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 의혹 기소 갈림길, 장고 들어간 검찰
이유있는 파격 경영 행보? 연일 이재용 리더십 강조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태부터 이어온 경영승계 의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우리나라 1등기업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는 최근 파격 경영행보와 더불어 재계 초미의 관심사다. 이 부회장은 과거 삼성물산 합병 의혹으로 검찰의 기소여부 판단을 앞두고 있다. 아직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한 판결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또 다시 재판대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과 부친인 이건희 회장에 이어 사실상 국내 최대 재벌기업의 총수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 환경에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며 경영인으로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다만 경영 능력을 차치하더라도 창업주부터 이어져온 오랜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으로 끊임없이 사법 리스크에 노출되면서 불안한 리더십도 이어지고 있다.

6년차 총수 이재용, 광폭 경영행보

지난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 부장으로 입사한 이 부회장은 상무와 전무, 부사장, 사장으로 승진을 이어가다 지난 2012년부터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러다 지난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부친을 대신해 총수로서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다.

총수 이재용의 시간도 6년째에 접어들었다. 이 회장 부재 이후에도 삼성그룹은 국내 대표 글로벌 기업으로 입지를 굳히며 성장가도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이 부회장에게 큰 힘이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공정자산이 지난 2010년 약 193조원에서 약 425조원까지 불어나며 여전히 국내 대기업 순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건희의 삼성을 대표하는 반도체와 휴대폰 사업이 글로벌 입지를 강화하면서 성장가도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혈연으로 이어진 3세 경영인이라는 시선에 이 부회장의 리더십은 언제나 도마에 올랐다. 이른바 이재용의 삼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과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 부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로 대표되는 바이오산업을 비롯해 비주력으로 지목됐던 방산사업과 화학사업을 각각 한화와 롯데에 매각하는 등 과감한 사업재편을 추진했다.

최근 이 부회장은 보다 적극적인 경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달 주요 보직에 50대 사장이 전진 배치하는 등 세대교체와 성과주의를 앞세운 이 부회장 체제의 ‘뉴삼성’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DS부문 사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미래 전략을 점검하는 등 현장을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달에는 삼성그룹 총수 최초로 현대차그룹을 방문해 신사업 협력 강화에 나서는 등 파격적인 현장 경영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수원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이달 16일에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찾아 직원들과 환담하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소통 리더십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해체,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 무노조경영 포기 등 조직문화 변화에도 이 부회장이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삼성전자서비스, 에버랜드 노조 탄압과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등 사법 리스크와 무관치 않은 비자발적 행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부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삼성 총수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사법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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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분식회계’ 끝나지 않은 사법리스크

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이 부회장을 기소할지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검찰 수사심의위가 내놓은 불기소 의견에 대한 부담과 해당 사건과 무관한 검언유착 사건에 검찰의 시선이 분산되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검찰이 기소를 결정하게 된다면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이후 다시 재판대에 오르게 된다. 이 부회장은 이미 박 전 대통령 뇌물 혐의 재판으로 삼성 총수로서는 처음으로 구속 수감된 경험이 있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아직 해당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기소가 이뤄진다면 큰 부담이다.

두 사건 배경 모두 이 부회장의 승계 문제와 맞물려있다. 이번 기소건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불거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과 시세조정 등 불법행위에 이 부회장의 지시나 관여가 있었는지가 쟁점이다.

검찰은 지난 2018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판단과 이에 따른 고발로 수사에 착수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를 부풀리는 회계부정을 통해 제일모직에 유리한 삼성물산 합병 비율을 산정, 이 과정을 통해 이 부회장이 지분이 없던 삼성물산을 지배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을 비롯해 ‘시세조종’을 포함한 10여개의 부정거래가 있었고 이 부회장이 여기에 지시 또는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관련 진술 증거와 물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부회장 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불기소 의견을 내놓으며 일단 고비는 넘긴 상태다. 하지만 수사심의위원회 결정이 강제력이 없다는 점에서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이 부회장 기소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미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재판에서는 징역 5년의 실형을 받은 바 있다. 2심 재판부에서 집행유예로 형량이 낮아졌지만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하면서 재판부의 최종 판단을 남겨놓은 상황이다.

이 사건 또한 이 부회장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승마훈련 지원 등 삼성그룹의 자금출연을 지시했다고 보고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건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건에 대해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결국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놓고 포괄적으로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게 사건의 쟁점이다.

20년간 이뤄진 승계 역풍, 불안한 리더십

삼성그룹 총수가 이어지는 과정, 특히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골리앗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의 주인이 될 만큼 이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핵심은 삼성전자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0.08%에 불과하다. 창업주의 손자이긴 하지만 자본시장 기준으로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이에 삼성 오너가는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직접 지분을 사들이는 것 대신 보유지분이 높은 계열사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우회 방식을 선택했다.

더욱이 삼성그룹은 다수 대기업들이 운용하고 있는 단일 지주사 체제가 아닌 계열사가 서로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와 맞물려 줄곧 위법성 논란에 시달려왔다.

이재용의 승계 논란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갓 회사에 입사한 20대 후반의 이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과 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삼성SDS 등 계열사의 미상장주식과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활용해 재산을 불려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 회장은 1995년 이 부회장에게 61억 4000만원을 증여했다. 이 돈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 내 비상장회사인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매입, 두 회사가 상장된 뒤 605억원에 매각해 큰 차익을 남기게 됐다. 다시 그 돈으로 1996년에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1주당 7700원에 매입했고 이후 전환권을 행사하며 에버랜드 지분을 대거 거머쥐게 됐다. 이 같은 과정이 사실상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한 편법이라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왔다.

급기야 2008년 4월 정의구현사제단과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이 회장 비자금 조성 폭로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당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결국 이 사건도 재판대에 올랐지만 전환사채 발행에 가담한 자들에게 배임죄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일단락됐다.

반면 이때 확보한 에버랜드 지분은 삼성그룹 지배하는 종자돈이 됐다. 이후 이 부회장의 에버랜드 지분은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꾼 뒤 상장을 통해 몸집을 키웠다. 이후 삼성전자의 2대주주인 삼성물산(5.01%)과 합병하면서 에버랜드 전환사채로 시작된 이 부회장의 주식은 삼성물산 지분은 17.2%로 변화됐고 지금 삼성그룹의 지배력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이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에서 불거진 회계사기, 뇌물 공여 등 의혹은 사법리스크로 이어지며 이 부회장의 리더십을 위협하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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