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현관 지붕에 올라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승우 씨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가 과거사법 통과에 합의하자 농성을 중단하고 지상에 있는 동료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의원회관 현관 지붕에 올라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승우 씨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가 과거사법 통과에 합의하자 농성을 중단하고 지상에 있는 동료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여야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법)’ 개정안을 20대 국회 임기 종료 전 처리하는데 합의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한 내용이 피해자들의 요구와 달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 활동을 통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가폭력 진상규명 위해 과거사법 개정 필요

형제복지원 사건은 지난 1975년부터 1987년 사이에 일어난 인권유린 사건이다.

당시 내무부 훈령 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조치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 지침’에 근거해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장애인, 무연고자를 비롯한 시민을 강제 소용·불법 감금한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에서는 강제노역·폭행·성폭력·살인 등 인권유린이 자행됐으며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513명에 달한다.

국가는 부랑인 단속에 경찰 승진 가산점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승진을 위해 부랑인 단속을 강화하고 부랑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도 마구잡이로 잡아갔다.

단속을 통해 끌려간 시민들은 부산시로부터 부랑인 수용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인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 됐다.

형제복지원은 국가와 부산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됐으나 국가는 결산보고, 안전점검, 교육 실효성, 원생에 대한 행정지도, 감사 등 위탁운영에 대한 감시를 전혀 하지 않았다.

국가와 지자체의 묵인 속에 형제복지원에서는 강제노역은 물론 폭행, 성폭력 등 가혹행위와 인권유린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구타와 가혹행위 등으로 사망하는 이들도 많았다.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지난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특수감금,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횡령), 초지법 위반, 건축법 위반,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1989년 7월 대법원은 이 사건의 재상고심에서 “수용자들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취침시간에 자물쇠로 철문을 잠그고 행동을 제한한 것은 사회복지사업 등 법령에 의한 정당한 직무로서 감금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특수감금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나머지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이 때문에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인권유린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박 원장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채 형제복지원을 매각하고 아파트를 건축하면서 부지 매각대금으로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 박 원장은 그렇게 호의호식하다가 지난 2016년 사망했다.

이 같은 인권유린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지난 2005년 과거사법 제정을 통해 과거사위가 출범했으나 2010년 활동기간이 종료되면서 해산했다. 때문에 형제복지원 사건 등 과거사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과거사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지난 2019년 11월 28일 오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가 23일째 고공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캐노피. ⓒ투데이신문
지난 2019년 11월 28일 오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가 23일째 고공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캐노피. ⓒ투데이신문

두 차례 고공 단식농성…마침내 여야 합의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이하 피해자모임) 한종선 대표는 지난 2012년부터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후 2017년 11월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와 함께 국회 앞에 농성장을 마련해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피해생존자들의 노력에 지난 19대 국회에서 진선미 의원이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대표발의 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진 의원은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 의지를 보이면서 과거사법 개정안에 포함돼 논의됐다.

그러나 여야의 의견 차로 과거사법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최씨는 지난해 11월 6일부터 29일까지 국회 앞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이 다가오는데도 과거사법 통과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최씨는 지난 5일부터 국회 의원회관 현관 지붕에 올라 두 번째 고공 단식농성을 벌였다.

최씨가 재차 농성에 돌입하자 국회가 움직였다. 지난 7일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 여야 간사가 임기 내 통과를 합의한 것이다.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과 야당 간사인 미래통합당 이채익 의원은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법안을 본회의에 올린 뒤 통합당 의견을 반영한 수정안을 내 처리하는데 합의했다.

원안은 과거사위를 위원 15인으로 구성하고, 조사기간을 4년(연장 2년)으로 했다.

하지만 이번 여야 합의로 마련된 수정안에 따르면 과거사위 구성은 위원 9인(대통령 지목 1인·국회 추천 8인)으로 축소하고 조사기간도 3년(연장 1년)으로 축소했다. 청문회도 공개에서 비공개로 바뀌게 됐다.

여야가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합의하자 같은 날 최씨도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땅으로 내려왔다.

최씨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야 합의로 과거사법이 통과하게 돼 기분은 좋고 감회는 새롭지만, 본회의가 열리고 법이 통과되면 축하를 받아야 할 것 같다”며 “법이 통과돼야 진실규명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고공 단식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식농성은 중단하지만 통과될 때까지는 국회 앞 노숙농성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사법이 통과되더라도 피해생존자들이 원하는 구성이 아닌 통합당의 주장이 반영된 수정안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또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형제복지원·선감학원·서산개척단 등 36개 강제수용 시설과 제주 4·3, 광주 5·18,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등 국가폭력 희생자가 너무나 많은데 이에 대한 조사를 3~4년 안에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위원 수도 15인에서 9인으로 축소돼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려면 21대 국회에서 위원회 구성, 조사기간 등에 대한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피해생존자의 처절한 투쟁으로 마침내 과거사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의 첫 단추가 끼워졌으나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과거사위 활동을 통해 피해자들의 한이 풀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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