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직장내 괴롭힘에 따른 산업재해 인정
적응장애·우울병 장애 등 신청 상병 사실상 모두 승인

근로복지공단 ⓒ뉴시스
근로복지공단 ⓒ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근로복지공단평택지사는 지난 11월 24일 A씨에게 ‘적응장애’에 따른 산재보험 요양급여신청이 일부 승인됐다는 소식을 서면으로 통보했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해 질병이 발생했다는 것이 공공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공단이 일부 승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A씨가 신청한 적응장애와 우울병 장애 중, 적응장애만 요양급여 대상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울병 장애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적응장애는 우울병 장애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A씨가 신청한 상병은 모두 승인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설명이다.

서울아산병원의 정의에 따르면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때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정도를 넘어선 훨씬 현저한 고통과 사회 또는 직업(학업) 기능에서의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경우 적응장애로 진단한다. 또 이에 수반하는 질환으로는 우울증, 행동 및 충동 장애, 사회공포증 등이 지목되고 있다. 

괴롭힘에 의한 업무상 스트레스 인정

A씨는 요양급여신청을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자료를 제출하며 삼성전자 평택공장으로 배치된 뒤 상사들로부터 욕설 물건집어던지기 업무 시간 외 연락 고의적인 업무량 가중 등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적응장애 및 우울병 장애’를 진단받았다고 명시했다. 

그는 함께 작성한 확인서에서도 “불안하고 우울한 증상이 계속됐고 가해자 선배 상사분들을 대면할 때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련이 일어나고, 심장박동수 증가, 어지러움, 식은 땀이 흐르는 증상이 지속됐다”라며 “불면증 증세가 지속되고 가해자 상사분들이 힘없는 저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악몽을 지속적으로 꾸면서 사내 병원을 가게 됐다”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A씨의 사례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다. “심리평가보고서, 의무 기록 등을 검토한 결과 신청인이 호소하는 증상 및 경과 등을 고려했을 때 신청 상병 ‘적응장애’가 의학적으로 확인된다.”

구체적으로 위원회는 “회의 당시 녹취록 등을 통해 폭언과 욕설 사실이 확인된다는 점, 가해자들이 그룹장, 파트장 등 조직 내에서도 높은 직위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더욱 가중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신청인의 신고 이후 사업장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경고 및 분리 조치를 취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직장 상사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신청인이 업무 스트레스를 받아왔음이 객관적으로 확인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제부터 진정한 치료 시작, 복직할 생각이다”

삼성전자의 직장내 괴롭힘 의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문제가 된 바 있다. 삼성전자는 경영원칙의 하나로 건전한 조직 분위기를 강조해왔지만 메모리사업부의 BB탄 폭행, 광주사업장의 성희롱 발언, 해외법인장의 폭언 등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직원들의 피해 호소가 심심치 않게 제기돼 왔다.    

A씨의 경우 처음 직장내괴롭힘이 발생한 이후 산재가 승인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에 신고를 접수한 2020년 1월을 기점으로 계산해도 2년이 흘렀다. 그는 긴 시간동안 무너져 가는 마음을 다잡으며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싸워왔다. 

몇몇 사람들은 그에게 포기를 권유하기도 했다. 인정 받는 과정이 고통스러웠음은 물론,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기업을 상대로 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그를 더욱 짓누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가족 역시 그의 건강을 염려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그만 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가 사내게시판에 올린 ‘직장내 괴롭힘 문의 드립니다’라는 글에는 A씨에게 용기를 건네고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으라며 가해자가 꼭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지지해준 동료들도 있었다.

같은 40대의 한 직원은 비슷한 처지에 처한 상황을 공유하며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소송을 준비할 때 알게 된 변호사 역시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그를 독려했다. 

산재 승인이 확인된 지금, 그는 이제야 치료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다잡게 됐다. A씨를 진료해온 담당 의사의 말에 따르면 우울증 약을 복용한 시간만큼의 회복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가 처음 처방을 받은 것이 2019년 10월이니 예전의 모습을 온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적어도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테다.  

하지만 그의 싸움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A씨는 회사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냐는 물음에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은 후 복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재 승인을 근거로 회사에도 재심을 요청할 참이다. 할 수 있다면 추가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 

현직 노무사 역시 산재 승인 이후 회사에 재심의를 요구하거나 노동부 재진정, 민사소송 등의 후속조치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노무사무소 하율의 박사영 노무사는 “산재로 100%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라며 “재심의를 요구하거나 노동부에 다시 진정을 넣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외부에 전하고 추후 복직을 계획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자신과 같은 피해를 다른 사람이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분들에게 용기도 주고 싶고, 저와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제 고통을 전하게 됐습니다. 아직은 복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부터 마음의 치유를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회사로는 다시 돌아갈 생각입니다. 피해자가 떠나는 순간 가해자들이 더 당당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병이 회복된 후에 복직을 하면 더 강한 조치를 요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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