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부대 편의대원 박한수役 맡아…입체적 연기 펼쳐
앙상블이 주인공인 작품…다시금 배우의 존재감 느껴
“작품 속 선택의 갈림길에서 신념이 가진 무게 깨달아”

뮤지컬 배우 민우혁 ⓒ투데이신문<br>
뮤지컬 배우 민우혁 ⓒ투데이신문

드디어 ‘광주’의 막이 올랐다. 어두운 무대 위에 일렬로 선 배우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그중에 유난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바로 민우혁이다. 무대에 설 때면 그는 늘 강한 힘이 담긴 눈으로 관객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선 뭔가 느낌이 다르다. 어떤 확신이 담긴 눈. 아마 ‘박한수’를 연기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의 눈빛은 또 다른 빛깔로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달라진 이유가 궁금했다. 뮤지컬 ‘광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뮤지컬 배우 민우혁을 지난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뮤지컬 ‘광주’는 올해로 40주년이 된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해 탄생한 창작 뮤지컬이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상징과도 같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모티브로 출발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치열한 항쟁으로 맞섰던 광주 시민들의 희생과 시대정신이 담겼다. 위대한 영웅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 채워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뮤지컬화 된다는 소식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기대감을 높였다. 이후 10월 9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역사적인 개막을 알린 뮤지컬 ‘광주’는 3일간의 프리뷰 공연을 마치고 13일부터 본공연에 들어갔다.

첫 공연을 올린 소감을 묻자 민우혁은 “이번엔 박수 소리부터 뭔가 다르게 들렸다”며 “보통 공연이 끝나고 나서 으레 터져 나오는 함성이나 박수 소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느낀 감정을 관객들 역시 같은 마음으로 느낀 것 같다”고도 했다. “후련하거나 개운하다는 느낌, 잘 해냈다는 느낌보다는 무겁고 먹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던 민우혁의 말엔 우리나라 역사의 발자취를 따른 작품이 가진 의미와 무게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뮤지컬 ‘광주’에서 505부대 편의대원 ‘박한수’를 맡아 입체적으로 변모하는 배역을 연기한다. 뮤지컬의 전체적인 서사를 이끄는 중심인물이다. ‘박한수’는 상부의 지령을 받고 시위대에 잠입해 의도적인 혼란을 일으키란 임무를 맡지만, 야학교사 ‘윤이건’과 ‘문수경’을 만나 무고한 시민들이 폭행을 당하거나 강제로 연행되는 모습을 보고 이념의 변화를 겪는다. 캐릭터 설정부터 쉽지 않아 보였다.

이에 민우혁은 “아무래도 ‘박한수’라는 인물이 자칫 잘못하면 오해의 여지가 많을 수 있는 캐릭터라 연습 과정에서 수도 없이 변했다. 처음에는 (편의대원으로서) 완전히 악마같은 모습을 더 부각시켜 보았다가 광주 시민들을 만나면서 인간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용서받기에는 어려운 인물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한정된 시간 동안 충분한 개연성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도 여러 이유와 핑계들이 분명 있었을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있으니 ‘억울했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보상심리나 피해의식이 담기게 되면 오히려 바라보는 관객들이 편치 않을 것 같다”는 판단에 근거해 지금의 ‘박한수’를 그려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런 일들을 부정하고 고뇌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원래 그런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배우가 배역의 완성을 위해 얼마만큼 깊은 고민을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시민 중 한 명이 아닌 ‘박한수’에 끌렸던 이유가 있었을까. 작품 합류가 확정되면서 5·18민주화운동 관련 내용을 많이 공부했다는 민우혁은 “깊이 알게 될수록 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편의대원이란 존재를 처음 알게 됐고, 진실을 왜곡시켜 순수한 시민들에게 폭도라는 낙인을 찍게 된 것도 믿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박한수’ 역시 결국 인간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민족끼리 벌어진 안타까운 참상 속에서 그래도 그들 모두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오히려 광주 시민의 역할을 맡게 됐더라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던 민우혁은 ‘아마도 거침없이 내지르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라 예상했다.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을 그리다 보니 표현하기도 무척이나 어려웠다. “계속 고민을 하고 있고, 또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답한 민우혁의 표정에서는 사뭇 진지함이 묻어났다. 기존과 달리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려 한다”는 그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인물을 표현하는 일은 때때로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포인트가 되기도 했지만, 배우로서 그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진 않는다고 했다. 다만, 여러 가지 감정에 이입이 되었다가 이를 극복해 내는 일은 늘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박한수’는 많은 민주화운동 작업에 투입됐다고 설정했다. 자기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늘 마음에 품은 채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다시금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인물이라 보았다. 하지만 이제 정말 제대를 앞두고 마지막 작업에 투입되는 것이니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참여한다. 그런데 어리고 연약한 존재인 ‘용수’와 ‘문수경’의 말을 듣고 (상대적으로 강한) ‘군인 특수 부대 출신인 내가 왜 이렇게 해야되지’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나는 또 악마가 되어있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갈등 속에 있다가 이 광주 시민들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시민들의 의지와 신념이 워낙 강해서 (‘박한수’의 저지가) 끝내 통하지 않았다.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넌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야 비로소 ‘박한수’가 자기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박한수’와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도 많았을 것이다. 얼마나 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까 싶었다”

뮤지컬 배우 민우혁 ⓒ투데이신문

그렇다면 과연 ‘박한수’가 아닌 ‘민우혁’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현실에서 신념과 현실 가운데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보통 어떤 선택을 하는 편인지 묻자, 그간 작품에서 맡아온 캐릭터들을 먼저 떠올리고 마는 그는 천생 배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는 작품을 많이 했다”면서 “이제는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고 했다. 이번 ‘광주’의 ‘박한수’ 뿐만 아니라 ‘벤허’, ‘지킬앤하이드’, ‘안나카레니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전히 그런 용기를 실제로 갖기란 쉽지 않다”면서도 “이제는 인물들의 신념이 얼마만큼 컸는지를 조금이나마 더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이렇게 철저한 캐릭터 분석을 바탕으로 오른 무대지만, 사실 어떤 면에선 조금 소극적인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광주 시민들 곁에 선 ‘박한수’는 계속해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민들을 말리려 노력하나 자신이 속한 군부대에서 보이는 모습만큼 강하게 부딪치지 않는다. 그는 “모두 다 의도된 설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민우혁은 이러한 시각이 있을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한 듯, 자신이 맡았던 2회 프리뷰 공연 중 일부 장면의 대사가 조금 변형돼 나갔다고 말했다. 첫 번째 프리뷰 공연과는 달리 인물 간의 갈등 상황과 대화 내용이 조금 더 강한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작품을 일찌감치 보고 온 바로는 어쩌면 그와 같은 변화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 관객들에게도 ‘박한수’의 심리 변화와 극적인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시킬 만한 계기가 될 것 같았다. 그는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수정과 보완 작업을 할 것이다”라며 모두가 공감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작품이 되길 소망했다.

그런데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를 작품으로 다룬다고 했을 때 보통 인물 간에 드러나는 감정이 집중적으로 다뤄지기 위해서는 어쩌면 연극이 더 적합한 장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에 민우혁은 “오히려 뮤지컬이기 때문에 더 극대화할 수 있는 느낌”이라 말했다. “연극도 물론 좋지만 저는 반대로 음악만이 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다룰 때 그 현장이 주는 분위기나 공포감 등을 잘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이었다. “영화에서 어떤 한 장면에 음악만 흘러나왔을 때 감동을 느끼는 부분도 있지 않나. 뮤지컬 ‘광주’에는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치 송스루(Song-through)라 느껴질 정도다”라며 답변을 이어간 그는 뮤지컬 ‘광주’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사실 음악이 조금 어려워서 관객 반응이 많이 걱정됐다. 저희 작품이 창작 뮤지컬이자 초연작이고, (인터뷰 당시) 아직 프리뷰 기간이라 완성됐다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뭔지 모를 긴장감이 계속 흐르면서, 말도 안 되는 엇박자의 음악들이 계속 흘러나오는 가운데 관객들은 긴장감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어제도 고선웅 연출님이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라 말씀하셨는데, 결국엔 우리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프리뷰 공연을 통해 받은 긍정적인 자극이 좋았다던 민우혁은 관객들의 반응 역시 꾸준히 챙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시기상조일 수 있으나 결국 더 좋아질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과 기대감을 보이는 그의 모습이 더없이 밝아보였다.

이런 묵직한 음악과 달리 중간중간 가볍고 밝은 분위기의 무대가 펼쳐지기도 하는 작품이 뮤지컬 ‘광주’다. 부당한 힘에 강하게 맞서던 이들은 갑작스럽게 춤을 추기도 하고, 눈부시게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타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던 긴장감을 잠시나마 풀어놓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이 지점에 대한 반응도 나뉘었다. 그는 “안무가 정말 단순하다. 명확하게 일차원적이다. 처음에는 손발이 오그라들만큼 어색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 장면이 항상 제 머릿속에 있었다. 그리고 (장면) 마지막에는 그 안무가 떠올랐다. 이렇게 순수했던 사람들의 마지막을 생각하니 ‘이것은 정말 신의 한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멋있고 세련된 것도 좋지만 어쩜 이렇게 작품에 잘 어울릴 수 있지 싶어 놀랐다”고 했다. 민우혁은 이를 고선웅 연출의 큰 그림이었을 것이라 보았다.

고선웅 연출과 작업하게 된 소감도 궁금했다. 고선웅 연출은 같은 소재를 먼저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 소설가 조정래의 소설 원작을 극화한 뮤지컬 ‘아리랑’, 주요 연극상을 모두 휩쓴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을 선보이며 익히 많은 화제작을 탄생시킨 바 있다. 그는 이번에 뮤지컬을 통해 고선웅 연출과 처음 함께하게 됐다며, ‘광주’를 차기작으로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선배 배우들이 기회가 된다면 꼭 고 연출님과 작업을 해보라고 했다. 같이 작업을 하면 과연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까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다. 큰 그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은 것들을 다 받아주시고, 조금 더 밀도 있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설정할 수 있게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다”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현한 민우혁은 “덕분에 깨닫게 된 것이 참 많다”고 했다. 어렵게 느껴지거나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면 명확한 답변을 내어 주는 것 또한 작품을 만들어 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더불어 “(고 연출님이) 함께 하는 배우, 스탭들과 무엇이든 같이 하려는 의지를 많이 보여 주셔서 행복했다”고도 전했다. 소재를 보고 흔히 떠올릴 만한 무겁고 슬픈 감정보다는 ‘함께 딛고, 일어서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던 연출 의도에도 크게 공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선웅 연출이 건넨 연기 조언은 민우혁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생각해왔던 “‘연기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깰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고 했다. 어떤 감정을 느끼면 ‘무조건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생각하며 늘 최선을 다해왔던 민우혁이지만, 고선웅 연출은 그런 생각을 정반대로 돌려놓았다.

“연출님은 오히려 ‘(연기하는 인물이) 슬프면 슬프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작품 모니터를 하면서 정말 감동을 받았다. 이런 연출 지도는 처음 받아봤다”던 그는 요즘의 변화에 대해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들을 채워가는 느낌’이라 표현했다. “가능하다면 고선웅 연출의 차기작 오디션도 꼭 보고 싶다”고 말할 만큼 새로운 배움 덕분에 뮤지컬 ‘광주’를 선택한 데 너무나 큰 만족을 하고 있다는 민우혁이다.

뮤지컬 배우 민우혁 ⓒ투데이신문<br>
뮤지컬 배우 민우혁 ⓒ투데이신문

배우들 간의 호흡도 좋다고 했다. 민우혁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두고 ‘앙상블이 주인공인 작품’이라 말했다. 그는 “사실 그동안 앙상블이라 하면 주인공을 받쳐주거나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제가 이 앙상블이라는 존재를 받쳐주기도 하고 함께 호흡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며 “앙상블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고 돕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또 덕분에 다시금 배우로서의 존재감에 대해 많이 느끼게 된 계기를 갖게 됐다고도 언급했다. 연습 기간 동안 배운 것도 많았다. “배우들이 공유하는 단체 채팅방에서는 작품에 참고할 만한 학습 자료들도 다양하게 공유된다”고 했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배우들의 애정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은 그에게 더욱 행복한 작업이 됐다.

또, 이번 뮤지컬 ‘광주’에는 민우혁 외에도 두 명의 ‘박한수’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바로 뮤지컬 배우 테이와 서은광이다.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테이 씨는 저와 체격이나 느낌이 비슷하다. 에너지도 강하고 각이 잡힌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은광 씨는 어리고, 웃는 얼굴이 참 예쁘다. 그래서 처음에는 작품 연습을 하면서 ‘이 옷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은광 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게 너무 슬퍼보였다. 강한 사람이 약해지는 모습이 있는 반면, 약한 사람이 발버둥 치는 모습에서 보이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사실 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인데, 그래서 또 다른 감정들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다”던 민우혁은 “극 중 ‘박한수’와 은광 씨의 나이가 가장 가깝다”며 애틋함을 표현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기획을 바탕으로 공들여 탄생한 뮤지컬 ‘광주’.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역사를 다룬 작품이기에 어쩔 수 없이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기 쉽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라 더욱 그렇다. 관객들이 ‘광주’를 보다 더 수월하게 이해하려면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을지 묻자, 그는 ‘특정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보다 외부인의 입장으로 감상하기’를 추천했다. “일반적으로는 주인공의 시선이나 감정선을 따르기 쉽지만, 철저히 객관적인 타자의 입장에서 살피는 것이 더 좋다”는 의견이다. 관객들은 마치 액자같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 틀이나 감옥을 연상시키는 듯한 무대 위에서 힘차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지금껏 느끼지 못한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기립박수가 이어진 커튼콜은 오래도록 진한 여운을 남겼다. 배우들의 인사가 마무리되면 ‘진실을 진실로 알고 진실되게 행하는 자, 진실 속에 영원히’라 적힌 문구가 액자 위에 나타난다. 차례로 교차하며 퇴장하는 인물들, 그 사이로 뒤돌아선 채 한참 동안 그 글을 바라보는 ‘박한수’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의 곁엔 ‘윤이건’도 함께였다.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했다는 질문에 민우혁은 “진실을 왜곡시키려는 편에 서 있던 ‘박한수’가 결국에는 폭도라는 낙인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고 외치며 광주 시민들을 끝까지 말린다. 하지만 ‘윤이건’은 그 낙인을 지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겠다고 한다. 결국은 (우리는 폭도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라며 “아마도 마지막 문구가 갖는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느낀 사람이 ‘박한수’일 것”이라 말했다.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오롯이 한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 결과, 자연스럽게 나온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위드 코로나 시대에 무대에 오른 기분은 어떠한지 묻자, 그는 감회가 새로운 듯한 표정으로 진지한 답변을 이어갔다. 대작 뮤지컬과 드라마를 오가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왔던 그 역시 “하고 있던 공연이 취소되고 처음으로 오래 쉬는 기간이 생겨 배우로서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노래를 하지 않아 조금만 소리를 질러도 목이 확 쉬는 상태가 되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불안감과 공포심은 더 커졌다. 차 안에서 틈틈이 그동안 했던 작품 넘버들을 계속 부르면서 노래와 발성 연습을 하며 보냈고, 그러다 운명처럼 ‘광주’와 만났다. 민우혁은 이를 다행이라 표현했다. 하루빨리 무대에 서길 바랐는데, 그 역시 처음으로 마스크를 쓴 관객들을 보자 첫 장면부터 울컥하고 말았다. 아마도 모든 배우들이 그런 감정을 느낄 것이라며 다시 무대에 서게 된 데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그는 “배우들은 관객과 만나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를 통해 같이 공연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날 수가 없으니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이제 ‘광주’만 잘되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제 막 첫인사를 올린 뮤지컬 ‘광주’에 강한 자신감을 보인 민우혁. 그는 “뮤지컬 ‘광주’가 미래엔 한국판 ‘레 미제라블’로 기억될 것”이라 확신했다. “가여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표현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뜨겁게 분노할 수 있는 소재다. 아름답게만 끝을 내기보다 ‘이렇게 우리는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라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이 굉장히 좋았다. 어쩌면 ‘레 미제라블’보다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라며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희생된 이들의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끝내 다시 일어서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겼다. “아직은 이 무겁고 힘든 감정에서 완전히 딛고 일어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제가 이 감정을 딛고 일어서야 관객들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는 민우혁의 말에서 강한 책임감 역시 느껴졌다. 그의 눈에 어린 의지만큼이나 굳건한 힘은 상황은 달라도 오늘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희망의 메시지로 자리하며 다시금 모두가 용기를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앞으로 뮤지컬 ‘광주’와 민우혁이 그린 ‘박한수’의 당찬 행보가 더욱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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