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 저자 김가혜
10년 차 피처 에디터에서 4년 차 쌍둥이 엄마로
드라마식 해피엔딩보다 육아 현실 알려주고 싶어
‘엄마’라는 이름하에 강요된 책임·의무 많다 생각
약자 배려 없는 사회가 엄마를 ‘맘충’으로 만들어
자책하지 말고 서로 털어놓고 공감·위로하길 바라

<엄마를 위한 하나는 없다> 저자 김가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다미 기자】 우리 사회에는 엄마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엄마를 저출산 시대에 소중한 새 생명을 낳아준 ‘애국자’라 칭송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아이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를 일컫는 ‘맘충’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긋난 모성애’라고 평가되는 일련의 사건들로 집 밖에 나온 엄마들은 잠재적 ‘맘충’이라는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가운데, 한편에선 이런 현실은 외면한 채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고자 출산을 독려하는 정책들이 쏟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때는 <나일론>, <코스모폴리탄> 등 유명 잡지사의 피처 에디터였던 김가혜(39) 작가는 쌍둥이 남매의 엄마가 된 이후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한계에 부딪혔다.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육아를 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현실에 무너지는 날도 많았다. 우리 사회에 엄마들이 설자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깨달아 갔다. 

김 작가는 엄마가 된 이후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차별과 불편함을 글로 써 책으로 엮었다. 책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가사분담부터 고부갈등, 경력단절 등 여성이자 엄마인 이들을 둘러싼 첨예하고 논쟁적인 이슈에 관한 김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겼다.

김 작가는 세상에 모든 엄마들이 명찰 앞에 쌓인 높은 벽에 지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투데이신문>은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김 작가를 만나 우리가 몰랐던 엄마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봤다.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 표지ⓒ와이즈맵

육아에 지친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

Q.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어떤 책인가.

제목에 공감하는 엄마들이 읽었을 때 에피소드를 읽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그렇다고 엄마들만을 위한 책으로 쓰진 않았다. 비혼이든 기혼이든, 무자녀든 유자녀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젠더이든 간에 자신의 처지가 약자라고 느끼거나 사회가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면 좋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썼다.

Q.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처음 집필했던 책 <예쁘게 울긴 글렀다>의 추천사를 써준 이숙명 작가에게 출산 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점에 대해 털어놨다. 이 작가는 나에게 “말로 표출하지 말고 글로 쓰면 좋겠다”고 툭 한마디를 던지며 직접 겪은 임신·출산·육아의 현실을 르포 형식으로 쓰길 추천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좋은 주제라고는 생각했지만 내가 선택한 가족의 형태나 아이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그릴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처음엔 글로 쓸 생각을 못 했다. 특히 모성 신화를 굉장히 불편해하면서도 이를 깨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일 년쯤 지나고 나니 육아에 지쳐서 ‘글을 써야 내가 살 수 있겠다. 차분해질 수 있겠다’고 느꼈다. 배우자나 본가 가족, 시댁 식구들에 대한 원망 섞인 생각 대신 왜 이렇게 됐는지를 정리하고 싶었다. 

Q. 책이 출간된 기분은 어떤가.

출산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왕절개 수술 날짜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날짜는 정해져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되지만 떨리고 조마조마했다. 동시에 설레는 기분도 들었다. 

Q. 몰랐던 육아의 현실들이 눈길을 끄는데.  

누군가는 책 제목이나 소제목을 보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시어머니처럼 ‘애가 별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별난 이야기가 아니다. 대다수가 겪는 현실적인 상황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소비했던 콘텐츠는 평생을 같이할 동반자와 결혼이나 출산을 통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내용이 많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는 그다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Q. 책에 아쉽게 들어가지 못한 에피소드가 있나.

다음 책의 프롤로그가 될 것 같은데 책을 마감하고 벌어진 일이다. 친구 세 명과 같이 원고 쫑파티 등을 기념해 소위 힙(HIP)한 술집에 방문했다. 편육회를 주문한 우리에게 오너 셰프는 음식을 소개하며 ‘미경산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미경산우가 생소해 물어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한 번도 출산하지 않은 암소라서 고가에 육질이 좋다”고 설명했다. 모임에서 세 명은 유자녀 기혼자이고, 한 명은 비혼이었다. 셰프가 떠난 뒤 다들 젓가락을 잡지 못했다. 비혼인 친구에게 놀리듯 “출산해서 사회적 가치가 떨어진 우리가 더 속상한 거니, 아니면 미경인 네가 더 속상한 거니”라는 농담을 던졌다. 나중에 미경의 뜻을 찾아보니 월경의 ‘경(經)’과 같은 의미였다. 간혹 사람들이 ‘여성의 몸으로 한 번쯤 잉태한다는 것은 돈으로 할 수 없는 경험이자 축복’이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날 미경산우의 의미를 듣고 ‘여성의 인생은 뭘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김가혜 작가가 <투데이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엄마는 아이와 같이 성장하는 존재

Q. 피처 에디터에서 엄마가 됐는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회사를 그만둔 상태에서 임신을 준비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에디터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고, 더는 분노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육아는 다른 문제라고 느꼈다. 지금 또 다른 문을 열고 헤매고 있는 과정에 있다. 아직은 엄마 초년생이지만, 느긋하게 웃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여유롭게 들어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

Q. 임신, 출산, 육아에서 있어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난임 클리닉을 다닐 만큼 아이를 원했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은 제가 선택한 일이다. 때문에 두 과정은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긍정적일 수가 있나’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난임 클리닉을 다녔던 과정, 임신 후 몸이 무겁고 힘들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원하고, 나와 배우자가 충분히 이야기하고 노력한 상황이잖아’라고 생각했다. 물론 쌍둥이라는 점은 무서웠다(웃음). 임신·출산까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육아는 달랐다. 출산까지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남편과 “언제쯤 아이들 걱정을 안 하고 살까”라는 대화를 종종 한다. 하지만 그런 날은 없을 것이다. 아마 눈 감는 날까지 우리 부부는 자식 걱정할 것 같다. 우리는 육아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줄 몰랐다. 존중하며 버티기(존버)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일인데 왜 존버를 해야 하지, ‘왜 나는 행복하지 않지’, ‘나는 왜 외롭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버텨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Q. 육아 동지 남편도 고충이 있을 것 같다. 

날 서게 싸운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우리가 이렇게 선택한 게 불행하냐’고 물었다. 불행하지 않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고, 남들이 이야기하는 상위 20%의 좋은 배우자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이 사람과 결혼한 것이 불행하기보다 아이를 낳고 보니 고립된 엄마들의 환경에 대해 고달픔과 분노를 느꼈다. 당신을 만나고, 우리가 아이들을 낳은 것이 불행하지 않고, 앞으로도 더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아들과 결혼한 ‘남의 집 딸’에서 이 집안의 대를 이은 ‘우리 며느리’가 되었다. (중략) 출산 전까지만 해도 시댁에서 내 나름의 삶을 존중 받고 있다고 느꼈지만 남편의 성을 쓰는 아이들을 낳은 뒤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요즘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간신히 지키는 기분이다. -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 p.124(그렇게 며느리가 된다, 김가혜 지음. 와이즈맵 펴냄)

Q. 쌍둥이 출산 후 시댁에서의 입지가 좁아졌다 느꼈다고. 

본가와 시댁 가풍이 극명하게 다르다. 친정 고모님은 개인주의 스타일이다. 당연히 저를 사랑으로 키우셨지만,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반면, 시댁 부모님은 자식에게 헌신적이다. 늘 자식 걱정 많고 뉴스를 보며 서울에 있는 내 자식, 며느리, 손주들 걱정하는 분들이다. 출산 전엔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도 내가 성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그냥 넘기셨다. 하지만 출산 후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당사자에게 직접 말할 수 없으니 엄마인 저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신다. 그때부터 내 입지가 좁아졌다. 내 의견과 선택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생기면서 내 이름 석 자를 지키는 것이 굉장히 힘들구나 생각했다.

Q. 작가가 생각하는 ‘엄마’의 의미는.

영화 <어느 가족>에는 “아이를 낳았다고 다 부모는 아니다”라는 주인공의 대사를 상대방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부모는 안된다”라고 받아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이 마음 깊이 남았다. 임신해서 출산하는 형태의 가족이 ‘정상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어쨌거나 내 선택으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엄마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으로든 책임이 많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또 ‘엄마’는 한 생명을 키우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넓어지는 사람이다. 유아차를 끌고 다니면서 길거리 턱이 많다고 느꼈고,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엄마의 의견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땐 소수자를 떠올렸다. 부모가 최선을 다해도 분명 아이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을 텐데 가정이나 사회적으로 보호가 되지 않는 아이들은 얼마나 척박한 환경에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인격적으로 갖춰진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렇게 돼가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각이 점점 더 넓어진다.

Q. 엄마가 되기 전후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책에도 몇 번 썼지만, 만삭 때까지 가모장적인 말투로 남편에게 “낳아는 드릴게. 네가 키워라”라고 이야기했다. 그게 될 줄 알았다. 직장 다니는 여성들이 3개월 쉬고 복직했던 상황을 보며, 나 역시 아이를 낳고 3개월이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갈 길이 매우 멀게 느껴졌다. 배우자 한 명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나와 남편, 사회가 육아를 함께 하고, 보육 시설과 돌봄 서비스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겠다고 예상했지만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많았다. 내가 생각했던 엄마는 단순히 신체적으로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아이의 양육자로서 책임과 의무가 정말 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임신 중 부은 다리 ⓒ김가혜<br>
임신 중 부은 다리 ⓒ김가혜

혼자 자라나는 아이는 없다

Q. 엄마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강요되는 책임들이 부담되진 않나. 

엄마의 책임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헌신하지 않는 엄마가 어딨어’, ‘모성이 없는 엄마가 어딨어’, ‘코로나 시국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엄마는 모성이 부족한 거 아니야’라는 말들이 아이를 방임·방치하는 상황처럼 몰아가고 결국 엄마에게 모든 짐을 다 지운다고 생각한다. 딸 가진 친구들은 성조숙증 때문에 많이 고민한다. 지금의 아이들 성장 환경에는 환경 호르몬에 노출돼 있고, 발육도 빠르니까 당연한 현상일 수 있는데 엄마들은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부부가 함께 양육해도 아빠들은 걱정할지언정 죄책감을 느끼진 않는다. 이런 책임을 털어내기 위해 엄마들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엄마에게 모든 책임과 의무를 주는 경우가 아직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동반한 카페 방문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어린이 음료를 하나씩 들리고 함께 먹을 곡물 과자까지 사준다면, 어른 둘이 마시는 커피값보다 많이 나왔다. (중략) 노키즈존은 아니지만 아이를 동행한 게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입장을 허락해준 업소에 대한 최소한의 매너로, 최대의 경비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매장 스태프보다 열심히 자리를 치우고 나온다. -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 p.267(안녕하세요, 서울 사는 맘충입니다, 김가혜 지음. 와이즈맵 펴냄)

Q. 우리 사회는 유자녀 여성들에게 지나친 자기검열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아기를 낳은 친구들이 민폐 끼치는 엄마들을 더 싫어한다. 왜 더 싫어할까 생각해 보면 본인들의 생활 반경이 좁아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의 행동을 특정 집단의 대표적인 특질처럼 생각하니까 오히려 출산한 친구들이 폐 끼치는 걸 더 불편해한다. 비혼 친구들은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데, 기혼 친구들이 더 불편해하고 경계하는 걸 보면 육아와 관련된 행동이 나쁘게 보일까 봐 사회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Q. 엄마라는 존재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은 아직 사회적인 배려가 부족하다고 일차적인 결론을 내렸다. 외국은 여성·노약자·아이를 먼저 챙기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문을 잡아 주는 게 당연한 매너이고 엘리베이터도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려준다. 책에 등장하는 싱가포르 친구는 서울에 오면 굉장히 불안해한다. 회전문은 지나치게 빨리 돌아가고, 아이와 택시를 탈 때 기사님들은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 서울에서 사는 시간을 굉장히 불편하게 여기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아이를 데려왔다는 것만으로 미안함을 느끼며 먼저 가겠다고 말할 정도다. 사회적인 배려가 부족하니까 엄마들이 오히려 공격에 가까운 방어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성인이 인도에서 전동 킥보드 타고 지나가면서 잠깐 손을 놓은 제 아이와 부딪혀 사고가 날 뻔했는데, 그 사람이 도리어 우리에게 화를 낸 경험이 있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건 아니지만, 배려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엄마들이 자기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이 방어적 태도로 나타나다 보니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 같다. 예를 들어 아이와 함께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면 “음식에 매운 재료가 들어가니 그건 빼 드릴까요?”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런 작은 배려만 있어도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애는 너희 집에서’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니까 엄마들이 밖에서 민폐일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개념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맘충’이라고 찍히는 사람들 모두가 개념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Q. 엄마로서 제일 듣기 싫은 충고나 잔소리가 있다면.

‘아이들은 알아서 성장한다’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 아이는 절대 혼자 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한 마을의 힘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키우는 것이다. 부모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눈높이를 맞춰 생각하면 혼인 여부에 상관없이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Q.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경력단절, 독박육아, 고부갈등 등 문제를 꾸준하게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는 부부는 주 양육자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돈의 가치다. 남편이 일하지 않으면 집안 경제가 휘청거리지만, 제가 일하지 않으면 여윳돈이 없어지는 수준이다. 때문에 전과 똑같이 일할 기회가 오더라도 포기해야 한다. 성별 간 임금 차별이 없다는 건 지금 상황을 정확히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은행에 수석으로 입사한 친구는 워킹맘으로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를 사용했다. 지금 그 친구보다 늦게 입사한 남직원들은 과장으로 승진하거나 본사로 이동했지만 친구는 여전히 대리다. 육아로 포기했던 시간을 육아 경력으로 인정하고 받아주는 회사가 없기 때문에 경력단절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 같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출·퇴근하는 업무를 시작하는 게 겁이 난다. 낙오되는 느낌도 있다.

김가혜 작가 <투데이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br>
답변 중인 김가혜 작가 ⓒ투데이신문

당연한 포기가 없는 세상이 되길

Q.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했던 순간은.

두 아이를 양옆에 끼고 자는 남편을 볼 때면 평화로울 때가 있다. 한 사람과 약속하고, 조율해나가면서 커 가는 아이들을 보면 제가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들과 자기 전에 많은 대화를 하는데, 제 옆에 와 건너편 아파트의 밝은 불빛을 보며 “엄마 여기 이렇게 불빛이 비추니까 아름답지”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아이는 분명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존재다. 아이들이 커가고,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모습을 보면 벅차다.

Q. 현재 육아 4년 차이신 데 지금은 많이 편해졌나.

육아는 시기마다 힘든 부분이 다르다. 신생아 때는 등을 돌린 사이에 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 신경이 바짝 서있었다. 화장실도 못 갔었는데, 이제는 화장실 문을 열어두고 아이들 노는 소리를 들으며 샤워도 한다. 현재 4살이 된 아이들은 ‘일춘기(一春期)’이다. 아이들 각자가 원하는 것도,  표현 방법도 다르다. 두 아이가 잘 놀다가도 싸우거나 혹은 요구 사항을 엄마가 받아주지 않으면 갑자기 드러눕기도 하고 소리 지르며 자지러지게 울 때가 있다. 남편과 ‘언제쯤 미운 네 살이 지나갈까’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아이들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해주고 싶지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화가 나면 소리도 지르게 되는 부분들이 힘들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적응기도 마친 시기에 나는 같은 평가(산전·산후 우울평가)에서 전에 없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몹시 부정적이었고, 끝없이 자책했으며,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행했다. -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 p.312(화내는 엄마라 아이를 망칠까, 김가혜 지음. 와이즈맵 펴냄)

Q. 육아 우울증 극복에 도움 된 방법이 있다면. 

책에도 여러 번 고맙다고 했던 남사친 J씨다. 술을 많이 마시면 전화해 “너는 다 가졌잖아. 남편 있지, 쌍둥이 남매 있지. 제발 행복한 줄 알아”라는 이야기를 한다. 제가 한 선택이기 때문에 행복한 점과 답답한 점을 잘 구별해야 하지만 고립되면 행복조차도 받아들이고 못하고 부정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이런 쓴소리가 때론 달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내 아이 사랑할 거 사랑하고, 내 배우자한테 고마운 거 고맙게 여기면서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이야기하자고 생각했다. 브런치에 글 쓰면서 남편에 대한 분노가 확실히 줄었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과정에서도 배우자에게 많이 고마웠다.

Q. 육아 우울증을 겪는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길 바란다. 스스로 여유가 없을 땐 기혼 유자녀 여성들과의 대화가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취집(취직 대신 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바라는 것)을 하고 싶어 하고, 반백수 같은 나의 프리랜서 생활을 부러워했다. 생각해 보니 엄마들이 힘이 드니깐 ‘너 정도면 됐지 뭐가 그렇게 바라는 게 많아’라며 내가 남보다 못한 상황만 계속 떠올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말이지 함께 불행해지고 싶어서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으면 좋겠다.

Q. 먼 미래지만 희희와 낙낙이가 만일 부모가 된다면 그땐 어떤 세상이 됐으면 좋겠나.

부모는 안 돼도 좋을 것 같다(웃음). 어른이 됐을 때 우리처럼 당연한 포기가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나는 이래서 이건 안 될 것 같아’, ‘내가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희희와 낙낙이가 사이좋게 놀고 있다. ⓒ김가혜
희희와 낙낙이가 사이좋게 놀고 있다. ⓒ김가혜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2년 전 그날의 일기를 읽고 생각했다. (중략) 나는 어떻지? 기던 아이가 뛰고, 옹알이 하던 아이가 성대모사까지 하며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게 되는 동안, 내 세상은 얼마나 넓어졌을까? -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 p.327(엘리베이터에 갇힌 그 엄마는 어떻게 되었나, 김가혜 지음. 와이즈맵 펴냄)

요즘 나는 비상등을 켜고 멈춰서 주변을 돌아보고 천천히 차를 뒤로 물리는 연습에 한창이다. (중략) 엘리베이터에 갇힌 그 엄마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는 오늘도 차 키를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다. 더디더라도 지상으로 나가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달릴 날을 위해. -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 p.334(후진은 무섭지만 달리고 싶어, 김가혜 지음. 와이즈맵 펴냄)

Q. 엄마로서 놓인 세상의 크기를 2년 전 갇혔던 엘리베이터에 빗댔다. 최근 시작한 운전이 엘리베이터라는 작은 공간에서의 탈출구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듯하다. 

아직까진 운전이 능숙한 단계는 아니다. 거의 울면서 동네를 돌고 있는데, 일단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건 맞다. 현재 주차장 입구쯤에 와있는 느낌이다. 운전에 대한 공포증이 있어 극복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생각하고 실행하는 과정 자체를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직장을 다시 구하는 사람이든 육아의 형태를 바꾸기 위해 배우자와 고민하는 사람이든 변화에는 진통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스스로 자책하게 되고 ‘괜히 시작했나 봐. 그대로 있었으면 익숙한 대로 괜찮았을 건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익숙한 게 좋은 건 아니다. 때때로 굉장히 모두가 위험해지는 길이다. 저로 인해서 몇 사람이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작은 나비 효과처럼 되면 좋겠다. 서로 격려해 주고, ‘나아질 거야’, ‘더 잘할 수 있어’, ‘넓어질 거야’, ‘나도 했어’ 같은 말을 해주며 서로 끌어주면 좋겠다.

현재 주차장 입구라서 제 세상이 얼마나 커졌는지 모르겠지만, 소중한 사람 집에 놀러 갈 수 있을 만큼 커지길 바란다. 많은 도움을 줬던 친한 언니가 서울 마포구에 집을 마련했다. 축하하기 위해 뒷자리에 액자를 싣고 갔는데, 소중한 사람을 만나 격려할 수 있을 만큼의 기동성이 생겼다는 게 좋았다. 지금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상수동에서 마포구로 확장하고, 나중엔 강을 건너 강남도 가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한마디 하자면.

엄마로서, 동지로서 건강하게 화내고 싸우기를 응원한다. 참아가면서 병들거나 혹은 한 사람에게만 분노를 표현하지 말고, 건강하게 싸우면 좋겠다. 배우자든, 본가 가족이든, 친구든 싸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정적인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입장을 전달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서 듣고,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엄마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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