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작가. ⓒ김종근 칼럼니스트
박대성 작가. ⓒ김종근 칼럼니스트

작은 산이란 뜻의 소산.

박대성 화백의 아호(본명 외에 갖는 호(號))다. 그의 호는 소박하고 수수하다.

그는 수묵담채로 독창적이면서 단아하고 매력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우리 화단의 몇 안 되는 작가다. 1970년에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수묵의 운필로만 30년의 화력을 가지고 있다. 박대성 작가의 재주는 그림뿐 아니라 뛰어난 필체를 자랑한다.

현월1, 219x125cm, 2008
현월1, 219x125cm, 2008

우리나라는 파벌이 난무하지만, 그는 그만의 화풍으로 입신한 걸출한 작가이자 자수묵 작업으로 한국회화를 이끌어 온 겸손한 화가다. 

3층 건물을 툭 터놓은 듯한 높이의 천정. 운동장 같은 화실에 펼쳐놓은 그의 풍경들을 마주치면서 역시 소산은 작은 산이 아니고 큰 산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에 표현적인 특징은 여러 부분에서 조망과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우선 실제 경치를 수묵으로 번안 해내는 과감한 필치와 거침없는 해석에 있다.

이러한 그의 풍경에 대한 역량은 1978년 그의 나이 33살에 중앙일보 미술대전에 장려상을 받은 <추학>이란 작품과 1979년 그의 예술에 있어 확실한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 <상림>이란 전형적인 실경산수 풍의 그림에서 화려하게 떠올랐다.

이 작품들은 당시, 안정된 구도와 대기감이 충만하게 넘치는 사실력과 구성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실경산수화다. 

그의 작품 중 1980년 후반에 그려진 ‘청오동’(197x98cm)과 ‘방앗간’(191x97cm)은 수묵과 운필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방앗간>에서 보이는 먹의 농담이나 발묵(먹물이 번지어 퍼지게 하는 산수화법)은 먹과 담채(물감을 엷게 칠해서 산뜻하게 채색한 수채화 기법)의 쓰임, 그 경쾌한 붓놀림에서 회화미의 정수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먹은 채색의 가치를 능가한다는 오채(五彩:색채의 음양오행)의 신비로움을 다시 먹을 통해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경주에 머물면서 불국사를 모델로 한 일련의 연작 작업에서 수묵에의 깊은 경도된 의식을 작품 전체에서 보여준다. 

박 화백이 1994년 뉴욕 소호에서 반년간 체류하면서 체험했던 뉴욕 생활 이후라는 점을 감안 한다면,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참다운 미를 보기 위해 고뇌했던 모습들이 불국사 진경에 떠오른다.

현송, 1000x280cm
현송, 1000x280cm

단조로운 색채를 부드럽게 조화시킨 수묵만이 지니는 담백함의 미를 충실하게 보여줬던 소산은 그 시기에 어쩌면 수묵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불국사의 석가탑과 대웅전 거기서 그는 약 2년간 머물면서 불국사를 중심으로 한 계림의 풍경 등 주변의 풍광을 묵운(墨韻:동양회화에서 벽의 농담, 흐림 등을 취하는 수법)으로 충실하게 묘사했다.

특히 이 시기에 그는 불국사를 전경을 담은 <천년배산(千年拜山)> (240x900cm) 에 달하는 대작 3점을 남기고 있다. 8m에 육박하는 거대한 스케일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물론 그의 불국사 시절의 이런 괄목할 만한 작업과 크기 그리고 노송 표현의 극치를 보여주는 먹의 쓰임새는 단연 소산만이 가지는 독보적인 먹의 파선과 사의(寫意:동양화에서 화가의 생각이나 의중을 그림에 표현하는 화법)에 찬 풍경들이다.

대범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에게 검은 모습의 불국사가 주는 장엄함과 통일감 있는 건축미를 그의 그림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운(氣韻:서화의 아담한 멋)보다는 형사(形似:동양화에서 대상의 형태를 정확하게 닮도록 표현하는 것)를 중시한 화풍에서 그 당시의 작품들이 다소 실경(실제의 경치나 광경)의 묘사나 대상을 옮기는데 민감했음을 엿볼 수 있다. 

월영,152x138cm,2010
월영,152x138cm, 2010

최근 보이는 수묵담채의 작품들은 경주시대 이후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의 그림을 보면 어디서든 쉽게 특징적으로 다가오는 뛰어난 필묵과 거침없이 숙련된 기법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혼을 담아내는 붓질 중의 하나가 서체이며 그 획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서예를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가 잘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필선의 리듬인 선을 강조하고 그것을 매우 숭상한다. 그의 필체는 자신에 차 있고 분명하다. 그가 이번에 보이는 것 중 여전히 그의 필력을 극명하게 확인시켜주는 것은 안동의 병산 서원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에서 확인되듯이 그는 여전히 강한 먹선으로 산과 강 그리고 서원의 형태를 균형 있게 배치하며 단순 간결하게 풀어낸다.

여기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거리감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원근 기법이다. 그가 실경산수에서 즐겨 쓰는 전면에 나무를 배치하고, 원경에 풍경을 배치하는 기법은 그의 회화에 종종 쓰이는 기술 가운데 하나다.

예외 없이 가까운 풍경은 더욱 가깝게, 그리고 원경은 더욱 멀리 표현함으로써 실경 산수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과장과 생략의 한국적 자연미를 보여준다. 

현율, 122x260cm, 2008
현율, 122x260cm, 2008

이러한 화풍은 <겨울>이란 작품에서 보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으로 묘사돼 그가 화면 속에서 감성적인 부분을 이입하려는 노력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화면 중심에 정자가 사실적인 기법으로 위치하고 전경은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채 매서운 바람이 배경을 몰아치고 다시 근경에는 전혀 비현실적인 원근법 풍으로 나룻배 하나가 왜소하게 놓여 있다.

여기서 보면 우리는 그가 실제 실경의 화법을 가지면서도 구성과 구도에서는 얼마나 머뭇거림 없이 유연하게 파격적인 시점을 화면 속에서 행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여백을 다룸에 있어도 전면을 배짱 있게 내버려 둠으로써 그곳에 생명의 기운이 느끼게 하는 비법을 곳곳에서 드러내 보인다.

구룡폭포를 묘사한 작품을 보자. 그의 변형과 단순화는 물론 힘차게 먹의 내리치는듯한 용필로 폭포는 이미 장중함과 산세의 운동감과 조화 속에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는 그런 화풍을 구사하면서도 마치 청전의 부드러움과 여성미, 소정의 거친 붓 터치와 부벽준(산수화에서 도끼로 찍은 듯한 자국을 남겨 표현하는 동양화 준법)에 기초한 남성미를 아우르는 탁월한 기교를 발휘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회화에서 지속적으로 주시해 볼 그것 중 하나는 주저함이 없는 과장과 자연 즉 대상을 바라보는 시형식에 보이는 대범함과 파격적인 구도다.

불국사, 300x1200, 2004
불국사, 300x1200, 2004

이 그림은 금강산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 구성에서는 다른 작가에게서도 쉽게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의 작품에서도 예를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표현 양식의 구성이라는 점이다.

금강산을 바라보는 다시점의 표현법은 새롭다. 

다시점(여러 시점)이나 부감법(높은 곳에서 비스듬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리는 방법)의 시각을 취하면서 일정한 소실점으로 모아지는 기법, 산을 형상화 하는 소산의 방법은 꽤나 신선하다.

나는 그의 거칠고 힘있게 내리뻗은 금강산의 산세. 남성적인 거친 필치들을 보면서 때로는 여성적인 언덕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가 화면에 조화를 충실하게 꾀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나는 다시 한번 갖게 된다.

여느 작가에서 보이지 않는 독자적인 시각, 광각렌즈를 통해서 잡은 듯한 굴절되고 변형된 산 그 가운데 북종화가(중국 회화에 있어서 이대 유파(流派)의 하나)들이 즐겨 썼던 준엄한 필치와 필묵, 그리고 낮은 언덕에서 남종화가 들의 필체처럼 우아하고 부드러운 필치로 개혁적인 동양회화의 경지를 열어 보임은 지켜볼 만하다.

금강전도, 168x137cm, 2009
금강전도, 168x137cm, 2009

천하명산이라 불리는 금강산의 절경은 이미 예로부터 많은 문인이나 화가들에게 동경이나 표현의 대상이 된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꽃피우면서 한국 산수 나름의 특성을 내세운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소산이 그린 금강산의 풍경과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 와의 시간과 세월의 간격을 우리는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금강산 여행기를 횡으로 길게 그린 작품인데 이 그림은 동해의 장전항에서 부터 온정리를 지나 외금강, 그리고 삼선암 만물상, 삼일도 해금강, 명사십리, 신계사 그리고 조선 후기부터 많은 대가들이 그렸던 옥류동 계곡 비봉폭포, 구룡폭포까지 이르는 금강산의 절경을 한 폭에 담아내고 있다.

그는 이 작업을 1년이 넘게 에스키스(초벌그림)를 하고 금강산을 3번씩이나 넘나들며 이 그림을 완성했다.

10m가 넘는 대작들을 몇 번 해본 그에게 이렇게 금강산의 아름다운 비경을 실사(實寫:실제 현실로 존재하는 이미지를 지칭)의 방법을 취하면서 적재적소에 꽃을 그려놓는 기법은 볼만하다.

현향, 190x450, 2009
현향, 190x450, 2009

딱딱하고 지루해하기 쉬운 것과 무미건조한 풍경을 그린 그림이 바로 산수화다. 하지만 소산은 그 지루함과 답보적인 방식을 다양한 꽃의 표현으로 해소한다. 

여기서도 소산 그 특유의 멋과 운치를 우리는 유감없이 발견할 수 있다.

그림은 금강산을 가면서부터의 여행기 묘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이 그림 속에는 그의 다양한 필법과 구성의 총체적인 역량을 집결시킨 흥미 있는 작품이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그곳에 진달래꽃과 할미꽃 명사십리(함경남도 원산시의 동남쪽 약 4km 지점에 있는 모래사장)가 끝나는 곳에 해당화 꽃, 금강초롱이며 도라지꽃, 그리고 구절초와 매화 등이 이 그림이 가지기 쉬운 단조로움을 잊게 해준다. 
 
나는 그의 그림에서 보이는 수묵화에의 우직함과 미련스러움을 좋아한다.

또한, 주저함 없이 한 획으로 묘사를 완결하는 당찬 운필에 주목한다. 

<금강산 전도 화첩>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금강산의 기묘한 정취가 지루함 없이 보일 수 있는 매력과 그 산수화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소산의 통찰력을 신뢰한다.

그것은 마치 송의 하규(夏珪:원체산수화를 대표하는 중국 남송 때의 화가)가  <장강만리도권(長江萬里圖卷)>을 그렸던 것처럼 작은 산과 개울을 지날 때도 닮은 곳이 없을 정도로 소산은 다양한 표현을 적재적소에 구사하고 있다.

때로는 풍요롭고, 날카로우며, 작은 계곡과 큰 산이 통일감 있게 같은 화폭에서 살아나는 기술들이 계곡과 폭포가 조화롭게 소산의 붓끝에서 되살아난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그의 회화의 화품(畵品:회화 작품의 품격)모두를 평가하고 싶진 않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이 좀 더 생동감이 있게 살아 움직이는 풍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그런 화풍을 보여주지 않았다.

언제나 그의 붓질은 힘차고 단호했지만, 선의 긴장감과 역동성은 감추며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그림에는 좀처럼 살을 에는 바람도 불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봄바람도 요동치는 격정의 나무풍경도 없었을 때다. 나는 나의 이런 욕심이 참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느낀다.

나는 이제 화실을 빠져나와 내 뒤를 뒤따라온 세 폭의 금강산 화폭 앞에서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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