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1.5% 인상된 ‘8720원’
공익위원 “노사 간극 좁히고자 최선 다해”
노동계 “최저임금 도입 이래 최악의 인상률”
경영계 “소상공인 부담 줄이려면 최소 동결”

ⓒ뉴시스
14일 최저임금위원회가 2021년 최저임금을 8720원으로 의결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악화로 노사 모두 어려움을 호소해 내년도 최저임금 산정은 그 어느해보다 난항을 겪었다.

그리고 14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21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5% 인상된 8720원으로 최종 의결했다.

이번에도 노사 모두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이번 인상률은 최저임금 도입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해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그간 삭감안을 주장해온 경영계 역시 불만족스럽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왼쪽부터) 지난 9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와 한국노총 이동호 사무총장 
(왼쪽부터) 지난 9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와 한국노총 이동호 사무총장 

인상안 vs 삭감안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모인 최저임금위원회를 둘러싼 공기는 그 어느 해보다 무거웠다.

노사는 본격적인 최저임금 논의에 앞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상황의 어려움을 앞다퉈 피력했다.

노동계는 저임금 노동자 보호를 위해 최저임금의 역할을 더욱 높여야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경영계는 지난 3년간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코로나19 사태가 겹쳐 치명타를 받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양측의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은 제4차 전원회의에서 공개됐다.

당초 민주노총은 지난 6월 18일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요구안을 논의를 거친 후 최저월급으로 225만원을 제시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1만770원으로, 올해 8590원보다 25.4% 인상된 금액이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협의해 노동계 공동의 요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으나 한국노총은 취약계층에게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인상은 반드시 인상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금액”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양대 노총은 합의에 따라 올해보다 16.4% 인상된 1만원이라는 단일안을 내놨다.

근로자위원 대표인 한국노총 이동호 사무총장은 “과거 IMF 경제위기와 국제 금융위기 때도 최저임금은 최소 2% 후반대 인상률을 기록했다”며 “올해 코로나19 사태에도 대기업 임금 인상은 이를 넘어선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이보다 낮게 인상될 경우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오늘 삭감이나 동결이 아닌 인상안으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전했다.

반면 경영계의 단일 요구안은 올해보다 2.1% 삭감한 8410원이었다.

사용자위원 대표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는 “지난 3년간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과 중소 영세 사업장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며 “최근 경영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 최저임금 동결 혹은 인하를 촉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내년도 최저임금은 확실한 안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서로가 제시한 금액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익위원들은 노사의 최초안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자릿수 인상률을 제시한 노동계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삭감안을 제시한 경영계도 납득할 수 없다는 취지로 양측에 1차 수정안 제출을 요구했다.

그리고 지난 9일 제6차 전원회의에서 노동계는 올해보다 9.8% 인상된 9400원을, 경영계는 1.0% 삭감한 8500원을 제시했다.

공익위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경영계는 기업의 어려움을 이유로 또다시 삭감안을 고수했고, 노동계의 강한 반발로 회의는 파행됐다.

이동호 사무총장은 “참담한 심경이다. (연이은 삭감안 제시는)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우롱하고 최저임금 제도를 부정하는 오만한 태도”라고 규탄했다.

민주노총 추천 위원들은 경영계가 삭감안을 철회할 때까지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민주노총 윤택근 부위원장은 “곳간에 재물을 쌓아놓고 또다시 마이너스를 말하는 저들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양대 노총은 기만적인 마이너스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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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지난 13일 최저임금 심의 불참을 선언하는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들, 지난 14일 공긱위원들 인상안에 반발하며 퇴장 발표를 하고 있는 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들 ⓒ뉴시스

2021년 최저임금 ‘8720원’
역대 최저 인상률 기록해

파행 이후 공익위원들은 노사 간 격차가 매우 커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한 데 심각하게 우려하며, 제8차 전원회의까지 협상 가능한 현실적인 수정안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럼에도 지난 13일에 열린 제8차 전원회의에서도 노사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공익위원들이 0.3%~6.1% 인상된 8620원~9110원 내에서 최종액을 결정해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결국 양측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고, 14일 제9차 전원회의에서 공익위원들은 8720원을 중재안으로 채택했다.

그간 기업의 경영 악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온 한국노총이었지만, 공익위원 측의 요구를 반영해 낮춘 1차 수정안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의 이번 중재안에 크게 반발했다. 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5명은 “더 이상 내년 최저임금 논의가 의미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의결을 앞두고 전원 퇴장했다.

결국 공익위원 9명·근로자위원 9명·사용자위원 9명이 참석해야 할 표결에는 사용자위원 7명과 공익위원 9명만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표결 결과 찬성 9표·반대 7표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은 8720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올해보다 1.5%(130원) 인상된 금액으로, 이번 인상률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의 역대 최저치다.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2.7%, 금융위기 이후 2.75%보다도 낮은 수치로, 1988년 최저임금이 도입된 이래로 가장 낮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최저임금위원회 박준식 위원장은 “역사상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됐다. 엄중한 위기 상황이지만 노사 간극을 좁히고자 최선을 다했다”며 “지난해에는 노동시장의 경제적 변수를 예상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훨씬 높아진 상황”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을 고려한데 따른 결정임을 시사했다.

박 위원장은 “모두 아쉬움이 남을 수 있고 공익위원 최종안이 미흡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최저임금 진행 과정은 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저임금 노동자의 어려움을 호소해왔던 노동계의 반발은 그 어느 때보다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노총은 “공익위원의 안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안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시한 모든 지표를 참조해도 나올 수 없는 수치다”라며 “1997년 외환위기 때도, 2009년 금융위기 때도 이 같은 참담한 금액안이 나온 사례는 없다”고 규탄했다.

이어 “이번 공익위원안은 최악의 사례로 남을 것”이라며 “최저임금위원회는 협상 개시 이후 시종일관 최저임금 노동자를 코로나19 위기의 희생양으로 몰았다”며 “공익위원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책임을 방기하고 사용자위원의 편을 들어 편파성을 만천하에 보여줬다”고 분노하며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 전원은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꾸준하게 삭감안을 주장해온 경영계 역시 이번 결과에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경총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역대 최저치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된 점,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의 역성장 가시화,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이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점을 종합해 최소 동결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극심한 경제난과 더불어 최근 3년간 32.8%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률을 고려했을 때 이번 추가적인 최저임금 인상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물론 기업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으며 청년층, 임시·일용직 근로자 등의 취업난과 고용불안도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내년도 최저임금은 오는 8월 5일까지 고용노동부 장관이 확정 고시하게 된다.

노사 양측은 확정 이전까지 의결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노동부 장관이 판단해 최저임금위원회 재심의를 요청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심의 과정을 거친 바 없어, 이번에도 최종 의결안인 8720원이 확정 고시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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