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22일 열린 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의 죽음의 외주화 중단과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태안 화력발전소 노동자 故 김용균씨가 사망한지도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길 바랐다.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또 다시 누군가 일터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지 않길 소망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기업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만 재발방지가 이뤄질 것이고, 이는 곧 노동자의 안전과 직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용균씨 사망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계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온 오랜 숙원이지만 결국 올해 정기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이 지지부진한 사이 지난달 28일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 노동자가 3.5m 높이의 화물차 적재함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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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21대 국회 우선 입법 촉구 농성투쟁 돌입 기자회견 ⓒ뉴시스

국회서 깊게 잠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김용균씨 사망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 28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이른바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개정 산안법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의 조항이 추가되는 등 이전 법보다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처벌의 하한선이 없는 등 허점으로 인해 실제 현장에서 느낄 실효성은 매우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개정 산안법의 한계에 일각에서는 원청 기업 총수 등 경영 총책임자에게 산재 발생 책임을 묻고 처벌한다는 취지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국회에서도 앞다퉈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이탄희 의원이 각각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안’과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업의 책임 강화에 관한 법률안’ 등 4건이 있다.

국회 법안 뿐만 아니라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씨 및 시민 10만명의 동의를 얻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동의청원도 힘을 실었다.

세부 내용은 법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조치의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보건조치의무, 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처벌, 재해에 대한 기업 처벌, 재해에 대한 정부 책임자 처벌 등을 강화하는 것을 중점으로 삼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정기국회 내에 처리해야 할 법안으로 꼽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대표도 이번 국회 안에 처리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해온 바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10일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정책간담회’를 개최하고 중대재해법을 1호 당론으로 발의한 강은미 원내대표까지 초청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제정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외면받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정법이기 때문에 공청회 절차가 필요하다. 때문에 지난 2일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에 대한 공청회를 가졌다.

그러나 윤호중 법사위원장의 ‘지라시 발언’ 논란과 관련해 사과를 촉구하며 보이콧을 선언한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이 불참하며 공청회는 반쪽짜리에 그쳤다.

그리고 법사위는 지난 7일 제1소위 논의 안건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정기국회 종료일을 하루 앞둔 8일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본회의 상정을 위해서는 법사위 소위와 전체회의 의결이 필요한데 논의 자체가 어려워지며 정기국회에서 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더불어 산업재해 유가족들은 정기국회 종료까지 4일을 남겨둔 시점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72시간 농성’까지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끝내 이번 정기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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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왼쪽부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이용관씨, 김미숙씨,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정의당 류호정 의원과 대화 중에 있다.ⓒ공동취재사진/뉴시스

결국 임시국회로 ‘toss’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21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정의당은 암담한 결과에 분노하며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는 김미숙씨, 과도한 노동·군대식 조직문화에 시달리다 입사 9개월 만에 사망한 신입 조연출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는 국회 본청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나서기로 했다.

강 의원은 “매일 죽어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어야 한다는 사명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1대 국회 정의당 1호 법안으로 제안했다”며 “법안을 발의한 후 190여 일의 시간이 무심하게 지나고, 그 기간 동안 만에도 우리 국민 600여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 법은 법사위 소위에서 단 15분 동안만 논의됐다”고 말했다.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보다 12일이나 늦게 발의된 공정거래법은 절차와 논의 무시하고 사활을 걸면서, 왜 국민들 생명 지키고 안전 지키는 일에는 사활을 안 거는지 엄중히 따져 묻고 싶다”며 “이제 말뿐인 추모와 재발방지 약속이 아니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미숙씨는 “국회의원들에게 법 좀 제정해 달라고 허리 숙여 간절히 얘기하기도, 소리 높여 답답한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논의도 안 하다니 너무도 애가 타고 답답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용균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계속되는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며 “나의 절박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용관씨도 “그저 모든 삶이 부서진 저희와 같은 가족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나라, 일하러 갔다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계속되는 죽음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기 위해, 그래서 저희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 13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임시국회 회기 안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음 날에는 강은미 의원과 김미숙씨, 이용관씨가 있는 단식 농성장을 찾아 “최대한 압축적으로 심의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대표도 같은 날 세 사람을 찾아 임시국회 회기 안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임시국회 회기는 2021년 1월 8일까지로,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빠른 처리도 중요하겠지만, 늦은 만큼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짜임새 있는 입법도 중요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만큼은 기대 못지 않게 아쉬움이 컸던 김용균법의 수순을 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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