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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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소속 상담원들이 사측으로부터 생리휴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입증하라고 강요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다. 상담사들은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인3고객센터는 A사에서 2020년 4월 1일부터 2022년 3월 31일까지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경인3고객센터를 포함한 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노조가 형성되기 전까지 생리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노조를 꾸리고 나서야 생리휴가가 법으로 보장된 권리임을 알게 됐으며, 그때부터 사측에 생리휴가를 청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담원들의 생리휴가 사용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10월 상담사 B씨는 출근 당일 생리휴가를 청구했다. 이에 팀장은 당일에 휴가를 사용하는 것은 근태사고라며 “생리통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 수 없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프면 대개 병원을 가야 하지 않느냐. 생리통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다른 회사에서는 생리대를 사진촬영해 보내라고 하기도 한다”는 등의 말과 함께 확인서 제출을 요구했다.

결국 B씨는 다음날 출근해 병원 진료 확인서를 제출했고,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 노조가 항의하자 팀장은 증빙서류 제출을 요구했던 것은 잘못 알았기 때문이고 팀을 관리하는 취지에서 받았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휴가원 사전 제출을 요구하거나 제출하지 않을 경우 결근 처리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A사는 노동자의 생리휴가를 휴가 절차를 명시한 취업규칙에 근거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데, A사의 취업규칙 45조(휴가절차)에 따르면 휴가 사용을 원할 경우 15일 전 까지 증빙서류를 첨부한 휴가원을 제출해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휴가 예정 당일 출근시간까지 제출 가능하며, 휴가원을 제출 없이 출근하지 아니한 자는 이를 결근으로 처리한다.

지난달 초 상담사 C씨가 출근 전 팀장에게 스마트폰 채팅으로 생리휴가를 청구하자 팀장은 출근 후 휴가원을 작성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결국 C씨는 회사에 출근해 휴가원을 제출하고 나서야 생리휴가 사용이 가능했다.

D씨의 경우 생리휴가를 청구하자 팀장이 약을 복용하고 나와서라도 휴가원을 우선 작성하거나 불가할 경우 연차를 사용하라고 요구했다. 그럼에도 D씨는 생리휴가를 사용했다. 다음날 휴가원 작성으로 마무리됐지만 이 과정에서 팀장은 결근계 사용을 강요하기도 했다.

다른 상담사의 경우 팀장이 결근계 작성을 요구해 이를 거부했지만 결국 결근 처리돼 평가점수 10점이 감점된 사례도 있었다. 노조 측이 본사 파트장에게 항의도 해봤지만 생리휴가는 당일 청구가 불가하고, 회사에는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결근 처리는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일 휴가 신청은 급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A사는 매달 상담사를 SS등급~D등급까지 7개로 등급을 나눠 평가하는데 등급에 따라 성과급이 차등 지급된다. 평가항목에는 근무스케줄 준수율이 포함돼 있다. 휴가 전일 신청한 경우에는 5점의 가점을 부여받을 수 있으며, 당일 업무 시작 전 휴가 신청은 가점 미반영된다. 5점의 감점은 등급 2~3 단계가 떨어질 수 있는 매우 큰 페널티라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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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상 생리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73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의 요청에 따라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줘야 한다. 생리휴가는 일용직 ·임시직, 근무 일수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를 위반하는 사업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노조는 이처럼 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입증 서류 제출을 강요하거나 사용자가 승인을 거부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뿐만 아니라 성차별, 인권침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노조는 당일 생리휴가 청구한 상담사에 대한 결근 처리 철회와 근로기준법 위반과 인권 침해, 성차별에 대한 공식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더불어 생리 현상 입증 요구와 휴가원 사전 작성을 강요한 팀장들과 노조의 지속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바로잡지 않아 인권침해 상황을 지속시킨 현장관리자에 대한 중징계도 강조했다.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에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A사와의 경인3고객센터 위탁운영 계약 해지, 재발 방지를 위한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 및 문제 개선, 상담사 휴가권을 저해할 수 있는 실적 평가 제도 및 근태 관리 제도를 개선을 요청했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김숙영 지부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경인3고객센터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는데 2019년 12월 조합이 생기기 전까지 생리휴가의 존재조차 몰라 사용하지 못했다”며 “생리휴가를 알게 되면서 이를 신청하는 노동자들이 늘었고 그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다수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김 지부장은 “인권, 성차별, 직장갑질의 문제다. 이러한 운영방침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는 건 회사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에 대해 사측은 공개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사례가 한건이라면 개인의 실수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수에게서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문제제기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조가 소통을 시도했음에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다”며 “단순 실수 수준의 징계를 내리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15년 아시아나항공 노조도 사측이 2014년 5월부터 2015년 6월에 걸쳐 소속 승무원 15명에 대해 138회 생리휴가 신청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했다며 고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여성 근로자가 폐경과 자궁 제거·임신 등 생리를 할 수 없는 분명한 정황이 있는 게 아니라면 사측은 근로자의 요청에 근거해 생리휴가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 유죄를 인정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아시아나의 사례는 특별한 사유 없이 노동자의 생리휴가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행위임을 방증한다.

김 지부장에 따르면 사측과 노조는 지난 9일 1차 교섭을 진행하고 이번 논란에 대한 논의를 거쳤다. 사측은 공개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관련 책임자에 대한 징계, 결근 처리 철회 등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확인됐다.

노동자의 건강권과 복지가 보장될 수 있도록 사측의 공개사과 및 불합리한 조치 철회, 책임자 징계,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조속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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