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경기 파주시의 한 양돈농장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7일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경기 파주시의 한 양돈농장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경기 파주시·연천군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African Swine Fever) 확진 사례가 발생한 가운데 확산 방지를 위한 ‘예방적 살처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은 채 ‘생매장’이 이뤄져 비판이 일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ASF는 전염성이 높고 감염 시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질병이다. 

ASF가 확진되면 확산을 막기 위해 해당 농장뿐만 아니라 인근 농장의 돼지들까지 모두 살처분된다. 중국, 북한, 베트남, 캄보디아 등 한국보다 ASF가 먼저 발생한 국가들에서는 최근 돼지 수백만 마리가 살처분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7일 ASF가 확진된 파주의 양돈농장과 농장주 소유 2개 농장의 돼지 4927마리를 살처분했다. 또 18일 ASF가 확진된 연천 양돈농장과 반경 3km 이내 농장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한다. 이로 인해 확진 농장을 포함한 연천 4개 농장의 돼지 1만732마리가 살처분 된다. 20일 기준 ASF 확진으로 살처분되는 돼지는 총 1만5659마리다. 농식품부는 이날 오전 6시 기준 1만372마리를 살처분했다고 밝혔다.

농식품부의 ASF 긴급행동지침(SOP)는 동물보호법 제10조에 따라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인도적 살처분을 시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동물종에 따라 전살(電殺)법, 타격(打擊)법, 가스법(이산화탄소 등을 이용한 안락사), 약물 사용법 등의 방법 중 현장에서 적용이 쉽고 신속히 완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실시해야 하며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즉각적인 의식 소실을 유도해 의식이 소실된 상태에서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살처분 과정에서 돼지의 의식이 소실되지 않은 채 ‘생매장’이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살처분에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안락사한 뒤 섬유강화플라스틱(FRP) 소재 대형 탱크에 사체를 넣어 묻는 방식이 사용됐다. 임시 우리로 돼지들을 몰아 이산화탄소 가스를 주입해 안락사한 뒤 FRP 탱크에 옮겨 매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안락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의식이 있는 돼지를 생매장한 정황이 드러났다. <오마이뉴스>의 지난 18일 보도에 따르면 17일 파주에서 진행된 살처분에서는 이산화탄소 주입에도 의식을 잃지 않은 돼지들이 추가 안락사 과정 없이 산 채로 탱크에 옮겨졌다.

SOP는 ‘가스에 대한 반응이 약하거나, 의식을 회복했거나 의식회복이 의심되는 경우 보조방법을 이용해 죽음을 유도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살처분 과정에서 안락사하지 않은 돼지들은 추가조치 없이 그대로 매장됐다. 명백한 가이드라인 위반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는 18일 성명을 통해 “방역을 예방적 살처분에 의존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으로서는 더 많은 생명희생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전파경로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반경 3km 이내 기계적 살처분을 최선인 양 대책으로 내세우는 모습은 무능을 넘어 생명경시의 점철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예방적 살처분 희생은 최소화 돼야 하며 피치못해 이뤄지는 살처분은 의식의 소실 뒤 고통을 경감시키는 최선의 조치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이드라인 미준수에 대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ASF로 인한 살처분 과정에서도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보도된 만큼 철저한 이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살방법을 규정한 동물보호법 제10조는 위반 시 처벌조항이 없다.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위반해도 처벌은커녕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카라 정책팀 최민경 활동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부에서 발표한 지침이 있는 상황임에도 현장에서는 지침대로 이행이 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돼지들이 살처분될 텐데 처벌규정이 없이는 현장에서 이행을 강제하기 어렵다”고 처벌조항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불가피한 경우 이뤄지는 살처분에도 가이드라인에 따른 인도적 살처분이 이행돼야 한다. 이를 강제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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