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가 23일째 고공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국회의사당역 6번출구 캐노피에서 소방대원이 안전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28일 오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가 23일째 고공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국회의사당역 6번출구 캐노피에서 소방대원이 안전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고공 단식농성에 돌입한 지 23일째에 접어든 가운데 개정안 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씨는 지난 2일 국회 앞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캐노피 위에 올라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와 최씨가 국회 앞에 농성장을 마련한 지 730일째 되던 날이었다.

최씨는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개정안 통과를 국회에 촉구하며 캐노피 위로 올랐다. 그는 28일까지 물과 소금, 약간의 효소만으로 연명하며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지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당시 내무부 훈령 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조치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 지침’에 근거해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장애인, 무연고자를 비롯한 시민을 강제 소용·불법 감금한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에서는 강제노역·폭행·성폭력·살인 등 인권유린이 자행됐으며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513명에 달한다.

피해당사자인 한 대표는 지난 2012년부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러다 2017년 11월 7일 최씨와 함께 국회 앞에 농성장을 마련하고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해왔다.

노력의 결과로 지난 19대 국회에서 진선미 의원이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대표발의 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진 의원은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 의지를 보이면서 개정안에 포함돼 논의됐다.

개정안은 지난 10월 22일 소관위인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남은 것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뿐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조사위원의 구성을 두고 반대의견을 폈다. 조사위원 총 15인(국회 선출 8인, 대통령 지명 4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돼 있는 현행법을 조사위원 총 9인(여·야 각 4인, 국회의장 1인 추천)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 차가 패스트트랙 정국과 맞물리면서 법안 통과가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최씨는 고공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이어 진 의원과 이재정·홍익표 의원 등이 농성장을 찾으면서 법안 통과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홍 의원은 지난 26일 농성장을 찾아 최씨를 만난 뒤 한국당의 수정안을 받아들여 위원회 구성 방식을 바꾸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도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원내대표들끼리 화상회의를 했는데, 나경원 원내대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며 “한국당 안을 받아들였으니 우리로서는 후퇴할 길이 없다. 한국당 의원들이 통과시켜 줘야 한다”며 법안 통과의 절박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5·18이나 세월호 조사위원도 9명 아닌가. 그런데 거의 무산에 가깝게 1년 가까이 조사위원을 꾸려주지 않았다”라며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할 수 있는 위원회라도 빨리 설치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수정안 수용 이유를 밝혔다.

28일 오전 국회의사당역 6번출구 캐노피에 설치된 농성장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가 23일째 고공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28일 오전 국회의사당역 6번출구 캐노피에 설치된 농성장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가 23일째 고공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수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이 된다면 최씨도 고공 단식농성을 해제하고 내려올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최씨가)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내려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올라갔다”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검찰총장·부산시장의 사과, 부산시의장의 ‘훌륭한 당사자 운동’이라는 찬사와 진상규명 약속,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특별법 제정 권고까지 받아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총장과 부산시장의 사과, 인권위의 권고가 나올 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음에도 국회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회에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고공 단식농성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사회적 합의가 되고 인권위 판단까지 나왔음에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피해생존자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누군가 죽어야 해결이 된다면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이번 회기에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피해생존자들은 또다시 의원면담, 발의, 법안심사, 공청회 등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피해생존자들의 고통은 더욱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오는 29일 오전 법사위가 예정돼 있다. 여기서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12월 2일 예산안, 3일 패스트트랙 상정과 맞물려 난항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여야가 수정안에 대한 합의를 이룬 시점에서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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