCA나 공원에서 숨진 사람들을 포함하면 23~24명 정도가 현장에서 숨졌다.

Q. 5·18 이후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재판 진행과정은 어땠는지.

학생 수괴, 폭도 수괴로 재판을 받았다. 계엄군이 도청을 진압한 27일 감옥으로 끌려가 다 헤진 군복을 입고 개, 돼지 취급을 받았다. 포로수용소 같은 생활을 했다. 변호사도 선임할 수 없었다. 사형이 구형된 후 최후 진술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돌보고 지킨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했다. 나의 최후진술에 법정 안에 있던 군인들까지도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추후 감형을 받아 감옥에서 3년을 살고 나왔다.

Q.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당내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평가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황 대표가 5·18 국가기념일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라고 보고 찬성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이 5·18 문제에 대해 망언을 한 김진태·이종명·박순례 등 3명 의원에 솜방망이 징계를 내린 것을 진정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나는 황 대표가 이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사죄를 하고 광주로 가야지, 전혀 사과하지도 않고 5·18 기념행사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5·18 묘역을 더럽히는 행위라고 본다. 아주 정략적으로 접근한 저열한 발상이라고 보고 있다. 광주에 가서 매를 맞고 타 지역을 자극해 호남을 고립시키려는 정치적이 전략이 있다고 본다. 황 대표에게는 5·18 영령들 앞에 설 떳떳한 명분이 전혀 없다. 정말 황 대표가 기념식에 참여하려고 한다면 5·18 망언을 한 당내 의원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징계를 내리고 국민과 5·18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내려가서는 안 된다.

5·18 역사왜곡처벌 농성단이 지난 4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18 역사왜곡 상습범 지만원 즉각구속’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5·18 역사왜곡처벌 농성단이 지난 4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18 역사왜곡 상습범 지만원 즉각구속’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5·18 진상조사위, 어떤 형태로든 빨리 꾸려져야

Q. 5·18 피해자, 희생자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가장 마음 아픈 것이, 이곳 농성텐트에는 5·18 당시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분들이 지금은 거의 60세가 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분들이 지금 50대 후반이다. 다들 백발이 성성하다. 이 분들은 매일 약을 한 주먹씩 먹고 있다. 또 5·18 유공자 40%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지만원씨 같은 사람은 ‘5·18 유공자들이 연금을 받으며 세금을 축내는 괴물 집단’이라고 거짓 주장을 한다. 그러나 당시 부상자들의 치료를 위해 의료 혜택은 받고 있지만 유공자들은 연금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 나도 5·18 이후 학교에서 쫓겨나 1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제대로 취직이 됐겠나. 다들 취직도 못하고 힘들게 살았다. 요즘엔 유공자들이 택시기사, 대리기사 등 운전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실정인데 어떻게 우리가 세금을 축내는 괴물집단인가. 예우는 못해줄망정 그런 폄하발언을 해서 되겠나.

Q. 5·18에 대해 잘 모르는 세대들이 극우세력이 흘린 왜곡된 정보를 접하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때문에 책을 발간하는 등 교육 자료를 만들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극우세력은 젊은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 ‘5·18 유공자 자녀들이 5%의 취업 가산점을 받아 공무원 자리를 싹쓸이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실제 공무원 합격자 중 5·18 유공자 자녀들의 비중이 크지 않다. 또 취직도 제대로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렵게 살고 있는 5·18 유공자들은 자녀 교육을 그렇게 많이 시키지도 못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취업난을 격고 있는 젊은이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피눈물 나는 이야기다.

Q.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조사위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국회에서 진상규명 조사위원을 추천하도록 돼 있다. 그동안 자유한국당에서 추천한 사람들의 자격을 두고 논란이 있었고 대통령이 거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진상규명에 참여할 수는 없지 않겠나. 반대의견을 펴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자유한국당에서 추천한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진상조사위를 꾸려야 한다. 그동안 5·18 관련해서는 과거 88년도에 국회 청문회가 있었다. 그때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많은 진상들이 드러났다. 그 이후에 국방부 내에서 진상조사위를 꾸려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새로운 기록들이 나오고 양심선언도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사살명령자, 행방불명자 등에 관한 진술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 그래서 강제로 구인해 수사를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조사위를 빨리 결성해 진상조사를 하고 필요한 경우 고소·고발을 통해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Q. ‘5·18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 제정도 시민사회·정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특별법의 필요성을 말한다면.

지만원씨 같은 사람이 ‘북한군 600명이 광주로 침투했다’는 등의 거짓말을 태극기집회에서 퍼뜨리고 있다. 이걸 가만히 놔둬야 되겠나. 심각한 역사 왜곡이고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5·18 정신을 훼손하는 망언이다. 이걸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곳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것도 지씨의 발언 때문이다. 지씨를 잡아다가 혼내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현재 5·18에 대한 왜곡·날조를 처벌하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어떻게 보면 자유한국당 공청위에서 있었던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나 행위들을 보면 ‘역사 쿠데타’ 아닌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서 이미 다 정리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심각한 자기부정이다. 처벌법이 꼭 통과돼 우리 역사가 바로 설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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