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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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처음 그의 이야기를 알게 된 건 지난 4월이었다. 42세 A씨는 온라인 익명게시판에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에서 겪은 직장내 괴롭힘을 토로하며 직속 상사 3명을 가해자로 지목하고 엄중한 처벌을 호소했다. 

그는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차고 힘들어 용기를 내 글을 적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그에게 취재를 요청했고 회신하겠다는 답변까지 받았지만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다시 A씨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8개월 후였다. 그는 직장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고용노동부, 경찰의 문을 두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그간의 설움을 토해냈다. 

특히 직장내 괴롭힘을 집중적으로 당했던 2019년은 이제 막 관련법이 제정된 시기라 고용노동부에서도 절차 이행 여부만 확인하고 권고를 내리는 수준에 그쳤다고 증언했다.  

직접 얘기를 듣기 위해 만난 그의 모습은 멀리서도 야윈 티가 났다. 두꺼운 외투 속에서도 드러나는 지친 어깨와 가늘어진 손이 그동안의 괴로움을 짐작케 했다. 

A씨는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한 이후 하루 3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고 체중이 22kg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이어가는 내내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어느 날 시작된 폭언과 욕설

A씨는 2019년 1월부터 직장내 괴롭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시 그가 근무했던 평택사업장에서는 설비 고장으로 인한 생산 차질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고 전했다. A씨가 상사 3명의 직장내 괴롭힘 대상이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일 같이 욕설과 폭언을 들었고 심지어는 집기를 자신에게 집어던지는 일도 겪었다고 주장했다. 설비 문제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는 매번 묵살한 채,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질타만 이어졌다고도 했다. 

그렇게 9개월 가까이 직장내 괴롭힘이 이어진 가운데, 그는 늦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번은 수면부족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도로의 가드레일을 들이 받기도 했다. 이 사고로 A씨는 머리가 찢어지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목 부위에 생긴 부상은 아직도 치료를 받는 중이다. 

결국 그해 10월 찾아간 사내 마음병원에서 그는 우울증, 수면장애라는 진단과 함께 약을 처방 받았다. 약은 현재까지도 복용하고 있으며 여전히 깊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반복되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을 멈추기 위해 당사자들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미안하다면서도 다음날 출근하면 또 욕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행위들이 반복됐어요. 폭언이 일상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후배들이 앞에 있는데도 그러니까 수치스러워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아직까지 수면제와 항우울제를 먹고 있지만 하루에 3시간을 채 못자고 있어요.”

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회사에 정식으로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했다. 2020년 1월의 일이다. 인사팀은 A씨가 제출한 녹취록 등의 증거자료를 확인했고 당사자들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다. 그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녹취록은 2개에 불과했지만 지속적으로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볼만한 자료들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처분은 서면경고와 구두경고에 그쳤다. 그는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지만 회사는 해당 사건을 ‘조직문화를 해치는 행위’ 정도로만 판단했다. 

A씨는 회사에 요구한 사업장 분리도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인사팀은 A씨의 분리 요청이 있은 지 한참 후에야 상사 중 1명을 다른 층으로 이동시키고 A씨를 다른 부서로 배치하기도 했지만 모두 같은 건물에 위치해 사업장내 이동 중이나 식사 시간, 현장 등에서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다른 조직으로 옮기긴 했는데 같은 건물에 있다 보니 엘리베이터에서도 만나고 식당에서도 만났습니다. 가해 상사분들을 대면할 때면 제 의지와 상관없이 몸에서 경련이 일어났고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어지러움도 느꼈고 식은땀도 흘렀습니다.”

직장갑질119 오진호 집행위원장에게 회사의 인사처분 수위와 사업장 분리 조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오 위원장은 “행위자에 대한 징계나 조사결과 이후의 보호조치, 피해자에 대한 모니터링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회사의 대응은 굉장히 처참한 수준인 것 같다”라며 “피해자의 고통을 이정도로 방관하고 내버려 뒀다는 것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물론 ESG 경영 차원에서도 0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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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노동부의 대처, 좌절된 형사고소

A씨는 회사에 재심을 요청했음에도 원하는 조치를 받을 수 없자 2020년 5월 경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부의 대처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노동부는 회사가 직장내 괴롭힘 조사를 위한 절차를 준수했는지만 확인했다. 사후 조치도 사업장 분리를 권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A씨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를 모욕죄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죄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변호사 소견까지 들었지만 회사의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증거자료 확보 시점이 6개월을 넘겨 결국 기각되고 만 것이다. 모욕죄의 경우 친고죄로 분류돼 증거 수집 시점에서 6개월이 지나면 효력을 잃는다.  

“직장내 괴롭힘을 증명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어요. 여러 시도를 했음에도 인정이 되지 않을 때의 실망감도 컸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다가도 더 우울해 지고 또 다시 힘내서 준비하는 과정들이 반복됐습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같은 A씨의 주장에 대해 “당시 회사는 조사와 함께 구성원 면담을 진행했다”라며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도 했다. 분리를 포함한 할 수 있는 조치는 취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 진정과 형사고소 이후 그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할 수 있는 남은 선택지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인정뿐이었다. 그는 모욕죄가 기각된 지난해 11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을 접수했다. 

산재 승인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런 조언도 구할 곳 없던 그는 홀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 직원은 노무사도 없이 찾아온 그를 마주하며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산재 신청이 정식으로 접수된 2021년 1월, 그는 가족 돌봄 휴가를 신청했다.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가 떠나는 상황이 이번 사례에서도 반복됐다. A씨는 여전히 밤에는 잠들지 못하고 과거를 떠올리며 괴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23살 삼성전자에 입사했고 평택사업장으로 옮겨오기 전 십수년간 문제 없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해왔다. 75kg의 건장한 체격을 가졌던 한 가정의 가장은 갑자기 시작된 직장내 괴롭힘 앞에 무너져 가는 일상을 목도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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