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시민 독재’와 표현의 자유

최근 한 웹툰 작가가 ‘시민 독재’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됐습니다. "지금 웹툰 검열이 진짜 심해졌다. 그 검열을 옛날엔 국가에서 했다. 지금은 시민이, 독자가 한다. 시민독재의 시대가 열렸다"라고 말한 건데요. 하지만 이는 권력 관계에 대한 인지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발언입니다. 검열은 작품을 내기 전 심의 등을 통해서 통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작품을 낸 후에 독자들에게 받는 것은 평가입니다.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이 담긴 작품을 내놓으면서 평가를 거부하는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중들의 평가를 ‘시민 독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평가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고 우기는 꼴입니다.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라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유지, 강화하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은 결국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 올바름과 ‘피씨충’

‘피씨충(PC충)’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피씨(PC)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ness)의 줄임말로, 여기에 벌레 충(蟲)을 붙여 경멸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피씨충은 ‘진지충’, ‘프로불편러’, SJW(Social Justice Warrior,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 - 사회정의 전사)와 비슷한 의미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언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요구를 거절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용어사용을 통해 ‘별 것 아닌 것에 유난떠는 예민한 사람’, ‘그저 웃자고 한 이야기에 쓸데없이 진지한 사람’으로 만들며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필요한 문제제기의 가능성을 봉쇄합니다. 이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수용될 수 없는 사회는 도태를 초래합니다.

일상에서부터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과 문제제기를 받은 사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문제제기에 대해 자기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여기며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를 인지하고 반성의 계기로 삼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문제제기를 계기로 한 시민으로의 성숙이 불가능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역시 문제제기라는 1차적인 목표를 넘어서서 상대의 긍정적 변화를 목표로 삼으며 대화를 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요구를 의도적으로 폄훼하려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고,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용어에 대한 불편함은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는데 “정치적이다”라는 표현은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자신의 유불리나 사회적인 분위기를 따져서 정하는 태세’라는 뉘앙스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라는 단어 자체가 정치인들 때문에 오염돼 있기도 합니다. “올바름”이라는 표현 역시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옳고 그름을 나누는 잣대를 내가 정하겠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의 핵심 가치 ‘포함’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굉장히 PC하다”는 말이 칭찬의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으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표현보다 ‘포함(inclus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용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서 오해할 만한 요소가 없으며, 언어와 행동에 대해 두루 사용할 수 있고 인권적인 관점을 넘어 실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포함(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다양성의 핵심가치 중 하나입니다. 다양성이 다양한 정체성에 의해 교차하는 권력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관점이라면 포함은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실천입니다. 다양성과 포함의 관점과 실천이 사회에서 누가 배제, 소외, 분리, 차별, 억압, 혐오,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지 볼 수 있게 하며 그 구조를 전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합니다.

“모두를 포함하는 사회”는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포용사회”와는 다릅니다. 포용은 ‘포용을 하는 주체’와 ‘포용해야 할 대상’이 따로 있는 뉘앙스를 가지며 정상과 비정상 또는 우열관계가 드러날 수 있는 표현입니다. 포함은 다릅니다.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는 모두가 동등한 주체를 전제로 하며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너무 과도하게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과도한 PC”라는 표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예민하게 군다’,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곡해한 당신이 문제다’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하는 말입니다. 문제제기를 한 사람을 오히려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여기서 PC(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를 ‘모두를 포함하는’이라는 용어로 바꿔서 표현해 보겠습니다. “너무 과도하게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어떻게 들리시나요? 어느 누구도 배제, 소외, 차별, 억압, 폭력, 혐오를 경험하지 않도록 모든 사람이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노력에 대해 ‘과하다’는 비난을 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차별적인 언행을 하지 말라는 요구에 대해 여전히 PC충, 진지충, 프로불편러, SJW 등의 말을 만들어서 그 뜻을 왜곡하고 비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를 포함하는 사회를 만들자”, “모두를 포함하는 언어(inclusive language)를 사용하자”는 지당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를 포함하는 사회를 살고 있을까요? 학교, 일터, 상점 등 일상에서는 ‘모두’ 혹은 ‘모든 사람’이라는 용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학생, 모든 노동자, 모든 고객님 등등 말이죠. 그런데 막상 ‘모두’, ‘모든 사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이 정말로 모든 사람을 고려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모든 사람’의 범위를 잘 들여다보면 한국인(선주민, 내국인)만을 이야기하거나, 비성소수자만을 이야기하거나, 남성만을 이야기하거나, 비장애인만을 이야기하거나, 비청소년(성인)만을 이야기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이나 학력을 가진 사람들만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언어와 삶의 태도가 정말로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자 하는 작은 실천들로 구성돼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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