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잃은 정의당, 심상정은 물러나고
노동운동 세력에서 여성운동 세력으로
기득권 노동운동세력의 반발, 여성운동세력의 약진
정체성 혼란으로 갈등 깊어져 교통정리 필요 시점
정의당이 격변기에 들어갔다. 2년 전 노회찬 전 의원을 잃어버린데 이어 심상정 대표도 곧 당 대표직에서 내려와야 한다. 정의당은 구심점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 정국 파동은 정의당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정의당은 오는 8월말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 심상정 대표가 없는 정의당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의당이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신에게 물어야 하는 처지다.
정의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이다. 약자를 위한 정당과 민주당 2중대이다.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을 잃어버린 정의당은 한동안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이 시기이다. 과거 노 전 의원과 심상정 대표 투톱 체제로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면서 정의당은 원내교섭단체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4.15 총선을 거치면서 보기 좋게 무너졌다. 무너진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선거법 개정’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의당이 갈 곳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정의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울타리 안에 갇힌 모습이다.
조문 정국 통해 드러난 정의당 한계
정의당 한계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 정국으로 드러났다. 두 젊은 현역 의원이 박 전 시장의 조문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발단이 됐다. 이것을 계기로 대규모 탈당 사태와 대규모 당원 가입 사태가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탈당을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당원 가입이 이뤄진 것이다.
노 전 의원이 사망하고 난 후 정의당의 기류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노동’을 중시하던 정의당이 ‘여성’을 중시하는 정의당으로 바뀌었다. 정의당의 역사는 ‘국민승리21’에서 출발했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주도하게 됐는데 정치영역에서 노동을 대표하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판단, NLPDR 성향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PD 성향의 진보정치연합과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1997년 국민승리21 추진위원회가 발족했고, 그해 10월 국민승리21을 결성했다.
이처럼 정의당의 뿌리는 ‘노동’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정의당의 한축이 됐다. 하지만 노 전 의원의 사망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 여성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4.15 총선 공천 과정에서 여성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담은 후보들이 공천을 받았고, 현역 의원이 됐다.
노동을 대변하던 정의당이 어느 순간 여성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면서 기성 당원들로서는 혼란스런 상황이 됐다. 노동계에서 주도적으로 일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인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해 젊은 여성 현역 의원들의 조문 불참 선언은 노동계 당원들에게는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충격에 빠진 노동계 당원들
그들에게 박 전 시장의 조문 불참 선언은 폐륜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노동계 당원들에게 정의당은 과거의 정의당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노 전 의원의 사망과 더불어 정의당도 함께 사망을 했다는 이야기다. 정의당은 ‘여성정의당’으로 바꿔야 한다는 내부의 불만도 나올 정도로 노동계 당원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기에 심 대표가 오는 8월로 당 대표직에서 내려온다면 노동계는 더 이상 정의당에서 발을 붙일 수 있는 자리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여성계를 중심으로 정의당이 ‘여성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바뀌게 됐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대규모 당원 가입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 정의당의 목표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의 변화와도 연계된다. 노동운동은 정파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지면서 뿔뿔이 흩어진 형국이다. 심지어 미래통합당을 지지하는 노동계가 나타날 정도로 노동운동은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여성운동은 단합된 목소리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는 정의당에게는 노동계의 힘이 약화되고, 여성계의 힘이 강화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아직까지 정의당 내 노동계 당원들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하지만 목소리를 높이는 쪽은 여성계 당원들이다. 더욱이 최근 여성계 당원 가입이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정의당은 거듭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 몇 년 흐르게 되면 정의당에서 ‘노동’이란 가치를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 가치 사라지고 여성 가치 등장
정의당은 이제 더 이상 노동 가치를 추구하는 정당이기 보다 여성 가치를 추구하는 정당이 됐다. 문제는 이로 인해 정의당이 더욱 고립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등장을 넘어 메갈리아, 워마드의 논란을 거치며 20대 젊은이를 중심으로 남녀로 나뉘어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여성운동이 이런 갈등 구조를 해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이 정의당에 고스란히 투영되면 정의당은 더욱 고립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당이 시민단체가 아닌 정당이기 때문에 외연 확장도 고민해야 하고, 유권자들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정의당 스스로 고립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전 시장 조문 정국 역시 그것을 투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운동계에는 ‘사이다’ 같은 발언일 수는 있겠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발언이 될 수 있다.
8월 전당대회 이후 정의당은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와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여성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면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함께 동등한 사회를 꿈꾸는 그런 정당이 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에서 여성의 가치로 넘어간 이 시점에서 정의당 정체성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 전 의원을 잃어버린 정의당이 심 대표마저 뒤로 물러나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이번 전당대회가 다른 전당대회에 비해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