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쇳물 쓰지 마라’ 챌린지 온라인서 이어져
매년 2400여명…OECD 국가 중 산재사망 1위
‘기업 처벌 및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에 이목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2010년 9월 7일, 충남 당진의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김모씨가 작업 도중 발을 헛디뎌 전기로에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씨가 떨어진 전기로에는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었고, 김씨는 흔적도 없이 사망했다.

당시 이 사고가 보도되자 제페토라는 필명을 쓰는 한 누리꾼이 댓글을 통해 김씨의 넋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시를 썼다.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댓글시인 제페토의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 '그 쇳물 쓰지 마라' 악보 사진출처 = 프로젝트퀘스천 홈페이지
노래 '그 쇳물 쓰지 마라' 악보 <사진출처 = 프로젝트퀘스천 홈페이지>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로 관심 촉구

이로부터 10년이 지나 싱어송라이터 하림이 제페토의 시에 곡을 붙여 김씨를 추모하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 노래는 펀딩 플랫폼 ‘프로젝트퀘스천’의 기획으로 만들어지게 됐으며, 프로젝트퀘스천은 기획의 일환으로 지난 7일부터 ‘#그쇳물쓰지마라_함께_노래하기’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여러 사람의 참여를 유도하는 ‘함께 부르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하림은 지난 8일 자신의 SNS에 “십 년 전 바로 오늘 당진에서 스물아홉 청년이 용광로에 추락해 사망했다”며 “그 후로 여태까지 위험한 상황은 사라지지 않아 요즘도 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다. 화학약품에 시력을 잃고 높은 크레인이 무너져 사람들이 다치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하다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노래를 만들고 함께 부르는 캠페인을 만들었다”고 노래를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추모시를 쓴 시인 제페토도 “이 프로젝트는 청년의 죽음을 애도한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노래로 만들고 함께 나눔으로써, 청년의 유족은 물론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과 유족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며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누리꾼들의 챌린지 참여를 독려했다.

이 챌린지에는 여러 뮤지션들과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도 참여했으며, 점차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고 있다.

산업재해로 숨진 故 김용균씨 1주기인 지난해 12월 10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산업재해로 숨진 故 김용균씨 1주기인 지난해 12월 10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끝없이 이어지는 산재사망 사고

그러나 챌린지가 시작된 지 3일 만인 지난 10일 김용균씨가 숨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다른 노동자 A씨가 장비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용균씨는 2018년 12월 11일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이하 특조위)’는 지난해 8월 22일 김용균씨 사망사고에 대해 “근무수칙 위반이 아닌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전가한 형태가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숨진 A씨는 2t짜리 스크루(화물선에 적재된 석탄을 옮기는 기계) 5대를 자신의 4.5t 화물차에 옮겨 결박하는 과정에서 스크루가 갑자기 떨어져 사고를 당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태안화력발전소의 스크루 반출정비업무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발주해 신흥기공이라는 하청업체가 담당하고 있었다. 신흥기공은 화물노동자에게 운송업무를 맡겼으며 화물상차는 또 다른 하청업체가 장비를 이용해 적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을 통해 “무겁고 둥근 설비를 적재하기 위해서는 화물이 튼튼하게 고정되기 전까지 화물을 크레인으로 잡아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치는 없었다”며 “복잡한 고용구조는 책임과 권한의 공백을 만들어내고 결국 특수고용 노동자가 다시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지고 만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균재단도 성명을 내고 “어떤 안전장비 없이 스크루를 혼자 결박해야 하는 작업구조가 또 한명의 노동자를 죽였다”고 지적했다.

원청과 하청이 책임을 미뤄 발생한 산업재해는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앞서 2016년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진행하던 김모군이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졌다. 김군의 사망 역시 김용균씨 사망사고와 마찬가지로 원청업체가 안전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발생한 사고로 밝혀졌다.

이 두 사례 외에도 지난 4월 29일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화재참사, 지난 5월 22일 발생한 광주 파쇄기 협착 사망사고 등 산업현장에서 안전관리 미흡으로 인한 인명사고는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해마다 2400여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있다. 이는 OECD 가입국 중 1위에 해당하는 산재사고 사망률이다.

산재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김용균법)이 개정돼 산재사망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을 부과할 수 있게 됐으나 이는 상한형으로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

또 김용균법으로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사망에 대해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로텐더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 류호정 의원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 류호정 의원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문턱 넘을까

‘#그쇳물쓰지마라_함께_노래하기’ 챌린지로 산업재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최근 정의당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지난 6월 11일 류호정·배진교·심상정·이은주·장혜영 의원 등 같은 당 의원 전원, 더불어민주당 권인숙·김남국·김용민·신정훈·윤재갑·이용빈·황운하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 의원 14명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한 바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의 조직문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 등으로 사업장·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 법인, 사업주, 경영책임자, 인·허가권을 가진 공무원 등을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다.

강 의원은 “대부분의 대형재해 사건은 특정한 노동자 개인의 위법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안전을 위협하는 작업환경,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의 부재, 안전을 비용으로 취급하는 이윤 중심의 조직문화, 재해를 실수에 기인한 사고로 간주하는 사회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중대재해가 개인의 실수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위험을 제대로 예방하고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기업범죄’임을 인식하게 하고, 기업이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부담해야 할 사고처리비용이 예방을 위한 투자비용을 압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정의당은 정기국회 첫 날인 지난 7일부터 국회 로텐더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정의당의 주도로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문화예술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그쇳물쓰지마라_함께_노래하기’ 챌린지를 통해 안전한 노동환경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돼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초석이 마련될 수 있을지 국회에 관심이 쏠리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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