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투데이신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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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사회부】 2020년은 노동계·경영계에 모두에게 열두달 내내 혹한기 같은 한 해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경제 상황은 악화됐고, 경영계에 끼친 타격은 상당했다. 항공업계와 여행업계는 닫혀버린 하늘과 함께 문을 닫았다. 끝날 줄 모르는 물리적(사회적) 거리두기로 다수의 영세사업자들은 업종에 관계없이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기업의 경영악화는 자연히 노동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쳤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 고용보험 확대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던 특수고용노동자는 적용 확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인천공항 보안검색 노동자의 올해 안 정규직화 추진은 가뜩이나 어려워진 취업시장 속 취업준비생들의 반발이 계속되면서 무산됐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노동계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비정규직·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위한 ‘전국연대노조’가 결성됐고, 아쉬움은 있지만 의미는 큰 ‘김용균법’이 시행됐다. 본보는 코로나19가 불러온 노동계 악재와 이를 비집고 피어난 희망을 엿보는 <2020 투데이신문 노동 10picks>를 기획했다.

 

본격 시행되는 김용균법, 규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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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법 전면개정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2018년 12월 26일 열린  ⓒ뉴시스

2020년 1월 16일 이른바 ‘김용균법’이라고 알려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이 시행됐다.

김용균법은 지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故김용균씨가 운송설비 점검 작업을 시행하던 중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김용균법의 취지는 위험의 외주화와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하기 위함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보호대상 확대 △사내도급 금지 및 승인 △원청 책임범위 및 처벌수준 강화 △사업주 처벌 수준 강화 △건설업의 산업재해 예방조치 △물질안전보건자료 비공개 심사 등이다.

노동부는 김용균법이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이 산업재해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처벌의 하한선이 없는 점,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전면 작업중지 명령이 제외된 점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도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30대 경륜선수의 갑작스러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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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총괄본부

올해 데뷔 8년차의 전도유망했던 경륜선수 故 변무림(당시 33세)씨가 지난 2월 29일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그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됐다. 키 181cm·몸무게 103kg의 우월한 체격을 가졌고 평소 지병도 없을 정도로 건강했던 변 선수였기에 동료 경륜선수들과 가족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한국경륜선수협회는 변 선수의 급성 심장마비 원인으로 고강도 훈련을 꼽았다. 협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장 내 훈련이 어려워지며 변 선수가 사망 전 이틀동안 실내·외 운동을 했고, 급격한 기온 변화 속 무리하게 훈련을 한 것이 영향을 미쳐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협회는 경륜선수들을 관리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변 선수와 남은 가족을 위해 보상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공단 측은 소액의 경조비 외에는 별도의 보상 방안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륜선수들의 경기·훈련 중 골절 등 상해는 빈번하게 발생하며, 하반신마비 등 중상이나 변 선수처럼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그동안 사망 사고가 다수 발생했고, 보상에 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으나 묵묵부답인 공단 측에 선수들의 불만은 매우 크다.

 

입주민 갑질이 부른 경비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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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숨진 경비원 추모 공간 ⓒ뉴시스

지난 5월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재직하던 故 최희석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유서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최씨 죽음의 배경에는 아파트 입주민과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사망 한달 앞서 이중주차돼 있던 입주민 A씨의 차량을 밀어 옮겼는데, A씨가 이를 이유로 최씨에게 온갖 폭언과 폭행, 협박을 일삼아 온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는 폭행 사건 이후 A씨를 고소했으나, A씨는 명예훼손 및 모욕 등을 이유로 맞고소하며 압박해왔다. 결국 심리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 최씨는 이 같은 선택에 이르렀다.

최씨의 죽음을 계기로 경비원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 및 한국사회에 짙게 깔려있는 갑질문화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최희석법’ 추진이 공론화 됐다.

한편 최씨 유족이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으나, A씨는 불복해 항소했다.

 

특수고용 노동자 빠진 ‘고용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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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고용보험 대상자 확대를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지난 2018년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은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마련됐다. 한 의원 등은 문화예술인과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까지 고용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하길 원했다.

민주당은 해당 개정안을 그대로 통과시켜 고용보험 수혜자의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미래통합당은 문화예술인에 대해서만 확대하자는 의견을 보였다.

결국 여야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20대 국회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는 대상에서 제외된 채 빛을 봤다.

노동계는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에 직면해 있는 특수고용노동자가 제외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거세게 비난하는 한편 21대 국회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법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고용보험 전 국민 확대 운명은 21대 국회로 넘어갔다.

 

인천공항 보안검색 정규직, 올해는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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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의 상징적 기업인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는 지난 6월 보안검색 노동자 1900여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천공항은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골머리를 앓아왔다.

수치상으로는 정규직 전환 최종 목표치인 80% 이상을 이뤄냈지만,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었기 때문에 ‘반쪽짜리 정규직 전환’이라는 노동계의 비판을 면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 보안검색 노동자 직접고용은 이러한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듯 했으나 공기업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이 원칙 없는 특혜, 역차별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노동자 간 새로운 갈등이 유발됐다.

끝내 보안검색 노동자의 올해 안 정규직 전환은 이뤄지지 못했다.

노동 전문가는 정부 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면서도,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는 등 과정·관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역대 최저 인상률, 최저임금 2021년 ‘87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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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4일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021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기준 8720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뉴시스

코로나19에 다른 경제 상황 악화로 노사 모두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운데 진행된 2021년 최저임금 산정은 그 어느때보다 쉽지 않았다.

노동계는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 최저임금의 역할을 더욱 상승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경영계는 지난 3년의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이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은 자제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접전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은 ‘8720원’으로 확정됐다. 인상률은 1.5%로, 이는 최저임금 1만원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의 역대 최저치일 뿐만 아니라 1988년 최저임금 도입 이래 가장 낮은 수치이기도 하다.

2021년 최저임금 산정에 노사 양측 모두 이의제기를 하진 않았지만 인상안을 주장한 노동계, 삭감안을 요구한 경영계 모두 불만족스러운 채 마무리 됐다.

 

코로나19 난세 속 의료계 파업 ‘엎친 데 겹친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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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겪으며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뼈저리게 체감했고, 그 어느 때보다 의료인력이 간절했다.

이에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대대적인 의료 인력 확충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향후 10년간 한시적으로 의과대학 정원을 연 400명씩, 총 4000명을 증원하겠다는 게 당초 정부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인력 확충이 아닌 의료 여건 개선과 취약 분야 지원 등이 우선돼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급기야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은 파업업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의대생들 의사 국가시험 거부 단체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국민들은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의료환경이 좋지 않은데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파업 병원에 대한 보이콧 선언, 국시 거부 의대생 구제 반대 등 의료계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비정규직·특수고용·프리랜서 위한 연대노조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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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일 열린 주노총서비스연맹울산본부의 특수고용노동자 기본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이 비정규직·특수고용·프리랜서 등 미조직 사각지대 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 ‘한국노총전국연대노동조합(이하 전국연대노조)’를 출범했다.

노조는 ‘근로 당사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 단결을 통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노조는 사측의 부당한 요구에 교섭하고 투쟁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이지만 특수고용직 등은 근로계약서를 쓰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돼 왔다.

그간 특수고용직 등은 노조할 권리를 절실히 요구해왔다. 합법노조로 인정받기까지 수개월,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노조 설립조차 엄두내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이에 한국노총은 기존 기업별 노조 체계를 토대로 노조 설립 및 가입이 어려운 취약계층 노동자를 조직화하기 위한 전국연대노조를 출범하게 됐다.

취약계층 노동자의 노동 기본권을 보호하는 등 법·제도 개선을 목표로 한 전국연대노조의 향후 행보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전태일 50주기, 노동존중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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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2일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앞두고 국회의사당 앞에 설치된 전태일 3법 입법 촉구 조형물 ⓒ뉴시스

2020년 11월 13일은 한국 노동운동하면 단연 떠오르는 인물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였다.

1970년 11월 서울 동대문구 평화시장에서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자심의 몸을 화염 속에 내던졌다. 당시 나이 고작 23살에 불과했던 전태일이 이같은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참혹한 노동현실을 개선을 위해서다.

전태일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저임금으로 중노동에 시달리는, 먼지 가득한 좁디 좁은 공간에서 하루 열여섯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그의 죽음은 전무하다시피 했던 한국 노동운동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계기를 이끌어냈다. 50년이 흐른 지금도 노동계는 그의 정신을 이어 받아 또 다른 전태일이 돼 노동자들의 더 나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누더기 되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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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1일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정의당 단식농성 기자회견 ⓒ공동취재사진/뉴시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김용균 빠진 김용균법’으로 노동계의 규탄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노동계는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기업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만 故김용균씨와 같은 안타까운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는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마련을 촉구해왔다.

그럼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이 지지부진했고 결국 2020년 정기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여야 관계 없이 정기국회 내에 처리해야 할 법안으로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결과가 발생하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1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국회 본청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지나친 노동·군대식 조직문화을 견디지 못하고 입사 9개월 만에 죽음에 이른 신입 조연출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도 함께했다.

정부는 지난 2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심사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정부안에는 장관과 자치단체장에 대해서는 처벌을 예외로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기업인만 처벌 대상으로 본다는 비난 여론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적용 사업장의 범위와 유예기간 도입 여부도 기존보다 후퇴됐다는 지적도 있다.

임시국회 회기 종료는 오는 2021년 1월 8일이다. 회기 안에 노동자 안전과 책임자 처벌 강화라는 취지에 맞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입법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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